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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주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지난주에 예고했듯 《에놀라 홈즈 시리즈》 2부 감상문을 들고 왔습니다. 원래 일요일에 등록하려 했는데, 그날 좀 바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더군요. 월간 간행물 기사 마감 쳐야 해요 ㅠㅠ
예고했던 날짜보다 이틀 빠르게 올린다고 세상이 멸망하겠어, 뭘 하겠어?
한 가지 기쁜 소식도 있는데요. 바로 점자형 선거 공보물 및 디지털 선거 공보물 작업이, 제작부터 포장, 발송에 이르는 그 모든 작업이 다 완료됐다는 겁니다. 지난 일요일 기점으로요. 만세! 선거 공보물 독립 만세!
물론 이렇게 보낸 공보물은 때가 되면 저희 집에 배송되겠죠. 전 시각장애인이니까.
하지만 특정 기호의 공보물은 안 볼 생각입니다. 이미 작업하면서 좀 많이, 각 페이지 단위로 내용 외울 만큼, 질리게 봤거든요. ㅋㅋ
그럼 후련한 기분으로 《에놀라 홈즈 시리즈》 나머지 4~6권에 대해 정리하겠습니다.
도서명: 에놀라 홈즈 시리즈 전 6권 중 4권 별난 분홍색 부채, 5권 비밀의 크리놀린, 6권 집시여 안녕
저자: 낸시 스프링어
* 이 시리즈는 1~5권까지는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에 이어 아직까지 마지막 6권은 없습니다. 3월이 되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요.
시리즈 전권은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도서관 아동․청소년 코너에 있어요.
* 소개글 서평
소설 연재는 하고 있긴 해도, 하다 하다 서평 연재를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전체를 죄다 올리면 9쪽 내지 10쪽이 될 텐데, 무슨 레포트도 아니고, 그러면 읽는 사람이 고생한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태껏 등록한 책 추천 글 가운데, 가장 길었던 시리즈 서평 글이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 <파랑 채집가>, <메신저>, <태양의 아들>로 이어지는 4부작이었다.
그런데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그보다 2권이 더 많다. 그러니까, 1부와 2부로 나누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쯤에서 그만 각설하고, 시리즈 뒷권 4~6권에 대해 소개한다.
사진 설명: 분홍색 극새사 이불과 그만큼 부드러운 분홍색의, 아마도 양으로 추정되는 인형 쿠션.
- 여기서 포인트는 색깔이다. 분홍색 말이다. 시리즈 4권의 주요 실마리는 분홍 부채인데, 그 기념품을 나눠주는 티파티도 온통 핑크라서......
에놀라 홈즈 시리즈 4 - 별난 분홍색 부채(The Case of the Peculiar Pink Fan)
“적어도 지금은 에놀라의 안전이 더 이상 걱정되지 않아. 분명히 에놀라는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을 거야.”
작품 4권의 시작은 오빠들의 회의 장면이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여동생의 가출로 고민하는 남자들, 바로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셜록 홈즈의 논의의 장이다. 사건 전개 중 위기의 순간을 인트로로 다룬 1~2권, 사건과 연관된 주요 포인트를 다룬 3권과 달리, 이번 인트로는 가족 회의가 나왔다. 더불어 에놀라를 바라보는 오빠들의 시선 변화도 등장한다. 특히 셜록 홈즈가 비교적 유연한 시각이 됐다. 나름 여동생을 좀 인정해주는 뉘앙스이지 않은가!
이런 오빠들의 회담을 까맣게 모르는 우리의 천방지축 주인공은 혁신적인 핫 플래이스로 떠오른 장소, 런던 최초의 공용 여자 화장실의 시설을 구경 중에 있었다. 본대 있는 집안의 여자들이 더는 집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활동을 한다는 어필이요, 이용료 1페니 지불로 나름 자선 기금도 되는 뜻깊은 장소 말이다. 그에 걸맞게 에놀라도 ‘아이비 메쉴리’가 아닌 ‘여성 학자’ 변장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얼굴을 보게 된 게 아닌가!
