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토요일(루카15,1-3.11-32) 받은 사랑을 기억하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느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 해도 우리는 하느님 마음에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죄의 유혹에 떨어졌을 때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벗어나 숨게 됩니다. 내가 그분을 멀리할 뿐입니다. 나를 애타게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램블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을 좋아합니다. 그 그림은 바로 오늘 복음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품에 안기는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버지의 눈은 사시가 된 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나 간 아들이 그리워 마음과 눈이 늘 아들에게로 향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한결같고 또 그칠 수가 없는 법입니다. 무릎을 꿇은 작은 아들은 다 닳아버린 신발 때문에 발바닥을 드러낸 채 아버지의 가슴에 모두를 맡겨버렸고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봅니다. 한 구석에서는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여인이 이 장면을 애달프게 지켜보고 있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아니면 방탕한 삶을 멀리하는 표현일까? 생각해 봅니다.
아들이 용서를 청하든 그렇지 않든 돌아온 것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의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며 내가 알기도 전부터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가 계심을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 사랑은 매끈한 오른손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투박한 왼손이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은 지팡이를 쥔 채 멀뚱멀뚱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회개한 작은 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이 옛 생활을 버리고 아버지께 돌아왔는데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집의 풍요로움을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버지집의 처지가 밖에 보다 못하였다면 그는 아버지 집을 찾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넉넉함을 기억한다는 것은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허물과 잘못, 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큰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아버지는 바로 우리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작은아들이 배고픔에 지쳐 돼지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허기를 채우려고 하였을 때는 집 밖으로 나온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회개한 것은 아마도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하고 연습한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라고 하시며 먼저 받아주셨을 때일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랑을 느꼈을 때 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기는 같았습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루카15,12). 하여 자기 것을 챙겨서 집을 나갔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좋을 대로 한 것입니다. 반면 큰아들은 아버지의 품 안에 있으면서도 그 사랑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루카15,29). 하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몸은 같이 있었으나 마음은 아버지를 떠나있었습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큰아들의 마음에는 이만큼 했으니, 이만큼은 받아야 한다는 보상 심리가 잠재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아들을 종으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종처럼 살았으니 오랫동안 아비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사람을 살았습니다. 바로 그 두 아들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큰아들이든 작은 아들이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 아버지 품을 그리워 하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 품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해 주신 이유를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의인이라고 자처하며 목을 뻣뻣이 하는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교만함이 자리하고 있다면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
자비와 사랑미 넘치는 아버지의 품안에서 행복이 넘치길 바랍니다. 아멘
아멘!~~~
묵상 하고갑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랑을 느꼈을 때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