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안산강의(나라장로교회) 05 - 요한복음5(10장) 04,11,29 강의: 이근호 목사
◈ 삼손의 수수께끼 - 하나님만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시대 !!
요한복음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삼손 이야기(삿 13-16장)를 좀 하겠습니다. 삼손이 한번 골탕먹어봐라고 하면서 가서 "내가 수수께끼를 낼 테니까, 이 수수께끼를 맞추면 너희들에게 약속한대로 베옷 삼십벌과 겉옷 삼십벌을 너희에게 주겠다. 만일 못 맞추면 너희들이 갚아라" 하는 내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내기를 해놓고서는 자기만이 아는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블레셋 사람들이 어디 알 길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놈 잘 되었다" 하고 족치려고 하는데, 불레셋 사람들이 삼손과 함께 동거하는 여인에게 어떻게 어떻게 해가지고 삼손이 하나님으로부터 단독적으로 받은, 수수께끼 낸 것을 알아냈습니다.
여서는 하나님만이 안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삼손이 단독적으로 받았잖아요. 왜냐하면, 삼손은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자란 그 당시에 싸움꾼입니다. 삼손은 블레셋이라는 지배민족과 싸웁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셨으면 오로지 블레셋을 치는데 사용해야 할 것인데, 오히려 여자의 꾐에 빠지게 되자, 하나님이 주신 경험이 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이 공격받는데 사용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쓸데없는데 신경을 써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더라도, 그 은혜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그 당시의 썩어빠진 시대상을 말합니다. 결국 블레셋이 그 수수께끼를 알아버렸습니다. 즉 "사자보다 강한 것이 무엇이며, 꿀보다 강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하고 자기만 아는 그 내막, 즉 정보가 적들에게 들어가서, 도리어 적들이 이스라엘을 더욱 더 압박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자가 되었으니, 삼손은 점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놓고는 그 은혜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런 타락한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수수께끼의 내막입니다.
그래서 삼손의 그 머리카락도 부인의 꾐에 빠져서 나중에 잘리죠. 잘리고 난 다음,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삼손을 삼손 되게 한 것, 즉 삼손은 원래 자기 부모 태생이 아닙니다. 삼손의 부모는 자식을 못 낳는 불임인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낳았거든요. 따라서 삼손의 운명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다는 말은 삼손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삼손을 가지고 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원자입니다. 구원자인데, 처음에는 그 뜻이 힘으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에는 희생으로 끝납니다. 희생하는 힘이 완력보다 더 세다는 것을 삼손이 머리카락 가지고 보여주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자기 원수와 함께 죽어버립니다. 자기도 죽고, 결국은 이스라엘은 구원해서 양쪽을 성사시키는 것입니다.
◈ 구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취소되지 않는다 !!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주신 뜻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시 합니다. 구원받을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 아무리 내빼려고 해도 내빼지 못하고 결국에는 천국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나쁜 짓하고 아무리 타락해도, 그 한번 준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의 타락보다 더 세기에, 그 사람의 나쁜 짓을 하겠다는 의지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더 강하기에, 결국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믿어져야만 합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교인들에게 "무엇 무엇을 하라" 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십니다. 믿습니까?" 라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시면 아마 천국에 갈걸"이 아니고, 천국은 인간의 행함에 따라 가고 안가고가 아니라, 이미 천국 가기로 이미 결정된 사람만 분류되어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 : 그렇게 결정된 사람이 끝까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해도, 그래도 가는 거예요? 회중 : 그게 그런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이란 말이지. 질문 : 그래도 가는 거예요? 답변 : 피조물은 만들어진 분의 의중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피조물이 만드신 분의 의중을 벗어난다는 것은 하나님한테는 용납이, 허락이 되지 않죠. 그런 피조물이 없습니다. 삼손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죠. 그런데 구원은 구원대로 해주고, 그 와중에서 인간의 힘은 인간의 자기 욕구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인간의 허약함을 아울러 보여주는 게 바로 삼손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 요한복음 10장 - 가짜목자와 진짜목자가 어떻게 다른가?
이제 요한복음 10장을 해 봅시다. 여기 요한복음이 이렇게 펼쳐져 있는데, 원래 글자 보면 또 골치 아프잖아요. 그래서 이 글자를 그림으로 바꾸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의 긴 글은 딱 둘로 나눕니다. "가짜목자와 진짜목자가 어떻게 다른가?" 라는, 이것이 끝입니다. 바로 이 내용입니다.
가짜 목자는 양을 등쳐먹기 위漫?목자로서 활동하는 것이 '가짜 목자'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럼 진짜 목자는 양을 등쳐먹지 않는 목자이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그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목자가 진짜 목자라는 것입니다.
◈ 가짜 목자 - 자기 배를 위해서 양을 등쳐먹는다 !! ◈ 진짜 목자 -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친다 !!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짜 목자는 자기 배를 위해서 양을 등쳐먹는 목자가 가짜 목자고, 진짜 목자는 양도 등쳐먹지도 않고, 그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진짜 목자는 아예 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짜 목자는 예수님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 목사 - 가족들이 있기에 !!