여자 전용 화장실의 종이 울리고 하녀가 열어준 문을 통해 세 여자가 들어왔다. 나이 든 두 명의 귀부인, 그리고 담황색 벨 스커트를 입은 소녀. 노부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녀가 입은 겉만 예쁘고 실용성은 하나 없는 종 모양의 벨 스커트가 이목을 끈다. 아니, 그보다도 어째 세 명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이 에놀라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다 벨 스커트 차림의 소녀가 비틀거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 에놀라는 그 섬세하고 교양 있는 소녀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바로 시리즈 2권의 주요 인물 ‘왼손잡이 숙녀’ 레이디 세실리였다.
에놀라도 놀랐고, 책 보는 나도 의외였다. 2권에서 웬 날치기 최면술사 건달을 잘못 만나 인생 꼬일 뻔한 레이디 세실리는 에놀라의 개입으로 집에 무사히 돌아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세실리가 여기서 나와? 그것도 뭔가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티가 나는 관계로 노부인 둘에게 감시를 당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말이다.
그런 만큼 대놓고 에놀라가 ‘너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실리 역시 ‘도와줘!’라고 외칠 수 없다. 이럴 때는 뭔가 은밀한 신호, 암호 같은 게 필요하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부채,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종이로 만든 조악한 ‘별난 분홍색 부채’였다. 사교계 여성들이 샤프롱을 대동하고 파티에 갔을 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을 때, 혹은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 비밀 얘기를 할 때 쓰던 수단, 부채 언어. 4권은 초장부터 공작새 닮은 컬러플한 암호가 난무한다.
세실리는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감시를 받고 있음을 부채를 통해 알린다. 그리고 에놀라는 부채를 통해 자신이 그녀의 위기를 알아들었음을 전한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짧은 것이었으니, 남은 건 세실리가 일부러 남기고 간 분홍색 부채뿐이었다.
단서는 하나, 별난 분홍색 부채.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 에놀라는 사교지를 통해 분홍색 티파티에 대해 알게 되고, 그 분홍 부채가 그 정신 없는 핑크 티파티의 기념품이라는 것도 알아낸다. 과연 에놀라는 고작 조악한 종이 부채 하나로 세실리를 찾아 구할 수 있을까? 왼손잡이 숙녀 세실리는 대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 걸까?
시리즈 4권은 주인공 에놀라의 성장이랄까, 행동력의 극을 보여주는 권이라고 생각한다. 변장 솜씨가 여전해서 기자인 척하고 정보를 캐내고, 활발함도 여전해서 사건을 캐다가 셜록 홈즈와 마주쳤을 때 제법 당돌한 제안을 던지기도 한다. 《별난 분홍색 부채》의 백미 장면은 에놀라가 오르간 위에서 은신하다가 잠들어서 겪는 해프닝과 세실리인 척하고 웨딩 드레스 입고 그야말로 혼을 쏙 빼는 미친 연기력을 펼칠 때, 그리고 둘째 오빠 셜록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잔이 될 때를 꼽고 싶다.
한편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1권부터 3권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계몽과 부조리를 지적했던 바 있다. 이번 4권에서도 그것은 이어지는데, 이번 테마는 바로 근친혼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유교사상이나 전통이 강해서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지만, 서양에서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사촌 사이에 결혼이 흔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피해자이자 제물로 낙점된 게 바로 ‘왼손잡이 숙녀’고 말이다.
어차피 짐작은 하겠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결말은 따로 적지 않겠다. 이쯤에서 다음 권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단지 소설 초반에 나왔다가 소설 말미에서도 여동생과 충돌한 첫째 오빠가 참 일관성 있었다고 밝히겠다.
사진 설명: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다룬 그림 동화책의 한 장면. 도서명 <나이팅게일> 에마 피시엘 글, 피터 켄트 그림, 이미나 옮김, 동대문도서관에서 대출받았다. 그림책 자체가 흑백이라 삽화가 별로 안 예쁘다.
- 원래는 살짝 암시적으로 조류 나이팅게일 그림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관련 동화책이 동대문도서관에 소장 중이 아니었다. 꿩 대신 닭, 아니지 조류 나이팅게일 대신 사람 나이팅게일이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5 - 비밀의 크리놀린(The Case of the Cryptic Crinoline)
“처음 본 글씨체-예요. 이런 가시 줄기 같은 글씨체를 안다면 제가 기억 못할 리 없겠죠.”
