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드온의 승리(삿 7:15-2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제 66회 현충일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국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6년부터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졌고, 북한의 남침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625전쟁은 우리 대한민국에 엄청난 상처를 안겨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군인들과 국민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한반도가 초토화되어 버렸습니다.
아직도, 남과 북은 전쟁의 종식이 아닌 휴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남과 북의 이념대립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많은 상처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사회 구석구석에서 갈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분열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광활한 우주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지금과 같은 문명이 발달한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 뿐만 아니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멈추지를 않고 있습니다. 늘 들려오는 소식은 다툼과 분열의 소식입니다. 언제쯤, 다툼과 분열이 아니라, 일치와 화합 속에,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맘껏 웃을 수 있을까요?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아마도 소설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위나라의 조조, 촉나라의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공명, 오나라의 손권 등이 등장하여, 서로 치열하게 치고받고 싸우는 흥미진진한 전쟁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손자 야곱의 때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으로 야곱은 온 가족을 이끌고 내려갔습니다. 애굽에서 430년을 살다가,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고, 40년 후,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다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후 사무엘 선지자가 등장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기 전에, 그 가나안 땅에는 열두 명의 사사가 등장해야만 했던 혼란스러웠던 시대였습니다.
사사는 평상시에, 계속해서, 높은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에 아주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번개처럼 등장하여, 그 위급한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계속 통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을 앞장서 헤쳐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종료되면,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열두 명의 사사 가운데, 기드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안이라고 하는 나라가 평화로웠던 이스라엘을 갑자기 쳐들어왔습니다.
많은 메뚜기 떼와 같은 미디안은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그 땅에 먹을만한 것을 남겨 놓지 않고, 모조리 약탈해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7년 동안, 미디안의 핍박과 압제를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 속에 깊이 들어가, 굴을 파고, 그 속에 숨어, 피난민 생활을 했습니다.
여러분! 미디안이 침략할 그 당시, 아무리 어려워도, 농사만 지을 수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사람들은 아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씨 뿌리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씨를 뿌리는 계절이 되면, 다른 부족들까지 합쳐서, 짐승들까지 몰고 와서, 이스라엘의 밭을 다 밟아, 뭉개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예 땅에 씨를 뿌릴 수가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완전히 없어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자기들 스스로 도무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을 것입니다. 미디안과 협상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주변 민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기도 하고, 자기들 안에서도 수없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의 상태는 만신창이인데, 도저히 고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면에서, 어려움과 궁핍함이 아주 심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궁핍함이 심하다”는 것은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는 이 어려움을 해결할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중환자처럼 누워만 있어서, 누군가가 일으켜 주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살 가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부르셔서, 미디안의 손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른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으로부터 심한 핍박과 압제를 받아야 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야기를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 땅을 떠나온 지가 벌써 백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러갔다고 해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기보다는 바알과 아세라 앞에 나아가,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고, 그것을 섬기고, 매사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빠져버렸습니다. 하나님보다 바알과 아세라가 더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은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우상숭배자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새롭고, 깨끗한 나라를 건설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사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죽이지 않고 종으로 부려먹을 수 있다고 하는 경제적인 이득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결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핍박과 압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마침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드온을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좀더 일찍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좀더 빨리 여러움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자기 곁에 두려고, 삼고초려한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는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자꾸만 거절하는 기드온을 계속 찾아오셨습니다.
기드온은 자기를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삿 6: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기드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왜 출애굽 때의 기적이 지금은 일어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출애굽 때 기적이 일어났으면, 지금도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지금은 아무 능력도 일어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출애굽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셨다면, 지금은 왜 도와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싫다고, 도망가 버릴 때는 언제고, 왜 도와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이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기드온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믿었습니다. 홍해가 갈리지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었습니다. 안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었지만, 믿는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왜 그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지, 몰라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비록 그 믿음의 크기는 작지만,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 기드온을 큰 용사로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번 미디안과의 전쟁은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느냐? 아니면, 하나님은 없느냐를 결정하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회복을 위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전쟁은 어떤 전쟁입니까? 지금과 같은 문명이 발달된 시대에, 과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같은 세상에서, 과연 믿음이 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생활하고, 직장 다니고, 사업하는 것이 통할까요? 과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통할까요?
