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8]
1998년초 어느 날 나에게 엄청난 불행이 일어났다. 아내에게 나의 은행 명예퇴직금을 모두 맡긴 것이 나에게 엄청난 시련을 가져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내는 목돈(나의 은행 퇴직금)이 생기자 나에게는 말하지 않고 몰래 주식투자에 손을 댄 것이다. 그것도, 도박보다도 확률이 낮고, 하루에도 살고 팔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데이 트레이딩(Day Trading)”을 한 것이다. 투자한 지 얼마 안 되는데도, 큰 손실을 본 아내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방광염에 걸리고 몸이 여위어 갔다. 그런데도 나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투자하는 도중에 아내는 미국에 있는 맏딸 수진이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인터넷을 이용하여 주식투자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으로, 아내가 거래하는 은행에서 대출 관련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자 나는 아내가 왜 대출을 받게 되었는지 의심하게 되었고, 급기야 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한 전모(全貌)를 파악하게 되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당장 미국에 전화를 해서 아내에게 자초지종과 손실 액수를 물었다. 그러나 제대로 답변을 해 주지 않고 변명만 하기에 나는 불과 같이 화를 내었다. 나는 미국 누나에게 당장 아내가 인터넷을 할 수 없게끔 조치를 취하게 하고, 아내가 거래하는 증권사를 찾아가서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그동안 아내는 나를 속이고 보유예금은 모두 담보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했고, 그것도 위험부담이 큰 코스닥 주식에 데이 트레이딩(day trading)을 했던 것이다. 그 돈은 나의 20년간의 직장근무에 대한 보답으로써 은행으로부터 수령한 피땀 어린 퇴직금이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앞으로 살아가기가 막막해 졌다. 나는 일주일 동안 가까운 교회 새벽기도회에 나가, 데굴데굴 뒹굴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새벽에 기도를 끝내고 돌아올 때는, 나는 마치 폭풍우에 날개가 꺾인 새처럼 비참한 심정이 들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 듯한 절대의 고독감이 엄습했다,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소위 “한계상황(限界狀況)”에 봉착한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생명줄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위기가 나에게 닥쳐온 것이다. 나는 한 없이 절망했고 어처구니없이 행동한 아내를 원망했다. 아내에게 평소에 절대로 주식투자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나는 믿기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
그러던 차에 K라는 은행 선배를 만나러 종로에 있는 조계사에 갔다. 나의 사정을 다 듣고 난 K선배는 막걸리를 사주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 주었다. 행내 신문(환은신문)의 편집 일을 하던 은행 선배(육군 정훈장교, 중령출신) 한 분이 퇴직하고 난 후에 친구에게 대출 보증을 서 주었는데, 그 후 그 친구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얘기였다. 그는 그 후 해당 금융기관으로부터 보증채무 강제 집행을 당했다. 그 결과로 그의 집은 경매로 날아가고, 모든 재산이 하루아침에 거덜 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그의 아들은 자살하고, 아내와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재기하겠다며, 출판사에 취직하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나의 경우를 돌아보았다. 나의 손실과 고통은 그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에 관한 얘기는 나에게 엄청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K선배 자신도 “프리 코스닥에 투자하여 손해를 많이 보았다”고 하며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였다. 나는 마음이 약간 진정되었고 뒷수습에 전력을 기울였다.
