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수 선생의 금강 가 겹물놀이
어제 금강 가에서 장상수 선생의 신묘한 겹물놀이를 보았다.
평온한 강물이 아닌 여울져 흐르는 금강에서 수십여 개가 번져가는 물수제비라고 부르는 겹물놀이를 보며, 2003년에 북한의 묘향산 자락 향산천의 일이 불현 듯 떠올랐다.
”푸른 이깔나무와 사스레나무, 그리고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가 서 있는 그 삼지연의 풍경이 내 가슴 속을 깊숙이 파고 든다.
길은 산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계곡에선 새 푸른 물이 낭만처럼 흐르고 소나무가 울창한 것이 마치 합천 해인사의 홍류동 계곡을 지나가는 듯 한 착각에 빠진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도착한 주차장에는 먼저 와 있는 버스들마다 “내 나라가 제일로 좋아”하는 글씨가 쓰여 져 있다. 소나무 숲 우거진 물가에서 고려 신덕산 샘물과, 송화 찹쌀술, 그리고 블랙커피를 곁들여 점심을 먹는다. 언제였단가,. 내 기억 속에는 이러한 풍경 속에서 함께 즐거운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내장되어 있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양진규, 방용승씨를 비롯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고 안개 속처럼 뿌우옇게 분석되지 않는 그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지고, 나는 송악 찹쌀 술 한 잔을 단숨에 마신다. 도수를 모르겠지만 참이슬이나 하이트보다 조금 센 듯싶다. 점심을 먹고 향산천을 건너며 초정 박제가 선생의 글 한 편을 떠올린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 초정 박제가는〈묘향산 기행〉중 묘향산 가는 길에서 물수제비뜨는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마천령을 넘어 석양녘에 향산천을 건넜다. 자욱한 띠 풀과 갈들은 싸각싸각 마른 소리를 내며 간들거리고 있다. 냇가의 돌 바탕에서는 사람의 발걸음에 돌들이 딸각딸각 서로 갈리고 있다. 그 중에서 얄팍한 돌들을 골라가지고 몸을 나직하게 비켜서서 물 가운데를 향하여 팔매를 갈래 쳤다. 돌은 물껍질을 벗기면서 세 번도 뛰고 네 번도 뛰어 나간다. 느린 놈은 두꺼비처럼 덥적거리다가 빠지고 가벼운 놈은 날래게 제비처럼 물을 차며 나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놈은 우연히 수면에 참대를 그리면서 마디마디 연장되어 나가기도 하며 혹은 돌을 다금다금 던지듯이 찰락찰락 끝을 채며 인을 찍어 나가니 뾰족한 흔적은 뿔 같고 층층한 파문은 탑 같았다. 이것은 아이들의 놀음이다. 물결이 겹겹이 수면에 움직이는 것을 겹물놀이라 한다.”
나 역시 향산천을 건너며 박제가 선생이 물수제비를 떴던 것처럼 얄팍한 자갈을 골라 낮은 자세로 던진다. 하나 둘 셋 돌은 잔잔한 물 위에 원을 그리며 날아가고 다시 던진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내가 물수제비를 뜨자 방용승씨와 여러 사람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돌을 던진다. 오랫동안 나는 꿈꾸었었지 그 푸른 청천강이나 이곳 향산천에서 세월을 낚듯이 물수제비를 뜨리라 던 꿈을.....
나는 꿈에도 그리던 이 향산천에서 겹물놀이를 하면서 우리 민족의 사랑과 우리 민족의 단합을 생각하며 황동규의 시 ‘기도’의 한 대목을 떠 올렸다. “내 당신은 미워한다 하여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강변江邊을 보여 주며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姿勢를 보여주겠습니다.”그래, 바람 부는 강변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바람이 불기를 고대하며 기다렸던 갈대가 어찌 쓰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통일의 그날은 그 보여줌과 쓰러짐을 통해서 오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김수영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내 들뜬 마음을 쓸어내렸다.
“물위를 날아가는 돌팔매질
아슬아슬하게
세상에 배를 대고 날아가는 정신精神이여
너무나 가벼워서 내 자신이
스스로 무서워지는 놀라운 육체여.“
김수영의 시<바꾸어진 지평선>
세상은 아무리 소란해도 강물은 쉬지 않고 바다로 가고 있었다.
2024년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