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팔꽃을/靑石 전 성훈
계절은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갈수록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장마가 잠시 주춤한 사이 하루하루 더위는 심해지고 습도가 높아지니, 덩달아 불쾌지수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아간다. 어떻게 해야 이 더위를 잘 극복하고 지낼 수 있을까하는 마음뿐이다. 선풍기를 종일 틀어놓거나 에어컨을 켜놓고 지내야하나, 그도 아니면 찬물로 샤워를 하거나 차가운 냉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나 별별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견디기 힘든 더운 여름날 아침 기쁜 마음으로 만나고 싶은 꽃이 있다. 여름이 되면 집주변이나 마을 어디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그 꽃이 요즈음은 왜 그런지 보기조차 힘들다. 예전과 달리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급격하게 바뀌어 환경이 변해서 그런지 모른다. 무슨 꽃인지 궁금하지요,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팔꽃 이야기입니다. 나팔꽃 보다 훨씬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이야 수없이 많고, 어떤 꽃을 좋아하는 가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제각각이다. 나팔꽃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게다가 언제부터 나팔꽃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50년 전인 1971년 대학1학년 여름방학, 전남 순천 백양산 자락으로 농촌봉사활동을 갔었을 때 나팔꽃의 매력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초가집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색색의 나팔꽃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아침에 마주친 나팔꽃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기억, 한밤중의 깜깜한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의 잔치모습에 취하여 황홀해 했던 그 때 추억을 곱씹어가면서 쓴 수필이 ‘그 해 여름의 나팔꽃’이며, 첫 번째 수필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다른 꽃들을 보면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어도 꽃을 보고 웃음을 짓는 일은 거의 나팔꽃뿐인 것 같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전 매주 일요일 아침 환자 목욕 봉사를 위해서 갔던 성가복지병원, 병원 마당 한구석 커다란 함지박에 키운 나팔꽃들이 덩굴을 타고 올라가 아침에 환한 미소를 선사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탓에 지금은 봉사활동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중랑천 창동교 주변에도 나팔꽃이 풍성하게 피었는데, 새로운 다리를 건설한다고 공사를 하면서 꽃들의 보름자리를 파내고 엎어버리는 바람에, 나팔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너무나 아쉽다. 모두가 잘 알듯이 나팔꽃은 햇빛을 견디기 어려워 아침에 꽃을 활짝 피우고 한낮에 진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는 나팔꽃을 ‘아침 얼굴’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팔꽃은 덧없는 사랑이라는 꽃말과 덩굴이 단단히 감고 있어 결속이라는 꽃말이 붙었다고 한다. 파란색, 분홍색, 보라색, 하얀색, 빨강색, 나팔꽃 중에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고 내 마음을 빼앗아 간 꽃은 보라색 나팔꽃이다. 색깔에 따라 꽃말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기에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파란색은 나팔꽃의 전설인 칠석이야기에 빗대어 끈끈한 정과 덧없는 사랑을, 여성스러운 색을 가진 분홍색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꽃말이 붙여져 안락과 흡족함을, 하얀색은 기쁜 소식과 넘치는 기쁨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고, 빨강색은 1년에 딱 한 번, 칠석날만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의 깊이처럼 덧없지만 정열적인 사랑을 뜻하고, 보라색은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 고귀한 사람의 뜻을 가진 냉정과 평정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출처] 나팔꽃 꽃말 [파랑, 분홍, 하양, 보라, 빨간 나팔꽃 꽃말], 하늘심리 상담센터.
친구가 알려준 메꽃과 고구마꽃의 모양은 분홍색 나팔꽃과 거의 비슷하여 나로서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떻게 하면 잘 구별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펄펄 끓는 용광로 같은 한여름에 때 아닌 무슨 꽃 타령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힘들고 괴로운 때일수록 마음속에 조그마한 꽃밭이라도 마련하고, 아침마다 조금씩 정을 담은 차가운 물을 주면 새록새록 마음에 뿌리내리는 예쁜 꽃들이 피어나리라. (2022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