현재 시중에 나도는 목사들은 가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해요. 사실은 참 서글픈 이야기입니다만, 목사가 사람인 이상 남들처럼 살고 싶은 겁니다. 굳이 잘 살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벤츠를 굴린다든지 하는 그런 것보다는, 적어도 정상적인 팔다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기 밥벌이는 극한 상황에서 그냥 제공할 수 있는 그 정도를 원하는 것입니다. 비록 최하지만 안 굶는, 그 정도라도 보장받아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목사라도 말입니다.
목사 가정의 사모님 잘 들으셔야 합니다. 목사의 본심은 그것입니다. "나, 살려줘" 라는 그겁니다. "나, 밥 먹으면서 살래. 나, 좀 살려줘" 라고 말입니다. 그럼 교인들은 어떻습니까?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나, 살고싶다" 라는 것입니다.
◈ 초짜 목사 - 가족들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
이러한 본심 속에는 "나는 죄가 많지만, 내 아내와 자식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건 눈물나는,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교인들은 맛있는 것 다 처먹고, 골프 치고, 해외여행을 가지요. 그런데 목사는 무슨 죄가 있어서 지질이 궁상이라는 말입니다. 무슨 노숙자도 아니고,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이게 무슨 짓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한테 천당 가도록 복음을 전해줄 테니까 최저생계비는 책임져 줘. 이게 목사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라고 하는, 이것이 깔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프로목사 - 이 정도라면 그랜져 정도는 !!
그런데 교인이 좀 모이고 수입이 좀 된다 싶으면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 이 방면에 대학원을 나왔다. 너희들, 대학원능 나와서 20년 근속하면 월급 얼마인가, 그래도 주의 종인데 주의 종, 목사의 품위가 있는데. 장로들은 그랜져 굴리는데 나도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지" 라는 것입니다.
초짜 목사는 "나, 좀 살려줘..." 라고 나오다가, 교회가 좀 되면 이렇게 나옵니다. 목사에게 잘못해서 하나님에게 벌을 받는 놈이 한 두 놈이 아닌데, 벌받지 않기 위해서, 사전에 조치하기 위해서" 라는,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처음부터 그렇게 나온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이것부터 시작을 하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을 테니까, 내 가족이 좀 하루에 한 두끼라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한테는 동정심을 유발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대답을 유도하고, 얻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그렇게 애쓰는데, 주의 종을 저렇게 천대해서,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면서, 우리가 주의 종을 저렇게 괄시해서 우리가 무슨 복을 받겠나, 말도 안 된다. 저렇게 지질이 궁상처럼 사는데, 다만 몇 푼이라도 보태서 살만큼은 주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손빌어서 기도해서 '우리 아이 이번에 수능인데 점수 높여주세요' 할 수 있지" 라고 말입니다.
◈ 요한복음 10장 - 인간의 기본욕구마저도 뒤엎어버린다 !!
그런데 방금 제가 한 것은, 요한복음을 덮어버릴 때 나오는 인간의 상식이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양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가 하면, 물론 이 양(洋)이, '오양', '김양', '박양'도 있습니다만, 사실상 이 양이라는 것이 구원받지 못할, 즉 지옥으로 갈 양이라는 말입니다. '오양'이든 '김양'이든 말입니다.
이 양이 왜 지옥에 갈 양이냐 하면, 제가 가난한 목사의 서글픔을, 가난한 목사의 이야기를 했지요. 이 가난한 목사의 심보나 이 양의 심보나 똑같은 동네에서 같이 지금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의 입장은 지옥 갈 양의 입장은 무엇인가 하면, "신이시여 날 살려주세요! - 어디서? - 이 땅에서!" 라는 것입니다. 이게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어렵게 이야기하면 유식하게 철학에서 '존재성' 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자기실존은 자기의 존재성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계속 존재되기 위해서 인간의 자신의 본능이 발산된다고 했다는 말입니다.
◈ 동전을 하나 동냥해도 자기 존재성을 위해서 !!
예를 들어서, 길을 가다가 불쌍한 걸인에게 동전을 하나 던지잖아요. 그것을 왜 던지느냐고 물으면, "내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착한 일 했다고 신으로부터 반대보상을 받으면, 현재 그 보상에 의해서 내 수명이 연장되는데, 그냥 연장만 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 보다 풍요하게 여유 만만해진다" 라는 것입니다.
동전 하나를 던짐으로서 뭐가 돌아온다구요? 자기의 존재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세요. "당신은 왜 삽니까? - 살아 있으니까 살지요. - 이유는요? - 이유를 묻지 마세요. 살아 있으니 살고 싶은 겁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는 전부가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종착지는? - '나' !!
북한의 김정일 밑에 있는 쫄따구들 중에서 북한의 엘리트들 있습니다. 그것들도 학문을 하고, 세상문물을 봤다고 하면, '김정일 독재'가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이 세상에 그런 일가 체제가 없잖아요. 없는데 정권유지책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나쁜데, 나쁜 줄 알면서도 그게 나쁘다는 소리를 안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이런 소리를 한다면 그것이 나의 존재성에 도움이 될까, 손해가 될까?" 라는, 그것이 우선되는 것입니다.
