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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맨 끝 지역에서 나온 노래가 애국가이다
사24:13-16
세계적인 종교학 권위자자가 자신의 40년 학문적 신념을 송두리째 걸고 애국가를 이사야예언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대규모학술 국제 학술대회장 은퇴를 앞둔 한 미국인 석학이 단상에 올라 돌연 오열하며 충격적인 고백을 내놓았습니다. 그를 무릎 꿇게 만든 것은 복잡한 신학 논문도 고대유물도 아니었고 우연히 행사장에 울려 퍼진 대한민국 애국가 1절이었습니다. 이사야서에 예언된 동방의 끝에서 나오는 노래가 바로 이 가사속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강당에 맴돌자 이내 믿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수백명의 푸른 눈을 가진 이방인 학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기립했고 서툰발음으로 애국가를 마치 성스러운 찬송가처럼 합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가 무심코 불렀던 이 짧은 선율에는 과연 어떤 우주적 비밀이 숨겨져 있는가? 이것은 단순한 한 나라의 국가일까요 아니면 인류가 잊고 있던 태초의 기도문일까요 오늘 전세계 지성인들을 전율케한 그날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봅니다. 저는 68세인 리처드 해밀턴입니다. 미국 예일대에서 40년간 비교종교학과 성경시학을 가르쳤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속 시가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 제 인생이었어요. 시편, 이사야서, 아가서 수천개의 히브리어 운율 패턴을 분류하고 해석했죠. 강의 3100회, 논문 94편, 저서 9권 모두 같은 결론을 향해 달린 40년이었습니다. 성경의 시는 이미 해석이 끝났다는 게 제 확신이었어요. 은퇴 2달 전이었습니다. 마지막 논문제목을 정해놓았지요. 이사야가 예언한 땅 끝의 노래, 그 노래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사야서 24장 16절에 나오는 구절이었습니다. 땅 끝에서부터 노래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저는 40년간 이 한 구절을 놓고 물고 늘어졌어요. 땅끝에서 들려오는 노래 그 노래가 갖추어야 할 시적 조건을 정리하는 게 마지막 작업이었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어요. 그런 노래는 없다. 성경의 시적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노래는 현존하지 않는다. 이사야의 예언은 한시적 수사일 뿐이다. 그렇게 40년을 마무리할 작정이었죠. 그 때 제28회 서울 국제성경학술대회 기조 연설을 해달라는 초정장이 왔습니다. 한국이라 솔직히 학문적으로 관심이 가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성경연구의 중심은 예루살렘이고 학술의 중심은 유럽과 미국이었으니까요. 동아시아는 성경을 배우는 쪽이지 연구하는 쪽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은퇴전 마지막 학회였습니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공기가 달랐습니다. 3월 말이라 공기가 습했죠. 공항밖으로 나오자 낯선 글자들이 가득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읽을 수 없는 문자였어요. 40년간 히브리어 고대 문자를 해독해 온 사람이 간판하나 못읽는 나라에 와 있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학회장으로 향했습니다.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 천장이 높았으며 대형 화면이 무대 뒤에 걸려 있었고 좌석은 550규모였는데 200여명이 모인다고 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이스라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어요. 모두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죠. 개막식이 시작되었는데 사회자가 한국어로 뭔가 말했는데 통역기를 통해 들었는데 이제 국가를 제창하겠습니다. 잠깐 당황했습니다. 학회에서 국가를 부른다고요. 미국에서는 본 적 없는 풍경이었죠. 그 때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느리고 장중했어요. 200명이 일어섰는데 한국인 학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외국인들은 어색하게 서있었고 저도 그냥 섰어요. 