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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교회는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1926년부터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의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지내며, 신자들에게 교회 본연의 사명인 선교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오늘의 특별 헌금은 교황청 전교회로 보내져 전 세계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는 데 쓰인다.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사명을 깨닫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4년 제98차 전교 주일 담화 (2024년 10월 20일)
‘가서 모든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여라’(마태 22,9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올해 전교 주일을 위하여 선택한 주제는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 22,1-14 참조)에 관한 복음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주인공인 임금은 자신의 초대를 손님들이 거절하자 종들에게 이렇게 이릅니다.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마태 22,9). 우리는 비유의 맥락과 예수님의 삶의 맥락 안에서 이 핵심 구절을 성찰하면서 복음화의 여러 중요한 측면들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시노드 주제에 따라 자신의 주된 임무인 오늘날 이 세상에서의 복음 선포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시노드 여정의 이 마지막 단계에서, 이러한 측면들은 그리스도의 선교 제자들인 우리 모두에게 매우 시의적절하여 보입니다.
1. ‘가서 초대하여라!’ 주님의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러 끈기 있게 나아가는 선교 사명
임금이 종들에게 내린 명령에서, 우리는 선교 사명의 핵심을 표현하는 두 단어를 발견합니다. 바로 ‘가다’ 그리고 ‘초대하다’입니다.
첫 번째 단어에 관하여 우리는 종들이 앞서 파견되어 손님들에게 임금의 초대를 전하러 갔다는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마태 22,3-4 참조). 이를 통하여 선교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과 친교를 시작할 수 있게 초대하려고 그들에게 끈기 있게 나아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끈기 있게 말입니다! 크신 사랑과 넘치는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나시려고 또 그들을 하느님 나라의 행복으로 부르시려고 그들의 무관심이나 거부에도 끊임없이 나서십니다. 착한 목자이시며 성부께 파견받은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서셨고, 가장 멀리 있는 양에게까지 닿기 위하여 더 멀리 가고자 하셨습니다(요한 10,16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전에도 후에도 당신 제자들에게 ‘가거라!’ 하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당신의 선교 사명에 참여시키셨습니다(루카 10,3; 마르 16,15 참조). 교회도 주님께 받은 자신의 선교 사명에 충실하여 어려움과 장애물 앞에서도 결코 지치거나 낙담하지 않고 다시 한번 걸음을 내디디며 땅끝까지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기회를 빌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먼 데로 가서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못하였거나 최근에서야 전해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모든 선교사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여러분의 너그러운 헌신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라고 하시며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만민 선교에 대한 여러분의 약속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끝까지 복음화하는 임무를 위한 새롭고 수많은 선교 성소들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계속 기도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상황에서 복음에 대한 증언을 통하여 이러한 보편적 선교 사명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리하여 온 교회가 교회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분과 함께 오늘날 이 세상의 ‘교차로’로 계속해서 떠날 수 있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 계속 문을, 그것도 문 안쪽에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밖으로 나오시게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나오시지 못하게 하고, 계속 ‘자기 것’으로 소유하며 ‘가두어 놓는’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선교를 위하여 오셨고 우리가 선교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주관 회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23.2.18.). 세례 받은 우리가 모두 각자의 생활 신분에 따라 그리스도교가 동틀 때에 그러하였듯이 새로운 선교 운동을 시작하기 위하여 새롭게 나설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비유 말씀으로 돌아가 보면, 임금은 종들에게 ‘가라’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초대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혼인 잔치에 오시오.”(마태 22,4)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선교 사명에서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또 다른 측면을 알 수 있습니다. 종들이 임금의 초대를 시급하게 그러나 또한 깊은 존중과 큰 친절을 담아 전하였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반드시, 선포되시는 그분의 ‘방식’을 그대로 본받아야만 합니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복음의 기쁨」, 36항)을 세상에 선포할 때, 그리스도의 선교 제자들은 그들 안에 맺어진 성령의 열매인 기쁨과 인내와 호의(갈라 5,22 참조)로 이 일을 하여야 합니다. 압박이나 강요나 개종의 방식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친밀감과 연민과 온유로 그리고 이로써 하느님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을 반영하면서 하여야 합니다.