삼성 반도체의 값비싼 기밀을 대만의 반도체 회사에 넘겨줄 때, 이렇게 행동을 함으로서 국가의 수출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것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삼성에 있으면서 청춘을 바치고 기술개발 했는데, 나한테 해주는 보상이 기껏 이거냐" 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누구 좋아라고 이 고생했느냐. 어느 놈은 돈벌 줄 몰라서 그러냐. 그래 기술을 빼가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돌아오는 게 뭡니까? 한 글자로 바로 '나!' 라는 것입니다.
◈ 지옥 갈 양의 본질 - '나' !!
이것이 바로 양(羊)의 본질입니다. 교회를 왜 갑니까? 교회 문턱에서, 문열고 "주님!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라고, 이렇게 오는 교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얼마나 그리웠다고요" 라고, 이렇게 교회에 오는 사람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옵니까?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교회에 왔다. 이번에 복 줘! 내가 왔잖아. 시간 없는데 왔어. 12시에 예식장 가야하고, 바쁜데 왔다. 목사님! 내가 온 것 알지요? 장로님! 봤죠? 내가 교회참석 했고, 헌금 두툼하니 했죠? 복 안주기만 해봐라. 하나님이 양심이 있다면, 정말 양심이 있다면 나 같은 인간은 복 줘야 해! 요번에 사업을 새로 시작했는데 복 줘야 해!
옛날에 허장강이 그런 소리를 했어요. "김마담! 다이아몬드가 문제이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교회에 적용시키면, "잘만하면 교육관도 내가 지을 께. 주차장, 내가 넓힐 께. 우리 주고받고 합시다. 하나님,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지요" 라는 것입니다. 그게 모여서 된 것이 바로 한국교회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교회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스럽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제가 지은 책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에 보면 마지막 장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볼모로 잡아 놓고 윗통 벗겨놓고 뒤에서 채찍을 때리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금요철야기도에서 "내놔라! 내놔라!" 라고 때리는 것입니다. 통성기도를 하면서 때리고 말입니다. "이렇게 기도했는데도 안 내놓나" 라고 하면서 때리는 것입니다. 눈먼 삼손은 맷돌 돌리고 있고, 하나님이 그야말로 처량하기 짝이 없다는 말입니다.
◈ 이로써 무사히 지옥은 만들어졌다 !!
그때 지옥의 마지막 커튼이 쳐지면서, "이로써 무사히 지옥은 만들어졌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런 인간들의 욕심이 총집합해서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이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곧 지옥입니다. 그런 욕심이 없는 사람들은 교회에 안 나옵니다. 자기 욕심을 본격화시키겠다는 것이 교회라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이 도대체 누구라는 말입니까? '양' 이라는 말입니다. - 양! 양! 양!
그러니까 목사가 된 입장에서 이렇게 목회를 하게 됩니다. 전혀 어렵지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목회할 마음이 있으면 이렇게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목회성공은 제가 장담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일이 불화가 생기고, 애들은 공부를 못하고, 부부갈등이 생기고, 사업이 잘 안되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보시기에 하나님을 잘못 섬기기에 그렇지요. 여러분, 그 사실을 믿습니까? 제가 그 저주를 복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바꾸냐 하면, 여러분이 평소에 바빠서 구제를 못하고, 선교를 못하고, 땅 끝까지 선교하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이웃사랑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태만을 보시고 저주했으니, 그 잘못을 돈으로 환산해서 돈으로 교회에 내세요. 교회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착한 일을 해주고, 의인의 간구는 능력이 있으니까, 제가 대신해서 기도를 해서 돈 낸 사람에게는 복이 떨어지도록 해주겠습니다"
◈ 목사의 임무 - 커미션 챙기기 !!
이렇게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한테 선한 행동을 해놓고 자기는 중간에서 커미션을 먹는다는 겁니다. '커미션' 이라고 압니까? 그 소리를 듣고 교인들이 안 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여! 하나님말씀이 이웃을 사랑해라고 했는데 못했으니 저주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좋은 목사님을 보내셔서 돈으로 때울 수 있는 큰 기회를 주시니, 어떻게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있습니까? 이번에 적금을 타는데 십일조 하지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 십일조가 든 헌금봉투를 놓고 축복을 해대죠. 그렇게 해놓고서 하는 말이 '사례 1', '사례2' 등등해서 사례집이 등장하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이 이렇게 힘들었는데 감사헌금을 해서 2개월만에 올라섰다. 어떤 사람이 수능이 200점이었는데 400점 맞았다" 등등, 그런 간증집을 만들어서 설교시간을 그렇게 때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여기에 화답해서 성경은 다 때려치우고 뭘 합니까?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만 저렇게 되더라" 라는 자기들만의 공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공식만 메모해서 밑줄을 좍좍 그어서 정리하면 신앙생활은 끝내주고 말입니다.
◈ 신앙생활은 이렇게 !!
교인들 40일 새벽기도 연속으로 했더니만... 성경을 글자로 썼더니만... 목사님한테 넥타이 사줬더니만... 교회 건축헌금을 했더니만... 목사님 차 바꿔주었더니만... 전도를 세 사람 했더니만...
