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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서만 순교자 194인…6.25 한국전쟁 당시 이념 갈등이 빚은 참극
영광 염산교회는 우리나라 최대 기독교 순교지이며 야월교회는 전 교인이 순교한 곳이다. 사진은 염산교회. 사진 / 유인용 기자
[여행스케치=영광] 영광에서는 6.25 한국전쟁 당시 194명의 기독교인이 목숨을 잃었다. 순교자 대부분은 염산 지역의 염산교회와 야월교회 교인들이었다. 두 교회에서는 학살 당시의 아픔과 함께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도 엿볼 수 있다.
야월교회는 1900년대 초반 전라남도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유진 벨 선교사가 1908년 세운 염산의 첫 교회다. 유진 벨 선교사의 첫 방문 당시 이미 염산의 몇몇 가정에서는 가족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39년 염산교회가 세워지면서 염산에는 기독교 신자가 점차 늘었는데 불과 10여 년 뒤인 1950년 두 교회는 교인 대부분이 순교하는 비극적인 장소가 됐다.
영광 염산교회 앞의 순교탑에는 당시 교인들이 순교 당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이념 갈등으로 벌어진 참극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염산은 낮에는 국군이 통솔하고 밤에는 북한군이 산에서 내려와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 특히 북한군은 공산주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학살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기독교 순교지인 염산교회는 6.25 한국전쟁 당시 77명의 교인이 순교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그해 9월, 서울을 수복한 국군과 UN군이 영광으로 들어오자 주민들은 크게 환영회를 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북한군이 환영회를 주도한 고등학생 기삼도를 죽창으로 찔러 죽인 것을 시작으로 염산교회 교인들을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야월교회의 기독교인순교기념관에서 학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인근의 야월교회에서도 같은 시기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야월교회는 성인부터 어린아이까지 65명의 전 교인이 모두 순교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성지다.
박해자 영광군청 문화관광해설사는 “야월교회 교인 한 명이 숲에서 부상당한 북한군을 발견해 자수를 설득했는데 자수한 북한군이 죽임을 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북한군이 교인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며 “북한군은 약 두 달에 걸쳐 전 교인을 처형했고 교인들의 집과 교회에 불을 질러 야월교회와 기독교의 흔적을 모두 없앴다”고 말한다.
교인들은 몽둥이질을 당하거나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당해 죽음을 맞았다. 또 몸에 무거운 돌을 매단 채 손발이 묶여 인근의 설도 앞바다에 산 채로 수장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염산교회 2층의 전시실. 사진 / 유인용 기자
용서하되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염산교회의 영상실에서는 당시 교인들의 순교 장면을 지켜본 목격자들의 증언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 어린아이였던 목격자들은 이제 7~80대가 됐지만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을 회상하듯 선명하게 기억을 전한다. 교회 2층에는 순교자 김방호 목사가 사용했던 성경 등 학살 당시 수습된 유품들이 전시돼 순교한 교인들의 흔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염산교회에서는 순교 당시의 상황을 체험해볼 수 있는 ‘순교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돌멩이를 끈으로 묶어 들고 학살이 자행된 설도 앞바다까지 걸어보는 체험이다. 돌멩이들은 실제로 설도항 인근에서 가져온 것들로 생생함을 더한다. 설도항에는 순교자들의 이름과 순교 당시의 모습이 새겨진 순교탑이 바다를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다.
염산교회에서는 돌을 묶어 들고 바다까지 걸어가보는 순교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야월교회에서 운영하는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을 찾으면 영광의 기독교인 학살 당시의 모습과 더불어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북한군이 교인들을 탄압하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았고 북한군이 입었던 군복, 당시 주민들이 사용했던 어구 등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다양한 전시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층 높이의 거대한 손이 서로 맞잡고 있는 조형물 ‘맞잡은 손’이다. 2층 벽에는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 말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기독교인 순교기념관의 '맞잡은 손'에서 두 손은 각각 순교자와 하나님을 상징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심재태 야월교회 담임목사는 “부서지고 상처 난 한쪽 손은 순교자들의 아픔을, 멀쩡한 나머지 손은 그 아픔을 치유하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상징한다”며 “더 나아가 당시 사건의 가해자들을 보듬고 용서하되,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 역사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니 인터뷰>
“순교는 신앙을 지킨 죽음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행위입니다.”
두 교회는 순교자의 수가 많기도 하지만 이들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2~3개월에 걸쳐 순교했다는 점 또한 특징이다.
임준석 염산교회 담임목사는 “교인들에게 도피의 시간이 충분했지만 깊은 신앙으로 그 유혹을 뿌리치고 순교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북한군은 부모를 죽이면 살려주겠다는 등 갖은 협박을 했지만 순교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다.
심재태 야월교회 담임목사는 “종교를 떠나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순교자들의 결의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사진 위부터)임준석 염산교회 담임목사와 심재태 야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