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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서간을 보내며, 은총과 평화를 기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시작입니다. 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고 하시면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어 그들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핵심을 ‘회개하라.’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할 수 있을까요? 저는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은 ‘깨끗한 안경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안경알에 먼지가 묻으면 세상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똑같은 물체들이고 책이며 사람들인데 먼지 때문에 흐려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도 먼지가 있다면 우리의 눈 또한 그만큼 세상을 흐리게 볼 것입니다. 그러나 안경알을 닦듯 우리 마음의 먼지를 닦는다면 세상을 깨끗하게 볼 것입니다.
그러면 안경알은 누가 닦습니까? 안경 주인이 닦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누가 닦습니까? 우리 마음의 주인이 닦습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나 자신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 세상을 만드신 그분이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닦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려면,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해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오늘 하루 안경알을 깨끗이 해 보십시오. 그러기 위하여 주님께 내 마음의 안경알을 맡겨 드리십시오.(이찬우 다두 신부)
위기 없는 성장, 통증 없는 치료, 십자가 없는 부활을 거절합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우리 교회와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우리는 쉬운 승리를 좋아합니다. 위기 없는 성장, 통증 없는 치료, 십자가 없는 부활을 좋아합니다. 영웅과 기적의 주인공과 신기록 수립자가 들어올 때 환호를 보내며 페레이드 구경하기를 즐겨합니다.”
신부님의 예리한 지적에 100% 공감합니다. 신부님의 일침은 우리에게 값싼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고 반대로 하느님께서 요청하시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어떤 교우분들께서 추구하는 신앙은 너무나 미성숙하고 유아기적인 것이어서 또 놀랍니다. 눈만 뜨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현실성 떨어지는 끝도 없는 기적이요 치유요 표징입니다.
예수님 시대도 상황은 비슷했나 봅니다. 얼마나 한심스럽고 안타까웠으면, 예수님께서 장탄식을 터트리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그런 분들이 즐겨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조금 밋밋하게 느껴지는 본당 공동체나 신앙 공동체는 뒷전입니다. 지극히 어색하고 볼썽 사나운 곳을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거기 가면 그런 분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맞춤형 행사가 이어집니다.
입만 열면 성공이요 합격입니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불치병의 치유나 기적이 설교의 거의 전부를 차지합니다. 신앙을 빙자한 사기꾼들입니다. 거기에 현혹되어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는 분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경고 말씀이 날카롭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 이 시대 표징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그 한가운데에서 숨어있기에 매일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표징이나 기적을 찾아야 되겠습니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멀리 가실 필요도 없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할 수 있는 매일의 미사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이요, 표징 중의 표징입니다. 정성껏 봉헌되는 미사 안에서 우리는 빵과 포도주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준비된 미사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홍해의 기적을 연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어제의 나를 홍해 바다에 깊숙이 묻고 새로운 나로 새로 거듭 태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입국할 수 있습니다.
사방이 높은 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이웃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기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한 쪽 문을 닫으시지만 언젠가 또 다른 문을 열어주심을 굳게 믿는 이웃들 안에서 우리는 하늘의 표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의 병폐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이 시대, 없이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웃들 안에서 우리는 기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최근 저는 「문명의 역습」이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인류는 발전과 성장을 좋은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통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쇠를 녹여 낫과 쟁기를 만들었지만, 같은 쇠로 총과 칼을 만들었습니다. 엔진을 발명하여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그 엔진은 탱크와 전투기도 만들었습니다. 성장과 발전은 자원을 요구하고, 그 대가는 환경 파괴와 생명 멸종이었습니다. 인류는 또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어떤 이는 AI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할 것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디스토피아로 몰아갈 것이라 경고합니다. 기술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초심으로 돌아가라”라고 하셨습니다. 문명을 지탱하는 기둥이 욕망과 이기심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어야 한다는 초심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여기에는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있고,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오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눈과 귀는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알은 안에서 껍질을 벗기어야만 새가 되듯, 우리 역시 마음을 열고 스스로 변화할 때만이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교회가 직면한 과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유럽의 수많은 성당이 아름다운 건물만 남고, 공동체의 생명력은 잃어버린 현실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교회가 가난한 이웃, 소외된 사람,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하지 못할 때 교회는 세상의 빛을 잃고 맙니다.
우리는 또한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라는 도전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미세 플라스틱, 지구 곳곳의 산불, 점점 심해지는 가뭄과 홍수는 우리에게 창세기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주 하느님은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동산을 돌보는 대신, 탐욕과 무관심으로 지구를 훼손해 왔습니다. 또한 전쟁과 난민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처입니다. 우크라이나, 아프리카, 중동에서 이어지는 전쟁과 이념의 갈등 속에 수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일러줍니다. “평화를 이루는 이는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교회가 평화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면, 복음은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은 이론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입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어려운 질문들과 무거운 과제 앞에 서 있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는 언제나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 왔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 위에서 희망을 찾게 하십니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기둥으로 삼는 우리가 될 때, 문명과 교회는 어둠을 넘어 빛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에드워드 국왕 St.EDWARD
the Confessor St. Eduardus Ⅱ, C 1003 at Islip, Oxford, England -5 January 1066; interred at the Abbey of Saint Thomas Becket; body incorrupt
성인은 영국의 에드워드(에드와르도) 왕이었다.이 왕은 ’착하신 왕’ 로 별명이 붙을 정도로 좋은 일을 많이 했다.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수도원을 재건하였다.