소위 "...했더니만 복이 왔더라" 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성경말씀은 듣기 싫어해요. 그래서 이것대로 해 가지고 설교시간 40분 동안 이것만 씨부리는 겁니다. 목사들은 "이렇게 하면 되나 안 되나 시험해봐라. 맞나 안 맞나 해봐라. 이것이 말라기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놓고는 중간에서 커미션을 받아 챙기고 말입니다.
◈ 오늘날의 한국교회 - 절이 산에서 마을로 내려옴 !!
그렇다면 이런 신을 누가 유발했습니까? 사실 목사가 유발한 것이 아니고, 우리 나라의 무속신앙에 의해서 갖고 있던 신 개념이, 산 속에 올라가 있던 절에 가던 사람이 가까운 동네로 모인 것입니다. 예배당이라 해서 말입니다. 절이 산에서 마을로 내려온 것입니다.
옛날에 산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신에게 단장해서 빌던 그것을, 이제 성경 다 때려치우고, 이것은 구색이고 말입니다. 이것은 치우고,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 라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 목사의 행태는 교인들의 욕망이 결정 !!
그러니 목사를 욕하지 마세요. 목사를 욕하기 이전에 "이런 식의 목사이어야 한다" 라는, 그 결정은 교인들의 욕망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속한 것을 찾지 말라.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 힘들다" 라고, 이런 소리가 목사 입에서 나오면 누가 교회에 갑니까?
◈ 교회에 가는 이유 - '자기 존재성'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
정말이지 예수님을 누가 사랑합니까? 인간이란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단 한가지인데, 유식하게 말해서 "자기 존재성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없는 집은 아들을 낳아달라고 하고, 좋은 아내와 남편을 달라고 하고 말입니다.
오로지 자기 존재성을 위하여 말입니다. 신은 이미 자기가 잘 안다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하는 신이니까요. 그러니 교회라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목사를 초빙해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 좀, 교회를 개혁하면 안 됩니까? 하지만 개혁을 할 수 있습니까? 교인들이 원치 않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개혁을 하자고 하면, 그래도 목사를 욕하는 것이지 교인들이 겁을 슬슬 냅니다. 왜냐하면, 목사를 욕했다가 저주받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조금 전에 말한 '사례1', '사례2'가 순서대로 나오지요. 거기에는 목사한테 대들다가 다리가 부러졌다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목사에 대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입니다.
◈ 양의 본질 - 나만 사랑해 줘 !!
하여튼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가 아닙니다. 자기가 교회에 나오는 이것이 노동 아닙니까? 그러니 자기의 그 노동만큼, 반대급부만큼 교회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구요? 그게 아니고, 자기를 사랑해서, 자기가 돈을 내어서 지은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의 본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성경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라고 하겠지만, 사실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옵니까? 이사야 53장 6절에 나오는데, 제가 말한 것과 너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니라구요? 한번 찾아봅시다. 6절 말씀입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분명히 양이 나오지요. 우리는 엉터리로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이것이 양의 속성입니다. 문제는 목자를 목자로 못 알아먹는 우리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커미션 챙겨먹는 목사를 진짜 목사로 아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천국은 어떻게 갑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망할 용의가 있는 사람만이 간다고 말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자기가 잘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망해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주님과 함께 망하겠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망한 사람이 강도이고 세리와 창기라는 것입니다.
◈ 교인들의 희망 - 살아서는 복, 죽어서는 천국 !!
그러므로 교인들은 바로 이겁니다. 교회에 나와서 "살아서 복 받고 죽어서 천국 가자" 라는, 간단한 원리입니다. 살아서 복을 받는 방법은, 교회에 와서 헌금, 기도, 충성, 봉사하는 것으로 하고,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의 은혜를 믿어서 가고 말입니다. 교회에 몇 년을 다닌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안다는 것입니다.
◈ 목사를 저주하면 안 되는 이유 - 성찬식을 거행하기에 !!
그리고 주의 종 목사를 저주하면 저주받는 이유 중에서 한가지는 목사가 성찬식을 하기 때문이죠. 이게 중세와도 너무나 닮았는데, 성찬식 집례를 사찰이 합니까, 아니면 집사가 합니까? 아이들에게 유아세례를 줄 때 집례를 장로가 합니까, 집사가 합니까? 가운을 입고 설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목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목사가 아무리 타락했고, 돈을 밝히고, 방탕하더라도, 교회에서 목사가 없으면 안 되는 이유는, 성찬식이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예식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 예식은 반드시 해야 하는데, 그것은 집사도 안 되고, 장로도 안 되고, 부목사도 안 되고, 오직 목사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인들 생각에 말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러한 목사가 성찬식에서 성경해석을 하는 것 보니까, 누구든지 함부로 떡과 잔을 마시면 뭘 받는다구요?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수가 있고, 그것도 안 되면 몸이 아파서 드러눕는 수가 있다고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전 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전 11: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되어서, 실제로 고린도 교회에 그런 사람이 많아서 죽은 사람도 있고, 병들어서 앓아 누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살과 떡을 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은, 누구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까? 성찬식을 집례하는 목사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즉사하는 수가 있고, 병들고 심지어 죽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니 찜찜하지요. 목사가 어떤 행동을 하든 공격을 못하는 이유가, "이놈의 성찬식 때문에 내가 저주받는데, 목사는 주의 종이니까 누가 친히 때리는고 하니, 교인들이 관리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치시지. 가만 있자. 괜히 대들었다가 신세를 조지는 수가 있다" 라고,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 목사들의 또 하나의 방비책 - 세례 !!