2. ‘혼인 잔치에’ -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명이 지니는 종말론적 차원과 성찬의 차원
이 비유에서 임금은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한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종들에게 일렀습니다. 이 잔치는 종말론적 잔치를 반영합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궁극적인 구원의 표상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생명을 넘치게 주신(요한 10,10 참조)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지금 이미 성취되었으나, 하느님 나라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실 그날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베푸시는 잔칫상(이사 25,6-8 참조)으로 상징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그분께서 설교를 시작하시며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 것처럼 때가 차는 것과 연관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분의 이 사명을 지속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의 선교 사명의 종말론적 특성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생각하여 봅니다. “선교 활동의 때는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재림 사이이며 ……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마르 13,10 참조)”(선교 교령, 9항).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열정이 강한 종말론적 차원을 띠고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 선포가 시급하다고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아는 사람들의 기쁨을 지니고 또한 장차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열리는 그분의 혼인 잔치에 그리스도와 함께하리라는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을 가지고 복음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 앞에 소비 주의, 이기적 안위, 부의 축적, 개인주의의 다양한 ‘잔치들’을 벌여 놓지만, 복음은 하느님과 그리고 다른 이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기쁨, 나눔, 정의, 형제애가 넘치는 하느님 잔치로 모든 사람을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인 이 생명의 충만함은, 교회가 주님의 명령으로 그분을 기억하여 거행하는 성찬의 잔치에서 지금도 미리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음화 사명으로 모든 이에게 전하는 종말론적 잔치로의 초대는, 주님께서 당신 말씀과 성체 성혈을 양식으로 주시어 우리를 살찌우시는 성찬 식탁으로의 초대와 본질적으로 연결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가르침대로, “모든 성찬례 거행은 하느님 백성의 종말론적 모임을 성사적으로 실현합니다. 우리에게 성찬 잔치는 예언자들이 이야기하고(이사 25,6-9 참조) 신약에서 ‘어린양의 혼인날’(묵시 19,7-9)이라고 묘사한, 성인들과 이루는 통공의 기쁨 안에 거행될 마지막 잔치를 실제로 선취하는 것입니다”(「사랑의 성사」, 31항).
그러므로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성찬례를 모든 차원에서, 특히 종말론적이고 선교적인 차원에서 더욱 강렬하게 체험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성찬 식탁에 나아가면 선교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교는 하느님 마음 그 자체에서 시작되어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사랑의 성사」, 84항).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이후에 훌륭하게도 많은 지역 교회가 촉진하고 있는 성찬례 쇄신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선교 정신을 되살리는 데에도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더 큰 믿음과 진심 어린 열정을 가지고 외쳐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2025년 희년을 준비하며 기도에 전념하는 올해에, 저는 모든 이에게 더 깊은 사명감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미사 거행에 참여하고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격려하고자 합니다. 교회는 구세주의 명령에 따라 모든 성찬례와 전례 거행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라는 청원과 함께 ‘주님의 기도’를 끊임없이 바칩니다. 이처럼 날마다 드리는 기도와 특히 성찬례에 힘입어,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삶을 향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자녀를 위하여 마련하신 그 혼인 잔치를 향하여 걸어가는 희망의 순례자이자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사람을’ - 시노드 정신을 온전히 살아가며 선교하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지닌 보편 사명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성찰은 임금의 초대를 받는 이들, 곧 ‘모든 사람’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 이것이 선교의 핵심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모든 선교 사명은 모든 이를 당신께 이끄시려는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교황청 전교기구 총회에서 한 연설, 2023.6.3.). 오늘날 분열과 갈등으로 갈라진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끊임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는 다정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입니다. 서로 만나고, 서로 형제자매임을 깨달으며, 다양성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기뻐하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그러니 우리는 선교 활동을 통하여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맙시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 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복음의 기쁨」, 14항).
