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심상대’와 그리고 ‘묵호’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 에서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을 하고 고향 묵호를 찾는다.
세상이라는 배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울렁거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녀와 함께 여관을 찾지만 그 정사마저 실패한다.
그러고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어허허허” 하고 울다가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잠을 깬 주인공은 친구 ‘박 선장’을 만나 해장술을 마신다.
박 선장이 동중국해로 출항을 간 후 주인공은 ‘연희’라는 여인에게 전화를 건다.
연희는 박 선장의 아내. 한때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인이기도 한 연희와 여관에서 아찔함을 느낄 정도의 시간을 보낸 주인공은 구토를 한다.
“그녀가 어둠 저편으로 한 송이 커다란 꽃무늬 스카프를 감추며 사라졌을 때, 내 앞에는 새로운 바다가 놓여 있었다. 구르는 돌처럼 저항할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이 해변에 어정쩡히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심상대와 나의 묵호는 비슷한 거 같다. 술과 여자와 구토, 나의 사춘기 시절의 방황과 심상대 소설의 주인공의 이혼을 한 후의 그것이 몹시도 닮아 있다.
나는, 앞 묵호에서의 몇 달을 그렇게 보내다가, 드디어 나를 지겹게 따라다니던 묵호항 앞의 색시집 딸년의 애인 중의 하나였던 대학생 놈을 술집에서 때려누이고, 서울 종로 2가 학원가로 도망을 가고 말았다.
그 몇 달이 내가 묵호에서 보낸 전부이지만, 묵호는 내 인생에서 도저히 삭제할 수 없는 진한 낙인처럼 기가 막힌 곳이 되고 말았다.
내가 묵호로 전학을 간 것은, 아버지와 학교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새로운 환경과 돌파구가 필요했으나, 그곳 역시 나의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해야 했다. 지독히도 반항아였던 내가, 아버지를 기여코 이기고 잘 다니던 강릉고를 뛰쳐나와 묵호종고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나는 흠뻑 빠져들었다. 묵호의 거칠고 더럽고 천박한 분위기에.
묵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의 몇 달간의 내 삶의 모든 것이었다.
2012년도에 심상대는 십여년간의 침묵을 깨고 소설 '단추'로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소감은 걸작이었다. 김유정의 고향 춘천에서의 청년 시절의 이야기와 그 동안 어렵게 살면서 진 빛을 갚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말에서 심상대의 천진난만함과 솔직함을 볼 수 있었다.
3천만원의 원고료로 도대체 얼마나 갚을 수 있기에,
그리고 그 돈으로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심상대는 나와 같은 강릉시 옥계가 고향이다. 게다가, 심상대와 내 여동생간에 친분이 있고 그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도 친구였다. 그래서, 심상대는 수상작 '단추'에 친필 사인을 하여 내 아버지에게 선물도 했다.
내 아버지는, 그때 심상대에게 내 이야기를 했나보다. 변변치 못한 아들도 소설을 쓰고 있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모르고 계시다. 아들은 소설을 쓰고 있지 못하다고.
나는 그저 매일 같이 잡문이나 끄적이면서 묵호항에서 장사치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고맙게도 심상대는 금진항으로 나를 찾아왔다. 작가 선배로서 또는 조언자로서 또는 동질감에서 나와 이야기 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는지도.
그러나, 그날 만나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한편으로 나도 어떤 동질감에서 지독히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어떤 이유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글쓰는 사람들은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꼭 규정짓는 것은 편협한 생각인줄 알지만, 유독 그 부분만큼은 지키고 싶다.
혹시 심상대와 또는 그 외의 작가들과 우연히 만난다고 해도 문학 이야기 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살아가는 편한 이야기나 나누고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
게다가, 심상대씨가 술을 끊었다고 하니 더욱 만날 일은 없는 거 같다.
지금, 나는 심상대 소설 '묵호를 아는가'의 중심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묵호에서의 글은 소설일 필요는 없다.
다만, 묵호의 품 속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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