예의였으니까요. 노래가 시작되었는데 당연히 무슨 뜻인지 몰랐죠. 그냥 멜로디만 들렸습니다. 근데 이상했어요. 자꾸 귀가 반응했거든요. 40년간 히브리어 찬양시의 선율 구조를 분석해온 그 귀가 뭔가를 잡았어요. 선율의 호흡이 길었습니다. 찬송가처럼, 느린 박자 위에 장중한 가사가 얹혀 있었죠. 세속적인 국가의 구조가 아니었고 기도의 구조였습니다. 아직 가사도 모르면서 그것을 느꼈어요. 박수가 나왔죠. 저는 옆에 앉은 한국인 연구원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부른 노래 가사를 볼 수 있을까요? 연구원이 핸드폰을 꺼내 영어번역본을 보여줬습니다. 동쪽 바다의 물이 다 마를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길 저는 그 글자를 읽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손이 멈췄어요. 하나님이 보호하사 이 한줄이 눈에 박혔습니다. 40년간 히브리어 찬양시를 분석하고 수천편의 시편과 예언서를 읽었죠. 그런데 이 가사 구조가 뭔가 익숙했습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구조였어요, 아직 뭔지는 몰랐지만 손끝이 떨렸어요. 40년된 직감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거든요. 저는 박수를 쳤습니다. 모두가 그랬으니까요. 저는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의 시는 이미 해석이 끝났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었습니다. 질문도 거의 없었습니다. 모두가 동의했거든요. 그 날 밤 호텔방에서 잠들기 전에 중얼거렸습니다. 좋은 마무리였어 하지만 그건 마무리가 아니었어요. 아직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방금 읽은 그 한 줄이, 40년간 제가 내린 결론 전체를 뒤짚을 거라는 걸 발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40분간 진행했어요. 박수도 나왔죠.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 자꾸 아까 그 가사가 떠올랐어요. 하나님이 보호하사 그냥 그 문자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거든요. 점심간이 되었는데 저는 샌드위치를 들고 창가 속 테이블에 혼자 앉았어요, 아까 그 번역을 다시 봤습니다. 동쪽바다의 물과 백두산이 다 마르고 닳을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길. 이번엔 히브리어 학자 눈으로 읽었습니다. 문법부터 뜯었어요. 하나님의 보호하사 하나님이 주어였고 보호하다가 동사였고 우리나라가 목적어이고요. 이 구조를 어디서 봤는지 갑자기 떠올랐거든요. 시편 121편이었습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리로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샤마르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지키다, 보호하다, 파수하다. 그리고 그 문장의 구조가 정확히 같았어요. 신이 주어 보호하다가 동사, 인간이 목적어 찬양시학에서 이것을 의탁구조라고 부릅니다. 인간이 뭔가를 하겠다는게 아니라 신에게 전부 맡기는 구조예요. 시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도의 문법이죠. 그런데 한국 애국가가 이 문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샌드위치를 내려놓았어요. 식욕이 사라졌습니다. 우연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신에게 보호를 구하는 노래는 다른 나라에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스스로를 설득했어요. 그리고 다음줄 마르고 닳도록, 영원히 끝까지 다할 때 까지 이건 영속성 서약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찬양시에서 참된 기도는 반드시 영속성을 포함해요. 일시적인 요청이 아니라 영원토록 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거는 거죠. 시편89편1절에 나옵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리이다. 이사야 26장에도요. 영원하신 분을 의지하라. 히브리어 찬양시의 가장 깊은 층에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애국가가 첫줄에서 이걸 선언하고 있었어요. 바다가 마르고 산이 닳을 때까지 자연물의 소멸을 시간의 단위로 쓰는 방식이었죠. 바다와 산이 사라지는 날까지 보호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두 번째 일치였어요. 손이 떨렸습니다. 노트를 꺼내서 적기 시작했어요.
