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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행복해지는 가장 간단한 방법/헬렌켈러
저- 헬렌 켈러
역: 안기순
출-공존
독:2016년 7월 7일
·헬렌은 빛을 뜻한다. 어머니는 내 삶이 대잦처럼 환하기를 바랐다. 빛은 사라져버렸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맑고 활기찼다.
· 5월에 처음 이야기책을 읽은 후로 책과 서로 사랑하는 친구이자 뗄 수 엇는 사이가 됐다. 책은 좋고 아름다운 모든 것으 가르쳐주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책은 나를 고대 시대로 데려가고 왕과 신을 소개했고 위대한 생각과 행동도 알려주었다.
· 사랑이 전부다. 신은 곧 사랑이다.
· 세상은 영웅들이 미는 막강한 힘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성실한 일꾼이 미는 작은 힘이 모여 움직인다.
· 나는 손을 통해서는 세상의 작은 일부분밖에 파악할 수 없지만, 정신을 통해 전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생각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선한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자신감과 믿음 덕에 나는 운명, 내 삶에 대해 안정을 찾고 두려움에서 나를 지키는 법도 깨달았다. 축복 받은 자는 보이지 않아도 믿음을 가지는 사람이다. 세계 위대한 철학자들은 신을 사랑하고 인간 내면의 선을 믿었다.
· 교육의 가장 큰 성과는 관용이다. 관용은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모든 살마이 생각하는 최선을 유지시키는 정신이다.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것은 불관용이다. 불안하고 슬픈 마음에 불관용과 편협의 시대를 돌이켜 본다. 나는 예수가 경멸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본다.
· 나에게 손은 곧 정상인의 청각과 시각이다. 손은 고독과 어둠을 뚫고 내 손가락이 마주치는 온갖 즐거움과 활동을 감지하는 더듬이다. 어디를 보든, 일하고 건설하고 발명하고 문명을 개척해 미개함에서 벗어나온 시간과 역사 속에 손이 등장한다. 손은 힘과 업적을 상징한다. 자연력을 이용하는 기술자의 손, 도끼로 찍고 톱으로 켜고 Z말로 자르고 건축하는 손은 들꽃을 그리거나 항아리를 만드는 섬세한 손 또는 법을 만드는 정치가 손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 나는 촉각을 통해 친구의 얼굴, 수없이 다양한 직선과 곳선, 온갖 사물의 표면, 토양의 비옥도, 꽃의 섬세한 모양, 나무의 우아한 자태, 바람의 세기를 알아본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삐걱거림과 덜컥거림을 통해 일상사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주전자 속으로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 ‘퐁당’을 안다. 그래서 우유를 흘리면 모르는 척 할 수 없다. 코르크 마개 뽑는 ‘퐁’ 소리, 불꽃의 ‘바지직 탁탁’ 소리, 시계의 똑딱 소리, 풍차의 금속 진동, 힘들게 펌프질하는 소리, 호스에서 뭔가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 산들바람에 문과 창문이 흔들려 들리는 혼동하기 쉬운 똑똑 소리 다른 많은 진동에도 익숙하다. 드럼소리는 가슴에서 어깨뼈를 지나가면서 진동한다. 내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진동계이다.
· 내 얼굴을 보듬는 오후 햇살이 점점 약해지면서 공기가 신선해지면 이런 느낌을 통해 배를 타고 떠날 때 해안이 멀어지는 광경이 어떨지 이해한다.
· 바다가 해변을 덮쳐 파도가 부서지는 진동을 느끼면 경외감이 든다. 넘실거리는 물결 속에 바다의 온갖 화음을 가뒀다 풀어주는 이 폭넓은 음역의 오르간을 좋아한다. 음들 사이에 흩뿌려져 흐르는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악기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때는 피아노의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피아노 덮개 위에 손을 얹으면 작은 떨림, 선율의 반복, 이어지는 음의 소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정상인의 귀에 들리는 소리가 어떤 식으로 잠잠해져서 소멸되는지 알 수 있다.
