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지난 일이라 순서도 뒤엉퀴는 등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이제부턴 가능한 간단히 쓰겠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몰려든 명상센터에서 열심히 의료봉사를 한 우리들은 오후 늦게 버스로 이동하여 한국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는 대형식당으로 향했다. 네팔에서의 마지막 의료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신선한 야채와 함께 나온 먹음직스런 삼겹살을 숯불로 구워 네팔맥주를 반주로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반주에 유난히 욕심이 많은 나는 여단원의 맥주까지 챙겨 두병씩이나 마셔서인지 제법 취기가 얼큰.... ^@^ 만찬을 즐긴 후 우리들은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비좁은 시내(타멜거리)에 있는 Shakti호텔로 들어갔다. 여러층의 현대식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긴 하나 박타푸르같은 고풍스런 목조각 장식과 더불어 묵직한 황동으로 제작된 키고리의 무게감만큼이나 이 호텔은 제법 오랜 역사를 지닌듯 해선지 시설들이 오래되어 노후하다. 벽에는 예외없는 힌두교 신상과 그림들... 방에다 베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마친 후 신기한 장식들로 가득한 로비와 현관에서 어슬렁거리며 사진촬영을 하는데 회의장으로 가잔다. 특별한 공로가 없음에도 지난 소감발표회 때 거침없는 발언을 한지라 이번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묵언으로 일관할 생각에 호텔직원에게 허락받아 화분에 핀 꽃 한송이를 꺽어들고 단원들과 함께 2층 대회의실로 올라갔다. 냄새나고 어둡기까지한 대회의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은 남팀장의 진행으로 저마다의 소감발표는 시작되었다. 다들 좋은 얼굴로 좋은 말만 쏟아낸다. 내 차례가 되자 조용히 회의장 가운데로 가서 한쪽 무릅을 꿇고 꽃을 들어 올린 후 일어나 열심히 연꽃그림을 그린 이양에게 바치고 돌아오니 다들 무슨 의미냐고 웃으며 한마디씩 한다. "염화미소!" 이 한마디에 묵직한 분위기의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름다운 청년 윤팀장은 만감이 교차해선지 울먹울먹... 끝내 눈물을 보이며 자리에 앉는다. 한참 뒤의 마음 약한 이양 또한 그동안의 감회때문인지 감격스러워 하다가 내가 준 꽃송이를 매만지며 연신 눈물을 흘린다. 10월 11일(금) 맑음 오늘은 재미있는 쇼핑과 관광일정으로 하루가 꽉 찬 날이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후 나는 일전에 침낭구매 약속을 한 이호철 총무님과 함께 타멜스트리트 구경 겸 쇼핑을 나섰다. 무질서할 정도로 자유롭고 요란하며 산만한 거리엔 먼곳에서 온 서양인들도 많이 보인다. 여행자거리라는 닉네임이 어울리는 거리다. 몇군데에서 네팔지도(350루피), 네팔산 야크털모자(250루피), 노스페이스 베낭(2,000루피), 마못 침낭(15,000루피)들을 흡족한 마음으로 샀다. 내한온도 -20도 침낭을 살 때 사람 좋은 이총무는 작년과 같은 금액이라며 깎지 마란다. 시장에서 파는 유명 해외브렌드 상품들도 대부분 중국산 OEM제품들이긴 하나, 진짜로 영하 20도 한국산 내한침낭이라면 가격이 최소 30~200여만원이라는 걸 아는 나는 내용이야 어찌됐든 산악국 네팔에서 산 초저가 현지제품인지라 매우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베낭을 1,500루피 주고 샀다며 자랑하던 룸메이트 조국장은 내 베낭이 훨씬 고급스런 물건임을 알고 잘못 샀다며 뒤늦게 후회하는 해프닝도 벌이는 등 물가가 한국의 1/10에 불과한 네팔에서의 즐거운 쇼핑은 각자의 손에 선물들로 가득하게 한다. 이총무님, 무스님, 두 중학생, 여단원과 함께 조를 이뤄 잡다한 상품들로 가득한 상가를 거닐다가 2층에 있는 외관은 산만하나 내부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Himalayan Java란 럭셔리한 카페에 들러 한가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데 한 젊은이나 다가와 말을 건다. "저... 한국에서 오셨지요? 엄홍길 대장과 함께 여러번 히말라야에 오른 셀파입니다." 산꾼이라 자부하는 나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사람이 한국산악계 뿐아니라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산악)를 장식했던 셀파 중 한사람이라니... 