조건1. 의탁 구조, 신이 주어 시편121편과 일치
조건2. 영속성 서약, 자연물을 시간 단위로 사용, 이사야 26장과 일치
두 줄을 나란히 놓으니 더 이상했습니다. 한 가지는 우연일 수 있어요. 하지만 두 가지가 같은 가사 안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건 쉽게 설명이 안되었습니다. 오후 세션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다른 교수들의 발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엔 계속 그 두 줄만 맴돌았죠. 하나님이 보호하사 마르고 닳도록 의탁과 영속 시편의 두 기둥이 한국의 애국가 첫 소절에 동시에 서 있었어요. 호텔방으로 저녁 8시에 돌아왔습니다. 자정이 넘어서 노트북을 켰죠. 성경 원문 검색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전체가 들어 있었죠. 시편의 의탁구절을 전부 검색했습니다. 출애굽기 23장20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리니 신명기 32장10절 여호와께서 그를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시편91편1절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모두 같은 문법이었습니다. 신이 주체적으로 보호하고, 인간은 맡기기만 하는 구조. 새벽 2시 화면의 불빛만 얼굴을 비추고 있었어요. 제 손가락은 키보드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40년간 이런 적은 없었어요. 논문 마감 전날에도 이렇게 잠을 못 잔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멈출 수가 없었어요. 혹시 이미 누군가 부르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생각이 스쳤습니다. 40년간 찾던 노래. 이사야가 예언한 땅 끝의 노래 그게 이미 존재하는 건 아닌가? 고개를 저었어요. 말도 안 돼. 성경의 시적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노래는 없다. 그게 제 결론이었으니까요. 오늘 오후에도 그렇게 발표를 했지만 가슴 한쪽이 뜨거웠습니다. 무시할 수 없었어요. 새벽 3시에 메시지를 보냈어요. 학회명부에서 이름을 찾았어요. 정수빈, 한국 국립국악원 비교음악학 연구관 개막식 때 제 옆자리에 앉았던 한국인 연구원이며 애국가 번역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정 연구원님 애국가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만날 수 있을까요. 답장은 10분 만에 왔습니다. 교수님도 안주무시네요. 7시에 로비에서 만나죠. 천장을 바라보면서 40년간 수천편 이 시편을 생각했는데 그런데 오늘 개막식에서 처음들은 한국의 애국가가 제 수면을 빼앗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어요. 하지만 두 번 연속 우연이라는 건 학자로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침 7시 호텔 로비에 정수빈은 이미 와 있었어요. 쇼파에 마주 앉아 어제밤 정리했던 것을 보여주었어요. 조건1 : 의탁구조. 조건2 : 영속성 서약. 정수빈은 교수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이런 외국학자 많았어요. 한국을 성경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이요. 논문 한편쓰고 강연 몇 번 하고 돌 벌고 사라졌죠. 목소리에 경계심이 묻어 났습니다. 제 이력을 보세요. 40년간 예일대학에서 가르쳤고 이미 은퇴합니다. 이득 볼게 없어요. 정수빈은 한참을 저를 보더니 알겠어요. 그러면 제대로 확인해 봅시다.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국악원 아카이브에 애국가 관련 원본 기록이 있어요. 가사가 처음 쓰인 맥락까지 남아 있습니다. 한시간 뒤 국악원에 도착했습니다. 정수빈이 연구동 지하 아카이브로 안내했어요. 습기와 종이가 섞인 오래된 문서냄새가 났어요. 열람석에 앉았습니다. 정수빈이 자료 세건을 가져왔어요. 첫 번째는 애국가 가사의 초기 기록이었습니다. 1896년 윤치호라는 분이 가사를 썼다고 알려졌는데 독립협회라는 단체의 기도회에서 처음 불렸습니다. 기도회요. 네 예배 순서까지 남아 있어요. 순서표를 보여줬습니다. 찬송, 기도, 성경봉독, 설교, 그리고 다섯 번째가 애국가였어요 축도 바로 앞이었어요.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예배순서안에 국가가 들어 있었어요. 그것도 설교 다음 축도 직전에 이건 국가가 아니라 기도문이었습니다. 처음부터요. 이 노래가 원래 찬송가 선율로 불렸다는 것도 확인했어요. 정수빈이 두 번째 자료를 펼쳤습니다. 지금 멜로디는 1935년에 안익태라는 음악가가 작곡했지만 가사는 39년 더 오래된 거예요. 1896년 그때 한국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청나라 일본 러시아 열강에 둘러싸인 상태로 스스로 지킬 힘이 없었죠. 힘이 없었기에 신에게 맡긴 겁니다. 제가 중얼거리니 정수빈이 뭐라고요. 의탁이예요. 스스로 지킬 수 없을 때 전부를 신에게 맡기는 것. 시편의 가장 깊은 기도가 바로 이 구조입니다. 한국은 1896년에 그걸 애국가로 만든 거에요. 세 번째 자료를 펼쳤습니다. 이사야서 24장 14-15절 이었어요. 바다에서부터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동쪽 해변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지어다. 바다에서부터 동쪽 해변에서 그리고 애국가 첫 구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바다와 산이 동시에 나왔어요. 자연물과 신성이 얽힌 구조였어요. 