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107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횟집에서’]
횟집에서
잠자코
누항 번다한 소도蘇塗에서
광어의 등짝이나 우럭의 근육을 쓰다듬어 주었다
짧은 생이었다
아니, 이들은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는 별종들에게
이들은 달디단 찰나를 부어 주었다
분명히
우럭의 멈춘 동공에는
짜라투스트라의 언어가 달려 있었고
광어의 홍육紅肉에는 비릿한 애수가
베르사이유의 장미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들에게 고등한 외계로의 망명을
권하는 바이다
상추와 마늘의 입회로서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횟집에서」는 일상적이고 속세적인 공간인 ‘횟집’을 철학적·메타포적 승화의 무대로 반전시키는 독창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식욕 소비의 대상에 불과했던 생선들에게 인문학적 서사와 거룩한 의식을 부여함으로써 낯설게 하기의 재미와 묵직한 페이소스(pathos)를 동시에 선사합니다.
1. 속세와 성소의 전미(轉迷) : ‘소도’로서의 횟집
시인은 첫 연에서 횟집을 "누항(번화하고 복잡한 거리) 번다한 소도(蘇塗)"로 규정합니다. 소도는 삼한 시대 신성지역으로, 족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던 은신과 구원의 공간입니다. 비린내 뿜어나는 붉은 등불의 횟집을 구원의 성소로 재해석하고, 광어와 우럭의 몸을 "쓰다듬어 주는" 행위는 횟감 손질이라는 물리적 도살을 신성한 위무의 의식(ritual)으로 탈바꿈시킵니다.
2. 생명의 재해석과 역설적 애수
2연에서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균열을 냅니다. 짧게 잘려 나간 바다 생물들의 삶을 단정 짓지 않고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른다"라며 그 가치를 재정립합니다. 인간이라는 "별종"에게 자신의 몸을 바쳐 "달디단 찰나"를 선사한 이들의 희생은, 식재료로서의 가치를 넘어 생명 대 생명으로서의 숭고한 보시(普施)로 승화됩니다.
3. 문화적 텍스트의 과감한 병치 : 니체와 장미
3연은 이 시의 하이라이트로, 극단적인 비유의 결합이 빛납니다.
⚫우럭의 동공 = 짜라투스트라의 언어 : 죽음 직후 우럭의 굳어버린 눈동자에서 시인은 모든 초월과 실존을 통탈한 철학자(니체)의 서사를 읽어냅니다.
⚫광어의 홍육 = 베르사이유의 장미 : 붉은 회의 질감에서 팝컬처적·낭만적 이미지인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불러내어, 통속적인 먹거리에 비릿하고도 화려한 고독과 애수를 입힙니다.
4. 쌈 채소의 ‘입회’와 외계로의 망명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이 죽은 생명체들에게 "고등한 외계로의 망명"을 권합니다. 여기서 ‘외계’는 인간의 몸속으로 흡수되어 영혼의 일부가 되는 형태의 순교이자 차원 이동을 의미합니다. 이 거창하고 장엄한 영혼의 망명식에 "상추와 마늘"이 엄숙한 '증인(입회)'으로 동참한다는 설정은, 극적인 위트와 해학의 정점을 찍습니다.
이 시는 자칫 가볍거나 실소로 끝날 수 있는 일상의 한 장면을 철학적 비유와 키치(Kitsch)적 감수성으로 비틀어, 생명의 소멸과 소비에 관한 깊은 시적 쾌감을 이끌어낸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