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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트 슈만의 교향곡 제3번(라인) 전악장(5악장)
[ 낭만의 끝판왕,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1810~1856) ]
세계 음악사가 전하는 작곡가의 사랑의 이야기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일 것입니다. 두 사람의 결합은 그냥 사랑의 승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히 음악의 승리라 할 만하지요. 이들의 사랑이 아니었던들 슈만의 주옥같은 가곡들을 오늘날 우리가 들을 수 있었을까요.
슈만의 가곡들이 없는 음악사는 또 얼마나 허전했을까요. 한 음악가의 커다란 사랑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온 世人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 라인강은 뒤셀도르프에서 대하(大河)가 됩니다. 뒤셀도르프에서 <라인 교향곡>을 쓴 슈만은 결국
정신이상이 되어 이 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때의 다리는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 라이프치히 >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이 싹트고 열매를 맺은 곳이 라이프치히입니다. 슈만이 클라라 곁에서 다감한 청년 시대를 보냄으로써 결국은 詩的이고 환상적인 음악을 작곡하여 가장 낭만적인 작곡가가 되게 한 곳이 바로 라이프치히인 것입니다.
슈만이 이 곳에 자리를 잡은 곳이 18세 때인 1828년,고향인 츠비카우에서 올라와 라이프치히 대학 법과에 입학하면서였습니다. 츠비카우는 라이프치히에서 남쪽으로 약 80km에 위치하며, 슈만 때 인구 5천이던 것이 이제 12만이 넘는 산업 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1810년에 슈만이 태어난 집은 시청이 있는 시장 광장에서 가까운 곳인데 기념관으로 공개중이고, 이 도시의 중앙 공원에는 슈만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 츠비카우에 있는 슈만의 생가
라이프치히에 들어서 보면, 구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한 번화가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34층짜리의 현대식 빌딩입니다. 시가지 한복판에 탑처럼 우뚝합니다. 무슨 오피스 빌딩인 줄로만 알았던 이 건물이 알고 보니 라이프치히 대학입니다.
슈만이 츠비카우에서 나와 입학한 라이프치히 대학은 1402년에 설립된 독일 最古의 대학으로 유명합니다. 궤테,니체,바그너 등이 다녔습니다. 1969년에 현재의 34층짜리 건물이 신축되었습니다.
* 슈만의 동상
슈만이 클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이 대학에 들어가던 해 츠비카우 출신의 한 교수 집에서 열린 가정 음악회에서였습니다. 이 때 9세의 소녀이던 클라라의 피아노 연주가 슈만을 놀라게 했습니다. 슈만이 클라라의 아버지인 비크에게 피아노의 문하생이 된 후 25세 되던 당시 16세의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비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정 싸움까지 벌여 결국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은 1840년, 슈만이 30세,클라라가 21세 때였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곳은 라이프치히 교외의 쉐네펠트라는 조그만 마을의 교회입니다. 지금은 라이프치히의 변두리가 된 이곳에는 그 교회가 아직 그대로 남아 이들의 훈훈한 사랑을 기억해 주고 있습니다.
*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는 9세 때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데뷔한 피아노의 명수로 재색을 겸비한 재원이었고, 슈만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작곡도 하여 슈만이 그의 선율을 빌려 쓰기도 했습니다. 슈만이 죽고 난 뒤는 남편의 작품 연주에 생애를 바치면서 슈만의 전집을 간행하기도 하여 스스로도 음악사에 크게 이름을 남긴 여성이죠.
두 사람이 결혼한 1840년은 '슈만의 해'라 일컬어집니다. 행복의 절정에 있던 이 해에 슈만은 100곡이 넘는 가곡을 썼고, 그의 걸작 가곡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곡집<시인의 사랑>,<여자의 사랑과 생애>,<미르테의 꽃> 등이 모두 이 해의 소득입니다. 라이프치히에서 그 때까지 <트로이메라이>가 들어 있는 <어린이의 정경> 등 피아노 곡만 쓰던 슈만은 "목소리를 위해 작곡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런데도 나는 지금까지 목소리 없는 작곡을 해왔으니"하면서 이 해에 그의 음악의 모든 것을 걸어 가곡 창작에 집중했습니다.
* 부인 클라라
이 일련의 가곡들은 결혼을 전후한 클라라와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작곡된 것입니다. "나는 당신과 결혼을 약속하지 않았으면 이런 노래는 쓸 수 없었을 것이오"라고 클라라에게 편지를 썼듯이, 대부분 이 戀愛詩에 작곡된 이 가곡들은 많은 고난을 넘어 얻어진 사랑의 승리의 기념비였고, 클라라에 대한 연모를 노래로 쓴 日記였던 겁니다.
* 슈만 부부가 살던 라이프치히 집(2층 일부를 사용)
"내 스스로 생활한 것밖에는 노래하지 않는다"고 한 슈만의 말대로 그의 가곡들은 사랑의 체험에 의한 '生의 예술'이었고, 그것이 낭만파 음악의 특징인 음악의 詩化로 영롱하게 結晶되었습니다.
