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갇 힌자들을 돌아보라 !! 원문보기 글쓴이: 예닮,
[특별기고/ 한국교회 주일학교 위기와 대안] (1) 주일학교 무엇이 위기인가?
아이들 숫자에만 관심을 두다 신앙의 홀로서기에 실패했다
이정현 목사(청암교회)
총신대 졸업 후 미국 South-western Baptist Seminary에서 기독교교육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군산드림교회 교육디렉터로 섬기면서 큰 부흥을 경험하였고, 스쿨처치 사역자로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는 서울 청암교회를 담임하며, 총신대와 개신대학원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교사 베이식> <수상한 큐티> <얘들아, 학교를 부탁해> 등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서 주일학교는 처참히 무너졌다. 주일학교 아이들은 성인들과 달리, 신앙의 홀로 서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부모들이 깨워서 억지로 교회로 보냈고, 선생님들이 주일 아침마다 집에 데리러 와서 교회로 갔고,
교회에서도 철통 감시가 있어야지만 예배가 가능했다.
성인의 도움 없이 신앙의 홀로서기가 힘든 것이 주일학교 학생들의 현 주소였다.
아직 신앙으로 홀로 설 수 없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홀로 유튜브나 줌이나 메타버스로 영적인 활동을
하라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다.
총회 연구결과에 의하면, 2020년 코로나를 겪으면서 청소년들의 종교생활이 26.2%나 줄어들어들었다고 한다.
많은 교회들이 비대면 예배를 열심히 준비했고, 교육부 사역자들은 영상 콘텐츠 제작 및 제공에 힘썼지만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학생들의 2/3가 자신의 믿음이 떨어졌다고 답변하였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우울증만 코로나 이전 보다 28%나 증가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 교회 주일학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더욱더 영적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주일학교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1. 교회 내부의 문제: 낮은 수준의 믿음을 양산한 주일학교
미국 사우스웨스턴(Southwestern) 신학교에서 청소년사역에 대해 가르친 웨슬리 블랙(Wesley Black) 은
퇴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많게는 70% 학생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이유에 대한
심층 연구를 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교회를 떠난 첫 번째 이유는 믿음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였다.
실제로 사역 현장에서, 본인의 믿음 없이 부모의 강요에 의해서 교회를 다니는 학생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부모는 교회에서 중직자로 열심히 섬기는데, 자녀들은 주일예배를 결석하는 경우도 많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공부 좀 한다는 지역의 교회들 중고등부는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몇 년 전 언론 기사에서 나왔듯이 교회 중직자의 55%가 시험 기간에 자녀들을
교회 대신 학원에 보낼 수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망라하면, 지금 우리의 주일학교 아이들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구원의 확신도 없이 부모의 강요와 선생님의 끈질김 속에서 간신히 예배만 출석하던 아이들이, 코로나 시국에
다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만약에 우리 아이들에게 확고한 믿음만 있었다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든
오프라인으로 드리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억지로 잡아 놓고 예배하게 하던 아이들에게 자유와 방임을 주니까,
썰물 빠져나가듯이 교회 밖으로 다 나가 버린 것이다.
그간 믿음 없는 세대를 양산한 한국교회 주일학교는 그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너무나도 안일하게 주일학교 사역을 해왔다.
대형교회들은 주일학교 숫자도 많고 시스템도 좋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녀들의 신앙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는 잘 투자하지 않는다.
그간 주일학교의 가장 큰 관심은 아이들의 영혼구원 보다는 출석 숫자에 있었다.
어느 교회, 어느 교육부서에 몇 명 모이느냐가 성공의 기준점이었다.
심지어는 아이들 숫자를 기준으로 부서 예산을 차등 배부하는가 하면, 사역자의 진급 및 사임의 사유가
숫자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주일학교 숫자가 적어서 실패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실패라는
사실을. 자꾸 숫자 중심으로 가니까,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나 인기 연예인 초청 또는 고가의 상품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는 출석 숫자에 연연하는 자세를 뛰어 넘어서, 기독교세계관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데
힘을 썼어야 했는데, 우리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경우 교회 주일학교에는 슬로건만 있지, 제대로 된 실행 방안이 없다.
기독교세계관이 아이들 속에 들어가려면, 주일에 단 1번의 예배로는 불가능하다.
주중에도 교회에서 모여야 하며, 아이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부교역자 시절, 청소년들에게 참된 영성과 기독교 세계관을 심어주기 위해서 모임을 가졌다.
