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때때로 생각해 본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 수 있었을까 하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해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우리는 아직까지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가득 차 있던, 사단이 인간의 마음속에 넣어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검은 구름 - 하나님은 가혹한 재판장같이 무서운 분이시며, 인간들을 벌하기를 좋아하시는 두렵고 엄격한 신이라는 오해 - 의 구름을 단번에 흩어버릴 수 있는 분은 단 한 분, 예수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인간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실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인성을 쓰시고 우리 중 하나가 되는 성육신의 길밖에는 없었다. 빌립보 2장 6,7절의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늘 감동을 주지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짧은 구절인 것 같다. 성육신!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비밀은 언제나 우리에게 끝없는 명상의 주제를 던져준다.
아름다운 비밀
정말 꼭 그러실 필요까지 있었을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꼭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성을 입으셔야 했을까? 이 주제는 유한한 사고를 가진 인간이 추측해내지 못할 무한하고 신비로운 주제이지만, 이 아름다운 비밀은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며, 이 사실은 오늘도 우리를 감격시킨다. 성경은 예수께서 인성을 쓰시고 인간이 되신 놀라운 비밀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께서 입으셨던 인성과 본성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이런 질문에 대하여 대답해주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성경의 구절들을 믿음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 2:11).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히 2:14). 이는 주께서 진실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 (킹 제임스 성경, 히 2:16). 그리고 히브리 2장 18절과, 5장 2절의 말씀들을&&. 신이 인간이 되시다! 인간 어머니인 마리아의 태에 갇혀서 보내신 열 달의 시간들,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로서의 성장의 단계를 거치시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 (눅 2:52)던 어린 시절들, 가난하고 순박한 나사렛에서의 청소년기, 그리고 공생애를 위해 하나님과 교통하며 천연계에서 명상과 기도로 준비하시던 청년기의 시간들, 하늘의 선물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니시던 장년의 시간들&&.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하늘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그 시간들은 우리가 신을 가장 가까이서 가질 수 있었던 귀중한 순간들이었고, 이 세상은 그분으로 인해 온통 축복의 분위기로 휩싸일 수 있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인 예수님의 실재는 메마르고 척박한 이 지구를 아름답고 풍요로운 꽃과 향기로 뒤덮이게 했고, 그 아름다운 비밀로 인해 이 세상은 이슬에 흠뻑 젖은 초목처럼 하늘의 은총이 충만하게 넘치는 은혜로운 장소가 되게 했다.
우리와 하나가 되심
성경은 우리의 귀한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인성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얼마나 많은 점에서 같았는가? 범사에 서이다. (히 2:17 참조) 범사 라는 말은 영어로 in every way 인데, 이것은 모든 면에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성을 거론하는 것 말고 인성에 있어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으셨다. 신이셨지만, 우리와 똑같은 감정 - 슬픔, 기쁨, 고뇌, 행복 - 을 느끼시고, 또 우리와 똑같이 육체적인 상황 - 배고프고 피곤하신 - 을 가지셨다. 저명한 신학자인 칼 발트나 에밀 부르너, 또한 루돌프 볼트만이나 오스카 쿨만 및, 20세기 후반의 유명한 신학자들은, 예수님은 인간의 타락한 인성을 가지셨으며, 타락에 의해 영향을 받은, 우리와 같은 유전 법칙의 영향을 받은 분으로서의 예수님의 인성을 공공연하게 지지했는데, 특히 쿨만과 볼트만은 빌립보서 2장 5~8절 말씀에 대하여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쿨만은 종의 형체를 가져 라는 뜻에 대하여 그의 주석에 기록하기를, 종의 형체를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의 형체, 곧 인간의 타락으로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의 형체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고 했다. 빌립보 2장 7절의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에서 사용된 likeness 는 원어 Homoiomati 라는 뜻으로서, 겉모양만 똑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같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성을 쓰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시되,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또 말하기를,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고 그분의 죄 없으심을 말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인성과 본성을 입으셨지만, 예수님 속에는 신성의 충만하심이 함께 거하시므로 어떤 악한 감정이나 일과도 관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죄를 이신 순결한 생애를 사셨다는 뜻이다. (요 14:30 참조)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감정과 느낌과 경험을 체험하셔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 줄을 아시기 위함이고, 둘째로는 우리도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 수 있다는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서이다.
그것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과 유혹을 받으셨다. 만일 겉모양만 우리와 같은 분으로 오셨다면, 왜 히브리서는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겠는가?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7~8).
항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만일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시험은 시험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분이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셨더라면, 그는 인간이 시험당하는 것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분도 아담처럼, 그리고 모든 사람들처럼 시험대에 오른 자유 행위자였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유혹은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분도 사단의 유혹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자유 행위자로서 시험대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육체에 계실 때에 예수님은 고난을 당할 필요가 없으셨을 것이다.
유혹이 유혹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주님은 우리 인간들처럼 시험을 이기기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유혹이 유혹이 아니었다면, 승리를 위해 애쓰실 필요도 없었고, 그러면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 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인성을 쓰신 주님이 견뎌야 할 유혹과 시험이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모본이 되시기 위하여 이겨내야 할 시험들이었다. 만약 타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다면, 그분은 인간들이 시험을 당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예수님께서 인성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셔서 몸소 모든 것을 체험하시는 그 위험한 시간들을 보내셨던 것은 우리에 대한 놀라운 사랑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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