그러니 목사들이 희희낙낙 합니다. 입가에 음흉한 살인미소를(?) 띄면서 "장로, 교수, 사장들아, 너희들이 이 목사를 당해?" 라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어디서 나를 건드리나"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건드리면 그 다음에 뭐가 있습니까?
목사가 또 세례를 주잖아요. 그것을 장로나 집사가 아니고 목사가 하잖아요. 그러니 목사를 부정해버리면 세례를 어디서 받습니까? 세례를 받는 다는 것에 대해서 목사들이 가르치기를 "하늘나라에 이름이 기록된다" 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기록되려면 먼저 세례식을 거쳐야 하는데, 싫든 좋든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씻어내고 이름이 기록되어야 하는데, 목사를 부정해 버리면 자기 이름은 생전 못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지옥가야 하잖아요.
이렇게 교인들을 세례식과 성찬식이 꽉 잡고 있습니다. 이런 원리가 바로 뭐라고요? 천주교 원리인 것입니다. 천주교는 신과 인간사이에 중보자가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냐 하면 파더(God father)라고 부르고 있는 '신부' 입니다. 이렇게 천주교가 신부를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매체로 보는 이유는,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있습니다.
(요 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 천주교 - 베드로가 로마교회 당회장 !!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도들의 계를 밟아서 내려온 것이 신부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최초의 사도의 대장이 누구입니까? '베드로' 인데, 이 베드로가 어느 교회 당회장이냐 하면 '로마교회' 당회장이거든요. 그 로마교회 당회장이라는 말은, 로마교회가 전세계의 으뜸이 되는 교회이니까, 모든 교회를 장악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교회에서 법을 정합니다. 베드로와 열두 사도를 계승해서 계속해서 사도와 같은 역할을 할 사람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교회에서부터 법을 정해서 줬다고 그렇게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신부들은 어떤 권한이 있느냐 하면, 자기들이 죄를 사해주면 사해지고 용서를 안 한다고 하면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인들한테 이 제도가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정말 좋지요. 왜 좋습니까? 부담스러운 성경을 안 봐도 되잖아요. 누구 말만 들으면 됩니까? 눈에 보이는 신부 말만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미쳤다고 공부합니까? 성경은 볼 필요가 없고, 신부 말만 들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신부가 원어해석을 하니까, 아마추어인 교인들이 뭘 알겠습니까? 그러니 성경은 보지 말고 신부 말만 듣고 가끔 신부한테 가면, 신부는 삐딱하게 앉아 가지고서 "왜 왔는데? - 이런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고양이 밥을 안 줬습니다. 바람을 피웠습니다. - 주기도문 세 번 외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 영화에서 많이 봤지요? 소위 '고해성사' 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니라고 한 사람이 있는데, 과연 누구입니까? '루터' 라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용기입니다.
◈ 천주교 - 교회 없이는 구원 없다 - 교회가 최고 !! ◈ 루 터 - 성경 없이는 구원 없다 - 성경이 최고 !!
"모든 사람이 주의 종이다. 목사만 주의 종이 아니다. 기름 부은 모든 사람이 다 성도다.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은 각각 성경보고 각자 자기가 구원받는다. 그러면 구원 속에 있는 것이, 즉 성경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십자가의 보혈이다. 예수님은 신부를 앞에 둔 것이 아니고, 목사를 그 앞에 둔 것이 아니고, 어제 온 교인이라도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를 직접 만나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게 되어있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모든 사람이 다 신부이다" 라는, 소위 '만인 제사장' 설은, 그야말로 놀라운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목이 터지라고 고함을 질러도 괜찮아요. 참으로 감격스럽고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다시 천주교로 복귀한 개신교 !!
그것이 개신교인데,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는, 교인들이 바로 이 개신교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사실 아닙니까? 성경적인 진리보다, 차라리 진리보다도 옛날의 그 눈에 보이는 무당한테 빌고 싶은 것이지요. 왜요? 하늘에 있는, 즉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은 멀고, 눈에 어른거리고 가운입고 돌아다니는 목사는 가까우니 말입니다.
"우리는 신학교도 나오지도 않았고, 뭘 알겠는가? 우리는 아마추어이니 전문가한테 맡기자. 전문가는 누구냐? 목사님이다. 신학교를 갈 때는 다 헌신하고 갔을 것인데, 아무리 우리가 비판해도 우리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왜? 청춘을 바쳤는데, 우리가 그 가상함을 인정해 줘야지" 라고 하지요.
이렇게 하면서 목사를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목사를, 즉 보이는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한테 무엇 무엇을 하면 복이 온다는 규칙만을 딱딱 이야기를 해주면 시키는 대로, 그렇게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 정작 성경말씀을 모르는 교인들 !!