세 번째 일치였어요 정수빈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저는 계속했어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6절을 보세요. 땅끝에서부터 노랫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그나프 하아레츠 히브리어로 땅의 끝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동쪽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따라 끝까지 가면 한반도요. 더 이상 동쪽 육지가 없어요. 네가지 조건이 전부 맞습니다. 의탁 구조, 영속성 서약, 자연물과 신성의 결합, 그리고 방향성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35년간 이 조건에 맞는 노래를 찾았습니다. 전세계에서요, 한번도 못찾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앞에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러더니 조용히 물었죠. 교수님, 혹시 코리아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읽어 보신 적 있으세요? 없었습니다. 읽어본 적 없었어요. 정수빈이 태블릿에 뭔가를 검색해서 보여줬습니다. 코레 히브리어로 부르다라는 뜻이예요. 명사형으로는 부름 받은 자. 심장이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정수빈이 먼저 고개를 저었어요. 이것은 각주에 넣으세요. 너무 많으면 억지가 됩니다. 네 가지면 충분해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학자라면 절제할 줄 알아야 했죠.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수빈을 바라봤습니다. 아까의 경계심은 사라져 있었어요. 대신 뭔가 다른게 눈에 보였습니다. 호기심이었을까요. 아니면 두려움이었을까요? 그럼 다른나라 국가들은 어떤가요? 정수빈이 말했죠. 확인해 봐야지요. 한국만 이런건지 아닌지, 120년 동안 같은 기도를 반복한 겁니다. 이 나라는 요 제가 말했어요. 1896년부터 지금까지요. 정수빈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카이브 문서를 바라봤어요. 오래된 문서들이 빼곡이 묻혀 있었어요. 120년치 기록이 그 안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호텔 테이블 위에 노트북 두 대를 펼쳤습니다. 다른 나라 국가들을 전부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만 이런건지 아니면 다른 나라도 이 조건을 충족하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몇 개국이나 확인할 건데요? 전부요. 유엔회원국 193개국 전부 예일대 비교종교학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습니다. 40년간 구축해온 자료였어요. 세계각국의 국가의 원문과 번역문으로 정리되어 있었죠. 저는 4가지 조건을 필터로 걸렀습니다.
조건1 : 의탁 구조, 신에게 보호를 구하는 내용이 있는가? 결과가 나왔어요. 193개국 중 약 40개 국이 통과했습니다. 미국 영국 캐너더 뉴질랜드 생각보다 많았죠.
조건2 : 영속성 서약 영원히, 끝까지 같은 시간적 무게가 있는가? 12국으로 줄었습니다. 대부분 나라들은 신의 축복을 언급하되 시간적 영속성이 없었어요. 영원토록이라는 무게를 거는 나라는 드물었죠.
조건3 : 자연물과 신성의 결합 바다, 산, 강같은 자연물이 신에 대한 찬양과 함께 등장하는가? 3개국만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뉴질랜드, 한국
하나씩 봅시다. 이스라엘 국가 하티크바 가사를 읽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이 유대인의 영혼이 있는 한, 시온을 향한 우리의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연물이 있어요. 하지만 신에게 보호를 구하는 구조가 아니라 우리의 희망이라고 했어요. 인간이 주어예요. 탈락.
뉴질랜드 국가 갓 디펜드 뉴질랜드 신이여 뉴질랜드를 지켜 주소서. 태평양의 별들 아래 신에게 보호를 구하고 자연물도 있어요. 하지만 영속성 서약이 없었어요. 영원히라는 시간적 무게가 빠져 있었어요. 탈락. 한국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네가지 조건 전부 충족. 정수빈이 숨을 내쉬었어요. 193개국 중 하나입니다. 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하지만 정수빈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각도로도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결론이 다른 방법으로도 나와야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으니까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문법 구조만 봤어요. 195개국 국가 가사에서 신이 문장의 주어인 경우가 있는지 검색했습니다.
프랑스 : 라 마르세예즈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주어가 시민이었습니다. 인간이 싸우겠다는 노래였어요.
미국 : 성조기여 영원하라. 용감한 자들의 땅 주어가 국민이었죠. 우리가 용감하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러시아 : 우리의 신성한 조국 강력한 의지, 위대한 영광 주어가 국가자체 였어요.
중국 : 일어나라, 노예가 되길 원하지 않는 자들이여 주어가 인민이었습니다.
영국 :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 신이 등장하지만 보호대상이 왕이었어요. 국민전체가 아니었죠.
