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30]
이기선(李基宣, 1878-1950)②
이기선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 앞장서다가 고문으로 발목뼈가 부러졌음에도, 얼마 후에 또 반대 운동에 참여하다가 악명이 높은 평양 대동경찰서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세 가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주 단순한 것이지만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때리면 맞고, 가두면 갇히고, 죽이면 죽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경찰의 온갖 고문을 견뎠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일본 경찰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목사들을 각 노회가 제명해서 목사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지시했고, 이기선 목사는 의산 노회에서 제명당했습니다. 평양 노회에서는 주기철 목사, 방계성 목사, 편하설 선교사 등이 제명당했습니다. 이기선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들 대부분이 신사참배에 참여했을 때 지속적으로 반대 운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 바로 주기철, 주남선, 방계성, 최상림, 이약신, 손양원, 정양순(손양원의 아내), 주영진(주기철의 장남) 등입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교회가 신사참배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면, 1940년대 후반(해방 이후)은 공산당과의 갈등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목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공산당과 타협했으나 이기선 목사는 그들처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많은 신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남쪽을 향해 떠났을 때, 그는 북쪽 지역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그대로 남기로 했습니다. 결국 그는 북쪽에서 공산당에 협력하기로 한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강단에 서서 더 이상 설교할 수도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 수 없지만 6·25 전쟁 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참고: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