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제 이번 여정의 어쩌면 하일라이트가 될 수도 있는 '부활절 섬'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지요.
근데, 이 놈의 '코로나'는 도대체 왜 아직까지 기승을 부리는지......
여기 칠레에 들어오는 것만도 벌써 세 번째, 이 코로나 증명서를 떼어야만 했는데,
이번은 직접 그 검사를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섬에 들어오기 24시간 전의 검사만 유효)
그러니, 여까지 와서 그 섬에 못 들어가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어떻게든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데(그러고 싶은데),
그것도 제 마음 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요.
아무튼, 돈도 없는 주제에 그런저런 검사에 드는 비용도 만만찮고(하는 수 없습니다. 비자카드로 결재하면 일단은 넘길 수 있으니...).
그 섬에 들어간다 해도 비싼 물가에 또 고생일 터라, 흥도 나다가 도망갈 상황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준비를 하고 검사를 받기 위해 도심으로 향했습니다.
근데, 어제는 참 날도 좋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끄물끄물대더군요.
겨우, 물어물어 검사 현장에 도착을 했는데,(이미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둔 상태라 많이 기다리진 않았습니다.)
일단, 검사를 끝내고 나오면서는, 6시간 뒤에 메일로 통보해준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장을 나오긴 했는데,
바로 그 앞이, 여기 중요한 관광지인가 보았습니다.(아래 사진)
무슨 '성곽' 같은 것도 있고, 경비병이 서 있기도 하던데, 그 산 꼭대기엔 전망대 같은 게 있었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서 주변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드라구요.
그런데 저는,
나는 저런 관광객들과는 달라...... 하는 심정으로, (가만 보니 거기도 입장료가 있는가 보던데)
그냥 멀리서 사진 만을 조심스럽게 찍고는(도둑 조심하라기에), 얼른 카메라를 숨기면서 길을 걷는데,
갑자기 제 처지가 한심한 겁니다.
이 나이에 돈도 없이 여행을 한답시고, 이리저리 애를 쓰고 다니는 건 물론 또 기도 죽은 모습이요.
게다가, 이 결정적인 검사(순간)가 또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터라,
이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만 돼준다면 무슨 걱정이랴만, 또 이런저런 악재가 있음에도 끝내 가고자 하는 곳까지 가려고 이런 애를 쓰는 제 모습이 한편으론 측은하기도 해서,
이렇게 다 늙어서도 여전히 '떠돌이 신세'를 못 벗어나는 건가...... 하는 심정으로까지 비약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심을 걷다 보니(그저 터덜터덜 걸었지요.),
여기 정부 청사 건물들 광장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대형 칠레 국기가 게양돼 있는 모습을 보면서는,
저렇게 큰 국기를 걸어놓고, 뭘 기대하는 건가? 하다간,
저 국기가 움직이기는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 주변에서 데모하는 한 패거리를 보면서,
세상 어디든 정부에 찬성하는 사람들만 있을 수는 없지...... 하며 사진도 좀 찍다가,
어쩐지 기운도 없어서(이러다 검사가 안 좋으면 어떡한다지? 하는 생각만 들던데요,),
거기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어?
하고 제가 놀랐던 건, 그 침묵을 지키고 있던 국기가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람이 부는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람도 바람이지만 그 대형 국기가 움직이니, 어쩐지 저는 그 쪽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날은 썩 청명하지는 않았지만(어쩐지 약간 쓸쓸한 기운) 그 원색이 하늘에서 움직이니, 묘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드라구요.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디카가 또 말썽을 부려(참, 아슬아슬하게 그 디카를 사용하면서 다니고 있네요.),
이제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계속 찍었는데,
도대체 내가 왜 남의 나라 국기 펄럭이는 걸 보면서 사진을 찍어댄다지? 하게 되었지요.
사실, 저에겐 그게 국기라는 개념보다는, 뭔가 색깔들의 움직임이 재미있어서 그러고 있었던 건데요......
거기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 칠레 돈도 거의 바닥났는데, 내일 만약 '부활절 섬'에 들어간다 해도, 숙소에서 나오려면 짐이 무거워 허다 못해 택시비라도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 마지막으로 100불(미화)이 있는데, 그걸 바꿔놓아야 내일 경비로 쓸 수 있을 텐데......
근데, 사람들이 하도 여기 도둑들을 조심하라고 하니, 그 돈 100불을 바꾼다 해도 도둑들 눈치보며 바꿔야 할 테고, 그 돈이 떨어지면, 이젠 어쨌거나 카드로 돈을 꺼내서 써야 하는데... 섬에 들어가게 된다면, 거기도 은행은 있을 테지만, 뭔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까? 등등, 이런저런 걱정이 아니되지가 않더군요.
그렇게 거기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답니다.
데모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주변에 경찰들도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 점은 안전할 것 같아서 제 사진도 찍어두면서요.
그러다 보니 배도 고프고(아침도 허술하게 때우고 나와서),
어차피 돈을 바꿔야 할 텐데, 그런 일들이 왜 그리 귀찮기만 한지......
(제가 원래, 그런 일을 참 싫어합니다. 은행이나 동사무소 같은 데 가는 일요.)
그래도 하는 수 있습니까?
겨우 심기일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겨우 환전소가 몰려있는 중심부에 가게 되었는데,
웬걸?
제가 수중에 갖고 있던 돈(100불)은 환전이 불가하다지 않습니까?
돈에 흠집이 있었서였는데요.....
그러니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는데, 그나마 20불짜리가 하나 있어서, 그거라도 바꿔가지고 나와야만 했답니다.
참내!
그 환전소에서 가방을 얼마나 뒤졌는지 모른답니다. 그렇다고 없는 돈이 나올 리가 없는데도.
그러니, 무슨 기분이 나겠습니까?
배가 고프니 우선 밥은 먹어야겠고, 혹시 그 몇 푼 안 되는 돈을 바꾼 나를 노리고 누군가 뒤쫓아 오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도망치듯 그 주변의 시장통에 들어가,
배가 부를 것 같은 음식을 시켰지요.
따끈한 슾이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배는 고팠지만 음식은 좀 남길 수밖에 없었고,
별로 좋지만은 않은 기분으로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는데,
지하철을 내린 뒤,
저는 거기 의자에서도 잠시 앉아 있었답니다.
어쩐지 오늘은 기운도 없고 몸도 무거워, 좀 쉬었다 갈 요량으로요. 그러면서는 또,
이 몸으로 그 섬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 하는 우려도 되더라구요.
아직도 세 시간 정도를 그 검사결과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어제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도심을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오늘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왜 이리 처지는지......
숙소에 돌아와서도,
거기 2층 침대에 올라 앉아, 마음 둘 곳이 없어... 이렇게 까페에 몇 자를 남기고 있답니다.
(검사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