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미 흘러간 ‘구(舊)세대’ 과학커뮤니케이터입니다. 앞으로는 획기적인 실험 정신을 가진 젊은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새로운 ‘문화과학’의 시대를 열 것을 기대합니다.”
이명현 박사는 지난달 26일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용산)에서 열린 ‘2018 과학창의 연례컨퍼런스’에서 본인을 ‘구세대 과학커뮤니케이터’라고 소개했다.
전파 천문학자이자 저명한 과학 저술가로 오랜 시간 대중들 앞에 서왔던 그는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 시대를 넘어 앞으로 새로운 ‘문화과학’ 시대가 올 것”이라며 새로운 과학 시대를 예고했다.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이명현 박사가 이번에는 ‘책방 주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내 과학계에 불어오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과학문화에 대해 시민들과 공유했다. ⓒ 김은영/ ScienceTimes
과학문화 시대, 새로운 과학커뮤니케이션의 등장
이명현 박사를 수식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우선 그는 천문학자이다. 연세대학교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와 한국천문연구원 등을 거치며 별을 연구해왔다.
여기에 ‘전파’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그는 먼 우주에서 오는 전파신호를 추적해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는 프로젝트,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연구소의 한국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과학하고 앉아 있네’(동아시아 펴냄), ‘과학 수다’(사이언스북스), ‘이명현의 별 헤는 밤’(동아시아), 최근 ‘이명현의 과학책방’(사월의책)까지 수많은 책을 저술한 과학저술가이기도 하다.

전세계 최초 과학자 밴드로 기록될 ‘사이언티스트’가 앨범을 녹화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av4ePjEkQc&feature=youtu.be
또 그는 라디오, TV 방송, 강연 등을 통해서도 대중들과 만나왔다. 2016년에는 12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결성한 ‘The Scientist’ 밴드의 멤버로 ‘엔트로피 사랑’이라는 앨범 작업에도 참여해 ‘과학자 밴드’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하나 더 얻었다.
그런 그가 지난 5월에는 서울 종로 삼청동에 과학 독립서점 ‘갈다’를 열었다. 갈릴레이와 다윈의 앞머리 글자를 따서 지은 책방이다. 근엄한 과학자의 모습이 아닌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그는 책방 ‘갈다’를 통해 사람들이 과학과 더 가까워지길 희망한다.

과학책방 ‘갈다’는 새로운 대중과학을 위한 시도를 꾀하고 있다.(사진= 지난 8월에 개최된 ‘마약토크’.) ⓒhttps://galdar.kr/
최근 우리나라의 과학계에는 고무적인 변화가 있었다. 과학이 조금 더 대중들 속으로 다가왔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대중들이 과학을 가장 쉽게 접하는 방법은 강연장이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라이브 방송’을 들을 수 있다.
특히 카오스재단의 과학강연 프로그램은 스타 과학 연사들의 개별적인 강연을 넘어, 그동안 대중들 앞에 서지 않았던 순수연구자들을 무대에 세워서 대중들과 만나게 했다.
이 박사는 “오랜 시간 대중들을 만나왔던 과학자가 아닌, 순수 연구에 매진하며 현장에 있는 과학자들이 선보여지면서 대중들이 더욱 폭넓은 우수한 과학문화를 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카오스재단의 ‘카오스콘서트’는 이러한 혁신성을 인정받아 지난달 26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수상하는 ‘우수과학문화상품’에 선정되는 영광도 누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과학 콘서트의 장을 연 카오스재단의 ‘K 콘서트’. ⓒKAOS
구세대 과학커뮤니케이터? 새로운 과학문화 시대 열어
또 다른 변화는 출판계에서 불어왔다. 과거 과학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해외 과학자들의 저술서를 번역한 작품이 아닌, 순수한 국내 과학자들의 과학저술서가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아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들에게는 어려운 전문 과학 잡지들도 다양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나왔다. 이 박사는 “‘악스트(AXT)’, ‘스켑틱(SKEPTIC)’ 등 새로 출간된 과학 잡지들은 단순한 과학 잡지를 넘어 소설 문예지 영역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과학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명현 박사는 쉽고 재미있게 우주를 설명하는 과학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로 유명하다. (사진= 2017년 7월 인터뷰 당시) ⓒ김은영/ ScienceTimes
대중과학화를 위한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인문사회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신문 칼럼에 과학자들이 진출했다는 점이었다. 시사를 논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공적인 지면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그는 “최근 5년 동안 가장 고무적인 변화는 과학자들이 단순히 과학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이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는 요즘, 대중들은 과학자의 눈으로 본 사회문제에 공감을 표현하며 열광했다. 이 박사는 이러한 인기의 바탕에는 대중들이 ‘과학자들이 사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신뢰를 보내기 때문’이라며 원인을 분석했다.
이 박사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주장을 펼치기 전에 신뢰를 쌓기 위한 논거를 서술한다. 때문에 대중들은 과학자의 눈으로 본 관점을 합리적이라며 신뢰한다는 것.
과학의 문턱을 넘기 힘들었던 시기를 넘어서 과학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튜브, 팟캐스트, 버스킹, 과학 연극 등 기성세대들이 체감해서 느낄 수 없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과학행위들이 대중들에게 선보여지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최고 과학토크 오디션을 국내에 도입한 페임랩 코리아, 그리고 이를 통해 배출된 걸출한 젊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한 몫하고 있다. 이들은 기성 세대 과학자들이 생각도 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방법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이 박사는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로 인해 과학의 문화적 토대가 성숙되어가고 있다”며 “과학문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