슈만이 라이프치히 시대에 그의 음악을 키운 곳으로는 '카페 바움'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1694년에 개업하여 오늘날까지 슈만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문을 열고 있다는 이 집은 여러 층의 홀이 있는 큰 식당이자 술집인데 맨 아래층 한쪽 구석방 벽에 슈만의 흉상을 새긴 동판 기념패가 걸려 있습니다.
* 카페 바움
거기에는 '이 자리서 1833년부터 1840년까지 로베르트 슈만이 다비드 동맹(그의 예술 서클)의 동료들과 매일 밤을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결혼 후에도 이 곳이 그로서는 매력 있는 장소라는 곳에 변함이 없었다. 그가 드레스덴으로 옮기고 난 후에도 라이프치히에 들르면 반드시 추억의 장소로 이 장소를 찾아왔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카페 바움'은 슈만 뿐 아니라 리스트와 바그너가 귀한 손님이기도 했고 현재는 라이프츠히 문화 예술인들의 집합소가 되어 있습니다.
슈만은 결혼 4년 후인 1844년까지 라이프치히에 살다가 드레스덴으로 거처를 옮겼고 1850년(40세)에는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초청되어 뒤셀도르프에 온 뒤 여기서 본의 병원에 입원해 절명할 때까지 4년여를 머뭅니다. 이제 뒤셀도르프를 찾아가 보도록 합니다.
* 슈만이 마지막으로 살던 뒤셀도르프 집(왼쪽)
뒤셀도르프에는 슈만이 옮겨 살던 집이 4곳이었으나 지금 집 모습이 옛 모습대로 남은 것은 빌커슈트라세 15번지 한 군데 뿐입니다. 이 집을 찾아가자면 하롤트슈트라세에서 빌커슈트라세로 접어드는 모퉁이에 '백조의 시장'이라는 소공원이 있고, 여기서 시인 하이네의 커다란 기념상을 만납니다.
뒤셀도르프는 하이네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하이네는 슈만의 가곡과 깊은 관계가 있죠. 슈만은 18세 때 뮌헨에서 하이네를 만나 감명을 받은 뒤 하이네의 詩로 많은 가곡을 썼습니다. 1840년 첫 가곡집 <리더 크라이스>도 하이네의 시에 의한 것이고, 하이네의 시로 작곡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가곡집 <시인의 사랑>입니다.
* 부부가 함께 쓰던 피아노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서 뽑은 이 가곡의 시들은 시인이 사촌 누이 아말리아에게서 당한 失戀의 산물이고 슈만의 곡은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발로인지라, 공감의 근저를 가진 두 사람입니다. 슈만의 집 바로 길 건너인 빌커슈트라세 14번지가 하이네 연구소이고, 여기 하이네의 기념실이 있는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입니다.
슈만의 집은 노란 3층짜리 건물입니다. 벽에 '슈만과 클라라가 1852년 9월 1일부터 1854년 3월 4일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는 기념판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슈만이 뒤셀도르프에서 마지막 살던 집입니다. 슈만은 7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데리고 이 건물의 2층과 3층을 쓰고 있었습니다 .1853년 20세의 젊은 브람스가 찾아와 自作의 소나타 연주로 슈만 부처를 경탄시킨 곳이 또한 이 집이었습니다.
브람스는 그 이후 슈만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고 슈만이 죽은 후로는 클라라와 깊은 우정을 맺게 됩니다.
슈만은 이 집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썼지만 브람스,디트리히와 함께 공동 작곡한 F.A.E.소나타의 산실로도 감회가 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집 앞에서는 음악사가 痛恨을 느끼는 한 惡夢이 전해집니다. 1854년 2월 27일 라인 강에 투신하기 위해 윗도리도 걸치지 않고 맨발로 뛰쳐나온 것이 이 집이 아니던가요. 정신병의 징조가 나타나 귀에는 끊임없이 A음이 울리던, 그러다가 끝내는 발광하고 만 위대한 슈만의 헝클어진 모습을 차마 正視할 수가 없습니다.
슈만이 집을 나와 빗속을 달려간 길을 따라 라인 강으로 가 봅니다. "클라라,나는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중얼거리던 슈만의 넋 잃은 목소리를 들으며 걷습니다. 빌커슈트라세를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꼬부라지면 브람스가 살던 집 자리인 포스트슈트라세 32번지 앞을 지나게 되고 왼쪽으로 슈페셰그란벤이라는 작은 호수를 끼고 곧바로 가면 10여 분 만에 강변에 이릅니다.
여기서의 라인 강은 폭이 500m 가까운 大河입니다. 강변에는 큰 크레인들이 늘어서 있고 탁류 속을 바닥 낮은 하천용 화물선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강 위에는 큰 다리가 2개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슈만이 뛰어내린 다리가 아닙니다. 그 다리는 2m 정도의 낮은 것이었고 배가 지나갈 때 열리는 개폐식이었다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슈만이 뒤셀도르프에 오자마자 쓴 작품이 <라인 교향곡>(교향곡 제3번)입니다. 이 곡의 향기 높은 詩情이 슈만의 狂氣를 데불고 흐르는 이 강에는 없습니다.
