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시대》 2024 · 12월 겨울호 |제79호
《한국문학시대》 2024 · 12월 겨울호
수필
‘남녀칠세부동석’ 필담筆談
윤승원
수필가(1990 · 『한국문학』),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한국문학시대』 문학 대상(2013), 저서 『靑村隨筆』 외
아버지는 유학(儒學)에 밝았다. 공자의 생애와 학문을 자주 말씀하셨다. 면내(面內)에서 큰 행사가 벌어지면 아버지는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쓰고 천막 친 내빈석에 앉으셨다.
지역 유지(有志)로서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아버지 삶의 철학에는 ‘공자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 근엄하셨던 아버지의 생시 모습 (그림 = 인공지능)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예(禮)에 어긋나면 자식들을 꾸짖었다. 특히 남녀가 한 방에서 희희낙락 노는 것을 보면 크게 걱정하셨다. 그럴 때마다 강조하시는 말씀이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었다.
시대 변화에 걸맞지 않은 가르침이었지만 그렇다고 일리가 없는 말씀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훈계가 서운하게 들릴 때도 있었지만 자식들에겐 알게 모르게 건실한 삶의 정신적인 토양이 됐다.
유년시절부터 유교의 가르침이 몸에 밴 자식들의 뇌리에는 사물(四勿: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행동하지 말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겨 행동에 제약을 받기도 했다. 사물(四勿)이 기초가 된 사리 분별력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제동장치였다.
‘남녀칠세부동석’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자리를 함께하지 않으며, 함께 먹지 않는다(七年 男女不同席 不共食)’는 문장에서 유래했다.
▲ 七年男女不同蓆(칠년남녀부동석) - 유교 경전 예기(禮記)의 내칙(內則) 편에서 유래한 말. 六年敎之數與方名。七年男女不同蓆,不共食。八年出入門戶及卽席飮食,必後長者,始敎之讓. (아이가 6살이 되면 수와 방향의 이름을 가르치고, 7살이 되면 이부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함께 밥 먹지 아니하며, 8살이 되면 출입문이나 음식 먹는 자리에 나아갈 때 반드시 연장자 뒤에 하도록 해야 하나니 비로소 겸양을 가르침이라.) 남자와 여자가 7살 이후에 이부자리(蓆)를 같이하지 않는 현상으로, 이것이 앉은자리(席)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와전되었다. *출처 : 지식백과, 나무위키 (그림 = 인공지능, 글씨는 필자가 넣었다.)
중국 유학생과 한 건물에서 살았다. 키는 작지만, 얼굴이 유난히 귀엽고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 마주치면 늘 생글생글 웃는 낯이었다.
인사성도 밝았다. 언제나 먼저 인사했다.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리 공손하니 그의 가정교육을 짐작게 했다.
▲ 필자의 집에서 자취했던 ‘중국 유학생’ ※ 외모 특징 : 귀엽고 예쁘게 생긴 얼굴, 어른을 보면 언제나 상냥하게 생글생글 웃었다. (그림 = 인공지능 챗GPT)
예의 바른 학생은 친화력도 뛰어나서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남녀학생 가리지 않고 그의 자취방에는 친구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걱정스러웠다. 자식을 둔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과민한 탓인지 몰라도 여학생 혼자 사는 자취방에 남자 친구가 자주 드나드는 것은 좀 거슬렸다. 낯선 타국에서 유학 생활하는 여학생 아닌가. 낯선 청년이 잠을 자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마침 유학생과 마주쳤다. 그런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 표현해야 알아들을까. 유학생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간단한 인사말은 해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 걱정스러웠던 점을 어떻게 전달하면 알아들을까?
“자주 드나드는 남자 친구와는 단순히 만나는 사이인가? 아니면 미래를 염두에 두고 좋은 감정으로 만나는 사이인가?”
‘연인 사이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도 있는 말을 이렇게 어렵게 에둘러 말하는 내가 우스웠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그러자 학생은 나의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고 웃는 걸까? 아니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뜻일까?
