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에서 실재조사결과 후대,만들어진 일본검이란 사실이 밝혀진
이순신검이 며칠전 문화재청에 의해 국보등재 되었습니다.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로써
우리회는 이 가짜 이순신검 국보등재 취소소송을 통해 잘못되도 한참 잘모 된
이 일 바로 잡혀지지기를 기대 합니다
(현재 국사가 이런식/완전한 무개념/개,돼지 뇌상태/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님)
소송단 모집
이와 관련 바른 국사,참역사에 관심있는 국민여러분과 함께 이를 수행코저 합니다.
문화재청 현직회원의 전언에 따르면 등재전 청에서 등재후 예상되는 문제에 대하여
2차례회의를 했는데 그 내용이 기가막힙니다.
가짜검이라며 반대하는 비교적 인지도있는 국내 역사회는 대략 62곳인데,이중 반대하는
곳은 참역사란 역사카페 밖에 없다는 조사내용이 거론되었고,이에 이모 팀장이 말하기를
"그곳은 회장이란 사람은 현재 산에서 거지같이 살며 가끔 회원들이 음식물등을 대주는걸
로 아는데,저정도면 결국 돈 없어서 소송 못할것으로 보이고,만에 하나,소송들어오면 그
때가서 대응하면 되니 일단 국보등재합시다"고 제안하고 전원일치 결의되었다네요..헐~
그 팀장이란 사람이 청장으로 추정되는데요
우리 현재 처지에 대해 부인할생각은 없는게 그런게 사실이고 현실이니 보기는 잘 봤지만
어떻든,후대에 만들어진 가품일본도가 분명한데 이걸 이순신검으로 국보등재하는 것은
또하나의 동북공정으로써 중대한 역사왜곡이며 우리 스스로에 의한 역사조작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 역사왜곡의 최대 문제가 중국이나 일본탓이 아니라 바로 우리자신이란
점을 전국민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번 문화재청의 행동은 지금 韓국사학계가 조선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행태,작태로써
거의 막장,막무가내 상태임이 다시한번 입증되는 행위가 아닐수없다 하겠습니다.
저들이 말 한대로 돈이 없어도 너무 없는것이 사실이나 진실과 사실 만큼은 분명한 바,
운영진은 즉시 이에 대응키로 하고 이 사실을 회원여러분께 알리게 되었습니다.
참역사회는 이와 관련 소송단을 모집 합니다.
모 회원 변호사분께 합당한 수임료를 지불,선임하여 소송을 일임 진행 할 계획입니다.
상대는 문화재청(장)이며
제하는 가짜이순신검 국보등재 취소 소
예상 비용은 3심까지 약 1,500만원 이며
1차 목포 금액은 소착수금 500만원 입니다.
위소송단 모집 기간은 위 1차 금액이 마련될때까지 예정이며
우측 게시판에 추후 별도의 특별방을 만들어 운영 할 계획입니다.
뜻 있는 회원분은 최소금액 1만원을 우리 계좌에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계좌(성금방 참고/입금하실떼 반드시 소짜를 별도로 기입해주세요)
<참역사회 가짜 이순신검 국보등재 최소 소송>
담당자 운영자 슐 드림.
운영진 공저 내용입니다.
khan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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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내용
[문화재] 충무공 ‘이순신 장검’ 국보 지정
서울문화IN ・ 2023. 8. 30. 7:00
이순신 장검
[서울문화인] 충무공 이순신의 숭고한 행적이 서려 있는 보물 ‘이순신 장검(李舜臣 長劍)’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이 이번에 국보로 지정한 ‘이순신 장검’은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었던 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두 자루)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장검 1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이, 장검 2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나무를 깎아 만든 칼집에는 몸에 찰 수 있도록 가죽 끈을 매달았으며, 칼자루 속 슴베(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으로 칼자루와 칼날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부분)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1594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로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칼집_입사,가죽끈
칼집_끝마개장식,입사
이순신 장검_칼자루
‘이순신 장검’은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을 가지고 있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누런색이 조금 섞인 붉은색의 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기법으로 장식한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명문과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 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모두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이는 당시 도검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도검의 요소도 일부 적용되었는데, 슴베와 칼자루를 결합했을 때 구멍을 맞추고 못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목정혈(目釘穴), 칼자루를 단단하게 쥘 수 있도록 가죽끈을 엑스(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 칼날이 휘어진 곡률이나 혈조(血漕, 피홈)를 넣는 방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순신 장검’은 당초 외날이라는 형태적 특성상 ‘이순신 장도’라는 이름으로 지정 예고되었으나, 전통적으로 유형에 따른 ‘도’와 ‘검’의 구분은 있었으나 고대에 이미 명칭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는 점과 ‘검’이라는 단어는 권위와 의례와 관련되어 칼의 격을 높일 때 사용한다는 점, 특정 소장자를 강조하거나 용도가 확실한 경우 외날이어도 ‘검’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 등 오랜 기간 ‘장검’으로 인식되고 불렸다는 점을 인정하여 ‘이순신 장검’이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하였다.
‘이순신 장도’는 과거 가짜 논란이 있었다. ‘이순신 장도’는 당시 조선의 국왕인 선조가 하사한 도검이 아니며, 앞서 밝힌 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인 슴베에 새겨진 글귀로 갑오년(1594년)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든 도검임을 알 수 있고, <이충무공전서>(1795년)의 기록을 통해서는 이순신 종가에서 오랜 기간 보관해온 내역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장도’는 종가에 계속 전해오다가, 현재는 현충사관리소에서 보관하고 있다.
옥로
복숭아모양 잔과 받침
더불어 문화재청은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어 있던 옥로(玉鷺, 갓 위를 장식하는 옥 공예품), 복숭아 모양 잔과 받침, 요대(腰帶, 허리띠), 요대를 보관했던 ‘요대함(腰帶函)’은 보물로 추가 지정하였다.
요대함
요대
‘요대함’은 함 속에 요대를 넣고 뚜껑처럼 덮는 형식으로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일정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세우고 판재에 베 싸기를 한 후 겉은 흑칠, 안은 주칠을 하였는데 조선의 전통적인 공예기법과 높은 기술 수준으로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다른 유물들에 비해 크기가 매우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또한 당시의 관복 및 요대의 보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학술적・자료적 가치도 높다.
이순신 영정
[출처] [문화재]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 의지 담긴 ‘이순신 장검’ 국보로 지정|작성자 서울문화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