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7일
본문 : 계 3:1-6
제목 : 교회의 수명
중심 내용 : 사데 교회는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의 열심보다는 사람의 유전과 전통을 좇는 사람의 열심에 더욱 집중했다. 주님은 이런 상황을 죽은 교회로 평가하셨다(1절).
명제 : 교회는 수명이 있다
설교 목적 : 사데 교회의 실상을 죽은 교회로 평가하시는 주님의 관점은 한 개인과 그가 속한 교회공동체의 신앙적 열심의 정체성이 계시 의존적인지 자의적인 지의 여부에 집중된다(1절). 후자의 경우(자기 열심) 타락한 본성의 발로로 말씀의 본의를 이탈하는 것으로 인해 불순종으로 평가돼(롬 10:2-3) 곧 죽은 교회로 판정된다(계 3:1). 그러므로 신앙적 열심의 정체성은 외적 열심이 아닌 말씀의 본의에 바르게 접촉된 데서 비롯된 전인적이고 계시 의존적인 순종력의 발휘 여부와 밀접하게 연관됨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바른 신앙관 정립은 바른 지식에 체계와 순종력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성경의 진술이다(롬 10:2-3, 17).
1. 도입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머리)이신 사실을 여러 표상을 통해 설명하면서 일곱 교회로 상징되는 지상의 모든 교회를 향해 주님의 칭찬과 위로와 책망과 경고의 말씀 등으로 본론의 서두를 연다. 이는 바른 교회의 정체성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지침들이다. 오늘은 특별히 사데 교회(계 3:1-6)를 향해 주신 말씀을 통해 '교회의 수명'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전개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1절)라고 섬뜩한 말씀으로 말문을 여신다. 다시 말해 사데 교회가 당시 외적으로 분명한 성도들의 신앙공동체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나름대로 기독교적 활동들을 활발하게 전개 시켜 나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시각에는 사실상 죽은 것과 방불한 교회로 비춰지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런 지적은 이어서 말씀하신 "너는 일깨워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2절)는 지적으로 볼 때 비유적인 표현인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지금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태가 교회적 가치와 본질, 속성적 차원에서 볼 때, 결코 성경적 교회의 표지를 능력있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사실상 죽은 상태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지적을 고려할 때, 지상의 교회가 어느 한 지역에서 10년, 20년, 또는 50년,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각계 각 층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모이며, 이로 인해 보다 활발하게 기독교적 대내외 활동을 전개시켜 나간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하고 합당한 교회로 평가되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런 이유로 교회의 교회됨의 가치와 정체성이란 화려한 외적 요소들(역사적 전통, 사람의 숫자, 목회자의 지명도, 기독교적 활동의 다양성과 적극성)보다 오히려 교회적 본질과 가치, 그리고 속성으로서의 교회의 표지가 얼마나 왕성하게 발휘되고 있는지의 여부로 평가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교회의 3대 표지/말씀의 순수한 선포, 성례의 정당한 시행, 권징의 엄격한 집행). 곧 말씀의 흥왕으로 인한 순종력의 발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제아무리 수많은 교인들로 구성돼 있고, 맘모스적인 위용을 갖춘 화려한 예배당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성경의 총체적인 계시관에 깊이 접촉돼 말씀을 신앙과 삶의 도리로 붙들고 살아가는 순종력의 발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나의 '종교단체'나 거대한 ‘예수 동호회’로 전락해 버림으로 성경적인 바른 교회를 이루는 일과는 무관할 뿐이다.