한국 :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나님이 주어 보호가 동사 우리나라가 목적어. 인간의 행위가 전혀 없었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정복하지도 않고, 승리를 선언하지도 않았어요. 오직 신에게 맡기기만 했습니다. 195개국 중 유일했어요.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같은 결론이 나왔습니다. 4조건 필터링으로 193개국 중 1개국, 문법 분석으로 195개국 중 유일. 정수빈이 교수님 이건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예요. 맞습니다. 숫자가 아니예요. 하지만 숫자가 말해주는게 있어요. 이건 우연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트북 화면에는 한국만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192개국은 조건에서 빠져 있었죠. 정수빈이 말했습니다. 이걸 발표하실건가요? 해야죠. 진실이라면요. 그럼 준비하세요. 가만히 있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날 호텔방에서 발표자료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학회운영위원회에 요청을 넣어둔 상태였죠. 폐막식에서 15분만 발표 시간을 달라고요. 주제는 성경 시편 구조와 한국 애국가의 일치에 관한 새로운 발견. 운영위원장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은퇴하는 원로 학자의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했겠죠. 밤 10시 쯤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미국 번호 화면에 이름이 떴습니다. 클라우스 브레너 국제 성경학술지 편집위원장이었어요. 제 은퇴논문 심사를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70세. 유럽 성경학계의 문지기라고 불리는 사람이죠. 40년간 알고 지낸 선배였죠. 리처드 목소리가 차가웠습니다. 브레너 교수님 밤늦게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가 서울에서 뭘하고 있는지 들었네. 뭘 들으셨는데요. 한국의 국가를 성경 예언과 연결시키려 한다며 학회사람들 한테 다 퍼졌어. 자네 정신나간 건가? 연구 중입니다. 아직 발표 전이예요. 연구라고 40년간 뭘 배웠나 성경시가는 고대 근동 문화권 안에서 해석해야 해. 동아시아는 성경 밖이야. 자네도 그렇게 가르쳤잖나.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무슨 증거, 한국 애국가가 히브리어 찬양시의 4가지 시적 조건을 동시에 충족합니다. 193개국중 유일합니다. 리처드, 자네 마지막 논문 알고 있지. 이사야의 땅 끝의 노래 조건 분석, 내가 심사하고 있어. 다음 달 게재 예정이야, 만약 자네가 서울에서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한다면 게재 안될 걸세.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학술지 편집위원회는 엄격하네. 검증되지 않는 가설로 정설을 뒤집으려는 논문은 게재할 수 없어 협박입니까? 경고야 40년 경력을 마지막에 이렇게 망치지 마. 그리고 내가 학회운영위원장에게도 연락했어. 폐막식 특별발표건 말이야. 학술적 근거가 불충분한 발표는 학회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했지. 발표를 취소하라는 겁니까? 내가 강제할 수는 없어 하지만 운영위원장이 스스로 판단하겠지. 이중 위기였습니다. 논문게재 불가, 학회발표 취소압박, 40년 경력의 마지막 두 가지가 동시에 날아갈 판이었어요. 리처드 마지막으로 말하겠네, 발표하면 자네 이름은 끝이야. 핸드폰을 내려놓았습니다. 손이 떨렸어요. 40년 강의 3100회, 논문 94편 저서 9권이 전부 사라질 수 있다는 거였죠. 정수빈에게 전화했습니다. 밤11시였어요. 브레너 교수가 경고했다고요. 논문게재도 폐막식 발표도 취소될 수 있다고요. 그만 두실 건가요. 그만 둬야 할 이유는 충분했어요. 논문도 날아가고, 발표도 막히고 명예도 사라지는데 왜 계속해야 합니까? 40년을 거짓으로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제 입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데이터가 말하고 있어요. 193개국중 하나, 105개국중 유일 이걸 본 사람이 입을 다물면 그건 학자가 아닙니다. 정수빈이 말했습니다. 교수님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해요. 브레너 같은 사람은 숫자를 무시할 수 있어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 사람이예요. 이 노래를 실제로 부르는 사람들을요. 무슨 뜻입니까? 교수님이 찾은 건 조건의 일치예요. 숫자의 일치, 구조의 일치, 하지만 아직 안 보신 게 있어요. 뭘요. 120년동안 이 기도를 부른 사람들이요. 독립운동 감옥에서 간수 몰래 조용히 부른 사람들이요. 전쟁피난길에서 걸으면서 눈물 흘리며 부른 사람들이요, 광복날 서울 시청앞에서 노래가 끝나고 무릎 꿇어 기도한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을 봐야 합니다. 저는 말문이 막혔어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국립현충원이요 내일 아침 국기 게양식이 있어요. 거기서 애국가가 울려 퍼져요.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시면 됩니다. 내일 모레가 폐막식이었죠. 발표가 취소될 수도 있었죠. 논문도 사라질 수도 있었고요. 40년 경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정수빈이 말했습니다. 데이터 너머 사람이 있다고요. 120년 동안 같은 기도를 반복한 사람들이 있다고요. 