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 벼 논 실잠자리
낮이면 행정 관서에서 폭염 온열 질환에 각별하게 유념하십사는 재난 대비 안전 문자가 연이어 닿는다. 나는 농사일이 아니라도 야외 활동에 노출되어 나를 보고 자꾸 보내는 문자로 여겨도 좋을 듯하다. 그러함에도 정해진 일과에서 걷기는 변함없다. 엊그제 초복과 대서가 지나 여름이 더 무르익어 더위는 절정으로 치달아간다. 다가올 중복과 말복과 함께 입추가 기다리고 있다.
칠월 하순 목요일 아침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연학교 등교에서 나서 창원역 앞으로 나가 2번 마을버스 첫차를 탔다. 근교 일터로 가는 분들과 함께 등에는 배낭을 맨 학생도 섞여 용강고개를 넘자 동읍 일대 안개가 끼었다. 한여름에는 안개가 잘 끼지 않는데 사흘 연속으로 아침 안개가 살짝 끼는 현상을 보인다. 안개는 옅은지라 오래도록 끼지 않아 해가 뜨면서 걷힐 듯하다.
창원역 맞은편에서 마을버스를 탔을 때는 유등 근처에서 강둑과 들길을 걸어 가술로 올 생각인데 안개가 낀 아침이라 여정에 변화를 가져와야 했다. 유등 종점까지 가질 않고 도중 상포에서 들녘을 짧은 구간으로 걸어 가술로 가 마을도서관 열람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참이다. 대산 산업단지가 가까운 장등을 지나면서 승객은 대부분 내려 몇 남지 않았는데 나는 상포에서 내렸다.
규모가 큰 미곡처리장이 멀지 않은 진산대로 국도를 건너 중포마을로 갔다. 주남지에서 흘러온 주천강이 밀포에 이르러 샛강으로 가지가 나뉘어 상포와 중포를 거쳐 장구산 배수장에서 다시 본류로 합류했다. 워낙 평평한 들녘으로 흐르는 물길이라, 냇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구역이다. 평소에는 냇바닥 수위가 낮아 수초만 가득히 자라 건천처럼 보였다.
상포도 그렇지만 중포도 천변을 따라 촌락이 형성됨이 특징이다. 마을 어귀에서 아침 안개가 낀 들녘으로 드니 꽃을 가꾼 비닐하우스에서는 뒷그루로 심을 터를 준비 중이었다. 상반기 가꾼 카네이션과 리시안셔스는 수요가 끝나 연말연시 절화용 생화 수요에 맞춰 생산할 안개꽃을 키울 농장이다. 이태째 대산 들녘을 철 따라 자주 누벼 봐 어디로 가면 무슨 작물을 가꾸는지 훤하다.
안개가 낀 농로에서 벼가 자라는 들녘으로 들었다. 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당근을 심어 뽑아내고 모를 낸 들판인데 안개가 끼어 가시거리가 짧아 멀리 떨어진 월림산과 마을은 안개가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침 해가 뜨는 즈음인데 안개가 햇살을 가려 더위는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 좋았다. 가로수가 한 그루 없는 들녘이라 햇살을 피할 수 없는 구역인데 안개가 끼어 도움이 되었다.
들녘 중간에는 벼농사 대신 여름에도 비닐하우스에서 그늘막처럼 온도를 낮춰 특용작물을 가꾸기도 했다. 한 사내는 달포가 지나 생산될 머스크멜론 덩굴손을 묶어주는 작업을 했다. 출하 시기를 조절해 가꾸는 수박 비닐하우스에는 과육이 여무는 덩이가 여럿 보였다. 제동삼거리가 가까운 밭에는 개나리로 조성한 울타리 밑에 절로 자란 들깨가 보여 멱을 잘라 봉지에 채웠다.
야생 들깨 채집 봉지는 배낭에 채워 국도변을 따라 잠시 걸어 대산 행정복지센터로 갔다. 현관에서는 이번 주 내내 민생 회복 지원금을 접수창구를 개설해 민원인을 맞았다. 화장실 세면장에서 이마의 땀방울을 씻고 나와 바깥 삼봉 어린이 공원에서 아까 챙겨온 야생 들깨 깻잎을 따 모았다. 작업을 끝내고 일찍 문을 연 카페에서 냉커피 잔을 비우고 마을도서관 열람실을 찾았다.
정신과 전문의 정영인이 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없다’를 완독하고 오후는 시골 들녘을 더 거닐면서 ‘벼 논 실잠자리’를 보고 한 수 남겼다. “봇도랑 물길 흘러 논으로 닿는 여울 / 물 위에 배경 삼아 동동 뜬 개구리밥 / 풀잎에 실잠자리가 더위 지쳐 앉았나 // 한 마리 모기라도 포획해 영양 보충 / 짝짓기 곡예 동작 기대가 되는지라 / 가냘픈 몸매일수록 포물선이 멋지다” 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