이런 사실과 관련해 종교개혁의 위대한 산물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5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지상에는 아무리 순수한 교회들일지라도 혼잡과 과오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사단의 공회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상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본 고백에서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부분은 지상의 교회 중에 얼마든지 '거짓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실질은 가짜교회, 곧 사단의 교회로 존재하고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1) 그렇다면 거짓교회와 사단의 교회로서 사실상 죽은 교회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대개의 경우 교리적인 변질로부터 발생한다. 이는 자의적인 성경해석과 편의적 적용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세속적인 행복과 현세 지향적인 성공의 도구로 삼아 인본주의적으로 접근하게 될 때, 말씀의 본의가 왜곡돼 신앙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본질과 속성과 생명은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교회는 하나의 기독교적 종교집단 내지는 종교단체로 전락 될 뿐이다. 소위 '예수 동호회'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죽은 교회의 실상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2) 다음으로 물량적으로 크게 부흥되고 비대해 짐으로 죽은 교회로 전락 되기도 한다.이런 사실은 교회의 다양한 표상 중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적 표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여기서 교회를 몸으로 비유한 데는 몸의 유기체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다. 곧 예수님을 머리로 각 지체 간 유기적으로 연합된 상호 불가분리의 생명적 의존성의 특성 말이다. 그런데 교회가 물량적으로 어느 수준 이상 부흥(?)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양적으로 너무 비대해진 까닭에 더이상 유기체로서의 상호의존적인 생명적 특성과 기능을 원활하게 발휘해 낼 수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기적인 조직체를 이루려면 구성원들 상호 간 밀접하게 이루어지는 은사적이며 인격적인 생명적 교제가 전제돼야 하는데, 육체적 활동의 한계 내에서 진행되는 교제는 숫자의 범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 한계를 넘어서는 정도로 교인들의 숫자가 팽창한 교회가 되면 이후부터는 순전히 조직체로서의 성격만을 띠게 되고 이런 이유로 교회의 표상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유기체적 특성과 기능과 역할을 잃게 되므로 사실상 교회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된다.
(3)이상의 사실들이 발생하게 되면 교회는 자연히 본질과 속성으로서 교회적 가치와 정체성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이미 교회의 참모습을 잃게 될 뿐 아니라 교회로서의 본질적 수명을 마치게 된다. 따라서 지상의 지역교회는 영원히 그 생명이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교회는 각기 나름대로 저마다의 제한된 수명이 있다. 따라서 지상의 지역교회는 일정한 자기 수명을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죽게 된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 또한 당시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표방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오늘 날 그 모습과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4) 그렇다고 이런 교회의 죽음이 어느 한 지역교회가 자기의 수명을 다한 후에는 교회 간판을 내린다거나 건물을 철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여전히 표면적으로 교회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 상당한 물량적 부흥과 성공을 이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런 교회가 교회로서의 표상이나 표지, 그리고 속성상 진정으로 교회로서의 성경적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와 비교해 볼 때는 죽은 교회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교회의 수명은 이렇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본질적 가치와 속성과 관련해 그 여부가 좌우된다.물론 그렇다고 소형 교회는 대형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회 됨의 본질과 생명력을 더욱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다는 논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기독교 자체가 '연합'과 '공존'이라는 미명 하에 신학과 교단과 교회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의 거대한 제도권을 형성한 채(세계교회협의회/WCC, 종교다원주의), 다수의 세력과 주장을 진리로 표방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중세의 로마 교회가 그렇게 했던 과거의 전철을 답습하려는 듯이 말이다. 구약의 성경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 편의 '남은 자'들을 역사의 이면에 보존하셔서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집행해 오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왕상 19:18). 이런 원리는 신약의 성경 역사를 통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롬 11:45). 이들이 진정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의 참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다. 이들로 구성된 교회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천상적 보편의 교회에 속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지상의 교회는 바로 이들 남은 자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불가시적 보편의 교회를 추구하는 것으로 교회적 생명력이 발휘돼야 한다. 이런 교회가 말씀에 입각해 교회적 표지와 표상과 교회적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로서 살아있는 교회인 셈이다. 교회의 수명은 이들 교회를 통해 보다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과 하나님 나라를 선양하며 운반하고 건설하는 일에 그 천상적 생명력을 연장해 나갈 것이다(마 6:33).
3. 결론
교회는 각기 나름대로 수명이 있다. 이는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불완전한 특성상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교회적 본질과 속성을 점차 상실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은 다른 무엇에 앞서 말씀의 본의와 해석의 적용이 하나님의 영광추구에서 인간의 행복과 성공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여전히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수많은 교인들과 이들이 예배로 모이는 웅장한 건물과 다양한 기독교적 종교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고 할지라도, 이와는 무관하게 성경해석과 적용의 왜곡으로 인해 교회의 교회 됨의 속성인 거룩성, 보편성, 통일성이 약화되고, 교회의 으뜸 되는 표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유기체적 특성이 실종된다면 바른 성경적 교회의 자태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으로 곧 교회의 수명을 마치게 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수명 여부는 한 지역교회가 공동체적으로 소유해서 누리는 회복된 말씀의 본의 및 이에 대한 순종력의 정도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회복된 말씀의 본의에 깊이 접촉된 교회가 진정 생명 있는 교회이며, 이런 교회를 공동체적으로 이루는 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교회의 수명은 보전될 수 있다. 참된 교회의 생명력이란 회복된 말씀의 본질에 대한 순종력의 발휘 정도에 의해 좌우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