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만들어졌다.
1866년 약제사였던 좀 펨버튼 박사
(Dr. John Pemberton)
존 펨버튼 박사는 코카잎 추출물,
콜라나무 열매 그리고 시럽 등을 혼합하여
두뇌강장제를 개발했다.
존 펨버튼 박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야콥 약국에 이 음료를 납품하기 시작했고,
당시 약국의 경리사원이었던 프랭크 로빈슨은 두 개의
‘C’자를 매치해 ‘코카-콜라(Coca-Cola)라고 이름 붙였다.
사업가인 아사 캔들러(Asa Candler)
사업가인 아사 캔들러가 코카 콜라를 대중화 시켰는데,
코카-콜라는 오늘날 미국 문화의 상징이자
탄산음료의 대명사가 되었다.
코카 콜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것이
톡쏘는 탄산 또는 붉은색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코카 콜라의
로고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브랜드 컨설팅 전문회사인 인터 브랜드는 해마다 전세계
수백개의 브랜드의 가치를 평가하여
100개의 베스트 브랜드를 선정하는데
20년 가까이 부동의 1위는
코카 콜라 이다.
하루에 6억잔 이상 소비된다는 코카 콜라는
많은 성공 요인들이 있지만 브랜드의 지속성이
현재 전 세계의 코카 콜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정열, 즐거움은 언제나 코카 콜라와 함께 했고
각종 스포츠에서는 늘 코카 콜라가 함께 했다.
사업의 확장이나 도약때마다 그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시켜온것은 자신의 제품에
대한 자신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코카 콜라의 역사적 인물 3인]
[1.존 펨버튼]
존 펨버튼은 정식 의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약재를 혼합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존 펨버튼은 약제사 이면서 모르핀 중독자였다.
미국 남부전쟁에 참전했을때
상처의 진통을 완화하기 위해
아편 주성분인 모르핀을 대신할 약을 개발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 바로 코카 콜라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와인으로 팔려했지만 애틀랜타 시로부터
판매금지를 당했고 이후
탄산수를 넣어 호평을 얻어 약국에서
소화제, 신경안정제로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국에서 코카 콜라의 인기는 매우 없었고
수입이 겨우 50달러 밖에 되지 않았다.
모르핀 중독자였던 펨버튼은 모르핀을 구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결국 특허권을 사업가인 아사 캔들러에게
1,484 달러에 파는 큰 실수를 했다.
코카 콜라의 탄생은 모르핀 때문이었고
캔들러에게 특허권이 넘어간것
또한 모르핀 때문이었다.
[2.아사 캔들러]
회사 설립 이후 '아사 캔들러' 는 수천개의
코카 콜라 무료 시음 쿠폰(1892) ▼
을 발행하고 코카 콜라가 새겨진
달력 ▼
시계 ▼
등 다양한 기념품들을 앞세워 코카 콜라를 홍보했다.
이것이 결국 애틀랜타 지역, 그리고 지역 밖에서도 지속적
으로 주가를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843년 코카 콜라 상표권을 등록하고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었다.
아사 캔들러는 사업 영역이 확장되자 독점권을
판매하여 유통하는 형식으로 사업 전환을 꾀했다.
아사 캔들러는 보틀링 시스템을 고안해냈는데
코카 콜라만의 특별한 병 모양을 각 지역
보틀러(병 제조업자)에게 주문하여 독점권을 가진
공장에 대량 납품하기 시작했다.
코카 콜라 최초의 병은 컨투어 보틀링 인데
이는 코카 콜라만의 특별한 구분이 되었고,
어둠속에서조차 코카 콜라를 쉽게 구분 할수 있는
획기적인 디자인이 되었다.
컨투어 병이란 윤곽이 있는 병이라는 뜻으로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코코넛 열매의 윤곽선을 사용했다는 설과
주름치마를 입은 애인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 했다는 설이있다.
[3.로버트 우드러프]
로버트 우드러프는 1919년 코카 콜라 컴퍼니를 인수하고
각 국에 코카 콜라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브랜드 역사를 오래 지속해왔던 기업들이라면
피할수 없었던일이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코카 콜라가 존재하게된 큰 이유였다.
당시 로버트 우드러프는 "코카 콜라를 5센트에 마실수
있어야 한다. " 는 정책에 따라 미군이 배치되는곳에는
코카 콜라가 공급됐다.
전쟁기간 동안 10개의 해외공장을 세워 50억 병의
코카 콜라를 공급했다.
이를 토대로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