매주 토요일 200명의 학생들이 모여 소그룹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믿음으로 훈련이 된 아이들은 시험기간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교 입시 면접이 주일에 있으면, 가뿐히 그 학교를 포기하기도 하였다.
지금 주일학교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교회 내부적으로 우리 자녀들이 신앙의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 것이다.
2. 교회 외부의 문제: 아이들이 귀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귀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작년 출생률이 0.81로 전 세계에서 출생률 꼴찌를 기록하였다.
작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는 총 26만 500명밖에 되지 않는다.
출산율 문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큰 문제인 동시에, 교회에도 크나큰 문제가 되어 버렸다.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10%가 교회에 출석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 숫자는 약 2만 6000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교회 숫자는 약 5만 7000개 정도 된다.
만약 작년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10%를 전체 교회 숫자에 그대로 대입하면, 두 교회 당 한 교회에는
신생아가 없는 결과가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는 대형교회를 빼고는 주일학교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과거 주일학교 부흥기를 이끌었던 시대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X-세대였다.
이때는 가정마다 자녀들이 많았다. 1970년도에 출생한 신생아 숫자는 100만 명이 넘었다.
지금보다 거의 4배나 많은 숫자이다.
과거 한국사회를 보면 아이들은 어디나 많았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해도 알아서 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성경학교 때 동네에서 북 한번 치면, 100명의 아이들도 쉽게 모았다.
비신자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교회에 가 있는 것을 비신자 부모들은 더 좋아하기도 하였다.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돌봄을 제공해 주고, 교회에서 아이들이 좋은 것을 배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간 한국교회 주일학교의 성장은 이러한 인구 폭발과 연관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너무나도 귀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부모에게도 자녀가 귀하고, 조부모에게도 손자 손녀가 너무 귀해져 버렸다.
따라서 과거처럼 노방 전도에 의해서 주일학교가 부흥하기가 무척 어렵다.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를 부모 허락 없이 교회로 데려오다가, 인신매매로 신고를 당할 수도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주일학교 사역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지금 주일학교 자녀들의 부모세대는 기존세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지금 부모세대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자녀들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긴다.
우선은 자녀가 1명 또는 2명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렇다.
자녀들의 건강과 안전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는 나머지, 지금 MZ세대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기 주저한다.
둘째로 자녀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교회를 정할 때도, 그 교회 주일학교의 커리큘럼이나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깊게 따질 정도다.
셋째로 MZ세대 부모들 가운데 모태신앙은 많지만, 그 전 세대 부모들에 비해서 믿음이 깊지는 않다.
넷째로 비신자 MZ세대 부모의 경우 교회에 대한 반감 및 경계심도 상당히 큰 편이다.
과거처럼 교회에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있다고 쉽게 자녀들을 보내지 않는 부모들이다.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교회들은 숫자 타령을 하고 있고, 적은 숫자인데도 기존 부서체계를
유지하는데 급급하다. 이제는 과거 주일학교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주일학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서 다루겠다.
[특별기고 /한국교회 주일학교 위기와 대안] (2)성경으로 돌아가라
성경은 자녀의 신앙교육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부모에게 좋은 영향 받은 학생들이 신앙생활과 학업에 성공한다는 연구조사 결과 나와
부모들을 신앙교육의 구경꾼으로 방치하지 말고 자녀들 영적 양육의 책임자로 세워야
미국 신문 스타 텔레그램(Star Telegram)에서 미국 테렌카운티에 살고 있는 고3 학생들 중에서
학교 성적 상위 20% 안에 드는 학생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했다.
이른바 ‘학업 성적 상위권 학생들의 삶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연구 조사였다.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첫째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둘째로, 그 영향력은 바로 부모였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인생 최고의 상담가를 부모라고 답했고,
삶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는 부모라고 무려 70%나 응답했다.
셋째로, 식구들 사이의 유대 관계가 좋았다. 41%의 학생들이 매일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스타 텔레그램의 리서치 결과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학생들은 부모에게 좋은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공부를 잘하고, 삶의 태도가 좋은 학생들 역시 부모와 관계가 매우 좋았다고 답변했다.
결국 자녀들의 신앙과 삶에 최고의 영향력은 부모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데이터는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미국 노틀담대학교의 교수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미국 전역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했다.
