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지보사
날씨가 흐리다. 일기예보도 비가 오락가락 한다고 하였다. 금년 봄은 비가 유난히도 잦다. 하루는 해가 쨍쨍하다가 다음 날은 하늘이 어둡고, 실실이 비를 뿌리는 것이 거의 공식처럼 되었다. 날씨 때문에 절집 찾아가기를 갈끼 말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집을 나서자고 한다. 나도 이 정도 날씨면 봄날이라 추운 날씨도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던 참이라서 그러자고 선 듯 결정했다.
군위군이 대구시로 편입되면서 노인네의 무료 교통 카드를 군위로 가는 버스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 편을 찾아보니 지하철 3호 선으로 팔거 역에 내리면 급행 9번과 급행 9-1번(우보면이 종착지)이 군위로 가는 버스였다. 급행 9번은 한 시간 간격으로 다녔다. 팔거역에 내리니 비는 이슬비가 되어서 옷깃을 적실 정도로만 왔다. 지금은 5월이니 비가 오든 아니든 날씨는 푸근하다. 승용차를 버리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나니,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익숙해졌다. 수 십 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버스가 왔다. 좌석이 텅 비었다. 10여 명이 승차했다. 차는 시내버스이다 보니 금방 서고, 또 서고 한다. 동명에서 송림사 쪽으로 방향을 틀고, 한티재 아래로 터널을 뚫었다. 터널을 지나니 제 2석굴암이고, 한밤 마을이다. 교통이 아주 불편한 곳이다. 그러나 승용차로 , 답사 버스를 타고 여러 번이나 다녀갔던 곳이라서, 익숙한 곳이다. 그래서 이 길로 달리니 주변 경관들이 반갑다. 더욱이 대율리의 돌담 길, 그리고 돌로 만든 솟대가 더욱 반갑다. 버스는 대율리를 지나서 효령으로 나갔다. 가산으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을 보면 군위의 옛날 사람들은 가산 쪽으로 가기보다는 높은 고개이지만 한티재를 넘는 것이 지름길이었나 보다.
효령서 군위까지는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예전에 안동 성소병원에 근무할 때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안동을 가려면 이 길로 지나가야 했다. 급행 9번 버스가 군위에 닿을 때까지 도중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요즘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풍광은 비슷하다. 비닐 하우스가 뒤덮고, 멀리서 보면 들판이 온통 흰 물빛으로 보인다. 그런데 효령서 군위 가는 길은 옛날의 시골 모습이다. 요즘의 농촌 풍경에 익은 눈으로는 후지게 보인다. 군위가 군청 소재지의 읍이라고는 하지만, 초라한 모습이다. 여기가 군청 소재지가 맞나 싶다. 버스에서 내리니 빗발이 제법 굵다. 대합실에 앉아서 준비해간 빵을 먹었다.
나는 내가 절집 지식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을 절집을 찾아다니면서 자주 느꼈다. 어쨌거나 대합실에서 아내와 절을 찾아가는 방법을 정했다. 까짓거 4km쯤이라니 갈 때는 택시로 가고, 올 때는 내리막길이니 걷자. 택시로 지보사를 찾아갔다. 차창에는 빗물이 흘러내린다. 그 너머로 보이는 시골 풍경은, 아름답기보다는 조금 삭막해보인다. 절 집에 닿아 차에서 내리니, 절의 규모가 생각보다는 크다.
절 앞에 몇 대의 승용차가 서 있지만, 비가 오는 탓인지 절은 조용하다. 스님의 불경소리만 스피커를 타고 우렁차게 산골을 적신다. 아내는 여뉘 절에서처럼 법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당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으나 비오는 날의 산골 날씨는 차웠다. 나도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 앞에 앉아 묵상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싶었다. 법당의 옆 문에는 여러 컬레의 신발이 놓여있다. 예순도 넘어보이는 남자 분이 울먹거리면서 문을 열고 나왔다. 신을 신고 돌아서더니 한참이나 흐느꼈다. 나는 그 분을 흘깃 쳐다보면서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안은 노 할머니의 49재를 지내고 있었다. 집 사람은 손을 모아 엄숙한 자세를 하고, 재를 올리는 사람들 뒤에 서 있다. 아하, 오늘은 소천하신 분의 49재를 올리는 날이구나. 나도 아내 곁에 손을 모우고 섰다. 그러고 보니 법당 밖으로 나와서 흐느끼던 분은 어머니를 멀리 떠나보내면서 슬퍼하신 것이구나. 나는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웬지 가슴이 찡해진다. 그래서 나도 용선을 타고 하늘나라로 떠나시는 분을 위해 두 손을 모우고 머리를 조아리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함깨 불러주었다.
재가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하자고 했으나, 우리 부부는 법당에서 부처님을 좀 더 오래 뵈옵고 가겠다며, 사양했다. 본심이야 어떠하였든 간에 결과는 남의 제사에 끼어든 꼴이 되었다. 절에서 일하시는 분이 우화루에 따뜻한 차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부처님께 합장 배례를 끝내고 우화루에 갔다. 비가 와서 날씨가 쌀쌀했는데, 우화루 안은 따뜻했다. 준비해간 점심도 먹고, 따뜻하게 끓인 커피도 마셨다. 창 너머로 보이는 대웅전도 바라보았고, 안개가 뒤덮고 있는 산마루가 신비감을 준다, 빗물에 젖어 있는 초록빛 나무들도 바라보았다. 마음이 한결 맑아진다.
준비해간 우산을 펴고 하산하기로 했다. 포장이 잘 된 자동차 길을 따리 내리막길을 걸었다. 우산에서 또닥거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빗물로 촉촉한 포장길을 따라서 내려왔다. 차들이 간간이 다닌다. 길의 아래로는 밭이다. 무슨 과일나무인지는 모르지만, 과일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길이 제법 멀다고 느꼈으나 다리가 아파서 짜증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군위가는 큰 길에서 갈라지는 곳의 안내판에 3km라고 되어 있더라 했다. 바로 그 갈림길에 닿았다. 그곳에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이 있다. 지난번 영남문화회 답사 때 다녀갔으나 불과 몇 달 전인데, 낯설다. 집사람이 그곳에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가 내려왔다 안내하시는 분이 바로 너머에 추기경님의 생가이니 둘러보시지요, 하더란다.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요, 했다나. 그러고 보니 지난 번 답사 때 들렸었는데, 그 장소가 이렇게 낯설게 보이다니. 거참.
군위 읍까지 걷기로 했다. 잘못된 지식인지는 모르지만 군위읍에서 지보사까지 거리가 4km라는 말이 떠올라서, 그러면 1km만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굽이를 돌아가는 길어 1km보다는 훨씬 멀어보인다. 내 뒤에서 꽈당하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아내가 길바닥에 다리를 뻗은 개구리처럼 엎드려 있다. 놀라서 일으켜세우려 하니, 한참 동안 꼼작을 낳는다. 나뭇가지에 걸려서 넘어졌다나. 노인이 넘어지면 아주 위험하다지 않는가. 억지로 일으켜 세웠더니 손등이 약간 멍이 들고 부었다. 걷기는 괜찮다면서 다시 읍내 쪽으로 걸었다. 후유, 마음이 놓이면서 긴 숨을 쉬었다. 노인은 조심조심 해야한다던데.
군청 앞에서 급행 9번이 오후 5시에 출발한다고 하여,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용하게도 5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대구까지 오는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어쨌거나 오늘도, 아내가 넘어지긴 했어도 큰 탈이 없으니 절집을 잘 다녀왔다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