하지만 이러한 분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성경을 들고서 "성경말씀 내용이 뭡니까?" 라고 하면, 놀랍게도 하나도 몰라요. 하지만 뭐만 아느냐 하면, "목사님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 대" 라고 하면서, 그런 법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법에서 벗어났기에, 그러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것을 부수어야 합니다. 이러한 법을 부수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 부수어야 하냐 하면, 그 복이 온다는 원칙을 깨어 버리면 모두 다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원래 아무 것도 내용이 없는데, 교회에 십 년을 다니면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목사한테 "십일조해서 복 받고..." 라는, 이거 깨지면 허전하고,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요. 그때 뭘 집어넣어 주냐 하면,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라는, 진짜 예수님의 본래 성경말씀을 담아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 법을 깨고 그 자리에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 목자가 들어간다 !!
그것이 바로 지금 제가 강의하려고 하는 요한복음 10장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목자는 어떤 목자라고요? 양을 위해서 자기를 바치지요? 양의 자리에 누가 들어갑니까? 양의 자리에 목자 자기 자신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은 어떻습니까? '그릇 행하여', 즉 자기밖에 몰라요. 그런 철딱서니 없는 양의 자리에 예수님이 뛰어 들어서 직접 그 인생을 대신 살아 버리는 것입니다. 즉 압수영장을 발부 받아서 그 양의 인생을 빼앗아서 대신 살아 버린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고린도전서 6장을 20절을 보겠습니다.
(고전 6:20)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냥 영광이 아니고, 어떤 상태가 될 때만 영광이 됩니까? 예수님한테 몽땅 다 빼앗길 때만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봅니다. 사람이 여기 홀로 있습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가 여기 있어서...
"신이시여! 이렇게 열성을 내니까, 바칠 테니 복 주세요!" 라는, 이런 관계였는데, 여기에 있는 캡슐을 알죠? 뭔가가 덮어씌우죠. 뭐가 말입니까? 이 철딱서니 없는 "신이시여, 다오. 주세요. 내가 할 테니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데, 뭔가가 여기에 덮어씌우지요. 이것을 곧 '성령'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혹은 '예수님의 영' 이라고 하고, 그냥 예수님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이 이걸 덮어 씌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안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 소유입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소유가 될 때에, 그런 자들을 두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바깥 층에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즉 예수님의 행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사람을 받으시고, 복은 어떻게 됩니까? 복은 누구한테 옵니까? 이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방식이라는 입니다.
잘 이해가 안되십니까? 이것이 어려우면 좀 더 쉽게 하겠습니다. 보통 교회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다음 대화를 잘 들어보세요.
교회 : 여러분 지옥 가고 싶습니까, 천당 가고 싶습니까? 교인 : 천당 가고 싶어요. 교회 :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습니다. 믿으세요. 천당 가는 다리입니다. 교인 : 예, 알겠습니다.
교회 : 여?筠湧?사영리를 보면 십자가 그려놓고 천국 가는 다리라고 했지요? 교인 : 예, 알겠습니다. 교회 : 예수님께서 천국 가는 다리입니다. 믿으세요. 믿습니까? 교인 : 예, 믿습니다. 교회 : 이제 믿고 구원받았으니까? 이것은 치워버리고, 이제 살아서 복 받는 것은 해야겠지? 교인 : 예, 감사합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는 믿어서 구원받지만, 살아서 복 받는 것은..." 라는, 이런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뭐가 나타났다가 없어졌지요? 예수님이 나타났다가 이용할 것 다 이용해먹고 없애버렸다는 것입니다. 호박제리 까먹으면 껍데기만 남잖아요. 알맹이는 까먹어 버리고, 즉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 되었으니까, 이제 남는 것은 세상에서 복 받는 것만 남아 있습니다.
◈ 구원은 우리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덕분에 !!
그런데 인간은 여전히 살아 있지요.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 철없는 인간은 역시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이시여!' 라고 해도 이 사람이 구원받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철없는 기도를 안 들으시고, 예수님이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따로 있어요. 그걸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많이 들어 봤지요? 교회에서 하지요? 물론 엉터리이지만 말입니다. 교회에서 공중기도를 할 때, "빨리 끝내라. 시끄럽다" 라고 하잖아요. 그때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라고 하면 "휴, 이제 끝났구나" 라고 하면서 '아멘!' 이라고 크게 하잖아요.
이렇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반적 가르침은 무엇인고 하니, 일반 교인들이 실컷 자기 이야기를 다 해놓고는, 마지막에 예수 이름을 붙이면 자기 기도가 다 응답되는 줄 알고 있어요. 물론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쳤고 말입니다.
◈ 원효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이것을 가지고 주문을 외우면 복이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묘호랑개교는 이것을 좋아해요. 옛날에 원효대사는, 사실 '대사' 라는 이름이 아까운데, 원효라는 사람이 일반 민중들 불교로 끌어 모으기 위해서 한 제안이 있습니다. 불교책이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그걸 간단하게 했어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라고만 하면 복이 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민중들이 "정말 왔다다" 라고 했습니다. 왜요? 몇 글자 안되니 말입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원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미륵불을 부르는 주문인데 말입니다.
동학교도 마찬가지이고 말입니다. 어느 종교도 주문이 있어야 못 배운 민중들에게 먹혀 들어갑니다. 그 중의 하나가 교회에서는 마지막에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는, 또 한가지는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몇 번 외워서 복이 절로 온다는 것입니다.
