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이 번쩍이는 굴곡진 엠블럼은 이제 구식이다
BMW가 2020년 공개한 신형 엠블럼
자동차 엠블럼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3D로 영화를 감상하고 가상현실로 게임을 즐기는 입체 시대에, 도리어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바뀌는 중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세상의 시선이 바뀌어서다. 본디 자동차란 폭발의 힘으로 쇳덩이를 움직이는 기계적인 존재였다. 크롬이 번쩍이는 브랜드 엠블럼은 그 기계에 견고한 분위기를 심는 핵심 포인트. 지금은 다르다. 이제 세상은 자동차를 온갖 첨단 자율주행 기술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품은, 심지어 전기모터로 달리는 스마트 모빌리티로 본다. 쇳덩이 같던 엠블럼이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등 다양한 디지털 화면에서도 복잡한 모양은 눈길을 끌지 못한다. 결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오랜 가문의 상징을 간결하게 손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결과물을 살펴보자.
제네시스 이전 엠블럼 / 제네시스 최신 엠블럼
“납작하지만 더 정교하다” 제네시스
기차가 엠블럼을 밟고 지나가면 이런 모습일까? 지난해 선보인 제네시스 새 엠블럼은 두께를 80%나 줄이면서 납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굴곡이 사라진 만큼 검은색 음각으로 그래픽을 강조한 모양새. 그래도 고급차 브랜드로서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제네시스 방패 문양에 명품 시계에서나 볼법한 기요셰 패턴을 넣고 길쭉한 날개엔 금속을 깎아낸 듯한 ‘헤어라인 패턴’까지 입혔다. 섬세한 패턴 덕분에 두께가 줄었는데도 더 고급스럽다.
폭스바겐 이전 엠블럼 / 폭스바겐 최신 엠블럼
“본질에 집중” 폭스바겐
폭스바겐 이름이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사실을 아는가? 단순 명료한 그 이름처럼 폭스바겐은 새 엠블럼을 만들며 기본에 집중했다. 굵직한 두께를 줄여 평면화하고 폭스바겐(Volkswagen)을 상징하는 V와 W 글자를 얇게 다듬어 집어넣었다. 특히 W 아래쪽이 테두리와 떨어지면서 시각적으로 한결 여유롭다. 선명하고 간결한 스타일로 자동차 본질에 집중하는 브랜드 가치를 녹여냈다고. 디지털 환경에 잘 녹아들 뿐 아니라 실제 자동차 그릴 위에서도 훨씬 깔끔하다.
푸조 이전 엠블럼 / 푸조 최신 엠블럼
“이 시대의 사자” 푸조
“영광스러운 과거와 지금을 미래로 잇는다.” 새 푸조 엠블럼의 목표다. 그래서 1960년대에 쓰던 엠블럼을 가져와 디지털 시대에 맞게 다시 손봤다. 입체적인 사자 얼굴을 굵은 선 몇 가닥을 활용해 평면으로, 글씨체는 얇게 다듬었다. 덕분에 작은 화면 속에서도, 종이 위에서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P로 시작하는 네모 각진 글씨체와 방패 문양…. 어떤 브랜드가 잠깐 머릿속을 스친다. 포르쉐 901 이름에 시비 걸었던 브랜드가 어디였더라(그래서 911이 탄생했다)?
기아 이전 엠블럼 / 기아 최신 엠블럼
“통째로 교체” 기아
전 세계에서 혹평받던 기아자동차 엠블럼이 마침내 바뀌었다. 시기가 딱 좋다. 전동화와 공유 경제가 떠오르는 지금, 자동차 제조업을 넘어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선도하겠다며 엠블럼을 통째로 교체했다. 심지어 사명도 ‘기아자동차’에서 ‘기아’로 바꿨다. 새 엠블럼은 손으로 쓴 서명 모양으로 빚었고, 하나의 선으로 이어 고객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무엇보다 예쁘다. 이전 엠블럼이 꼴도 보기 싫을 만큼.
BMW 기존 엠블럼 / BMW 신형 엠블럼
“맑고 투명하다” BMW
100년 넘는 역사 동안 BMW는 엠블럼을 거의 그대로 사용해왔다. 서체나 색깔 등을 조금씩 다섯 차례 다듬었을 뿐. 지난 2020년 선보인 여섯 번째 엠블럼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역사상 처음으로 검은색 테두리 바탕을 빼버렸다. 투명한 배경은 BMW의 개방성과 명료성을 상징한다. 다른 브랜드처럼 둥근 굴곡을 편평하게 눌렀고, M과 W의 가운데를 짧은 서체로 바꿔 부드러운 인상을 풍긴다. 지금은 온라인부터 우선 활용한다.
미니 이전 엠블럼 / 미니 최신 엠블럼
“또렷한 정체성” 미니
누구보다 빨랐다. 미니는 이미 2015년 브랜드 엠블럼을 평면화해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실제 차에 붙이기 시작한 때는 2018년. 양쪽 네 개의 줄이 각각 떨어져 한눈에 모양이 들어올 뿐 아니라, 둥근 미니 스타일과 어우러져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긴다. MINI 글씨를 감싸던 얇은 원 테두리도 사라졌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주요 특징만 남겨서 핵심 가치에 집중하는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했다.
글 윤지수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