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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눈이 오는 날이 되면 도로가 빙판길도 되고 눈길이 되어서 도로를 다니기 힘들게 됩니다. 도로에 제설작업이 제대로 안되면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미끄러져서 차들끼리 부딪히고 도로가 마비됩니다. 신호를 줘도 신호에 제대로 멈추지 못하는 차들로 인해 혼란이 일어납니다.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빙판길이 되어버린 인도에서는 길을 걸어가다가 넘어지는 사람도 많고 그로 인해 골절환자들이 늘어납니다. 어르신들이나 임산부들은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생명에 지장을 받거나 태아가 위기에 놓이고 유산을 하기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계속 영하의 기온이 이어진 상태에서 연일 눈이 오는 날씨라면 정말 하루하루 밖을 돌아다니기 힘든 세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이 세상에 혼란이 찾아오고 환란에 일어나게 된다면 정말 영적으로 제대로 살아가기 힘이 듭니다. 혼돈속에 세상이 뒤죽박죽되어버리고 온갖 고난과 환란이 찾아온다면 정말 어려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자유 영국령 홍콩이 중국령 홍콩으로 체제가 바뀌고 나서 중국공산당의 체제속에서 연일 홍콩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시위에 참가했던 15세 소녀가 실종되었다 3일만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혼란이 있는 홍콩도 정말 우리가 그 속에 있다면 제대로 하루하루 지내기 힘들 것입니다. 홍콩은 지금 관광객도 쉽게 찾아가지 못하고 사업가도 업무를 보기 위해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정말 힘든 상황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큰 환란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예언하여 주시고 이 환란의 때에 우리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 지를 말씀하십니다. 환란은 언젠가 우리에게 찾아올 것인데 이 환란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이 영적, 육적 환란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바른 지혜로 환란을 벗어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란의 때에 환란을 받지 않으려면 첫째로, 경제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1장 21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예수님께서 환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일어날 징조도 말씀하시고 또한 성도들이 당할 핍박과 고난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이런 환란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지를 오늘 본문에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 첫 번째 대처 방법은 도시나 성으로 가지 말고 산으로 가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씀일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이나 촌의 의미는 생활하기 편한 곳, 개발되어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활에 편안한 발전된 곳을 의미합니다. 교통도 편하고 유통산업도 발달된 곳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생활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통, 문화, 유통, 교육등이 발전한 곳에서 벗어나서 살기 힘든 곳을 찾아가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이미 산간오지에 살아서 문화가 뭔 지 교통이 뭔 지 교육이 뭔 지를 못 느끼는 삶을 살던 사람이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발달된 사회에서 온갖 문화혜택을 누리고 교육여건이 좋던 곳에서 살다가 그것을 포기하고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하는 형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느 텔레비전채널에서 하는 예능프로그램중에 삼시세끼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시리즈가 방영되었는데요. 지금은 ‘산촌’편이 방송되고 있죠?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은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연예인이라도 2박 3일정도 지내는 동안은 자신의 지갑이나 카드등 집에서 쓰던 것은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단지 옷가지만 몇 벌 챙겨갈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음식도 못가져 갑니다. 오로지 산골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과 닭장에 있는 닭이 낳는 계란과 텃밭에 있는 채소로만 2박 3일정도 지내는 동안 밥해먹으며 지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골 집에서 2박 3일정도 지내는 것이 뭐가 어렵겠냐?라고 생각합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에 텃밭에 이미 심어서 열매맺혀있는 채소들과 닭장에서 매일 낳는 달걀등으로 지내는 것인데... 하지만, 대도시에서 유명한 연예인으로 지내면서 엄청난 집에서 각종 도시문화를 느끼며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생활하던 사람이 2박 3일 지내기 위해 아궁이도 만들고 천막도 만들고 직접 채소를 따서 음식을 만들어먹는 것이 일이라는 것을 느낄 때 문화혜택과 각종 편의시설을 다 버리고 돈없이 도구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예레미야 51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많은 물 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
환란의 때가 오면 재물도 내게 힘이 되지 않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환란때에는 이 재물 때문에 그 때는 포기해야함에도 포기하지 않아서 결국은 멸망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두쇠로 소문난 가게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기쁨은 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게 한 귀퉁이에 커다란 금고를 설치해두고 하루에 한 번씩 돈을 보면서 흡족해 했습니다. 사랑, 결혼, 친구들은 모두 그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평소처럼 그는 금고에 들어가 흐뭇한 마음으로 돈을 구경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금고 문이 닫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금고에는 비상구멍이 뚫려 있어 공기를 마시면서 살아남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 돈과 함께 금고에서 이틀을 보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 고독 속에서, 돈이 쌓인 금고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었습니다. 금고에 갇힌 지 사흘째 되던 날, 그는 출근한 직원에 의해 구조됐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제 나는 비로소 돈의 올무에서 벗어났다. 