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1. 6. 월요일.
<한국국보문학> 2023년 12월에 낼 글 하나를 고르려고 예전에 쓴 일기장을 뒤적거리다가 아래 제목의 글을 보았다.
2006. 3. 19.에 쓴 일기.
이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직장생활하던 때를 떠올린다.
과거를 떠올리는 방법 중 하나는 글로 기록하는 일기와 사진기로 찍는 사진 등을 들여다보면서 회상한다.
퍼서 여기에 올린다.
* 이번 12월호 문학지에 낼 글(산문일기)은 더 골라야겠다.
바다로 간 워크샾
"저질러 놓고 보자. 무조건 간다. 뒷감당은 내가 한다."
경비가 부족하다는 부하 직원의 걱정스러운 말에 나는 호기있게 지시했다.
금요일 오후에 워크샵(Work Shop)한다고 미리 윗분에게 정식보고 드렸다.
열두 명의 직원은 네 대의 자가용으로 분승했다.
강일IC 진입,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강원도 강릉까지 세 시간 반.
경포대 아래 송정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송정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해변가에는 볼품없는, 배배꼬인 못생긴 소나무(금솔인 것 같다)가 방풍림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송림 너머로 날카로운 철조망이 높이 쳐져 있었다.
해안가를 온통 막았다.
이따금 눈에 띄는 군초소가 밉게만 보였다.
안보에 치중하다 보면 철조망은 지역발전에 큰 저해요인.
송정해수욕장.
모래알이 고르고 크기도 자잘했다.
모래알갱이에 흙이 섞여 있지 않은 모래 그 자체였다.
해수욕장 끝에 인위적으로 조성한(시멘트 옹벽)방파제가 바닷물을 가두고 있었다.
작은 배들이 드나들도록 만든 제방뚝길을 걸으면서 동편 끝 망망대해를 바라봤다.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시퍼런했다.
방파제 아래로 떨어지면 끝없는 심연의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물 아래를 들여다보는 것조차 겁났다.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들.
깔끔해 보이는 생선횟집에서 비싼 새우(몸뚱이가 거의 붉었음, 20마리에 5만 원 요구)을 날 것으로 고추장에 찍었다.
팔딱거리는 생우의 몸통을 쥐고 손가락으로 머리통을 잘라내어 고추장에 푹 찍어 먹는 맛이 최고의 별미라는데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그 자리에서 죽여서 먹는다는 게 께름직했다. 세 마리 죽였다.
입안에서 비릿내가 돌았다.
비위에 역겨웠다.
삶은 새우를 좋아하지만 날것은 내 입맛에, 구미에 전혀 맞지 않았다.
광어회.
얇게 저민 광어의 속살을 여러 색깔별로 간즈런히 넓은 사라(사기그릇)에 올려 놓은 생선회를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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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동진으로 내려가 해돋이(해오름) 구경한다는 기대를 미리 접었다.
구름이 너무 짙게 끼었다.
경포대해수욕장으로 갔다.
송림, 잔모래, 파도에 깎이는 모래밭, 망망대해.
밝아오는 여명 속에 백사장을 걷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정동진 쪽으로 20여km 내려갔다.
'모래시계' 드라마의 한 배경이었던 간이역 정동진.
소꼽장난같은 너무 작은 간이역.
탈렌트 여자주연인 고현정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은 소나무가 모래 속에 뿌리박고 살아있었다.
여탈렌트가 배경으로 찍은 현장이라고 새긴 작은 빗돌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없앴더라면 하는 아쉬움조차 남았다.
보잘 것 없는 소나무 한 그루에 불과한데도.....
사진이란 속임수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울 청량리에서 밤새도록 기차를 타고 일곱 시간이나 걸려 다음날인 아침 6시 30분 쯤에 정동진에 도착한다고 했다.
해돋이 구경을 하고 다시 귀경하다는 철로관광여행.
왕복 열네 시간이나 걸려서 와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극히 의문스러웠다.
그런데도 아침 바닷가에는 젊은 쌍쌍이들이 서로 부등켜 안거나 나란히 모래 위에 앉아서 동해를 쳐다보고 있었다.
젊은 그들이 부러웠다.
정동진해수욕장 안에는 12지신상을 나무로 깎아 말뚝밖아 세웠으며 하늘을 나는 솟대를 향해 둥글게 원형지어 있었다.
보기에 조금 섬뜻했다.
구름 속에 가려진 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래시계(8톤의 모래를 담았다 함)가 있는 정동진해수욕장을 거쳤다.
바다를 향한 산 정상에 지은 선쿠르즈리조트가 마치 거대한 배를 산 정상 위에 올려 놓은 듯 했다.
다시 북상하여 주문진항.
인공으로 조성한 넓은 방파제를 따라 붉은 등대가 서 있는 곳까지 걸었다.
바다를 향한 끄트머리에 우뚝 선 등대.
마치 사내의, 발기한 XX같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 느낌이 꼿꼿하게 불끈 서 있어서 좋았다.
살아있어서 좋았다.
주문진항 생선시장 안에는 생선류가 그득했다.
도로변 가게에서는 건어류가 그득히 진열되어 행인을 유혹했다.
장사꾼은 붉은 새우 열두 마리를 만 원에 준다고 했다.
"무척 비싸네."
물회로 점심 한 그릇.
차는 주문진항을 떠나서 서울로 귀경.
운행시간은 세 시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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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분기별로 워크샵하고, 월마다 당일치기 워크샵 합시다. 다음 달에는 경기도 제부도로 가고요."
직원들의 인사말에 나는 속으로 찔금했다.
"누구 죽일 일 있냐?(속으로 : 이번 경비는 내가 태반 부담)"
내가 '제부도'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꺼내놨으니 직원들의 성화에 내가 할 말이 없게 생겼다.
"그래 또 저질러 보자. 이번에는 모두 매월 적금 부어 경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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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날짜가 가까워진 나.
근무하는 날까지 재미나게 일하면서 직장생활을 마무리 했으면 싶다.
2006. 3. 18. 바람의 아들
* 후기 : 뒷날 부하직원들과 함께 경기도 제부도 섬에 다녀왔다.
신나는 갯벌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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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11. 6. 월요일.
날씨가 고약하다.
새벽에는 강풍이 휘몰아치고, 아침에는 비가 내렸고, 정오가 가까운 지금에는 하늘이 잔뜩 흐리다.
직장에서 벗어난 지도 벌써 만15년이 훌쩍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