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315장 (구 512장) / 열왕기하 14 : 23 - 29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1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열왕기하 14장 23절 – 29절 말씀입니다.
23.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제십오년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일 년간 다스렸으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6.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27.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28. 여로보암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과 싸운 업적과 다메섹을
회복한 일과 이전에 유다에 속하였던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멘!
열왕기하에 계속 반복되는 말씀 가운데 하나가 ‘여호와 보시기에’ 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도 나옵니다. 바로 이 ‘여호와 보시기에’ 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악이라는 것은 인간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규정하신다.’ 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보기에 악이냐 선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가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이 자기의 선악개념으로 살아가게 되면 스스로에게 속기 십상입니다. 즉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자신에게서 보일 때 스스로를 선한 자로 간주해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는 이만큼 선하니 그 대가로 복을 달라고 조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했던 선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이 자신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과연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한가?’에 대한 물음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 “여호와 보시기에” 라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여호와가 보시는 것과 인간이 보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기를 힘써야 하고, 하나님이 세상을 보시는 그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자신의 상식과 거리가 멀다고 해도 혼란스러워 하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앙할 수 있게 됩니다.
그 한 예를 오늘 본문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4절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씀에서 보는 대로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여로보암 2세의 업적은 실로 굉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렇게 요나가 예언한 대로 여로보암 2세는 다메섹으로부터 훨씬 북쪽에 있는 하맛 어귀까지 정복을 하고 또 아라바 바다라고 하는 사해를 정복하여 국토를 확장하였습니다. 28절을 보면 하맛은 솔로몬 왕국 때에는 유다에 속했던 땅입니다. 그 땅까지 여로보암 2세가 정복을 했고, 또한 다메섹까지 회복을 했다는 것은 여로보암 2세가 대단히 넓은 땅을 차지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여로보암 2세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하게 하신 이유는 26절, 27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기 때문이고,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 아니하셨기 때문에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구원자가 여로보암 2세입니까? 왜 하필이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써 평생을 여로보암 1세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은 여로보암 2세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신앙이 아주 좋은 왕을 세워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이 더 구색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로보암 2세로 하여금 솔로몬 시대보다 더 강국이 되게 하고, 더 넒은 영토를 확장하게 하셨다는 것이, 우리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로보암 2세 전에도 수많은 악한 왕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서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여로보암 2세는 똑같이 악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넒은 영토를 회복하여 강한 힘을 갖게 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어리석은 우리의 눈에는 일관성이 없는 하나님의 일로 비춰집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일관성 있게 일하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세상의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 일관성이 없이 보이기도 합니다. 착한 자가 잘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큰 재앙을 만나기도 합니다. 악한 자가 그 악함으로 인해서 큰 재앙에 빠지기도 하지만 역시 반대로 평생토록 평안을 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선과 악에 대한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세상을 주관하는 분이 없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눈에 일관성이 없는 듯 한 일들이 비춰질 때 스스로 어떤 답을 내리십니까? 하박국 선지자도 의인이 고난을 받는 현실에서 하나님께 강한 불만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악인이 의인을 삼키는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만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현실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의인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가 평안을 누리고, 믿음으로 살기를 힘쓰는 성도가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앙하는 참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스스로 판단하고 기대하면서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계산하여 답을 내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내린 답을 성취해 주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일이 자신이 내린 답과는 전혀 다르고 엉뚱한 결과로 나타날 때 결국 신앙에 대해 혼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해서 우리는 나름대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인은 복을 주시고 악인은 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힘써 봉사하고 신앙생활 하면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열심 있는 나를 지켜주실 것이다.’ 는 계산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변에 불신자들은 형통한 반면, 열심히 신앙생활 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은 큰 고난과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에 대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가 신앙에 혼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계산하고 답을 내리면서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신앙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로보암 2세를 세워서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하게 하시고, 결국 여로보암 개인적으로는 큰 부와 영화를 누리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됩니다. 악을 행했으면 그에 따른 징계를 하시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형통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는 악한 자들의 형통함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의 때가 이르면 비로소 의와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데 우리가 눈에 보는 대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선악 악을 구별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오직 믿음으로 살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로보암 2세가 누렸던 모든 것들은 결코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인이 하는 세상 일이 잘된다고 해서 그에게 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잘됨으로 인해서 더욱 교만해지고 자신의 힘과 실력을 믿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부인하면서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세상의 그 어떤 일에 의해서도 흔들릴 수 없습니다. 형통한 일로 다가오든 고난과 어려운 일로 다가오든 성도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앙하며 하나님으로 인해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잠시가 아니라, 영원히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