나는 금고에서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물질과 주님을 함께 섬길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잠시 위탁하신 물질에 걸려 넘어지지 마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 이 재물이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결국 재물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고 재물 때문에 환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9,10절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히브리서 13장 5절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로마제국시대때 기독교인이 박해를 피해서 살던 곳에서 좀 떨어진 묘지에 숨어서 지내기도 했고 멀리 지금의 터키지역 카파도키아까지 도망가서 산속에 있는 동굴속에 집과 교회를 만들고 도시를 형성해서 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로마의 지하도시, 산속의 동굴도시를 만들어 카타콤을 만들어 몇 백년간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그 아들의 아들 수백년동안 몇 대를 햇볕도 안 드는 땅속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과연 도시에서 살기 싫어서 그런 삶을 택했습니까? 이들이 교통과 교육, 문화생활을 생각했다면 카타콤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햇볕도 안드는 지하생활을 몇 대나 거쳐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기위해 편한 생활, 물질의 혜택, 문화혜택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환란을 이겨낼 길이라면 그것을 택해야할 것입니다. 그런 바른 택함을 하기 위해서는 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물질을 내려놓을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물질이 내손에 있더라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그 훈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을 의뢰받은 청지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우리의 것을 나눠줄 때,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려하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물질을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순전한 동기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거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을 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이기에 제대로 써야한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또한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고 문화적인 풍요를 누리고 돈의 여유를 느끼는 것에 빠져 살아가면 환란이 찾아왔을 때 쉽게 환란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위기속에서 우리는 항상 돈의 노예가 되고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견뎌내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물질에 대한 집착,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물질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살아보는 훈련도 해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란의 때에 환란을 받지 않으려면 둘째로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위한 노력보다 환란에 빠지지 않을 노력을 해야합니다.
누가복음 21장 23절말씀입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입니다. 또한 가족의 건강입니다. 또한 우리의 생명을 어느 것보다 소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생명, 우리의 건강 그리고 우리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내려놓고 정말 하나님께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맡기고 환란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중요시해야하지만 그렇게 육신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며 살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닥쳐올 환란의 때에 육신의 생명으로 인해 영혼의 생명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챙기고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챙기다보면 결국 환란을 이겨내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을사보호조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넘어가고 일본의 통치를 받는 국가치욕 시절에 이 울분을 가지고 한반도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하였던 안중근의사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을 명중시켜 암살한 후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체포됐습니다. 안중근의사는 뤼순감옥으로 옮겨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때 안중근의 나이는 31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여사 또한 40대였다고 합니다. 사형선고이후 사형집행 전에 온갖 고뇌가 있었던 것을 우리는 어머니와 아들의 편지왕래기록에 의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에서 어머니 조마리아여사의 편지를 이러했습니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사무엘상 26장 24절입니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이 말씀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죽이지 않고 살려주면서 한 말입니다. 사실 죽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본인이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니 자신이 왕이 되도록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셔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환란가운데서 생명을 잃거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고백도 담겨있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살 길을 찾는 일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그 살기위한 노력으로 인해 환란에 빠지고 영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말 한국교회를 탄압하는 일본제국주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 순교하신 주기철목사님이 계십니다. 일본경찰의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인해 감옥에서 큰 병을 얻고 처죽음이 되어 풀려났다가 다시 잡혀갔다를 반복했던 순교자이십니다.