시리즈 처음으로 경고문이 나왔다. 심신 미약한 독자는 인트로 보지 말고 곧장 다음 장으로 넘어가란다. 나는 나름대로 강심장이라 그냥 봤다. 영국 역사의 한 부분, 아니 정확하게는 서양사의 한 대목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 1853년 러시아가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한 심산으로 오스만 제국 내 그리스 정교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도나우강 연안 공국을 점령한 계기로 벌어진 싸움, 오스만 제국이 전쟁을 선포 후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 참전하게 된 크림전쟁. 죽어가는 남편 옆에 무기력한 어린 신부. 피비린내 가득한 그곳에서 헌신하는 등불을 든 간호사. 확실히 좀 좋지 않은 장면이긴 했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곧 끝나고 소설 속의 배경 런던으로 돌아온다. 과연 이 대목은 5권의 사건과 어떤 연관을 맺게 되는가.
에놀라가 신세 지고 있는 집의 주인 터퍼 부인의 상담으로 시리즈 5권은 사건을 예고한다. ‘전령 비둘기’ 앞으로 온 협박장. 글씨체가 흉흉한 것이, 내용도 흉흉하기 그지없다.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당장 전달하란다.
에놀라는 부인에게 이 글씨체를 아느냐 캐묻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터퍼 부인과의 대화는 언제나처럼 쉽지 않았거니와 부인은 그에 관해 아는 바가 단 1그램도 없었다. 하기사, 척 봐도 그저 선량한 집주인으로만 보이는데, 딱 봐도 어둠의 세계와 좀 연관되었을 법한 쪽지와 관련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쪽지는 터퍼 부인에게 정확하게 배달됐다. 부인은 부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전령 비둘기가 됐단 말인가?
에놀라는 누군지 모를 협박장 발신인을 떠보기 위해, 그리고 뭔지는 몰라도 터퍼 부인은 그 일과 무관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면에 메시지를 싣는다. 그리고 얼마 뒤, 터퍼 부인은 결코 신사적으로 보이지 않는 두 명의 남자들에게 납치를 당하고 마는데......
난장판이 된 집안에서 에놀라가 건진 건 혼인 서류 등을 통해 터퍼 부인의 이름(First name)이 디나라는 것뿐이다. 범인이 누구이며, 왜 터퍼 부인을 납치했는지, 전령 비둘기가 전할 메시지는 어디 있는지 등 사건의 주요 실마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때 문득 에놀라는 잔뜩 헤집어진 부인의 옷장에서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크리놀린을 발견한다.
자고로 ‘크리놀린’이란 드레스를 맵시 있게 보이도록 보정시켜 주는 구조물이다. 허리를 얇게 보이고자 치마의 부피를 사방으로 늘린 바람에 여자들은 균형 잡기 어려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혼자서는 하기 힘들었으며, 마차 바퀴에 옷자락이 끼는 일도 다반사였고, 바람이 불면 몸을 제어하기 힘들어 추락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좌우간 의복 구조상 드레스를 입기 전에 받쳐 입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속옷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터퍼 부인의 크리놀린은 좀 이상했다. 아무리 멋을 중시한다고 해도 그렇지, 장미와 데이지 등 꽃을 수놓은 리본이 너무 많이 달려 있지 않은가?
에놀라는 본능적으로 이 크리놀린이 비밀을 품고 있음을 느낀다. 시리즈 제목에 나온 ‘비밀의 크리놀린’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에놀라는 터퍼 부인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과연 크리놀린 장식 리본에 숨은 비밀은 무엇일까? 납치된 터퍼 부인의 행방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부인을 끌고간 것일까?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사회적 계몽 및 여성의 계몽을 테마로 한다. 1권과 2권에서는 에놀라와 그녀의 엄마의 행동으로, 또 레이디 세실리의 특별함으로 달라지고 있는 사회상, 여자들의 의식 변화 등을 나타냈다. 3권과 4권에서는 꽃다발이나 부채 등 남자들은 잘 모르는, 혹은 관심을 갖지 않는 여자들의 영역과 연관된 소품을 통해 실종 사건을 푸는 에놀라의 면모로 직접적인 성과를 어필하기도 했다. 이번 5권에서는 앞서 예시로 든 두 가지가 전부 등장한다. 바로 역사적 인물,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로 대변되는 계몽적 인물과, 사건의 실마리를 간직한 ‘여성용 드레스 치마 보정물’ 크리놀린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논픽션이다. 작품 속에 나온 나이팅게일이 실존 인물이라 해서 소설 내에서의 그녀의 행동까지 현실인 건 아니란 거다. 하지만 작가 낸시 스프링어가 실제 인물로 글의 박진감을 더한 건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맛에 작가들이 실존 인물을 재해석하는 건가?
