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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입적(1932.10.8 - 2010.3.11)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한국인의 애독서 '무소유' 저자인 법정 스님이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11일 오후 1시 51분 입적했다. 세수 79세. 법랍 56세. 스님은 지난해 2월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우리 사회 어른이었다. 스님은 최근 3~4년간 폐암으로 투병했으며 올해 들어 병세가 악화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입적 직전인 11일 오전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겨졌다. 스님 법구는 12일 낮 12시 길상사를 출발해 송광사로 향한다. 다비준비위원회 대변인인 진화 스님은 1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견지동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스님이 이렇게 빨리 입적하실지 몰랐다"며 "평소 법회와 저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장례의식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은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저서에서 약속한 대로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해 줄 것을 상좌에게 부탁했다. 또 스님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며,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유'와 '일기일회' 등 스님이 내놓은 산문집과 번역서 20여권은 무한경쟁에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에 따라 송광사는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13일 오전 11시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다비할 계획이다. - 매일경제 이향휘 기자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삶과 죽음사이에서 고뇌하던 스님은 1955년 서울 선학원의 효봉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이후 통영, 지리산, 합천 등에서 수행을 했으며 1960년까지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에 매진했다. 이후 스님은 4.19와 5.16을 겪었다. 동국역경원(불경번역 기관)에서 일하기 위해 서울 봉은사에 머물게 된 스님은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연협회의를 결성해 유신철폐와 개헌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민주화의 길에 나섰다.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무고한 사람들에 사형이 집행되자 그 자책감에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칩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명성은 그를 그냥 두지 않았고 이에 스님은 1992년 아무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옮겨갔다. 강원도 생활 17년째인 2008년 묵은 곳을 털고 남쪽 지방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저서로 '무소유' 등이 있으며 지난 2009년에는 그간 했던 법문을 모아 엮은 법문집 '일기일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을 출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었다. 1996년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쳤고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 법정스님은 사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 뉴스엔 박정현 기자
법정 스님의 주요 어록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무소유' 중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중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중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중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례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1997년 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 '아름다운 마무리' 중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 '아름다운 마무리' 중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도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 '일기일회' 중
법정(法頂, 박재철 1932년 - 2010.3.11 ) 승려, 수필가. 학력 : 해인사대교과 경력 : 1997년 대한불교조계종 길상사 스님 1994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회주 수상 : 2004년 제2회 대원상 대상 저서 : 무소유, 오두막편지, 서 있는 사람들,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스승을 찾아서,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텅빈 충만, 산에는 꽃이 피네, 인도기행 등 역서 :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숫 타니파나,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法句經), 신역 화엄경 등.
산이 산을 떠나다
"강원도 눈 쌓인 산이 보고 싶다." 제주도 서귀포 법환리 바닷가에서 겨울을 나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얼마 전, 법정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줄곧 병원에 갇혀 계시다가 오늘 오전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길상사로 옮겨졌고, 오후 1시 52분에 제자 스님들과 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렇게 이 사바 세계와 육신을 떠나셨습니다. 허공에 떠나는 스님의 혼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이 육체가 거추장스럽다." 치료되었다고 믿었던 폐암이 작년 재발하면서부터 강원도에서, 그리고 제주도에서 치병을 하면서 스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기침이 심했고,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체중이 점점 줄어 나중에는 걷는 일조차 힘들어질 때 스님은 자주 그러셨습니다. 이 육신이 나를 가두고 있다고. 새장에 갇힌 새를 보는 것 같아 뒤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제 그 새가 날아갔습니다. "나는 죽을 때 농담을 하며 죽을 것이다. 만약 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거추장스런 것들을 내 몸에 매단다면 벌떡 일어나 발로 차 버릴 것이다." 20여년 전부터 스님께서 해오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방사능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고 돌아오셔서도 삶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누구든 스님을 쉽게 놓아 드릴 수가 없었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저런 치료로 고생하시다 입적하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법정 스님과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모습이고 종착점입니다. 어디에서 여행을 마치는가보다 그가 어떤 생의 여정을 거쳐왔는가가 더 중요함을 우리가 알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2009년 6월 스님께서 제자 두 명과 저를 포함해 가까운 사람 서너 명을 불러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결연한 의지였고, 특별히 스님께서 우리를 불러 공식적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따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결국 송광사에서 불교 예법에 따라 다비식을 치르기로 정해졌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그때 스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장례식과 다비식이 어디서 치러지든, 어느 장소에서 그의 육신이 불태워지든, 그것은 단지 무상함이 드러난 결과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스님도 그렇게 여기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작년에 하셨던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 여겨져 여기에 밝히는 것뿐입니다.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 그나마 몇 마디 말씀을 하실 수가 있으시던 며칠 전, 스님께서 침대맡으로 저를 손짓해 부르셔서 저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고. 저도 지금 스님께 그 말씀을 드립니다. 만나서 더없이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이 보잘것없는 한 중생을 만나 끝까지 반말 한 번 안 하시고 언제나 그 소나무 같고 산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셔서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이 삶이 고통이고 끝없는 질곡이라 해도 또다시 만나고 싶다고. 해마다 봄이면 "꽃 보러 갈까? 차잎 올라오는 것 보러 갈까? 바다에 봄 오는 것 보러 갈까?" 하고 연락하시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간다." 오늘 법정 스님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서귀포를 떠나기 전 죽음이 무엇인가 하고 묻자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아마 육신을 벗고 맨 먼저 강원도 눈 쌓인 산을 보러 가셨겠지요. 그리고 그토록 좋아하시던 법환리 앞바다도 슬쩍 보러 가셨겠지요. 오늘 큰 산 하나가 산을 떠났습니다. 이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 산이 한동안 텅 비겠지요. 그러나 곧 꽃과 나무들이 그 공의 자리를 채울 겁니다.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덜 슬프다는 것을 오늘 깨닫습니다. - 2010. 3.11. 시인 류시화
법정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법정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드립니다 시인의글 고맙습니다.
법정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잘 보고갑니다 어록은 담아 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