◈ 뭔가 아쉬워서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
사실 그것을 못 배워서 받아들인다기보다는, 또 사람의 합리성에 맞아 떨어져서 그것을 받아들인다기보다는, 사람이 아쉬워서 교회에 오기 때문입니다. 아쉬울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잖아요. 아쉽다는 말은 그만큼 욕망이 들끓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짓을 하는 것입니다.
"주여! 이거 안 해주면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전에 유아세례를 받고 했는데, 중간에 좀 교회를 쉬었지만 지금 내가 교회에 왔는데, 이번에 이거 바이어와 거래가 성사 안 되면 회사가 부도납니다. 사람 죽었다고 치고 한번 봐주소.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목사가 와서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데, 이것을 치유와 위로의 목회라 합니다. 기계에다가도 기도하고, 온갖 희한한 무당 짓을 다 합니다. 옛날 무당이 굿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 사람들에게는 성경말씀과 같은 것은 없고, 그들은 단지 예수 이름만 갖다 붙이면 "그렇게 될 줄로 미이이이쑴니다!" 라고, 목사들이 이것을 훈련시키지요. '아멘!' 도 그냥 해 가지고는 믿음이 안되지요. "아아아아아멘!" 이라고, 강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엇 무엇을 하면 복이 온다" 라는 공식대로 말입니다.
주기도문을 붙이면 복이 오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열 개 붙여서, 한 개가 되면 그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 줄 압니다. 로또복권을 같은 장소에서 사 가지고 백 번 안 되고 한번 되면, 그 장소에 또 사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약한 점을 묘하게 이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고, "지금까지 제가 기도한 것 요구한 것, 저의 욕망일진대 이것은 못 들었다고 여기시고, 다만 제 소원은 지금도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기도가 저에게 적용되게 하옵소서. 믿습니다. 아멘" 라고 하는, 이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들 주무시는데, 다시 반복하겠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기도해도 무슨 일을 해도, 예를 들어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제게 돈만 주시면 이웃사랑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돈도 생기고 아, 기분 좋아라" 라고 하는, 이게 다 있잖아요.
◈ 예수님의 이름으로 - 우리 이름은 묵사발 내소서 !!
"이번 일만 잘되면 제가 섬기겠습니다" 라고 하면서도, 그 내면에는 "이거만 잘되면 나는 아주 땡잡은 거야" 라는 식의 자기 존재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것을 키워나가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 되니까, 이것을 알고 "주여,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아니까, 이것을 묵사발 내시고, 주여, 저는 오케이고 만족합니다" 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이름, 자기 소원이 아니라 예수님의 소망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름이란 기능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멘' 이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의 뜻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뜻은 이 성경책 한 권입니다. 지금 교인들이 워낙 성경을 안보니까,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러나 눈감고 아무 데나 딱 펴보시면 전부 예수님 뜻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아무 데나 펴서, 여기 이렇게 빌립보서 3장 20절이 나오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에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라고 하지요?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맞잖아요? 방금 무작위로 폈는데, 빌립보서 3장 20절이 나왔지요?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예수님의 소망대로 기도하기를 원했지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되었든지 땅의 것을 신경 쓰지 말고 하늘을 신경 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런 뜻을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 보려고 하지요. 왜요? 자기의 욕망과 너무나 마찰되기에 말입니다.
◈ 양(洋) - 그야말로 사고뭉치 !!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일들을 다 아는 이런 사고방식이 한 글자로 뭐라 했습니까? '양' 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으심으로, 이 양을 천국 보내는 것이 주의 뜻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괜찮은 양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백 독하면 나쁜 양에서 좋은 양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좋은 양이 되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무엇을 밀쳐 버리느냐 하면, 예수님께 희생하심을 밀쳐 버리고 그 자리에 "나 이렇게 잘났잖아" 라는 것을 세우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십일조를 하라고 시킵니다. 이것을 하게 되면 자기가 위대한 성도가 된 기분을 느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십일조를 했습니다. 주일성수를 했습니다. 할 것 다 했습니다. 이래도 복 안주기만 해봐라" 라고, 교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또 예를 한가지 들겠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있는데,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내려?이야기를 아십니까? 중풍병자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으니 새치기해서 지붕을 뚫고 내려오니까, 그의 믿음이 크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려고 다시 지붕을 뚫었습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눅 5: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눅 5: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 5: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눅 5: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눅 5: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눅 5: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눅 5: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눅 5: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다시 말해, 남이 한 행동 모방한다고 달라지는 것 없다는 것입니다. 소용이 없어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에게 회개라 하는 것은, 행동을 바쳐준다고 해서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근본적으로 나쁜 양이구나" 라는 것을 인식할 때, 그것이 회개이고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피이지, 훌륭한 양이 아니다 !!