다만 데이지도서 제작 과정에서 난 오류인지, 아니면 묵자책 원본 자체의 오류인지는 몰라도, 재활통신망 도서관 ‘넓은마을’의 도서는 파일에 문제가 있었다. 빈 페이지가 나오면서 중간 내용이 없는 대목이 몇 부분 있었던 것이다. 한두 페이지가 통째로 빠져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힘들었다. 어떤 대목은 그냥 이해를 포기하기도 했다.
다행히 재활통신망 도서관 아이프리의 데이지도서 5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최소한 5권만큼은 아이프리 도서관을 이용하라고 권하겠다.
사진 설명: 조명으로 환한 꽃 마차의 모습. 봉평 이효석문화제 야간 포토존에서 찍었다.
- 어디든 여행을 가려면 마차는 필수! 삶으로의 여정을 마치고 떠나는 여행이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지해 떠나는 여행이든 말이다. 시리즈 6권에서 에놀라와 그녀의 엄마 유도리아 버넷 홈즈를 생각하니 이 마차가 떠올랐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6 - 집시여 안녕(The Case of the Gypsy Goodbye)
“꽃의 마리아의 따님이여, 그대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분은 우리에게 성모 마리아나 다름 없단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6권에서는 서로 다른 두 명의 여자에 대해 다룬다. 한 명은 1권부터 실종 상태고, 주인공 에놀라가 그 행방을 찾아내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바로 홈즈 남매의 어머니, 유도리아 버넷 홈즈 말이다. 이번 인트로는 셜록 홈즈가 에놀라의 본가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밤에 문 앞에 놓인 소포. 어째 불길한 느낌이 들어 집안의 관리인들은 실종된 부인과 가출한 아가씨 대신 대탐정 셜록 홈즈를 호출한다. 기묘한 무늬로 가득한 봉투를 본 셜록, 그는 그 그림에서 어머니의 자취를 발견한다. 그리고 아마도 소포의 주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여동생 에놀라를 찾아 만나려고 한다.
그와는 별개로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 에놀라에게 꽤나 높으신 의뢰주가 찾아온다. 무려 공작이란다. 카탈로니아 왕족 혈통의 듀케이 루이스 올랜도 델 캄포. 설명이 장황하지만, 사실 책 읽으면서 이 양반이 누구지 하며 그냥 병풍 취급하고 지나가 버렸다. 여하튼 중요한 건 이 공작님의 절세미인 아내 블랑슈플뢰르 부인이 참으로 어이 상실하게도 평소처럼 산책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거니까.
공작과 시녀들의 설명에 의하면, 부인은 베이커 스트리트 도셋 광장 지하철역 부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아마 납치나 유괴 같은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부인이 실종된 거리가 하필이면 둘째 오빠 셜록 홈즈의 집과 가까운 곳이다. 법정 성인이 될 때까지 오빠들의 손길을 피하겠다고 작심한 그녀에게는 좀 난감한 장소였다. 그래도 에놀라는 블랑슈플뢰르 부인 실종 사건에 뛰어들기로 하고, 시녀들과의 탐문 조사 후 우선 지하철 탐색에 착수한다. 그런데 거기서 의외의 인물, 엄마의 행방을 아는 듯한 집시를 만나고, 터퍼 부인을 방문하려고 찾은 나이팅게일 저택에서 대탐정 셜록 홈즈 오빠와도 만나 엄마에게서 온 소포를 전달받는데...... 여차저차한 우여곡절 끝에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셜록 홈즈, 에놀라 홈즈 삼남매가 모이고, 완벽한 귀족 여인 블랑슈플뢰르 부인과 자유로운 여인 유도리아 버넷 홈즈, 실종된 두 여자의 행방이 풀리게 되는데...... 서로 다른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여자의 행방은 과연?
이번 6권 《집시여 안녕》은 에놀라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 그래서인지 전편에 등장했던 악당들이며 홈즈 삼남매며, 서로 다른 환경의 두 여인까지 스치듯 나오거나 같이 협동하거나, 두 종류의 수수께끼가 함께 풀린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블랑슈푀르 부인의 모습이었다. 뭐였더라, ‘청초한 여성미에 핀 한 송이 하얀 꽃 같은 여자’라고 했던가?