· 도시 사람들의 부산함과 북적임을 느끼고 자동차의 온갖 삐걱거림과 경적소리도 느낀다. 풀숲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뭇잎이 휙 지나가는 소리, 곤충의 윙윙거리는 소리, 내가 딴 꽃에 모여든 벌의 붕붕거리는 소리, 새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 냇물이 조약돌 위로 찰랑거릴 때의 약한 떨림 들이 느껴진다. 이런 기분 좋은 소리는 일단 한 번 느끼고 나면 머릿속에서 계속 바tm락거리고, 윙윙거리고, 붕붕거리고 퍼덕거리고 찰랑거려서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내 경험과 타인의 경험 사이에 내가 잇지 못할 무언의 공간은 없다. 열파와 음파가 한없이 변하고 뒤섞이면서 내얼굴에 와 닿는다. 그러면 나는 내 귀가 듣지 못하는 무수한 소리를 감지한다. 겨울비는 스산하고 향기도 없고 황량하다. 봅비는 상큼하고 향긋하고 생명력을 주는 온기로 충만하다. 봄비는 대지에 내려와 강물을 불리고 언덕빼기에 물이 풍성하게 하고, 밭고랑을 촉촉이 적셔 씨앗에 수분을 공급하고, 깊이 들이마시기조차 힘든 진한 향기가 샘솟게 한다. 봄비는 진주 같은 빗방울로 나무와 덤불의 모든 잎을 씻어주고 약초와 독초에게 공평하게 도움 주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생명체를 찾아나선다. 나는 눈에 보이는 징후가 나타나기 몇 시간 전에 폭풍우가 올 것을 후각으로 안다. 콧속에 무슨 일이 닥칠 듯한 긴장감, 가벼운 떨림, 주의 집중이 느껴진다. 폭풍우가 다가올수록 콧구멍이 넓어져 짙어지고 확산되는 흙냄새를 더 잘 맡게 된다. 마침내 내 뺨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폭풍우가 점점 멀리 사라져 가면 흙냄새도 점점 희미하게 옅어져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밖에서는 후각과 촉각으로 걸어가는 땅과 지나가는 장소를 알아차린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냄새가 뭉쳐 있어 그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다. 건초 풀밭, 정원, 소나무 숲, 창문 열린 농가도 알 수 있다. 자연에는 화도 분노도 없다. 공기에는 생명의 향기와 파괴의 악취가 똑같이 들어 있다. 성장과 죽음 모든 생명체에게 3도움이 된기 때문이다. 후각 한계선은 냄새와 상상이 만나는 선으로 후각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먼 한계이다.
· 나는 손가락으로 생각하고 욕구를 느꼈다. 만약 내가 인간을 창조했다면 틀림없이 손가락 끝에다 뇌와 영혼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나의 연상력은 선택력을 의미하는 자유의지와 하나에서 열까지 생각하는 힘인 이성, 이 두 가지 능력의 출발점이었다. 두 가지 능력 덕분에 나는 처음에는 아이로 , 나중에는 성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처음 나를 가르칠 적에는 가르쳐준 손가락 동작으로만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는 데서 커다란 기쁨을 느꼈을 뿐이다.
· 정상인 사람들의 세계에 사는 시청각장애인의 경험은 낯선 언어로 이야기하는 원주민들의 섬에 살게 된 뱃사람의 경험과 비슷하다. 그 뱃사람의 삶은 이전의 삶과 다르게 마련이다. 뱃사람은 혼자이고 원주민은 여럿이다. 타협 여지가 없다. 뱃사람은 원주민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하고, 원주민의 귀로 듣는 법을 배워햐 하고, 원주민의 사고방식을 배워야 하며, 원주민의 이상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나는 감각 결여로 일부밖에 감지하지 못한 사물을 상상력으로 인식하는 방식을 통해 안경이 어떻게 사물을 확대하고, 더 가깝거나 더 멀어 보이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내가 시각, 청각, 색, 비츠, 경치, 수많은 현상, 악기와 거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모든 말을 잊어버렸다고 해보자. 그러면 나는 지식 습득에서 얻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엄청 줄어들어 괴로울 것이다.
