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빙수 한 그릇
조효정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이번 주말에 1박2일 바닷가로 온 가족이 놀러가자고 하였다. 온 가족이라는 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우리 형제 가정 모두를 합하면 족히 20명은 되는데, 1박2일로 어디를 간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사는 것이 일인 나로서는 그런 북적대는 휴가는 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조용히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심신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지난해 팔순을 넘기신 아버님이 원하시는 여행이라기에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다. 말인 즉은 생전 어디 가자는 말씀이 없었던 아버님이 금년에는 먼저 어디 좀 가자고 하시더란다. 문득 형은 이 여행이 아버님에게 있어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5남매의 형편처지 가릴 것 없이 휴가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하긴 팔순이 지나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시니 지금이라도 여행을 안 하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전에는 어디든 좀 바람을 쐬러 가시자고 하면 집을 나서기를 싫어하시던 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신이 먼저 여행을 하자고 제안하셨다니 괜히 이상한 마음이 들면서 이 여행은 반드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다행이 세 여동생들도 모두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여 날짜를 잡았는데, 문제는 목적지였다. 여행 하루 전에 갑자기 잡은 계획이니 휴가철인 지금 방 구하기도 쉽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멀리는 못가고 안면도로 가서 하룻밤 자고오자고 하였다. 아는 펜션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해보았더니, 그렇잖아도 서울에서 아는 분들이 방을 잡았다가 지금 막 하루 전에 취소하는 바람에 속이 매우 상해있었는데, 어떻게 알고 취소 10분 만에 전화를 했느냐며 살갑게 전화를 받는다. 이것도 다 하늘이 도왔다 싶어서 망설임 없이 안면도로 향했다.
이렇게 부모님과 형제들의 가족들이 모두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이제껏 처음 있는 일이었다. 15인승 승합차와 형의 승용차를 동원하여 안면도로 향했다. 역시 휴가 피크였기에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다. 하지만 예산에서 안면도는 멀지 않기에 쉽게 숙소에 도착을 했다. 먼저 짐을 풀고 한 쪽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수산시장에 들러 횟감과 구워먹을 조개류를 샀다. 해수욕장에서 조개구이를 먹으려면 20여만 원은 들어야 하는데, 3만5천원어치의 조개로 20명이 잘 먹었다 싶을 정도로 먹을 수가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 우리는 꽂지 해수욕장의 일몰을 보러 나갔다. 서해의 일몰이 모두 아름답지만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 사이로 넘어가는 이곳의 일몰은 알아주는 장관이다.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제법 좋은 카메라를 들고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도 있었다. 우리도 좋은 자리를 잡고 일몰을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해가 바위 뒤로 숨더니 곧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바다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마침 수평선 위에 떠 있는 구름들과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몰이 절정에 이를 즈음 어디선가 부글부글 바닷물 끓는 소리가 나는 듯하였다. 아, 가족들과 모처럼 느끼는 이 행복감은 지난 50여년의 세월 속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감이었다. 우리는 그날 그렇게 아름다운 밤을 함께 보냈다.
다음날 우리는 소나무 숲이 좋은 청포대 해수욕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안면도와 몽산포 해수욕장 중간에 있는 작은 해수욕장인 청포대는 인적이 많지 않아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별주부전에 나오는 토끼가 간을 빼어 숨겨놓았다고 전해지는 덕바위가 있는 곳이다. 전에도 몇 번 와보았던 곳이라서 낯설지 않은 곳이기에 소나무 그늘 좋은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미 아버님이 점심을 내시겠다고 말씀하신바가 있어서 인근 식당을 찾았다. 마침 좋은 횟감이 없어서 결국 남면으로 나가서 회를 떠다가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 아버님이 내시는 거라서 더 맛있네요.”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으며 생전 처음 아버님이 사주시는 점심을 먹었다.