참으로 시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 듀케이 루이스 올랜도 씨의 모습은 얼핏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로맨티스트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실 그의 표현은 그 시대 남자들 특유의 ‘무지함’을 나타내기 위한 서사적인 장치였음이 책 말미에서 밝혀진다. 블랑슈푀르 부인은 확실히 위기에 처했고 극박한 상황이었다. 강도에 살해까지 당할 뻔했다. 하지만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당연히 도망쳐야 마땅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바닥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가운데 단연코 가장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나는 코르셋에 악명은 들어서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그런 지경의 사례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나도 충격을 먹었지만 소설 속의 에놀라의 첫째 오빠 마이크로프트도 놀랐던 모양이다. 그나마 둘째 오빠 셜록은 5권에서 나이팅게일과의 면담으로 얼추 진상을 일부나마 알게 됐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아니니까.
그 일이 계기가 된 건지, 마침내 홈즈 삼남매가 여동생 에놀라의 15살 생일을 기념해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드디어 남매의 어머니, 행방이 묘연했던 유도리아 홈즈가 남긴 편지의 비밀도 풀린다.
사진 설명: 분홍색 꽃밭에 저 혼자 녹색 잎을 내밀고 있는 쑥.
- 당당한 모습이 참 눈에 콕 박힌다. 남들과 좀 다르면 어때? 내가 좋고 만족하면 됐지!
“먼저 사람이 되지 않고는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 전권에서 제법 공을 들인 건 ‘암호’이다. 부채 언어, 꽃말 등 여성적인 소품을 암호에 잘 녹여냈을 뿐더러, 리본에 수놓인 꽃을 통한 모스 부호, 가명에 쓰인 알파벳 배치를 통한 암호, 옛날 그리스에서 기원한 발신자와 수신자 모두 가지고 있는 같은 굵기의 막대기에 종이를 둘러야 메시지가 해석되는 스키테일 등 다양하다. 솔직히 추리소설이니 만큼 그런 암호를 풀어보거나 유추하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모스 부호 같은 건 소설 내에 풀이용 도표가 생략되어 있어서 시각장애인인 나는 그냥 그러려니 원리만 알고 넘겨야 했다는 게 아쉬움이다. 차라리 어디서 모스 부호를 배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점자’의 시초도 원래는 군사 암호였다. 밤에 불빛 없이 읽을 수 있게, 또 적군이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촉지 문자.
어째 소설 속에서 이 점자가 암호로 사용되지 못한 게 좀 아쉽기도 하다. 시각장애인인 나는 누구보다 잘 풀 자신이 있는데......
또 작가 낸시 스프링어가 에놀라 홈즈 시리즈에서 공을 들인 부분은 여성운동과 사회적 계몽, 그리고 ‘삶의 자유’라는 측면이다. 셋 중 둘은 앞에서 열심히 설명했으니 됐고, 마지막 ‘삶의 자유’를 좀 논하고자 한다. 소설에서 나타내는 삶의 자유란, 사회적인 틀에, 혹은 부여받은 어떤 역할에 자신을 맞추기 전에 스스로의 자아를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표상하고 있는 게 바로 홈즈 삼남매의 모친이다.
물론 그녀의 행동 일부는 우리네 가치관에 맞지 않기도 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했다는 생각도 없지 않고 말이다. 아무래도 자녀 양육 문제에 있어 ‘희생’을 운운하는 건, 아무리 서구화가 되고 개방적인 가치가 자리했다고 해도, 동양적 전통 가치에는 쉽게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유도리아 버넷 홈즈의 선택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건,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고, 아빠도 ‘아빠’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출판사의 ‘교정사’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맡은 역할에 빠져 다른 것 모두를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책임일 수도 있고, 소신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다. 따로 떨어져서 볼 때는 괜찮아 보이지만 과하게 하나에 몰두하면, 그 외에 다른 건 삶에서 빛바래고 만다. 그리고 그런 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내 삶에 주체가 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그런 사람이 남녀를 떠나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6권에 걸쳐 말하는 듯하다. 코르셋으로 조여서 모래시계 닮은 S라인 몸매가 아닌, 크리놀린으로 잔뜩 부풀린 허세처럼 보이는 치마가 아니라, 진짜 아름다움은 그런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