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소녀
6월은 첫날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날로 이어진다 퇴직하고 개인 사무실에서 하든일이 신통치 않아 아르바이트 한지가 꽤나 오래되였다 요지음은 그조차 정리하고 소일거리가 없어 운동삼아 안양천을 자주 찾는다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그늘진곳의 의자에 기대 앉아 몸과 정신을 가다듬는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걷고 뛰고 군데 군데 운동기구에도 빈공간없을 정도로 매달려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땀을 쏟으며 달리고 있는 젊은이가 아닐가 싶다 사람의 육체는 삼천마디를 모두 움직여 주어야 한다고 한다 한결같이 웃음을 잃고 묵묵히 땅만보고 걷기만 하는 노인들 사이로 많은 장미꽃들이 미소를 머금고있다 이곳 안양천은 장미꽃으로 그득 채우고 이름모를 꽃이며 부영화 또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있다
누군가 장미꽃을 꺾어 코를 대고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고있다 아~ 저여인 ! 너무나도 낯익은것 같은 할망구이다 아니 ! 어디 비슷한 사람이 한둘일가 다니다 보면 서로 구별하기 힘들정도로 쌍둥이 같은 사람도 많지만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에 의하면 이세상에는 같으면서도 똑같은것은 없다고한다 왜 꽃을 꺾을가 ? 꽃을 진정 사랑하는이는 꽃을 꺾지 않는다 꽃은 꺾는 순간 생명도 향기도 사라진다 꽃을 진정 사랑한다면 꽃은 물론 가시까지도 좋아하고 아낄줄 알아야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길가 언덕 양지 바른곳에 장미로 온통 어우러진 아담한 2층 양옥집이 자리하고 있고 그 담길 앞을 지나 가다가 이따금 너무나도 예쁘게 늘어진 장미꽃에 코를 대고 향기에 취해 한참이나 가던길을 멈추었다 그때 우연히 창문을 열고 바라다 보던 조그마한 소녀와 눈이 마주첬고 그소녀는 장미 한송이를 따서 백지에 싸서 손수건과 함께 던저주며 손을 흔들었다 아마도 그집 앞으로 거의 매일같이 다니다보니 우연찮게 여러번 보았던것 같다 장미를 꽤나 좋아 한탓인지 소녀의 집은 온통 장미로 붉게 덮혀있었다
우연히랄가 내가 다니던 교회에는 꽤나 많은 교인이 있고 그 소녀의 집식구 역시 교회에 나오는 크리스천 가족이였다 후에야 안것은 아버지는 장로님 이였고 소녀는 그집 딸이였다 나는 조용히 뒷전에 앉아 성경이나 읽고 있다가 끝나기도 전에 나와 버렸다 교회에 가면 내가 가장 부담스러운 때가있다 성금 바구니를 돌릴때였다 먹고 살기는 커녕 등록비가 밀려 담임선생으로부터 여러번 독촉을 받았고 그때마다 여러친구들 보기에 무안하기도 했으니 교회에 가면 성금 바구니돌리는것에 여전히 마음이 쓰여 한때는 교회 문앞에서 돌아서기도 했다
성금誠金이란 강요가 아니고 여유있으면 성의껏 작은돈이라도 낸다고 하지만 왜 나같은 사람이 거북하게 내앞으로 바구니를 돌리며 가는것일가 아마도 나의 사정을 잘몰라서 그리 하겠지 ! - 야 미안하면 슬며시 주먹을 넣었다가 다시 빼면 되는거야 - 철모르는 짓궂은 녀석이하는 말이다 않내면 그만이지 왜 벌받으려고 거짖으로 그런짖을해 ? 억지로 내라는것이 아니잖아 아니 교회 한구석에 우체통같은 성금함을 두고 각자 정성껏 내면 될것을 굳이 그래야 할가 ?