사실 아버님은 돈벌이가 없으셔서 자식들이 조금씩 드리는 용돈으로 사신다. 가끔 어머니가 드리는 용돈도 있지만 씀씀이가 박한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용돈이란 뻔한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아내가 주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의 절반가량은 어머니 몰래 아버님 손에 쥐어드렸었다. 혹시 어머니가 아시면 노인네가 허투루 돈쓰고 다닌다고 구박이라도 하실까봐 언제나 우리의 거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은밀히 이루어 졌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가정적이지 못한 아버님으로 인해 고생도 많았지만, 연로해 가시는 아버님의 모습 속에서 같은 남자로서의 연민의 정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주머니에 돈 몇 푼이라도 있어야 손자들에게라도 할아버지의 체면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용돈을 나누어 쓴 것이다.
그런데 몇 달 전 편찮으신 아버님 방을 정리하다가 숨겨진 통장 하나를 발견했다. 그 통장에는 꽤 많은 돈이 저금되어 있었다. 돈의 출처를 추적하던 우리는 돌연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버님이 젊으셨을 때부터 호탕하고 방랑기 있는 삶을 사셨기에 주머니에 돈 몇 푼 지니고 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적은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오신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혹시 당신이 갑자기 망극한 일이라도 당하시면 자식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모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평생을 남편으로, 혹은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해오셨다고 생각하신 아버님은 언젠가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한 번 해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지난달에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옷 사 입으시라고 거금 오십만 원을 주셨단다. 그런데 그 돈을 받고 감격한 어머니는 옷을 사러 서울까지 가셔서 겨우 만 원짜리 옷 두 세 벌 사가지고 오셨다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그 사건이 일생 최대의 사건이었다. 이미 여행을 떠나시면서 아버님은 당당하게 돈을 찾아야 한다며 우체국에 들르시자고 했었다. 이제는 자식들에게도 멋지게 돈을 쓰고 싶으신 것이다. 그런 아버님의 마음을 아는 우리는, 이 번 만큼은 사양하지 말고 아버님이 돈 쓰시는 것을 막지 말자고 했다. 모처럼 마음먹은 대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시게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아버님의 등이 평소보다 훨씬 넓어 보이신다. 목소리도 훨씬 우렁차시다. 그런 아버님이 자랑스럽다. 나는 몇 번을 망설인 끝에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저 팥빙수 사주시면 안돼요?”
50 이 넘은 나이에 어린아이처럼 팥빙수를 사달라고 졸랐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는 흔쾌히 돈을 꺼내고, 60 이 다 되어가는 형은 “내가 사 올께!” 하며 돈을 받아들고 가게로 뛰어 갔다. 팥빙수를 받아들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뜨거운 햇빛에 얼음이 녹아들듯 시원한 행복이 가슴에 녹아든다. 팥빙수 한수저 가득 떠 입에 넣어본다. 달콤한 행복이 목을 넘는다. 그리고 갑자기 온 세상이 뿌옇게 다가온다.
(2008년 8월 1일)
첫댓글 행복하고 아름다운 글을 읽으며 왜 맘이 짠하며 세상이 뿌옇게 다가오는지.... 좋은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와서인지 부모님에 대한 정이 더욱 깊습니다.
아름다운 가족애가 묻어나옵니다. 그 팥빙수 정말 맛이 있었을 거에요 감동을 주는 글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는 아버님이 내년에도, 또 그 다음해도 팥빙수를 사주시기를 기다립니다....ㅎㅎ
언제가 다정다감한 울림으로 와 닿는 행복~~ 진심으로 배어나는 기쁨이 함께 하네요..
언제나 정성껏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팥빙수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네요 몇일전 예당저수지 까페에서 팥빙수를 먹었는데 6000원이더라구요 비싸다는 생각뿐 ㅎㅎ
전 팥빙수 엄청 좋아하거든요..하지만 아버님이 사주신 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말 감동이 진하게 전해지는 글입니다. 평범한 소재가 능력있는 수필가님의 손을 거치면서 가슴 짜릿짜릿한 얘기로 전해지네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