강에 투신한 슈만은 마침 지나가던 배에 건져져 본의 정신병원으로 옮겨집니다. 본의 변두리인 엔데니히 지역의 슈테바스티안슈트라세 182번지. 당시의 정신병원은 지금 시립 음악 전문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 후부터 병원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슈만이 숨을 거둔 방은 1963년에 기념실로 꾸며졌습니다.
* 슈만이 입원했다가 1856년 죽은 정신병원, 본의 엔데니히 지역의 이 건물은 지금은 음악
도서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의사의 금지로 슈만의 병실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람스뿐이었습니다. 슈만이 죽기 나흘 전 클라라는 만류를 무릅쓰고 달려 들어가 완전히 탈진한 상태의 남편과 이 방에서 마지막 포옹을 했습니다.
슈만의 무덤은 본의 舊 묘지에 있습니다. 1880년에 제막된 묘비는 오른편에 요정이 노래책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고, 왼편에는 천사가 바이올린을 켜는 커다란 석상입니다. 아래쪽에서 위쪽에 있는 슈만의 얼굴 부조(浮彫)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상은 클라라입니다. 클라라의 소망에 따라 새겨진 것입니다. 슈만의 음악의 靈感源이던 클라라는 남편보다 40년을 더 살아 1896년 77세의 나이로 죽엇고, 이 무덤에 사랑하던 남편과 함께 묻혔습니다.
* 슈만 클라라 부부의 묘지
[ 교향곡 제3번 E플랫 장조 <라인> ]
로맨틱한 아름다움과 중후한 울림! 전원적이고 친숙한 정감!
하이네 등의 시로 많은 가곡과 로맨틱한 피아노 곡을 많이 남긴 슈만은 스케일이 큰 교향곡과 실내악곡들은 클라라와 결혼한 이후부터였습니다.
* 슈만 부부가 사용하던 피아노
문학도이자 음악도였던 슈만은 젊은시절부터 슈베르트를 무척이나 흠모했지요. 그래서 그의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향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때문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슈만이 6년동안의 드레스덴 생활을 마감하고 뒤셀도르프로 옮긴 것은 그의 나이 40세때였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드레스덴을 떠나고 싶었는데 마침 뒤셀도르프에서 시 관현악단을 맡아줄 수 없느냐는 좋은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뒤셀도르프의 넓고 쾌적한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부인 클라라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별실이 있어 여유있는 공간이 생기는 바람에 클라라도 비로서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게된 겁니다.
교향곡 <제3번>은 이처럼 새로운 분위기에서 탄생한 희망과 의욕의 작품인 셈입니다. 조울증이라는 정신병을 안고 사는 슈만에게 라인 지방의 밝은 풍광은 정말로 훌륭한 치료제가 되었을 겁니다.
<제3번>은 일반적인 다른 교향곡과는 달리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악장의 지시어도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되어 있는 것도 특이합니다.
슈만의 교향곡 4곡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밝고 활기찬 것이 특징입니다. "라인 강변의 풍광을 절절히 나타내주고 있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이 곡은 라인 지역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습니다.
독일 북서부 지역의 아야기, 유장하게 흐르는 라인 강과 강변, 인근의 숲과 완만한 골짜기, 아기자기하게 펼쳐져있는 마을들, 그리고 그곳 마을사람들의 삶 등. 독일을 여행할 때 꼭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이 곡을 지참하여 듣는다면 독일의 풍광을 두배 세배의 감동으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목숨을 끊기 전 자신의 광기가 잠시 가라앉아 활기와 의욕이 남아 있던 순간에 썼던 이 작품 제3번 <라인>은 우리들에게 불행했던 한 예술가의 초상화를 떠오르게 해주고 있습니다.
첫댓글 한가한 주말 오후에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 노래를 들으며 평온과 안식을 찾네.
근 30여분을 숨을 죽이며 감상한 연주에 행복한 미소가 흐른다.
고맙구만. 훌륭한 해설을 곁들인 음악의 산책을 만끽하여 주어서...
행복한 오후를 즐기면서....
부부 음악인으로서 기반도 탄탄해져 가고 가정적으로 7남매를 낳고 다복한
인생이 막 펼쳐져 가려는 순간, 슈만의 고질병인 정신병의 악화로 인하여 슈
만 클라라 부부에게 닥쳐온 비극이 우리의 가슴을 칩니다. 원래 슈만의 정신
병은 모계로부터 이어져왔다고 하네요.
슈만의 죽음 후 클라라는 슈만이 키운 후배 음악가 브람스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나머지 삶을 무난하게 보내게 됩니다. 클라라와 브람스 두사람의 우정
은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미담으로 자리잡습니다.
주안거사! 즐거운 주말 보내기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