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갑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조병갑(趙秉甲, 1844년 5월 15일 ~ 1911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부패한 탐관오리이자 동학농민운동의 관련자이다.
생애 [편집]조규순의 서자, 조두순의 서조카. 1892년 고부 군수 재직 중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쌓았다. 그는 이곳의 물을 받는논에 첫해는 수세를 물리기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이를 징수하였다. 약속을 어긴것에 격분한 농민들은 1894년 1월 관아를 습격하고 헐어버렸다.[1] 그뒤 자신의 모친상 때 부조금 2000냥을 안 거둬 주었다는 이유로 전승록(전봉준의 아버지)에게 곤장형을 가하여 때려죽였다.[2] 악행, 악정(惡政)으로 굶주린 주민들을 쥐어뜯었다. 불효를 포함한 희한한 죄명을 만들어 보석금을 내게 하고 대동미를 쌀 대신에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저질의 쌀을 사서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은 횡령, 착복했다. 이는 전봉준 등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동학 농민 운동을 초래하였다. 전라북도 고부 지역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 운동은 주변지역으로 삽시간에 확대됐다.[3] 중앙 정계에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그는 동학 농민 운동으로 1년여 동안 (당시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척 하다가 복권되었다.[4] 그뒤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4] 기타 [편집]2006년 11월 월간조선 11호에 의해 조기숙의 증조부로 밝혀져 보도되었다.[5][6][7] [8] 같이보기 [편집]가족 [편집]
주석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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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유자적 낙산도령 원문보기 글쓴이: 낙산도령
첫댓글 조기숙이 저ㄴ은 신발짝으로 주둥이를 확 문때고 싶소. 놈현때부터 유시민이하고 셋트로 디지게 패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