특별히 신앙심이 좋은 아이들부터 신앙심이 전혀 없는 아이들까지 등급 구분을 했고,
그 아이들의 삶의 모습이 신앙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스미스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믿음이 좋은 학생들의 경우 미디어 시청 시간이 짧았고, 건전한 성의식이
있었으며, 일탈행위가 별로 없었고, 감정기복도 적었다. 종합해 보면 삶의 긍정적 지표가 꽤 높았다.
이 연구결과에 따른 핵심 질문은 ‘왜, 신앙심이 좋은 아이들이 삶의 좋은 지표를 보였는가?’였다.
그 정답 역시 ‘부모의 영향력’이었다. 부모와 관계성이 좋은 아이들이 신앙심이 좋았고, 삶의 모든 지표도
건강하게 나타났다. 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외출하고 식사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부모에게 상담을 받으며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부모의 힘이다.
‘왜 주일학교가 잘 안되는가?’ ‘왜 신앙의 세대 전수에 실패하는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필자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성경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
우리는 주일학교 시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좋은 교역자를 청빙 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주일학교가
잘 되고, 아이들의 신앙이 잘 자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방법론을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
히려 성경은 자녀들의 신앙에 제1 원동력이 부모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신명기 6장 4~9절을 보면, 자녀 양육에 대한 정답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시작하는 단어가 ‘쉐마(들으라)’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보통 ‘쉐마’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이 말씀을 주로 5월 가정의 달 설교 본문 또는 부모세미나 때 많이 활용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쉐마’란 바로 하나님의 지상 대명령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 중에 말씀’인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교회 안의 초등학생, 청소년들, 대학생들에 대한 신앙의 일차 책임을 담당교역자나
교사에게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어떤 아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다면 그 주된 책임은 교역자나 교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내 자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게 하는 것은 부모 몫이다.
우리는 그간 신명기 6장의 말씀을 크게 놓치고 있었다.
부모들이 영적으로 바로 서지 못했기에, 가정에서 전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하지 못했다.
교회는 교육부서 사역을 뛰어넘어서 부모들을 전체적으로 바로 세우는 데 집중했어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부모들의 삶은 너무 고단하고 힘들다.
솔직히 ‘가정에서 아이들의 신앙적인 양육까지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많은 부모들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좋은 교육시설과 시스템이 있는 교회를 선호했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주일학교를 위한 좋은 설비와 우수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로 어떤 교회들은 이런 방식으로 주일학교에 투자하면서 성장의 열매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방법을 좇아간 한국교회 주일학교가 과연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을 겪는 동안 대형교회나 소형교회를 막론하고 주일학교가 모두 처참하게 무너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외형적으로는 주일학교 운영방식이 몹시 현란하고 탁월해 보였을지라도, 이런 방식만으로는
결과적으로 아이들 신앙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과연 다음 세대 신앙전수에 성공했는지, 아니면 실패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정직한 답을 구해야 한다.
2021년의 시작과 함께 다음세대에 관련된 충격적 기사 2건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 기사들은 우리 시대 주일학교 시스템에 대해 전면 재고하게 했다.
첫 번째 기사는 2021학년도 전국 주요 신학대학교의 신입생 모집정원이 거의 다 미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서울에 소재하는 대형 교단의 신학교들마저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는 더 이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려고 하는 ‘주의 종’ 곧 헌신자들이 교회 안에 별로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기사는 2021년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코로나 이후 청년들의 신앙에 대한 인식조사’의 결과다.
조사결과 교회 청년들의 47%는 ‘앞으로 10년 동안 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을 것 같다’고 답변하였다.
그동안 부모에게 끌려와 억지로 교회를 다녔지만, 자신이 성인이 된 이후로는 교회 나갈 일이
없을 것이라는 청년들이 상당수이다.
바로 이 모습이 대한민국 주일학교의 현주소이다. 우리 자녀들 세대는 신앙의 홀로서기에 완전히 실패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성경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 지금이라도 부모들을 양육하고, 교육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
더 이상의 신앙교육의 구경꾼으로 방치하지 말고, 부모들이 자녀들 영적 양육을 책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 최근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파는 놀랍게도 이단으로 분류되는 모르몬교다.
모르몬교를 케이스로 제시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들이 고속 성장한 원인만은
우리가 주의 깊게 살피며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90년 800만명이 채 되지 않았던 모르몬교 교세는 2020년에 1600만 명을 훌쩍 넘겼다. 4
0년 만에 두 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정통기독교 교단들이 감소세로 접어든 21세기 이후,
모르몬교는 오히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10년 동안 무려 45%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퓨리서치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모르몬교의 가장 큰 특징은 가정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부모들과 자녀들이 밀접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함께 예배하며, 단란한 가정을 만들고 있다.