이것은 바로 엄청나게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느냐 하는 것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도 과학이 더 위대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재물이 더 능력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풍요에 젖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출애굽의 신앙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 때에나, 다윗 때에나, 지금이나, 똑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대가 변한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달라져서는 안됩니다. 믿음이 변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요,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7년 동안, 핍박하고, 압제하고, 학대하는 미디안 족속들을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기드온은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 6:15)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자기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가장 작은 므낫세 지파였고, 또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집안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힘이 없고, 쓸만한 사람도 없는 망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 6:1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가 가진 조건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300명의 용사만을 이끌고, 미디안과 싸울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아주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300명으로, 많은 메뚜기 떼와 같은 미디안 군사들과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 짐승들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승리가 아니라 패배할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믿음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믿습니다.”라고 크게 외치지만,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외치지만, 세상으로 나가 적의 많은 숫자를 보는 순간, 그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믿음과 현실의 엄청난 차이 때문에, 힘들어 하는 때가 있습니다.
믿음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더 낫다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미디안과 전쟁을 하려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훈련된 군사들도 많아야 하고, 쓸만한 무기들도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어떤 준비를 하고, 많은 메뚜기 떼와 같은 미디안과 싸우려 나갔습니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어떤 것을 준비했습니까?
15-18절 말씀입니다.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아멘.
여러분! 기드온은 미디안과 싸우기 위하여, 300명의 용사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기드온은 “300명만 데리고 나가, 미디안과 싸우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도저히, 인간적으로는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 하나님이 미디안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300명만을 데리고 나가 싸운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미디안과 싸울 사람을 모집했을 때, 처음에 3만 2천명이 모였는데, 하나님께서는 3만 1천 700명을 다 돌려보내 버렸습니다. 300명만을 남겨 두셨습니다. 미디안과 비교해 보면, 숫적으로 열세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싸울 수 있습니까?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 남은 300명이 어떤 준비를 하고, 미디안과 싸우려 나갔습니까?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한 손에는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고 나갔습니다. 아마도, 적과 싸울 수 있는 준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적으로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칼이라도 들고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적과 마주쳤을 때, 나팔과 횃불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있고, 또다른 손에는 항아리 안에 횃불을 들고 있으니,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것입니다. 칼이 없다면, 몽둥이라고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무협지에 나오는 고수들처럼, 엄청난 무술 연마자들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관우, 장비, 조자룡처럼 일당 천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장수들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왜 기드온과 300명은 나팔과 횃불만을 들고, 미디안과 싸우려 나갔습니까?
이스라엘이 미디안보다 더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나가, 미디안과 싸워 이긴다면,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이겼다.”고 자랑할까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아주 적은 숫자인 300명만을 데리고 나가, 미디안과 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나팔과 횃불이 아닌,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말과 짐승들을 동원하여, 강한 병기로, 미디안을 물리친다면, “우리의 병기로 미디안을 물리쳤다”고 자랑할까봐, 하나님께서는 나팔과 횃불만을 들고 나가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나팔을 불면, 덤벼드는 미디안 군사들이 쓰러지고, 횃불을 들면 적진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불태워지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 믿음과 현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7:14-20절을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데려오자, 예수님께서 그 아이 안에 있는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은 더 강합니다.
세상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의 머리로,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 흠뻑 취해, 하나님을 멀리 하고, 내 생각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평상시에,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산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아마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시고, 흡족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웃게 하는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는 승리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면,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막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은 우리의 갈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높은 내일을 향해 뛰어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감으로, 이 악한 세상에서 넉넉히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로 인하여, 주저앉지 않게 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그 문제들을 이겨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문제를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오직 주님 안에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 대한민국을 지니시고 보호하여 주셔서, 전쟁이 없게 하여 주시고, 가슴 아픈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다툼과 분열이 사라지고, 일치와 화목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한마음 한 뜻으로 오직 주님을 섬기는 믿음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