뒤에 크게 깨달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돈에 대한 나의 집착과 욕망을 끊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빈손 들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교훈을 주신 것 같았다. 또한, 나를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독일의 세계적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서 처절한 죽음을 맞는 현장에서, 하나님 자신도 성령을 통하여 처형당한 예수와 똑같은 고통을 함께 느끼고 괴로워 하셨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회 새벽기도회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도 나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시고 같이 괴로워 하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후 침체된 나를 위로하기 위한 북미여행(시카고, 토론토, 몬트리올, 퀘백, 오타와)을 따로 마련해 놓으시기도 하셨다. 톨스토이가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인생의 진리, 신의 인도를 깨닫게 된다.”고 했듯이, 나는 지나간 과거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강한 손길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은행선배인 K씨(ROTC선배이며 동경지점 차장과 국내 지점 몇 군데 지점장역임)의 도움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위기에서 벗어난 이후, 나는 K선배와 가끔 인천 차이나타운 초입의 1호집이라고 불리는 벤뎅이 횟집에 갔다. 그곳에서 K선배와 막걸리를 마시며 삶의 아픔들을 교환했고, 서로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이 집에는 인생풍파에 상처받은 각종 邊方(변방) 인생들이 찾아와 쓰디쓴 소주나 막걸리로 한을 풀어내며 마음을 달래는 곳인 것 같았다. 마치 다윗이 불우했던 시절 생활했던 아둘람 동굴 같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허름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와서 주모에게 5000원짜리 밴댕이 한 접시를 3000원으로 깎아 달라고 사정했다. 그리고 혼자서 무엇인가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막걸리를 시름없이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몹시도 슬프고 허전하여 나는 할아버지가 떠난 뒤에 주인 주모에게 어떤 분이냐고 물어보았다. 주모의 대답인즉, 그 할아버지는 중국인인데 젊은 시절 이곳 차이나타운 중국요리 집 주방장을 하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많아 주방장을 그만두고 이리저리 인생유전을 한 뒤에, 지금은 종로 쪽방 동네에서 혼자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일가친척 하나 없다는 할아버지는 그 후 반평생을 보낸 옛 추억이 서려 있는 마음의 고향인 이곳 차이나타운을 잊지 못해 가끔 찾아온다고 했다. 인생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서 얘기를 나눌 동무도 하나 없는 할아버지의 그 무척이나 고독하고, 회한(悔恨)과 우수(憂愁)에 찬 너무도 슬픈 실루엣(SILHOUETTE)을 나는 영영 잊을 수가 없다.
첫댓글 다저스님께 차마 무어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ㅠㅠ
과거를 생각하면 속만 상하시니 잊어버리시고
지금 이 순간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며 사는게 답일것 같아요..ㅠ
요즘 주식으로 떼돈(?)버는 사람이 많아도
잃고 우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저는 겁이 많아
엄두가 안나서 안합니다.
샤론님 감사합니다. 인생의 질곡을 겪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더 성숙해 지는 것 같습니다 ㅡ왜냐하면 자신의 아픔을 통해서 타인의 아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죠 ㅡ
글셨군여^^
사모님께서도 더 많이 굴리고 만들어서 부자가 되시고 싶으셨던 게지요^^
험한 일을 당한 당시엔 죽는 것 만이 정답이라 여겨졌지만,
세월을 보내고 보니, 역시 시간이 약이 되더라구여^^
오늘 날,
훌륭히 성장한 자제들과 행복 하시니,
그럼 된거지요^^~,
ㅎ
인생에 고난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ㅡ 요즘은 욕심없이 좋은 분들과 맛있는 식사하고 담소나누며 사는 삶이 참 행복합니다ㅡ
아휴,,,...
고난이 많으셨네요.
주식투자
한때 집도샀고
오르락 내리락
위험한 투자는 안하죠!!
무사히
통과 하셨네요.🙏❤️
수샨님 반갑습니다ㅡ 혹시 지금 미국 거주하십니까?
IMF 외환위기로
많은 분들이 직장을 떠났는데
특히 은행원들이 명퇴를 많이 한걸로 압니다.
가을이오면의 형님들도
금융권에 있다가 퇴직을 했는데
화이트칼라인 그분들 주식투자 많이 한걸로 알고 있고
소중한 명퇴금을 바닥모르고 추락하는 당시 주식시장에서
다 털고 나온분들도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다저스 선배님은 주변 조언으로
큰 위기 극복하고.. 오히려 부부애도 좋아졌다면
그것은 신의 세계를 모르는 제가 생각해도 은총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건강 잘 챙기시고 다복한 일상 오래오래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가을님 응원댓글 소중하게 마음 속에 잘 간직하겠습니다ㅡ 감사합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