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생애에서 가장 아쉬운 것(대하9:29-31)
2024.9.15 김상수목사(안흥교회)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이나 은사를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나 강점들이 눈에 현저하게 드러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빙산처럼 잠재적인 형태로 간직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가진 재능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발전시키지 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들을 발견하고 성장시켜 주는 것이 교육이기도 하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나)에게 크든 작든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은사들을 주셨다면, 분명히 주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지혜, 재물 얻을 능(能), 수완, 기술, 소유, 명예, 직분, 기타 등).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들을 이용해서 나 혼자만 잘살라고 주셨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여 함께 잘살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통로가 되라고 주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하나님이 주신 목적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로몬도 그들 중의 하나이다. 솔로몬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지혜롭고 부요한 왕들 중의 하나였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역대하 9장 20-22절 말씀에 보면, 그가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고, 은은 돌같이 흔하게 여길 정도였다.
“20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순금이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21 왕의 배들이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며 그 배들이 삼 년에 일 차씩 다시스의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옴이더라 22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대하 9:20-22)
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이러한 지혜와 부귀영화를 주셨을까? 어떤 사람은 일천번제(일천의 제물)를 드렸으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시고 복을 주신 것은 일천번제를 드렸기 때문이 아니고, 일천번제를 드린 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 때문이다. ,
이것은 솔로몬이 지혜를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를 구했다. 이러한 사랑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다. 이것은 다윗과의 언약 때도 그랬고(삼하7장),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어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솔로몬은 끝까지 이러한 초심(初心)과 첫 사랑을 간직했을까? 성경에 기록된 그의 생애를 보면,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한 마디로 등산(登山)은 잘했는데, 하산(下山)을 잘못했다. 솔로몬이 40년 동안 왕위에 있는 동안 성전과 왕궁이 건축되기까지 전반전 동안(24년 정도까지)은 정말 훌륭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약 16년의 기간은 수많은 건축물과 이방신전들을 짓고 이를 위해 과중한 세금징수로 인해서 백성들을 힘들게 했다. 심지어 왕비가 천명에 이르렀고, 이 여인들을 위해서 궁을 건축해 주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여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했다(왕상11:1-13).
솔로몬이 아직 살아있을 때, 그의 권위 앞에서 신하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 때문에 숙인 고개였다. 두려움 때문에 숙이는 고개는 존경이 아니다. 진정한 존경심은 솟아나는 샘물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후에 나라가 분열되었다. 그런데 그토록 호화롭게 살았던 솔로몬이었지만, 인생의 마지막 결론은 ‘죽었다’는 것이다(대하9:31,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이것이 인생이다.
이러한 솔로몬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이 나오면서, 가장 아쉽게 느껴진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않은 것이다. 그는 다른 어떤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지혜와 부귀영화를 얻었지만, 그것들을 복음전파, 영혼구원을 위해서 쓰지 않았다. 이 점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이 점이 추석을 앞둔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이 솔로몬을 통해 점검하고 돌아보아야할 우리(나)의 모습이다.
가정법이기는 하지만, 만약 솔로몬이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지혜와 부귀영화를 전도와 선교(“제사장 나라”, 출19:4-6)를 위해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대규모의 재정을 투자를 하여 선교사와 전도자를 양성하고 파송했거나 전국에 우상의 전각이 아닌 신앙교육의 터를 세우고, 구제사업과 장학 사업을 하는 것 등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솔로몬 시대에는 엄청난 부흥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이런 기대를 하셨을 것이다. 전도서의 내용을 보면, 솔로몬은 말년에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돌이켰던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솔로몬이라는 인물의 한 평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솔로몬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첫 사랑을 잃어버렸던 사람”
“기대를 아쉬움으로 끝낸 사람”
이러한 솔로몬의 생애를 보면서 이제 우리 자신을 조명해 볼 차례다. 혹시 이렇게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변해갔던 솔로몬의 모습이, 영적인 감격이 식어지고, 습관적인 믿음으로 굳어져 가는 지금 우리(나)의 모습은 아닐까? 만약 하나님이 우리(한국교회, 안흥교회, 나)에게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은사, 지혜, 재물 얻을 능력, 소유, 명예 그리고 갖가지 직분의 달란트들을 주셨다면, 그것들을 나에게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솔로몬에게 그랬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통로가 되라고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는 부르심에 목적을 따라 살고 있는가? 초기의 솔로몬처럼 과거에는 주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했는데, 지금은 말년의 솔로몬처럼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늘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이다. 그래서 성경은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강조한다(계2:4-5).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마지막으로 솔로몬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일평생 동안 변치 않고, 하나님을 위해 드린 사람 한 분을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엘마 길보른(Elmer Kilbourne,1920~2017) 선교사이다. 엘마 길보른은 솟아나는 샘물같은 존경심을 갖게 하는 일생을 살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동양선교회(OMS)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1907년 카우만 부부, 김상준, 정빈과 함께 한국성결교회를 시작했던 어네스트 길보른(E. A. Kilbourne)이다. 그의 아버지인 버드 길보른은 서울신학대학 제2대 학장을 지냈다 .
엘마 길보른은 1948-1985년까지 36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했다. 그의 사역은 성결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세계구호위원회 대표로서 한국전쟁 이후에 많은 구호물자가 들어올 때, 교회를 통해서 배포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는 한국교회 성장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전쟁고아들을 위해서 전국에 86개의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했고, 12개의 탁아소를 별도로 세웠다. 특히 이들을 위해서 하루에 7만 6천명의 식량을 16년 동안 지원했고, 이들의 식량을 지원하기 위해서 호남평야 김제 지역의 야산 불모지 2천 8백만 평의 땅을 개간했다. 후에 김제시에 기증했다. 이러한 그의 선한 사역을 이어받아 지금도 전북 김제시에는 길보른종합사회복지관과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사진).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가 36년 동안의 사역을 마치고 은퇴한 후에 미국으로 가지 않고, 늦은 나이에 인도로 간 것이다. 그는 인도에서 인생의 마지막 이모작을 시작했다. 엘마 길보른 부부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Gujarat州)에 구자라트신학교와 고아원(해피홈)을 설립했다. 그의 신학교 설립은 이 지역의 부흥의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그 결과, 구자라트주 안에 87교회 세워졌고, 교인은 5천명으로 성장했다. 엘마 길보른이 세운 구자라트신학교에 우리 안흥교회에서 여학생 기숙사를 건축하고 봉헌해 드린바가 있다(사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솔로몬은 아쉽게도 처음에 가졌던 인생의 방향을 잃어 버렸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했다. 그러나 엘마 길보른같은 분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보여주신 방향을 향해서 변치 않고 달려갔다.
그렇다면 우리(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쓰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잘사는 것이고, 착하고 충성된 종의 모습이다(마25:21).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모든 재능과 소유를 주신 목적에 맞게 살아가자. 만약 그것을 잠시 놓쳤다면, 오늘 이 시간을 계기고 다시 회복하자.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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