현재까지도 국왕 성 에드와르도무덤은 그 사원안에 있다.
성인은 웨스트민스터의 주보성인이며 고아들과 방랑자들의 주보성인이다.
그는 에텔레드 왕과 왕후 엠마의아들로 잉글랜드의 이슬립에서 태어났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에 덴마크 군이불법 침입해 왕의 일족을 추방했고,교회와 수도원을 불사르며 약탈을 가행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를 학살하며 국민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에드와르도는 어머니와 더불어 어머니 고향인 프랑스의 노르만디에 피신했는데,신심이 두터운 어머니는 왕자의 마음속에 신덕을 심어 주는 것에 전념했으므로,그는 어려서부터 경건하게 자라나서 측근자의 입에서 궁중의 천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가 어떤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던 가는 다음 일화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신하들이 "전하는 언젠가는 칼을 빼서저 몹쓸 덴마크인들을 소탕하고 신성한 조국을 회복하시지 않으면 안됩니다."하니,왕자의 대답은"아니다. 나는 피를 흘려서까지 왕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즉 그는 그런 국난(國難)도하느님의 섭리인 줄 알고일체를 하느님의 뜻에 맡기며,그분 뜻이 계시면 나라의 회복이있을 줄 알고 기도했던 것이다.
부친인 국왕은 불행한 가운데세상을 떠났는데,얼마 안 되어 영국 국민은 덴마트의 학정에 총궐기해 그들을 소탕하고태자 에드와르도를 국왕으로 모셨다.
그 장엄 화려한 즉위식이 거행된 때는 바로 1042년 예수 부활 대축일이었다.
젊은 명군(明君)은 신앙은 만선의 원천이라는 신념으로 신하로부터모든 국민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공경하는 정신을 함양하도록 지도, 노력했다.
이리하여 전에 폭도들에게 파괴된 교회와 수도원은 복구되고 성스러운 예식은 엄숙히 거행되었으며,주교를 고문으로 두어 법전 편찬과빈민 고아들의 구호사업을 추진하고, 무엇보다도 가혹한 세금에 시달린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해감세(減稅)의 대 영단을 내렸다.
에드와르도는 그때까지 왕비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또 결혼할 의사도 갖지 않았으나, 중신들의 권유로
독실한 신자 에디타를왕비로 맞았다.
그들은 서로 합의해 표면상으로는 부부지간이나 사실인즉 남매지간같이 동정생활을 계속했다.
노르만디에 피신하고 있을때, 에드와르도는 하느님께서 다시 조국을 회복시키고 자신을 왕위에 올려 주시면 꼭 로마를 순례할 것을 서원했는데, 지금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므로 그는 서약대로 로마로 출발하려 했다.
그러나 국정이 안정되지 못했으니 외유를 할 수 없다는 중신들의 권고에 그는 난처하게 되어,그 처지를교황 레오 9세께 전구했던 바,로마 순례 예산으로 수도원을 세우고 빈민을 구제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회답을 받고, 즉시 웅대한 성당 부속 대수도원을 건립해 왕실의 안식처로 삼았다. 즉 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치세는 하느님께서 축복하셨음인지 지극히 평화로웠다.사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에드와르도가 무기(武器)를 든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왕 말콤이 역적에게 포위되었을 때이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에드와르도는 위로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 국민을 사랑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을짓는 등 그의 신심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대한 큰 사랑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영명한 군주로 그를 흠모했으며, 1066년 1월 5일 서거했다.
영국이 가톨릭국이었을 동안은 그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하여, 역대 왕들은 즉위식 때 이 성인의 왕관과 망토를 사용함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에드와르도의 유해는 1220년 10월 13일에 웨스트민스터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그래서 이 날을 그의 축일로 지낸다.
그는 1161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문장은 반지이다.
성 그레고리오(Gregory)
신분 : 수도승, 시인, 교회학자
활동지역 : 나렉(Narek)
활동연도 : 950?-1003년경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오늘날에는 터키에 속한 아르메니아(Armenia)의 나렉에서 950년경 학구적인 성직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매우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 수도원과 학교를 설립한 사촌 나렉의 아나니아(Anania)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사제였던 아버지 코스로프(Khosrov)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사제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의 부친은 후에 대주교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나렉의 수도원에 들어가 철저한 수도생활과 신학교육을 받은 그는 25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나렉의 수도원에서 수도사제로서 평생을 보내며 수도원 학교에서 가르쳤던 그는 신학과 전례학은 물론 음악, 천문학, 지리학, 수학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는 수많은 강연과 다양한 저술, 많은 서한과 담화, 시와 노래 등 후대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아가서 주해”(commentary on the Song of Songs)와 “애가”(Book of Lamentations)는 걸작으로 꼽힌다. 그가 직접 쓴 95개의 기도문으로 구성된 ‘애가’는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과 그분과의 재결합을 위한 인간의 탐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미 1673년 프랑스 마르세유(Marseille)에서 출판되어 30개 언어로 번역된 바 있으며, 현재도 아르메니아 교회 전례에서 사용되고 있다.