주일학교도 없는 모르몬교이지만 오히려 청소년과 부모 사이에 신앙 유사성이 매우 높다.
그들은 신앙의 세대 전수에 성공하고 있기에 계속 성장을 하는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신앙교육의 가장 큰 핵심은 가정이고, 부모이다.
더 이상 주일학교라는 시스템에만 매이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하나 되어서 신앙의 세대통합에 힘쓰며, 자녀들이 가정 안에서 신앙적으로 잘 양육되게끔 훈련시켜야 한다. 다음 호에서는 이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적용 방안을 제시하겠다.
[특별기고/ 한국교회 주일학교 위기와 대안] (3) 세대통합교육
온 세대가 함께 예배하고 사역하는 것이 다음세대 위한 최고의 교육
세대분리형 교육에서 세대통합형 교육으로 방향 전환하고 교육 주체는 부모가 돼야
어른들 사역에 아이들 동참하는 형식이 아니라 모두가 만족하는 방식으로 세팅 필요
미국의 많은 교회는 이미 20년 전부터 주일학교의 패러다임을 바꿔왔다.
주일학교를 비롯한 다음 세대 사역이 안 돼도 너무 안 되었기 때문이다.
2012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 인구가 50% 아래로 떨어졌고, 청소년세대라 하는 Z세대 중에 기독교
세계관을 소유한 학생들은 4%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인 남침례교단의 경우 연간 침례(세례)를 받은 청소년들의 수가 1971년 약 13만명이었던
것이, 2006년에는 8만 명도 채 안 되게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 전체 인구수는 1억 가까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2000년대에 들어와 남침례교단 안에 주일학교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가 일어났다.
그 핵심은 바로 온 세대를 통합하는 주일학교로 전환하는 그림이었다.
실은 이러한 변화가 교회 교육에 처음 시도된 혁신적 변화는 아니다. 원래 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일 뿐이다.
우리는 막연히 주일학교가 교회에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여기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
지금처럼 각 학령별 부서가 있는 세대분리형 주일학교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주일학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의 활동기인 178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미국에서 주일학교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800년대 중반 이후의 현상으로 본다.
그러니 실제로 교회 안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주일학교가 활성화된 것은 채 200년이 되지 않은 셈이다.
산업화·근대화의 물결과 전쟁 후 아이들 출생률 증가, 공립학교 시스템의 시작 등 사회 구조가 전면적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도 연령별 신앙교육이 확산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교회들이 모두 세대통합적 예배와 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미국교회는 영적대각성운동과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 초반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그 부흥기 당시 미국교회의 주일풍경은 이러했다.
주일 오전이 되면 일가족이 함께 마차를 타고 동네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집에서 가정예배가 있었다. 주일학교가 따로 없었다.
그냥 온 식구들이 함께 교회당에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게 주일예배의 전부였다.
당연히 유년부, 초등부 등을 따로 담당하는 사역자가 없었다. 청소년 사역자도 없었다.
아이들은 그냥 부모랑 같이 예배했고, 오늘날과 비슷한 역할을 당시 교회에서 굳이 찾는다하면 평신도
사역자들이 전부였다. 최초의 주일학교 풀타임 사역자는 1937년이 되어서야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주일학교 전문사역자들이 본격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였다.
교회의 다음세대들, 곧 자녀들은 주일학교 교사가 아니라 부모가 직접 성경을 가르쳤을 때 더욱더 영적인 수준이
높았다. 실제로 주일학교만 열심히 다닌 학생과 부모와 함께 예배드리는 학생의 향후 신앙 양상 차이를
연구해 봤는데, 부모와 함께 예배드리는 학생이 끝까지 신앙을 잘 사수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정답이 나왔다고 본다. 이제는 세대분리형 교회교육에서 세대를 통합하는 교회교육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 교육의 주체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현 시대 속에서 이 땅의 다음 세대를 살
릴 수 있는 길이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세대분리형 교육에서 세대통합형 교육으로.
필자가 목회하는 청암교회는 74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교회인데, 세대통합형 교육을 실천하면서 괄목할만한
열매들이 나타났다. 참고로 필자가 청암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세대통합 목회의 모습들을 소개한다.
