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비유는 까닭이 있는 말이다. 그리고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당연히 소를 때려야 하리라.
수레가 가지 않을 때는
당연히 소를 때려야…
강설 :
아래의 이야기를 이끌어 온 것이다.
6조 혜능스님의 제자 남악회양스님이 그의 제자 마조도일(馬祖) 화상이 앉아서 좌선만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의 잘못을 깨우쳐주고자 하루는 기왓장을 가지고 가서 좌선을 하고 있는 암자 앞에서 소리를 내어 북북 갈고 있었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남악스님이 대답하였다.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네.”
“기왓장을 간들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컨대 소가 수레를 끌 때 수레가 만약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소를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리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처가 되려고 하면서 그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 이 육신을 다스려서 부처가 되기 위하여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거나 굳이 관절염에 걸리면서까지 결가부좌를 고집하는 참선납자가 적지 않다. 그것은 마치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는 것과 같으며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소를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참선자는 깊이 살피고 또 살펴야 할 일이다.
■ 아호대의 화상 ⑧ - 좌선의 지침(坐禪銘) 8
又不見
前湛水萬丈淸 沈沈寂寂杳無聲
一朝魚龍來攪動 波浪湧眞堪重
또 보지 못하였는가.
바위 앞의 맑은 물이 만 길이나 맑아서
침침하고 적적하여 아득히 아무런 소리가 없더니,
하루아침에 용이 휘젓고 요동치면
파도가 뒤집히고 물결이 솟구쳐 참으로 굉장하도다.
강설 : 이 게송의 앞의 두 구절은 오매일여(寤寐一如)와 같은 깊은 선정을 의미하고, 뒤의 두 구절은 그와 같은 선정을 통하여 활발발한 전체작용이 있음을 뜻한다. 선문에서는 대사각활(大死却活)을 높이 산다. 즉 크게 한 번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나서 활발발하게 작용하는 삶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완전부정을 거쳐서 완전긍정, 진공(眞空) 다음에 묘유(妙有)가 있음을 뜻하는 내용이다. 세존께서도 6년이란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이 있었다. 아마 세상사도 그러리라.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이 있고 영광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피나는 정진이 없으면 그 대신 사선을 넘나드는 병고도 때로는 사람에 따라서 그것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라는 말이 있다. 뼛속에 사무치는 매서운 추위가 아니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이다. 아무튼 개인의 인생사나 세상의 사업이나 수행에 있어서나 모두가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철저히 부정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어떤 한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은 동일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