이세상은 모든게 다 돈이면 않되는것을 빼고는 다되는 세상이 되는것을 보니 참으로 씁쓸하다 모든것은 다 돈이 우선하는 시대로 접어들다보니 사람들이 돈에 혈안이 되면서 서서히 도덕이 무너지고 었다 돈이라면 오륜삼강이 무너지고 혈육의 정도 옛이얘기가 되였다 십년지기보다 술이나 잘사주고 식장에서 성금이나 두둑히 내는 사람이 친해지는 세상인것 같다 두둑해서 싫어할 사람은 없다 우리는 언제적부터인지 고리타분한 유교사상이라며 칠거지악七去之惡이나 삼불거三不去에는 관심이 없다
머리가 좋아도 돈이없어 공부할 기회를 잃어 버리는가 하면 지질이도 공부못하는 녀석도 돈을 한웅쿰 들고 학교에 잘도 들어간다 뿐만이 아니다 어떤이는 어렵게 공부했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떤녀석은 누군가의 입김으로 누어서 떡먹기로 그럴싸한 곳에서 회전의자를 돌리고 있다 금전 만능시대라기 보다는 금전이 무소불위시대이다 자기자식을 위해서 남의자식을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가난한 학생의 장학금도 서슴없이 가로챈다 그게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이다 지식인이기에 가능했던것이다
어느날인지 그날도 그집앞을 지나다 조그만 소녀를 보았고 그날도 어김없이 장미꽃 한송이를 던젓다 이때다 싶어 전번에 던저준 손수건을 흔들며 가저가라는 시늉을 하고 꽃송이위에 올려놓고 지나갔다 이렇게 소녀와 자주 장미꽃으로 무언無言의 교신을 나눈지 여러날이 되였고 장미가 떨어지는 가을날에는 소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장미는 사라지드라도 창문을 열고 얼굴이라도 빠끔히 내다볼수는 없었을가 그앞을 지나노라면 창문을 열고 빠끔히 내다보며 장미꽃 한송이를 예쁜 손수건에 싸서 던저주든 소녀모습이 떠오른다 동그스럼란 얼굴에 언제든지 미소가 뚝뚝뚝 떨어저 내릴것 같은 깜찍한 얼굴이였다
우체국에 지인知人이 계시어 우체국 빨강 자전거를 자주 얻어 타고 마음껏 달리던 어느날 그집앞을 지났다 그 소녀였다 언제나 방그시 웃으며 장미꽃을 던저주든 소녀를 만났다 한쪽 다리가 몹시 불편한지 절뚝거리고 핼쓱한 모습으로 조그마한 가방을 멘 소녀는 무엇이 부끄럽고 창피한지 얼른 얼굴을 돌리고 가든길을 멈추고 돌아본다 - 예쁜 소녀 아가씨 창피할거 없어요 오늘은 내가 자전거를 태워줄가 ? - - 저 아가씨 아니거든요 정숙이예요 김정숙 ! 처음으로 듣는 정숙이의 목소리는 또릿또릿하고 맑았다 동그란 눈을 뜨고 의아스럽게 껌벅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숙이를 자전거뒤에 태우고 언덕길을 신나게 달렸다 - 내 허리를 꼭 잡아요 위험하니까 - 경인국도 도로에서 광명리로 해서 한바퀴 돌아 소녀의 집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정숙이를 번쩍안아 내려 주었다 정숙이는 대문을 열고들어가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웃고 손을 흔든다
처음으로 배운자전거에 매력을 느끼어 자주 자전거를 이용하였고 이제는 누구 못지않게 익숙해젓다 그래서 시간이 있을때는 우연인척하며 예쁜 소녀의 미소에 빠저 소녀를 태우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같이했다 - 여봐요 학생 우리아이 태우고 다니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그래요 - 그 집앞에서 소녀의 어머니를 만나 꾸지람을 듣자 소녀는 어머니의 손을잡고 나를바라본다 - 엄마 이 오빠는 잘못이 없어요 제가 태워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오빠 미안 해요 - 소녀는 울상이 되여 대문안으로 사라지고 소녀의 어머니도 더이상 아무런 말없이 따라 들어간다 그래 맞아 ! 만약에 넘어저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잘못이지 소녀의 잘못은 아니지 !
그뒤로는 자전거도 타지 않고 그집앞으로 지나 가지도 않고 돌아서 다녔다 지금도 어쩌다가 장미꽃을 보느라면 조그만 소녀 정숙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비록 몸은 불편해도 예쁜얼굴에 상냥한 미소가 가득하고 귀밑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깜찍한 소녀였다 지금쯤은 저할망구처럼 변해있겠지 아마도 예쁜얼굴은 그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동그랗고 맑은 얼굴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아! 어느덧 60여년이 정신 차릴겨를이 없이 빠르게도 지나간 옛날의 추억이다 지금 내앞에는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장미가 곱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 장미꽃들 사이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소녀 정숙이의 미소가 아른거린다 |
첫댓글 저도 자전거 뒤에 아가씨 태웠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나는군요.
그때는 도시락 가방을 뒷자석에 칭여매고 다녔는데 그 위로 올라탄 아가씨....
집에 와서 빈 도시락 가방을 받으신 어머님 왈 - 왜 이렇게 찌그러졌냐? -
어느새 반평생이 흘러 그 아가씨는 호랑이가 되어 나를 쥐락펴락 하지요.
고맙습니다
호랑이 되신 옛날의 아가씨!
인연이 끈질기군요 두분 앞날에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碩峰 蔡聖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