물론 그는 영어로 말했지만, 한국 산악인들과 자주 산행을 해서 우리들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한국말로 걸어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에 소중히 저장된 베이스캠프에서 엄홍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우와~! 반갑습니다. 이름은 어떻게 되십니까?" "누구입니다."(그때 왜 그의 이름을 기록해 두지 않았는지.....-,.-;;) 악수를 청한 나는 그와 차분히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한가롭지 못한지 그는 미안하다며 자리를 먼저 뜬다. 카페에서 나온 우리는 그야말로 복잡하며 요란한 상가를 기웃거리다가 조그만 간판을 건 경복궁이라는 한식당으로 들어갔는데 하필 오늘은 영업을 안한단다. 부근에 있는 桃太郞(Momotarou)이란 -일본, 유럽, 중국, 네팔-식당에다 자리잡고 우동을 시켜먹었다. 일식, 유럽식, 중식, 네팔식...? 참으로 대단한 인터내셔널 요리장이다... -,.-;; 쇼핑을 마친 오후. 우리들은 예정대로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동쪽에 위치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12~18세기 왕궁광장 겸 쿠마리 여신이 있는 유명한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했다. 시내에서 쏟아지는 각종 생활쓰레기들로 가득한 국제적인 관광지 초입에 있는 시커먼 하천과 하천물은 어쩜 그리도 지저분하고 혐오스럽고 불쾌한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너저분한 노점상들이 줄을 잇는 상가길을 따라 500m정도 들어서니 처마끝에 붉은색 천이 하늘거리는 예의 고색창연한 네팔전통 다층 목조건물이 나타났다. 그 앞에는 크기는 작지만 최고의 예술품같은, 마치 이집트 파라오 시대 오빌리스크같은 역을 하는 듯한 멋진 조각탑도 서 있었다.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신이 된 소녀 쿠마리가 산다는 Durbar Square! 살아있는 인간이 살아있는 신이 되는 나라는 오직 네팔 뿐이란다. (나약한)인간이 (전지전능한)신이 될 수 있는 참으로 이상하고도 신기한 나라 네팔... 믿거나 말거나같은 만화같고 소설같은, 이상하고 요상하면서도 괴상한 일들을 꾸며내는 곳이 어디 네팔 혹은 인도 뿐이겠는가! 금방 살아서 인간의 몸으로 반드시 온다(재림)고 2,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멀쩡한 세계인들을 향해 공갈치고 사기치는 신의 아들 예수를 만든 사악한 기독교보다는 네팔인들의 종교적 믿음이야말로 훨씬 인간적이고도 순진한 -그들만의 자연신앙- 아닐까...? 나는 -그들만의 신-을 믿지 않는다하여 전쟁과 살륙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미친 독선(毒善(惡))이 아닌, 신이 된 소녀를 만든 희한한 네팔인들의 신앙이야말로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선한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오늘도 수많은 선한 사람들로 북적이는가 보다. 나는 단원들 틈에 섞여 쿠마리 여신이 산다는 고색창연한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세월의 나이를 먹어 붉다못해 검게 변한 2층 3층에 있는 현란한 목조각 문을 열고 온갖 보석과 꽃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소녀 쿠마리가 웃으며 금방 나올것 같았다. 박타푸르에서 처음 느꼇듯, 이곳에서도 나는 네팔인들의 신기막측한 수공예를 마음껏 구경했다. 어찌 인간의 손으로 이렇게 정교하면서도 복잡하고 세밀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관리인으로 보이는 점잖은 네팔인에게 목재의 종류에 대해 물어보았다. "네팔에서 자생하는 티크라는 목재입니다. 단단하기가 쇠같으나 옹이나 결이 없어 건축소재나 목조각재로 최상품이지요." 비로소 의문점을 푼 나는 다시한번 네팔인들의 상승조각술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신혼여행을 온듯한 젊은 부부가 서양식 드레스와 양복을 입고 쿠마리 신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이색적이다. 시공을 초월한 고대와 현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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