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인간은 욕을 하고 싶은 욕구를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지 모른다. 욕의 순기능을 지적한 프로이트의 '욕망 이론'은 욕이 지니는 억압의 발산 효과를 설명한다. 예컨대 욕을 함으로써 억압을 발산하고 욕망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한 욕설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나 그래도 욕은 욕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금지된다.
욕은 잘만 하면 독특한 미학과 예술성을 지닌다. 욕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각각 그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욕쟁이 할머니의 욕은 대리 만족이라는 점에서 상처를 주는 욕과 다르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은 주로 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역할을 따져볼 수 있다.
일단 욕쟁이 할머니의 욕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다 똑같이 대하는 평등성이 있다.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가 와도, 아니 백수가 와도
모두 욕을 들어야 한다. 한 집안에서 할머니는 가장 높은 어른이다. 할머니 밑으로는 모두 다 아랫사람이다. 할머니 앞에서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격식을 따지고 구분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 이는 수평적 심리를 통해 욕을 듣는 사람에게 안온감을 준다.
만약 욕쟁이 할머니가 아니라 욕쟁이 아주머니라면 심리적인 안온감이 덜하다. 욕쟁이 할머니는 나이가 많을수록 좋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주름이 많고 연약해 보일수록 좋다. 김열규 교수가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에서 말했듯이
"욕은 약한 자의 칼이다. 욕은 당하고 사는 자들의 핵폭탄이다." 약자의 욕은 욕에만 머문다.
강자는 애써 욕을 할 필요 없이 자신의 영향력으로 상대방을 조용히 제압하면 된다. ...
입이 거칠고 걸쭉해도 할머니의 욕은 단지 입에만 머문다. 위해危害의 여지가 없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욕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욕이다. 욕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욕 다음에 과격한 행동이 예견되기 때문인데, 할머니의 모습에서 욕의 잠재적 위험성은 없어진다. 선하고 약한 존재가 해야 욕설은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중략)
욕설과 반말의 긍정적 효과
한국인은 호칭에 매우 민감하다. 처음 만나는 웬만한 타인에게는 '선생님'을 붙인다. 그러다보니 아무나 다 선생님이 된다. '선생'도 아니고 꼭 '선생님'이다. 부장이면 부장이지 꼭 부장님이라고 한다. 교수에 '님'자를 붙여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대리에게도 '님' 자를 붙이지 않으면 큰일 난다.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을 보아도 영어권에서는
'You' 하나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임자, 그대, 당신, 너, 자네, 선생, 귀하, 어른, 영감' 등 다양하다. 그러나 친구나 학교 동창 등은 함부로
이름을 부른다. 그것이 오히려 친근하다. 여기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이중 심리가 존재한다. 집단 심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존칭을 불러주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호칭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자신도 형식적으로 존칭을 쓰기 때문이다.
준칭은 없으면 기분이 나쁘고, 너무 존칭의 강도가 강하면 불신감도 비례한다.
요컨데 한국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높게 인정받기를 좋아해서 존칭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존칭을 처세의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상대방이 나를 부를 때 존칭을 생략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님' 소리를 들어도 그리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막역하게 지내는 관계를 만들기는 좋아한다. '형님, 누님, 언니'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욕쟁이 할머니 현상에는 연출과 가식의 사회에 대한 거부감도 한몫했다. 식당과 같은 매장에서는 종업원과 책임자가 항상 손님에게
존댓말을 하고 웃음을 던진다. 갖은 미사여구와 살가운 행동들은 진심으로 손님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매출을 올리기 위한 영업전략일 뿐이다. 그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어느새 친절한 대접을 받아도 고객은 그 진실성에 의구심을 품는다. 욕쟁이 할머니가 인기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욕쟁이 할머니는 가식적이지 않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하는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속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 가식적인 이가 될 수 있다.
욕쟁이 할머니는 매상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더 잃을 것 없는 사람 같아서 순수해보인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는 연장자의 잔소리를 잔소리로 여기지 않는 잠재된 문화적 무의식도 있다....(생략)
수많은 연예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인기를 끌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기에 여념 없다. 예컨대 김구라, 박명수, 지상렬은 일종의 역발상으로 암묵적인 금기를 넘어선 솔직하고 직설적인 막말로 호응을 받는다. 인기를 끌기 위해 인위적으로 말과 행동을 꾸미는 연예인들에게서 염증을 느낀 군중심리에서 어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막말도 연출에 불과하다. 욕쟁이 할머니도 너무 자주 등장하면 생명력을 잃고 만다. 욕쟁이 할머니를
비즈니스화하는 순간 순수성을 잃는 것이다. 단골 식당에서 학생이 "할머니, 저 지갑을 안 갖고 왔는데요. 내일 드릴게요." 라고 하자 할머니가
"왜 그러십니까, 손님." 이라고 말을 바꾸었다는 우스개는 이러한 현실을 꼬집는 것이 아닐까?」
정리하면 이렇다.
●욕이라는건 기본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줌.
●할머니의 욕은 어떤 사람이라도 평등하며 욕을 듣는 사람이 위해를 느끼거나 불쾌하지 않음.
●한국인들은 존칭을 불리기 좋아하지만 과한 존칭은 부담스러움.("사랑합니다. 고객님." "커피나오셨습니다." 등의 말이 한편으로 부담스러운 이유.)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는 형동생과 같은 관계로 만들려고 함.
●욕쟁이 할머니는 가식이 없고 연장자의 욕은 잔소리라 여기지 않은 분위기도 한몫함.
●그렇지만 욕쟁이 할머니가 지나치게 비즈니스화하면 생명력을 잃음.(욕쟁이 컨셉을 이상하게 잡거나 하는 경우라던가. 지나치게 돈을 밝힌다던가, 욕만 잘하고 음식을 못한다던가. 음식 못하는건 꽤 큰 패널티인듯.)
나도 왜 우리사회에서 욕설 중에서 묵인되는 욕설이 존재할까 궁금했는데 책에서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니 납득 가는 부분이 많았다.
첫댓글 근데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애초에 틀린 표현이라서요.... 대부분 거부감이 들지않을까요?
그런표현을 강요하는걸 보면 틀린표현도 듣는 이에게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믿음으로 그러는것 같아보입니다..
@삼한일통 흠... 그런가요
욕이란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