호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사인펜으로 ‘男女七歲不同席’이라 썼다. 그 옛날 시골 사랑방에서 아버지가 천자문을 가르치듯 일곱 글자를 써서 보여줬다.
▲ 중국 유학생 앞에서 써 보인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필자의 사인펜글씨)
그러자 유학생은 잠시 골똘히 살펴보더니, 또 빙그레 웃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한 필담(筆談)이라면 마땅히 즉답이 건너와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유학생은 응답 대신 웃기만 했다.
무언(無言)의 미소. 알아들었다는 뜻일까? 좀 봐달라는 애교의 표현일까? 오히려 메모지에 글씨를 쓴 내가 겸연쩍었다. 아니,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한자의 종주국 중국, 공자의 나라 중국 유학생 앞에서 ‘男女七歲不同席’을 언급하는 내가 우스꽝스럽기도 하려니와 학생의 반응은 더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서 ‘남녀칠세부동석’이 얼마나 웃기는 얘기인가. 공자의 나라에서 온 유학생에게 대한민국 칠십 대 노인이 어설프게 공자님 가르침을 전하다니. “왜 웃기만 하느냐?”고 묻자, 그제야 학생은 ‘친구’라고만 짧게 답했다.
그의 고향 부모님을 생각했다. 멀리 타국으로 유학 보낸 그의 부모님이 이런 사실을 알면 어찌 생각할까. 나의 노파심은 결국 ‘사생활 침해’라는 조심스러움을 뛰어넘고 있었다. ‘객지의 보호자 역할’이라는 의무감이 앞섰다.
이튿날이었다. CCTV 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남자 친구’의 고급 승용차가 파손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 친구가 주차해 놓은 골목은 CCTV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학생은 몹시 안타까워했다. 보통 차가 아니라고 했다. 고가의 외제 차였다.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승용차 주인인 그의 남자 친구 대신 신고를 한 유학생을 상대로 피해자 조사를 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차주는 어딜 가고 여학생 혼자 도주 차량을 잡으려고 애쓰는지 궁금했다.
그동안 한국말이 서툴기만 했던 유학생의 말문이 터졌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비싼 차인데 부서져서 어쩌면 좋으냐”고 했다. 저렇게 다급할 때는 한국말도 잘하는구나! 아니, 그동안 한국말을 열심히도 익혔구나 싶었다.
부서진 승용차 차주는 어느 부잣집 아들일까? 고가의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부유층 가정의 ‘남자 친구’임엔 틀림없었다.
‘좋은 감정’으로 찾아오는 남자 친구의 정체를 철저히 보호해 주려는 유학생. 그 숨은 뜻을 누가 알랴.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관계를 내가 더는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유학생이 졸업했다. 한국에서는 취업이 안 돼 귀국한다고 했다. ‘좋은 감정’으로 만났던 부유층 가정의 남자 친구에게 취업 도움 요청이라도 해 보라고 했더니 웃기만 했다.
천생연분이란 하늘의 소관이라 했던가. 국적은 달라도 청춘남녀가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은 제삼자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웠다.
유학생과 한 건물에서 수년간 살면서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지만, 나의 뇌리에는 그의 웃는 얼굴만이 유독 인상 깊게 각인돼 있다.
▲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특유의 ‘생글생글 미소’로 의사 표시했던 유학생의 모습 (그림 = 인공지능)
모든 것이 용서되는 유학생의 ‘생글생글 미소’.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웃는 낯은 누구나 좋은 감정을 갖게 하는 마력과 같은 세계 공통 언어였다.
그가 떠날 때 미안했다. 집주인이라는 개념보다 객지의 보호자라는 노파심이 앞섰던 ‘男女七歲不同席’ 필담이 민망해지기 때문이다.
공자님! 시대가 변했습니다. 도덕적 기준과 생활 규범도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정신적인 가르침으로써 ‘남녀칠세부동석’은 유효한지요? ■ 계간 《한국문학시대》 2024. 12. 11.
▲ ‘인공지능 챗GPT’에게 삽화를 부탁했더니, ‘공자님’을 이렇게 모셔왔다. (필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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