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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박사모 -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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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성명/공지) 스크랩 조병갑, 조기숙의 증조부
쥬리안느 추천 1 조회 357 12.10.07 08:2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위키백과여 영원하라! 우리 모두의 지식, 우리 모두의 보물, 이것을 지키려 합니다.
위키백과여 영원하라! 우리 모두의 지식, 우리 모두의 보물, 이것을 지키려 합니다.

조병갑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병갑(趙秉甲, 1844년 5월 15일 ~ 1911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부패한 탐관오리이자 동학농민운동의 관련자이다.

목차

[숨기기]

생애 [편집]

조규순의 서자, 조두순의 서조카. 1892년 고부 군수 재직 중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석보를 쌓았다. 그는 이곳의 물을 받는논에 첫해는 수세를 물리기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이를 징수하였다. 약속을 어긴것에 격분한 농민들은 1894년 1월 관아를 습격하고 헐어버렸다.[1] 그뒤 자신의 모친상 때 부조금 2000냥을 안 거둬 주었다는 이유로 전승록(전봉준의 아버지)에게 곤장형을 가하여 때려죽였다.[2]

악행, 악정(惡政)으로 굶주린 주민들을 쥐어뜯었다. 불효를 포함한 희한한 죄명을 만들어 보석금을 내게 하고 대동미를 쌀 대신에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저질의 쌀을 사서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은 횡령, 착복했다. 이는 전봉준 등 농민들의 반발을 초래했고 동학 농민 운동을 초래하였다. 전라북도 고부 지역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 운동은 주변지역으로 삽시간에 확대됐다.[3]

중앙 정계에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었던 그는 동학 농민 운동으로 1년여 동안 (당시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척 하다가 복권되었다.[4] 그뒤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4]

기타 [편집]

2006년 11월 월간조선 11호에 의해 조기숙의 증조부로 밝혀져 보도되었다.[5][6][7] [8]

같이보기 [편집]

가족 [편집]

  • 아버지 : 조규순(趙奎淳), 태인군수를 지냄
  • 어머니 :
    • 형 :
  • 부인 : 전주이씨 이병양(李秉兩), 판서 이병문(李秉文)의 딸
  • 부인 : 청송삼씨 부사 심영규(沈永奎)의 딸
    • 아들 : 조찬희(趙瓚熙, 1880~?) 진사 역임
    • 딸 : 김태규(金泰圭)에게 시집감
  • 큰아버지 : 조두순(趙斗淳, 1796년 ~ 1870년) 영의정을 지냄.
  • 친족 : 조병식(趙秉式, 1832년 ~ 1907년)

주석 [편집]

  1. 만석보에 테마공원 세운다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2. 月刊朝鮮 monthly.chosun.com
  3. ::: 미디어오늘 :::
  4. 밤중에 받은 뇌물, 아침이면 소문나 - 오마이뉴스
  5. 조기숙 전수석 증조부는 조병갑조병갑 <조선말기 고부군수> … 월간조선 11월호 보도, 조선일보 2006.10.17
  6. http://www.polinews.co.kr/focus/displayone2.php?no=72970&page=&best=
  7. 설왕설래-김삿갓과 조기숙씨 세계일보 2006.12.11
  8.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6101801033443182001 “조기숙 前수석 증조부는 조병갑”] 문화일보 200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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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10.07 10:45

    첫댓글 조기숙이 저ㄴ은 신발짝으로 주둥이를 확 문때고 싶소. 놈현때부터 유시민이하고 셋트로 디지게 패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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