그러니 "내가 앞으로 잘해야지" 라는 것이 전혀 필요가 없어요 그렇게 생각할까봐서 걱정이 되는데, 그렇게 해서 자기가 잘난 양이 되면 결코 안 됩니다. 끝까지 주님의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서 구원을 받아야지, 훌륭한 양이 되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어떤 인간이든 예수님처럼 될 수가 없어요. 끝까지 예수님 십자가로 밀어 부쳐야 합니다. 나이 구십이든 팔십이든 따질 것이 없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끝까지 예수님 십자가로 밀어 부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밤에 강의를 하니까 길게는 안 하겠습니다. 조금만 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했어요. 요한복음 10장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도 믿어지기를 바랍니다. 읽고 설명해 드릴 테니 잘 들어보세요. 요한복음 10장 27, 28절입니다.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8절을 다시 읽어보면, "1) 내가 영생을 주노니, 2) 영원히 멸명치 아니할 터이요" 라고, 두 가지를 했습니다. 제가 묻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제가 물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1) 영생을 본인이 행함으로 만듭니까? 아니면 누가 주는 겁니까?
두 번째 문제입니다.
2) 내가 나쁜 짓을 하면 빼앗깁니까? 안 빼앗깁니까?
방금 봤잖아요. 안 빼앗기지요. 자기가 예수를 안 믿고 도망치면 빼앗깁니까? 안 빼앗깁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요? 영생을 누가 먼저 준다고 했습니까? 누가 말입니까? 예수님이 먼저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도망쳐 봐야, 가봐야 십리도 안 되어서 발병이 나서 도로 오도록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생을 준 분이 책임지고 회수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믿어져야 하는데, 이런 사실에 대해서 지금 사람들이 못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도 나는 착한데, 내 힘으로 예수 믿을 수 있는데..." 라고 자꾸 본인이 양이면서도, 엉뚱한 길을 가면서도 자기의 예수 믿는 그 자질을 포기를 안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쪽에서 예수를 붙잡아서 구원받는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동원시켜야 합니까? 여러분이 전문가가 아니니까, 그래서 목사를 동원시켜야 하고 신부를 동원시켜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천주교가 되어버립니다. 과거에 자기가 헌금하고 봉사한 것을 믿는 것이지 예수의 음성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자기 행적을 끌어 모아서 "이래도 천국에 안 넣어 줍니까?" 라는 교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구원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도가 과거에 무슨 짓을 했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구원을 받았잖아요. 거지 나사로가 직업이 무엇이었습니까? 거지였는데, 그래도 구원받았잖아요. 왜냐하면, 영생을 주는 쪽이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주기 때문에 말입니다.
(눅 5:32)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왔노라
그동안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안 믿는 이유는, 우리 조상 대대로 배운 신(神) 개념이 "바쳐야 보상받는다" 라는 식의 신 개념이었어요. 그래서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 복이 오지, 더러운 물 떠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착해야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이 있었고, 그런 의식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교회 안에 무당하나 모셔놓고 "내가 이렇게 왔으니 복 달라" 라는 방식이 된 것입니다.
◈ 선한 목자 - 양이 요청도 안 했는데, 본인이 스스로 죽음. 그래서 영생이 !!
요한복음 10장에서 하나 하나 따지면 수십 시간 해야 합니다만, 핵심은 제가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마치고 일어나기 전에 다시 한번 당부합니다. 중요한 문제인데, 마지막에 이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선한 목자가 우리보고 잔소리를 하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잘하라고 추궁하는 분입니까? 선한 목자가 우리보고 십일조를 하라고, 그리고 주일성수를 하라고 합니까? 선한 목자가 "최선을 다해" 라고 그렇게 말합니까? 분명히 아니죠.
그럼 선한 목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양은 가만히 있는데, 양이 요청도 안 했는데, 본인이 스스로 죽었지요. 그래서 영생이 왔잖아요. 지금 우리가 양이라면, 양이라서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즉 마음속에는 "복 줘!" 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만 기적이 오는 겁니다. 그래서 또 "이런 예수는 필요가 없구요. 나의 착한 일 가지고 보상이나 해주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 위해서 죽었다. 철없는 너를 위해서 내가 죽었다. 네가 잘났으면 내가 죽겠느냐? 내가 죽었음을 믿었으면 그 다음부터는 네 안에서 희망을 갖지 말고 내 안에서 희망을 가져라"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말하기를 "오직 십자가로만 구원받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교회는 사람을 끌어 모아서 영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목자입니까? 여러분은 양 같아서 제 길로 갔지만, 십자가로 용서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었지요?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합시다. 이제 돌아가세요" 라고 하는, 이것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돈 내세요. 성가대 하세요. 주일학교 하세요" 라는 것이 교회가 아니고 말입니다.
"여러분, 그거 안 고쳐지지요? 하지만 그런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왜 잊어버렸습니까? 그래서 예배당 꼭대기에 뭐가 있습니까? 그 십자가 바라보면서 '주여, 정말 미안스럽고도 황공스럽고 고맙습니다. 그거 다시 알았네요'" 라고 하는 것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돌아서면 또 잊어버려요. 하지만 주께서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이기에 힘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까마귀 고기 먹은 것을 잘 아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은혜가 줄줄 넘칩니까?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영생 주려는데 자꾸 우리는 도망을 갑니다. 착한 일을 내밀고 도망가고, 잘한 일을 가지고 복 달라고 하고,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 이 철없는 우리를 위해서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고,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때려주시고 징계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