그리스도의 선교 제자들은 사회 계층이나 윤리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잔치의 비유는, 종들이 임금의 명령에 따라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마태 22,10) 모아들였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루카 14,21), 곧 우리 형제자매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 사회에서 소외당한 이들이 임금의 특별한 손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당신 아드님의 혼인 잔치는 언제나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헤아릴 수도 없고 아무 조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요한 3,16). 누구나, 곧 모든 남자와 여자가 변화와 구원을 가져오는 하느님 은총에 참여하라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초대를 받습니다. 이 무상의 하느님 선물에 그저 “예.” 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이 은총을 받아들이고 이 은총으로 변화되며 “혼인 예복”(마태 22,12)처럼 이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모든 이를 위한 선교 사명은 모든 이의 헌신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봉사하는 가운데 시노드 정신을 온전히 살아가며 선교하는 교회를 향한 여정을 계속 걸어 나가야 합니다. 시노달리타스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며, 그 반대로 선교 또한 언제나 시노드적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날, 보편 교회에도 개별 교회에도 모두 긴밀한 선교 협력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필요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걸어간 길을 따라 그리고 선임 교황들의 발자취를 따라, 저는 전 세계 모든 교구에 교황청 전교기구의 활동을 장려합니다. 이 기구는 “가톨릭 신자들이 어려서부터 참으로 보편적인 선교 정신에 젖어 들게 하는 방도이며 또한 모든 선교 지역의 선익을 위하여 그 온갖 필요에 따라 효과적인 지원 헌금을 촉진하는”(선교 교령, 38항) 으뜸 도구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지역 교회에서 모은 전교 주일 헌금은 전적으로 교황청 전교회의 보편 연대 기금에 보내져, 교황의 이름으로 교회의 모든 선교 지역의 필요를 위하여 나누어집니다. 우리가 시노드 정신을 더욱 깊이 살아가는 더욱 선교적인 교회가 되도록 주님의 이끄심과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다 함께 바칩시다(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 폐막 미사 강론, 2023.10.29. 참조).
끝으로, 눈을 들어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시다. 마리아께서는,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시도록 예수님께 청하셨습니다(요한 2,1-12 참조). 주님께서는 신랑 신부와 모든 손님에게 신선한 포도주를 넘쳐흐르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마지막 날 모든 이에게 베풀어 주실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 제자들의 복음화 사명을 위하여 성모 마리아께 어머니의 전구를 청합시다. 그리고 가서 전합시다. 우리 어머니의 기쁨과 애정 어린 염려로 그리고 온유와 사랑에서 비롯된 힘으로(「복음의 기쁨」, 288항 참조) 모든 이에게 가서 우리 구세주 임금님의 초대를 전합시다. 복음화의 별이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프란치스코
[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42316?page=3&gb=K1200 ]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축일10월 20일 성녀 베르틸라 보스카르딘 (Bertilla Boscardin)
신분 : 수녀
활동 연도 : 1888-1922년
같은 이름 : 베르띨라, 보스까르딘
안나 프란치스카 보스카르딘(Anna Francisca Boscardin)은 이탈리아 비첸차(Vicenza) 근교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고, 1904년에 고향의 산타 도로테아회에 입회하여 베르틸라라는 수도명을 받고 3년 동안 주방 일을 한 후 트레비소(Treviso)의 어린이 병동에서 간호사로서 일하였다. 1917년의 대공습 때 성녀 베르틸라 수녀는 자신의 환자들을 아주 태연한 자세로 돌봄으로써 코모(Como) 근교의 야전 병원 당국으로부터 놀라운 찬사와 더불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원장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탁 일을 하도록 명하자, 고위 장상에게 하소하여 어린 환자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간청하였다. 마침내 1919년에 그녀는 트레비소의 어린이 격리 병동의 소임을 맡았으나,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모든 활동을 포기해야 하였다. 큰 수술이 필요하여 실시했지만 생명을 건질 수 없었다.
성녀 베르틸라의 생애는 힘든 일로 점철된 극히 단순했지만, 그녀는 어린 환자들에게 위대한 사랑을 베풀어 깊은 인상을 심었고, 그녀의 중재로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로부터 성인품에 오르던 날, 그녀의 간호를 받았던 당사자와 그 부모들이 구름처럼 시성식장에 몰려왔다고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베르틸라 보스카르딘 (Bertilla Boscardin)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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