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다초점 안경
석야 신웅순
“신문 활자가 희미하게 보여요.”
“노안입니다.”
이 말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늙을 노(老)’자는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 때가 40살 조금 넘었을까였다. 그 동안 한 번도 안경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세월이 내게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늙음을 처음 인식한 것은 그때였다. 노안은 그 때의 내겐 천근이나 되는 바위였다. 사실은 40이라는 숫자 때문이었다.“생의 반이 남았구나.”이런 생각에 당시의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유를 댈 수 없는 나의 본능적인 체질 때문이었다.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가 않았다. 희미한 숫자도 구별이 어려워 볼 때마다 찡그리기 일쑤였다. 어두우면 더더욱 힘들었다. 그래서일까 내 미간에는 지금도 희미하게 내천 자가 그려져 있다.
고속버스표 좌석 번호가 잘 보이지 않아 사람들에게 봐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싸구려 접는 돋보기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 위해서였다. 썼다 벗었다하니 그도 불편했다. 결국 다초점 안경으로 바꾸었다. 김에 글 쓰는 돋보기, 책 읽는 돋보기, 잘 쓰지도 않는 선글라스까지 마련했다. 내 안경은 금세 4종으로 늘어났다.
안경을 봐달라고 했다. 안경점 직원이 피식 웃는다. 나를 보더니 기가 막힌 모양이다. 여태껏 안경알을 바꾸지 않았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마모된 안경을 십여년을 쓰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다초점 안경부터 맞추었다. 알은 비싼 것은 아니나 테는 괜찮다 싶은 가벼운 티타늄으로 바꾸었다. 돈을 들였더니 세상이 환해졌다. 내가 쓰던 울템 안경테는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있었다. 환한 세상을 두고 수년을 희미한 세상에서 살았으니 나도 참 어지간했다. 패션 감각에 둔하기는 하나 테를 바꾸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테라도 멋스럽게 걸치고 다녀야할 게 아닌가.
몇 달 전에 보랏빛 분홍 쉐터를 샀다.
“선생님, 붉은 테 안경하고 쉐터가 잘 어울려요.”
옛날 울템 안경인데도 누가 멋있다고 한다. 옷 하나 바꾸어 입었는데도 구닥다리 안경도 새롭게 보이다니, 툭 던진 칭찬에 종일 기분이 좋았다.
티타늄 새 안경테로 갈았으니 이젠 구닥다리 옷도 멋있어질까.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이다. 종일을 기분 좋게 했으니 칭찬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맘먹기에 따라 행복도 만들 수 있다. 돈 주고도 못사는 행복이다. 칭찬은 세상이 환히 보이는 오늘 내 안경 같은 것이 아닐까.
엊저녁 비상계엄으로 나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경으로 달랜 하루였다.
- 2024.12.3.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삼십 여 년 전에 직장 생활하던 때, 매년 신체검사를 했는데... 시력에서 걸렸지요. 0.5라나?
별수 없이 안경을 맞춰 겨우 통과했는데 그 후에 산악회에 들면서 땀이 차서 벗어버렸지요.
이제는 시력검사도 필요 없지만 생활하기 어렵지 않아 안경 없이 지냅니다. 어차피 노안이라...
인쇄된 글자는 보기가 힘들어도 다행히 컴퓨터 글자는 그럭저럭 불편없이 보고 있네요.
그렇군요. 안경 끼지 않아도 좋으나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아 불편해서 다초점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나중엔 쓰기를 잘했다 싶었습니다.
적응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시력은 크게 나빠지지는 않았습니다.
늘 이만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