·나는 견고한 땅을 밟는다. 향기로운 공기를 호흡한다. 이 두 가지 경험으로 무수한 연상과 대응을 만들어 낸다. 감지, 느낌, 생각하고 상상한다. 그래서 수없이 많고 다양한 인상, 경험, 개념을 연상한다. 뇌 속의 노련한 장인인 상상력을 이용해 이런 요소들을 결합하면 어떵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한 가지 이상의 감각을 상실했다고 해서, 혹자들의 생각처럼 이정표나 도표도 없지는 않다. 시각 장애인은 뒤로 문이 닫힌 정상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 모든 능력을 지닌 채 어두운 환경 속에 있다. 자기 환경의 모든 곳이 햇빛 비치는 세계와 똑같다는 사실을 안다.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에는 유사성이 무궁무진하여, 이런 유사성과 대응에 해당하는 내면 세계의 모든 것이 자신이 실제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소나무 아래로 흔들리는 그늘 속에 몸을 담근다. 소나기가 그치면 소나무 아래 공기가 시원해지리니기운 찬 꼬마 친구 다람쥐는 꼬리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무성한 잎사귀에서 잎사귀로 뛰어다니다가 내 손에 놓인 아침을 먹으려 돌아온다. 우리는 즐거워하며 공감을 느낀다. 다람쥐는 깡충 뛰어다니고 나의 맥박도 춤을 춘다. 나는 충만한 생명의 행복에 기뻐한다.
·사람들은 내가 행복하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긴다. 그들은 나의 한계가 내 정신을 무겁게 짓눌러서 절망의 바위에 묶여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가 우리 것이고 해와 달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하늘에 걸려있다면 언덕 위마다 기쁨, 들판마다 즐거움이다. 저마다 고귀한 존재 이유로 태어났다고 믿으며 육체 삶의 좁은 한계 안에서 성취할 수 있는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분명히 생명은 존엄성을 지닌다.
·나는 촉각을 통해 공기의 모든 변화와 움직임을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서재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날에는 각각의 햇살에서 온갖 생명의 기쁨을 느낀다. 내 주변에 그림자를 드리워 얼굴에 서늘함이 느껴지는 비오는 날에는 축축한 대지와 습기 먹은 사물들의 냄새가 사방을 감돈다. 겨울 폭풍은 서재 창문을 흔들어 쌩쌩 소리 내는 날은 암울하다. 서풍이 불어 웅웅거리며 창유리에 기댄 내 손에 봄소식을 전하는 반가운 날에는 밖으로 나가 숲에 들고 싶다.
아침 햇살이 나를 깨우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육체적 부담을 어깨에 내려놓아 스르르 잠의 나라로 빠져드는 시간도 있다. 그리고 역사 속 사상가. 시인, 철학자와 함께 보내는 변화무쌍한 시간은 항상 있다. 주변에 온통 책이 가득한데 지루할 시간이 없다. 나는 생각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산다. 정상인은 어두운 침묵의 벽 뒤에 놀라운 정원이 숨어 있는 사실을 모른다. 그 침묵이 진동해서 나의 모든 감정과 의식으로 전해지면 나는 나 이외의 것을 인식하게 된다. 침묵에는 이런 사적인 멋진 면이 있기 때문에, 감성과 의미가 수많은 진동으로 변해서 촉각으로· 내게 이른다.
· 내게도 외부 세계와 따뜻하고 인간적 접촉을 할 수 있는 다른 감각이 있다. 후각은 나의 일상에서 소중하고 중요하다. 후각 덕에 색과 빛에서 얻지 못하는 많은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수많은 냄새로 가득한 공기에서 장소와 사물에 대한 많은 사실도 알아낸다. 식물초차도 맑은 날과 비오는 날에 서로 다른 향을 발산한다. 백합 향은 슬쩍 한 번 맡으면 그윽하지만 가까이 맡으려 하면 어찌나 향이 약하고 인색한지, 갓 베어낸 풀밭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면 상쾌하고 편안해진다. 숲과 산에 가득한 차분하고 한결같은 향은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지나갈 때마다 다정하게 인사하듯 많은 좋은 향을 뿜어주는 것들도 있는데 그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없어 느끼는 공허감을 달랠 수 있다.
냄새는 일상의 소소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친구 같다. 나는 냄새를 통해 비가 오는지, 풀이 베였는지 자동차가 거리를 지나는지 밥 때가 됐는지 안다.
· 행복한 삶은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내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