잠은 오지 않았어요. 브레너의 목소리가 맴돌았습니다. 발표하면 자네 이름은 끝이야 그리고 정수빈 말이 겹쳤어요. 그 사람들을 봐야 합니다. 내일 새벽 현충원으로 갑니다. 거기서 답을 찾겠습니다. 새벽 5시 호텔 로비에서 정수빈을 만났습니다. 교수님 어제 질문하셨죠. 이 노래가 위기 속에서 불린 적이 있느냐고 정수빈이 국악원 아카브에서 자료를 더 찾아 봤어요 어젯밤에요. 1919년이에요. 탑골공원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사람들이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모두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 날은 나라를 빼앗긴지 9년째 되는 해였죠. 그 뒤 일제 감옥에서도 불렀어요 간수가 듣지 못하게 조용히요. 한 독립운동가의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그 구절을 부를 때마다 힘이 났다고요. 고문을 당하면서도 1945년 8월 15일 광복 날이에요. 서울시청앞 광장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애국가를 부른 후 모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렸죠. 35년 만이었어요. 한국전쟁 때에도 피난길에서 걸으면서 불렀어요. 살고 싶어서요. 포로수용소에서도 매일밤 조용히 불렀다는 증언이 있어요. 북한군 감시병이 듣지 못하게요. 120년 동안 같은 기도를 반복한 겁니다. 감옥에서 전쟁터에서 피난길에서 광장에서 한번도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차가 현충원 정문앞에 멈춰섰습니다. 정문을 지나 묘역으로 걸어갔습니다. 묘비 하나를 가까이서 봤어요. 이름 생년월일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1928년생, 1950년 몰, 22살이었어요. 그 옆 묘비, 1931년생, 1951년 몰, 20살.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이었어요. 국기 게양대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70대 80대 어르신들 군복위에 훈장을 단 분들도 있었죠. 참전용사들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분, 휠체어에 앉은 분 하지만 모두 게양대를 향해 서 있었어요. 오전 국기 게양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태극기가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애국가가 흘러나왔습니다. 사흘 전 학회개막식에서 처음 들었던 그 멜로디였어요. 하지만 완전히 달랐어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참전용사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한 노인의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닦지 않았어요. 그냥 두 눈을 게양대에 고정한 채 불렀죠. 옆에선 다른 노인도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숨이 막혔습니다. 40년간 책속에서 찾았습니다. 히브리어원문을 해독하고 시적 조건을 분류하고 운율패턴을 분석했죠. 이사야가 예언한 땅끝의 노래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죠. 그런 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지금 제 앞에 있었습니다. 책 속이 아니었어요. 80대 노인의 떨리는 입술 위에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목소리 안에 있었습니다. 22살에 죽은 군인들의 묘비 앞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시는 해석이 끝났다고 사흘전 학회에서 제가 한 말이었어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래는 여기 있었습니다. 120년 동안 한번도 멈추지 않았어요. 35년을 찾았는데 제가 찾던 노래는 이미 7천만명이 부르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흘렀어요. 왜 우는지 몰랐어요. 슬퍼서도 아니었고 기뻐서도 아니었어요. 그냥 진실앞에서 압도당했습니다.. 정수빈이 다가왔습니다. 발표합니다. 제가 말했어요. 브레너가 뭐라든 상관없습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다음날 오후 3시 한국과학기술회관 국제회의실에 다시 들어섰습니다. 폐막식이었어요. 운영위원장이 발표취소를 권유했지만 저는 거절했어요. 제 이름으로 된 마지막 발표입니다.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운영위원장은 한숨을 쉬더니 허락했죠. 폐막인사가 끝나고 제 차례가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은퇴를 앞둔 리처드 해밀턴 교수께서 특별발표를 하겠습니다. 단상으로 올라갔습니다. 200명이 저를 봤습니다. 맨 뒤에 브레너가 앉아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리처드 해밀턴입니다. 40년간 히브리어 성경 시가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전 이 자리에서 말씀드렸죠. 성경의 시는 이미 해석이 끝났다고요. 철회합니다. 웅성거림이 일었어요. 이샤아서 24장 16절 땅 끝에서부터 노래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저는 40년가 이 노래의 조건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결론 내렸죠. 그런 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틀렸습니다.
