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치기
蠶月麗景遲(잠월려경지)-누에철 다가와 날 따스하니
嶍桑柔始敷(습상유시부)-언덕 뽕나무 잎이 피었네.
攀條철其葉(攀條철기엽)-가지 잡아당겨 그 잎 따다가
采采看朝飽(채채간조포)-아침저녁 풍성하게 먹이 주었지.
促促佇三眠(촉촉저삼면)-꿈틀꿈틀 석 잠을 기다렸더니
滿箔奇功輸(만박기공수)-잠박 가득 고치들 기특도 해라.
新絲足自給(신사족자급)-새 명주실은 쓰기 넉넉하고
不見充官租(부견충관조)-나라에선 세금으로 빼앗지 않네.
萬室樂太平(만실악태평)-집집마다 태평시대 함께 즐기어
鼓舞歌康衢(고무가강구)-흥겨이 강구노래를 부르는구나.
김인후(金麟厚)
누에 다리를 거닐며 다짐 했던 약속
서울성모병원과 서초경찰서 사이 고갯길위에 “누에다리(蠶橋)”가 있다.
지금 3,4월 진달래 벚꽃이 만발하여 이 주변 꽃길이 매우 아름답다.
위의 사진이 누에다리다.
작년에는 이 길을 아내와 걸으면서 누에고치, 누에실 이야기, 누에 전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누에의 가는 실 한 가닥은 약하지만 여러 개의 실이 겹쳐 꼬여서 질기고
부드러운 명주실이 되는 것처럼
당신도 힘들지만 누에실 같이 질기게 병을 이겨 나가자고 다짐 하였다.
아내는 창백한 얼굴에 봄 햇살을 받아 보시시 웃으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는데
오늘은 나 혼자 누에다리를 걷고 있다.
누에는 실(絲)로서 인간을 이롭게 한다하여 하늘의 벌레로 천충(天蟲)이라 하였다.
그리스 신화에도 인간의 운명은 실(絲)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다.
클로토(Clotho)신은 운명의 실(絲)을 뽑아내고,
라케시스(Lachesis)신는 인간 운명의 실(絲)을 감거나 짜는 역할,
아트로포스(Atropos)신은 가위로 그 실(絲)을 잘라 생명을 거두는 역할을 하였다.
사람의 일생은 실(탯줄)에서 실(呼吸線)로 끝나는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 누에를 친 사적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지혜 있는
문명민족임을 알 수 있다
성북동의 선잠단(先蠶壇사적 제83호), 잠실(蠶室), 잠원동(蠶院洞), 등
이름은 양잠(養蠶)을 많이 하던 동네 이름이다.
필자의 고향 진주지방도 누에치기로 유명한 지방이다.
1912년 경에 기계를 이용한 비단 생산을 하였고,
1935년에 인견까지 생산할 정도로 양잠업이 발달한 지방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누에에서 실을 뽑는 것을 보았고
번데기를 쉽게 먹고 자랐다.
서울에 와서 “뻔~ 번데기”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에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집에서 아버지는 먼 길 여행 중이고 외동딸과 수말 한 마리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집을 지키던 딸은 여행 중인 아버지가 보고 싶고 또 심심한 나머지
혼잣말처럼 말에게 장난삼아 말을 걸었다.
“아, 심심해. 아버지는 왜 안 오시는 걸까?
네가 만약 아버지를 데려와 준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너한테 시집이라도
가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이 말을 들은 말은 갑자기 고삐를 끊고는 곧장 딸의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아버지를 만나자 집을 향해 계속 울부짖었다.
아버지는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급히 그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아버지는 애타게 기다리는 딸을 보고 이 말이 아주 기특한 짐승이라고
생각해서 평소보다도 꼴을 더 많이 주었으나 말은 전혀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딸이 마구간을 드나들 때마다 미친 듯이 날뛰었다.
아버지가 이상하게 생각되어 딸에게 묻자 딸이 말에게 약속한 것을 사실대로 말하였다.
“사람도 아닌 짐승인 말이 내 딸을 넘본단 말이냐.
이런 고약한 짐승이 있나”
아버지는 화를 내며 활로 말을 쏘아 죽였다.
그러고는 말의 가죽을 벗겨서 마당에다 널어놓고 말렸다.
아버지가 외출을 하자 딸은 불쌍하게 죽은 말의 가죽을 발로 차면서 이렇게 조롱했다.
“짐승인 주제에 사람을 아내로 삼으려고 해?
이렇게 껍질이 벗겨진 것도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당에 널려 있던 그 말가죽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소녀를 돌돌 말아 사라졌다.
이를 본 이웃집 소녀가 놀라서 딸의 아버지에게 달려가 사건을 말하자
놀란 아버지가 딸의 행방을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마을 근처의 큰 나무 위에서 딸과 말가죽이 모두 누에로 변해
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마을 부녀자들이 그 누에를 가져다 기르자 좋은 비단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나무를 상(桑뽕나무)이라고 불렀는데
상(桑)은 목숨을 잃었다는 상(喪)과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상(桑)은 곧 지금의 뽕나무다.
누에가 그 잎을 먹고 자란다.
말과 결혼 약속을 어긴 소녀는 결국 말과 한 몸이 된 채 누에로 변해버렸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비극의 주인공이 된 소녀에게 누에치기가 잘 되기를 기원하였고
소녀는 누에의 여신, 곧 잠신(蠶神)으로 숭배되었다.
(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 중에서)
농월
위의 조각은 두 마리의 누에가 사랑을 나누는 조각 예술품 잠몽(蠶夢)이다.
누구라도 누에 입술에 손을 대고 간절히 자기의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자식을 원하는 사람, 연인과의 사랑,
병약한 사람은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