1. 말씀의 세대통합-성경묵상(QT)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말씀의 세대통합이었다. 이는 교회에서 실행하기에 가장 수월한 일이었다.
미취학부서부터 주일학교 전 부서가 <매일성경>으로 QT를 하고, 주일설교도 같은 본문으로 통일했다.
새벽예배 설교도 <매일성경> 본문으로 나갔고, 목장모임도 마찬가지로 진행했다.
부임과 동시에 가장 먼저 전교인들 대상으로 QT세미나를 진행하였고, 온 세대가 같은 말씀을
매일 볼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가정에서 신앙적인 대화가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일에 어떠한 말씀을 들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주일의 말씀 본문은 이미 부모가 QT를 통해 학습한 것이다.
또한 부모가 새벽기도회 때 들었던 말씀이 자녀들의 QT 본문 말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말씀을 통한
대화가 진행됐다. 이런 방식으로 가정에서 말씀의 대화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기도의 세대통합-온 가족 새벽기도회
우리 부모세대처럼 기도를 많이 한 세대도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이렇게 좋은 기도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계승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기도는 부모가 자녀에게 직접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을 기도의 자리로 데리고 다니면서, 기도하는 법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 중 약 2/3가 예배당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 특히 젊은 분들은 경기도권에 많이 거주한다.
따라서 주일을 제외하고 온 교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매우 힘든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첫 주 토요일이 되면 온 가족 새벽 기도회가 열린다.
말 그대로 온 세대가 함께하는 기도의 자리다.
교인들의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자리이고, 어린이들도 2/3 이상 참여하는 뜨거운 집회이다.
기도회 마지막 시간에는 담임목사가 아이들을 한명씩 안수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간식을 나누며 헤어진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많은 교인들이 기도회에 참여하면서 이제는 교회에 완전히 자리 잡은 사역이 되었다.
3. 예배의 세대통합-절기 세대통합예배
교회의 주 절기를 중심으로 온 세대가 함께하는 예배를 부임 전에 미리 구상하였다.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송구영신예배, 창립기념주일, 어린이주일 이렇게 하니까 대략 7번
정도가 나왔다. 약 2달에 한번 꼴로 세대통합예배가 가능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날은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주일 오전에 한 번만 예배드리는 것으로 구상하였다.
보통 교회에서 ‘세대통합예배’라고 하면 주일 오후나 저녁 특별한 시간에 함께 하게끔 하는데, 이렇게 되면
모든 교인이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아예 주일학교예배를 없애 버리고 어른들과 매주 함께
예배하게 하는 교회도 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불만족이 매우 크다.
그런 면에서 교회 큰 절기 중심으로 하는 대가족예배, 세대통합예배가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본당이 워낙 넓어서 모두 한 자리에 모이기 적격이었다.
세대통합 예배의 세팅은 매우 중요하다.
어른들 예배에 아이들을 동참시키는 예배가 아니라, 아이들도 만족하고 행복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대통합예배는 축제 분위기 속에 모든 부서 아이들이 예배에 직접 동참케 한다.
심지어 대표기도도 주일학교 학생이 한다. 결과적으로 주일학교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만족하는
예배가 되었다.
4. 선교의 세대통합-온 가족이 함께하는 단기선교
온 가족이 함께 선교지에서 땀을 흘리고, 복음을 위해서 고생한 기억보다 더 값진 기억은 없었다.
해마다 방학이 되면 해외여행을 많이 떠나는데, 그림을 조금만 바꾸면 된다.
일가족이 함께 해외여행 가는 경비로, 해외에서 함께 복음을 증거하면 된다.
온 가족이 함께 복음을 증거 하는 것과 해외여행 떠나는 것은 감히 서로 비교가 안된다.
복음을 위해서 온 식구가 한마음을 갖고 한 몸으로 움직이며, 함께 동참하는 것 보다 더 좋은
세대통합 프로그램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 우리 교회는 방학이면 세대가 함께 해외와 국내에 복음을 증거 하러 떠날 계획이다.
이정현 목사(청암교회)
누군가 나에게 한국교회 다음세대 사역에 있어서 대안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과감히 세대통합이라고 말
할 것이다. 교회는 하나로 가야 한다. 교회 교육은 하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의 주체는 부모여야 한다. 세대통합 교회교육. 지금부터 실행하면 주일학교의 미래는
안전하다고 확신한다.
출처 : 주간기독신문( https: / /www.kidok.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