나렉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이미 성인으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그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의 2월 27일자 성인 목록에 올라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31항에서 그를 뛰어난 아르메니아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언급하며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찬미 중에서 강렬한 시적 영감으로 강생 신비의 여러 다른 면들을 고찰하고 있으며 이 다른 면들 하나하나가 그에게 있어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의 특별한 품위와 놀라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기회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아르메니아인 세례 1700주년을 기념한 사도적 서한뿐만 아니라 몇 차례의 연설에서도 그를 언급하였다. 그의 이름은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78항에서 성모송이나 성모 찬미가 등의 기도 전통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첫 번째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받는 그는 동방교회, 특별히 아르메니아 교회 전례와 사상, 문학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수도사제로 그가 남긴 기도문 대부분은 지금도 아르메니아 정교회 전례에서 사용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2월 21일 재임 중 처음으로 수도사제이자, 시인, 신비주의적 철학자, 신학자, 성인으로서 존경받던 나렉의 성 그레고리우스를 교회학자(교회박사)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가톨릭교회의 교회학자는 모두 36명이 되었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그의 축일을 10월 13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 에두아르도 (Edward)
활동년도 : 1003-1066년
신분 : 왕, 증거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애드워드,
에두아르두스,에드아르도,에드아르두스,에드와드,에드와르도,에드워드,에드워즈
영국의 왕 에텔레드 2세(Ethelred II)와 그의 아내 노르망디(Normandie)의 리카르두스 1세(Richardus I)의 딸인 엠마(Emma)의 아들로 태어난 성 에두아르두스(Eduardus, 또는 에두아르도)는 영국 옥스퍼드(Oxford)의 이슬립(Islip)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덴마크의 스벤(Svend)과 그의 아들 카누트(Canute)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그는 어머니와 함께 노르망디에 있는 그의 형제 알프레드(Alfred)에게 가서 머물렀다. 전쟁이 끝나 어머니 엠마는 영국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노르망디에 그대로 남아서 노르만인으로 성장하였다.
그 후 1042년 크누트 3세가 갑자기 사망하자, 성 에두아르두스는 왕위에 오르라는 부름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가서 왕위를 물려받고, 야심적이며 세도가이던 얼 고드윈(Earl Godwin)의 딸 에디트(Edith)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는 에디트와 결혼할 당시 자신은 정결을 서약했으므로 자신과 오누이처럼 동정을 지키며 살겠다는 동의하에서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사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드윈의 강력한 반대를 비롯하여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싸움의 불씨가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노르만인들을 좋아했고, 또 그가 노르망디에서 데리고 온 사람을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로 임명한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그는 장인인 고드윈의 무력 봉기를 분쇄하여 평정을 되찾았다. 성 에두아르두스에게는 자식이 없었는데, 고드윈의 두 아들이 왕위에 눈독을 들이고 또 다시 반기를 들자, 그는 그들도 유럽으로 추방하였다.
이 사건 후부터 그는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들었고,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성 베드로(Petrus) 대수도원을 짓는 등 그의 신심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대한 큰 사랑으로 나타났다. 왕과 왕후는 매우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였으며, 마치 오누이처럼 지냈다는 것이다. 자식이 없다는 사실로 많은 고통을 받았으나, 이것이 오히려 그들의 신심을 더욱 굳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증거자’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얻었다. 그는 런던에서 서거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 내에 있는 성 베드로 수도원에 안장되었고, 1161년 2월 7일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성 에두아르두스는 앵글로 색슨족의 마지막 왕으로, 중세 시대 영국의 성인들 중에서 가장 공경받는 성인 가운데 한 명이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는 10월 13일을 보편 교회에서 기념하는 성 에두아르두스의 축일로 제정하였다. 그의 문장은 반지이다.
성 콜만노 (Colman)
활동년도 : +1012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스톡케로(Stockerau)
같은 이름 : 꼴로만, 꼴로만노, 꼴로만누스, 꼴만, 꼴만노, 꼴만누스, 콜로만, 콜로만노, 콜로만누스, 콜만, 콜만누스, 콜먼
11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인접 국가인 모라비아(Moravia)와 보헤미아(Bohemia)는 전쟁 중이었다. 스코틀랜드 사람인 성 콜만누스(Colmannus, 또는 콜만노)는 예루살렘 순례 중에 스톡케로(Stockerau)라는 도시에 당도했다. 주민들은 그를 스파이로 간주하고 교수형을 시켰다. 콜만누스의 성덕은 교수형을 받은 뒤에도 그의 유해가 부패되지 않음으로써 증명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거룩한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유해는 3년 뒤에 멜크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사실 성 콜만누스는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콜로만누스(Colomannus)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