첫 번째 화면이 떴어요. 한국 애국가 가사와 시편 121편을 나란히 놓은 도표였습니다. 히브리어 찬양시의 4가지 핵심조건이 있습니다. 의탁 구조, 영속성 서약, 자연물과 신성의 결합, 그리고 방향성 193개국 국가를 분석했습니다. 네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국가는 단 하나입니다.
두 번째 화면 대한민국 애국가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더 놀라운 건 문법구조입니다. 195개국중 국가 가사에서 신이 문장의 주어인 국가는 한국 뿐입니다. 다르 나라는 전부 인간이 주어예요. 우리가 싸운다. 우리가 이긴다. 우리가 용감하다. 하지만 한국은 하나님이 보호하사 인간의 행위가 없습니다. 오직 신에게 맡길 뿐이죠. 홀에 숨소리마저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제 목소리가 떨렸어요. 이것은 120년간 한 민족이 부른 기도입니다. 감옥에서 불렀고 전쟁터에서 불렀고 피난길에서 불렀고 그리고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땅 끝의 노래 그 노래가 여기 있습니다. 그 때 브래너가 일어났습니다. 말도 안돼. 40년 학문을 숫자 몇 개로 뒤짚으려 하십니까? 물리적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 브레너 교수님 어제 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80대 참전용사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걸 봤어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같은 기도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70년째요. 물리적 증거를 물으셨죠.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증거입니다. 브레너가 입을 다물었어요. 그 때 독일에서 온 학자가 손을 들었습니다. 해밀턴 교수님 그 노래를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정수빈이 단상으로 올라왔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운영 스태프에게 건냈어요. 스피커와 연결됐습니다. 애국가 1절을 틀어주세요. 찬송가처럼 장중한 애국가가 흘러나왔어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200명이 듣고 있었습니다. 노래가 끝났어요. 영국학자가 말했어요. 마치 기도같군요. 이스라엘 학자가 일어섰습니다. 한번 더 들을 수 있을가요. 다시 재생했습니다. 몇몇 외국학자들이 일어섰습니다. 마치 예배처럼 조용히 들었죠. 노래가 흘러갈 때 독일 학자가 영어번역을 읽으며 작게 따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길 다른 학자들도 따라 했어요. 서툰발음이지만 진지했습니다. 홀 전체로 퍼졌습니다. 외국인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거든요. 찬양가처럼 노래가 끝났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저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40년간 책 속에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답은 책 밖에 있었습니다. 7천만명의 입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브레너는 앉아 있었어요 표정이 복잡했습니다. 분노도 아니었고 인정도 아니었어요 혼란이었죠. 운영위원장이 일어났습니다. 대단한 발표였습니다. 학술지 게재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폐막식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습니다. 놀라운 발표였습니다. 더 연구해 주세요. 정수빈이 교수님 우리가 해냈어요. 학회장을 떠나면서 하늘을 올려다 봤습니다. 사흘전 과는 달랐어요. 그때 저는 이나라를 몰랐어요 성경을 배우는 쪽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이 나라는 120년 째 성경으로 살고 있었어요. 이사야서 24장 16절을 펼쳤어요. 땅끝에서 노래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40년간 이 구절을 연구했습니다. 땅끝의 노래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분석했죠. 의탁 구조, 영속성 서약, 자연물과 신성의 결합, 방향성 그리고 그런 노래를 없다고 결론 내렸어요. 그런데 노래가 있었어요. 책속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안에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불렀고 전쟁터에서 불렀고 피난길에서 불렀고 광복일날 불렀고 현충원에서 80대 노인의 떨리는 입술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120년 동안 한번도 멈추지 않는 기도였어요. 성경이 예언한 그 노래는 책속에 있지 않았어요. 이 땅에서 이 사람들의 입에서 울리고 있었어요. 오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부르는 애국가안에 어떤 깊이가 숨겨져 있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특별한 기도위에 서 있는지 함께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