감옥에서 죽으면 민심이 동요하게 되니까 목사님을 풀어주어서 집에 오게 되었을 때 목사님을 보자마자 오정모 사모님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남편, 목사님 감옥에서 꼭 죽으시오.”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또 덧붙여 한 마디 했던 것은 꼭 “승리했나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주기철목사님이 투옥중에 회유을 요구하는 일본군경에 항복하여 변절하는 언행을 하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다시 감옥에 들어가십시오. 어서 들어갈 준비를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곁에 있는 사람은 당황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처죽음이 되어 출옥한 남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 했던 말은 “어머니와 아이들은 걱정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서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세요. 한국 교회의 밀알이 되어 이 교회가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십시오. 목사님. 꼭 순교하셔야 한국교회가 삽니다.”
이런 말에 주기철 목사님은 결연하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야지요. 지금 우리 교회 처지가 일제에 변절하면 살아남고, 변절하지 않고 순교하면 교회가 죽는다고 세상은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순교하여야 교회는 산다오, 그렇소. 나는 순교하겠소.”
정말 요즘 목회자와 목회자가정과는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목사님 그렇게 일하다가 몸 상합니다.” “몸이 살아야 교회가 있고 건강해야 목회 오래하지요” “목사님 죽으면 가족은 어떻게 삽니까? 그러니 오래오래 건강해야하니 몸 사리면서 일하고 죽도록 목회하지말고 건강을 돌보면서 목회하세요”
저는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자 가정에서 목사와 사모의 대화의 기준이 지금 말씀드렸던 이런 생각이 거의 100%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한국교회 부흥은 물건너 갔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성장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33절입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마태복음 10장 39절입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우리의 건강이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안전에 대한 걱정을 붙잡고 있다고 한들, 우리에게는 그 생명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합니다. 죽음이나 질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함을 누리려면 우리는 가족의 안전에 대해서도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면서 당신의 생명을 내려 놓으셨듯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환란의 때에 우리가 우리의 육신의 목숨을 지키려고 하면 결국은 그 육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결국은 환란도 피하지 못하고 영적인 죽음도 피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맞지만 어차피 우리의 육신의 생명의 끝은 언젠가는 끝이나도록 정해져있고 그 이후에는 심판과 영원한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어느 것이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정말 우리의 생명의 가치관을 바로 깨닫고 주님께 드리며 살아갈 때 환란을 이겨내는 믿음의 승리자가 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환란을 피하도록 생명까지 주님께 맡기며 내려놓음의 믿음을 가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란의 때에 환란을 받지 않으려면 셋째로, 세상의 자연재해와 각종 재앙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1장 26절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인생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환란의 때가 되면 오늘 본문을 보니 우주의 이상한 현상과 자연의 이상기후와 재앙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두려워하며 걱정하기에 결국 환란때에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기절하고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현실속에서 계속 좌절하고 낙담하고 포기하고 인생의 승리자가 아닌 패배자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상황에 빠져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내 기준에서, 내 경험에서 결정합니다. 그러니 두렵고 떨리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거해서 일상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킨다면 그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않는 상황으로 우리가 전진하기를 원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채우시는 것입니다. 도무지 이겨내기 힘든 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그 일에 대해 응답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반응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경이로우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환경을 이길 수 없습니다. 상황을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너무나 유한한 존재이고 미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정말 걱정과 염려는 내려놓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걱정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하고 스트레스도 죽음가운데 우리는 내팽개치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환란을 피하기는 방법이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맡기는 것임을 깨닫고 지혜롭게 생활하며 환란을 이겨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에 있을 환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환란과 미혹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여 주십니다. 미혹과 재앙이 있을 그때에 인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택하신 자들을 모두 모아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환란이라는 장치를 세상 마지막에 계획하고 계실까요?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구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마지막 환란 때에 어떻게 할까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오시기를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들을 환란에서 건지시고 구원의 기쁨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 환란의 때를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지만 우리가 헷갈리지 않도록 미리 말씀해 주신 주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됩니다. 오늘도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오실 그때를 기다리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힘써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구절 한 구절 같이 읽고 마치려고 합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2,33절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