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 명의 ‘국민음식’ 김치찌개
유지상의 대한민국 맛집 지도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눈으로 먹고, 귀로도 먹는다.
앙증맞게 예쁜 케이크는 눈이 즐거워야 제 맛이고, 아침에 먹는 콘플레이크는
아사삭 소리가 안 나면 맛이 없다.
이름부터 부드러운 마시멜로는 혀에 닿는 촉감이 먼저다.
미각에 앞서 시각, 청각 등 다른 감각으로 맛을 즐기는 메뉴가 있다는 얘기다.
겨울이면 코를 사로잡는 음식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국민 5000만 명이 열광하는 김치찌개다.
사무실이 밀집한 빌딩가 점심시간, 직장인들은 두 손을
두꺼운 외투 주머니에 넣고 자라목을 한 채 먹을 것을 찾아 나선다.
순간 동장군의 칼바람을 타고 날아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시큼하게 잘 익은 김치찌개 냄새. 바로 머리를 빼 들고 냄새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동시에 머릿속엔 ‘오늘 점심 메뉴는 김치찌개’가 된다.
함께 나온 직장 동료들과의 눈 맞춤은 ‘콜’을 확인하는 요식행위일 뿐.
함께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몇 집을 건너왔을지도 모를 그곳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곤 모두들 콧등의 땀을 연신 훔치며 “시원하다”를 연발하며 배 두드리고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김치찌개는 국민 음식이다.
직장인에게는 점심 선택 메뉴 1위다. 저녁상에선 하루 일과를 풀어주는
안주 메뉴로도 변신한다. 집집마다 고유의 맛을 간직한 절대 음식이다.
김치찌개
김치찌개는 겨우내 물리도록 밥상에 올라오는 단골 메뉴였다.
김장김치가 질릴 때쯤 되면 냄비로 옮겨 담아, 식용유를 붓고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고 졸인다. 물을 많이 잡으면 김칫국이 되고,
물을 덜 잡으면 김치찌개가 된다. 불세기를 줄여 졸이면 김치찜이 된다.
김치만으로 아쉬움이 남으면 콩나물을 넣어 콩나물김칫국을 끓였고,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술안주로 내놓으려면 두부라도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월급날이라도 된다면 돼지고기를 사다 기름 맛이 지나간 김치찌개를 밥상에 올렸다.
김치찜엔 꽁꽁 언 고등어를 더해 한겨울 가족들의 영양을 보충시켰다.
김장김치와 김치찌개, 그리고 그 아류인 김칫국과 김치찜이 겨우내 밥상 위에 올라도
반찬투정 없이 새봄을 맞았다.
우리가 아직까지 김치찌개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소울푸드(soul-food)의 중독성 때문이다.
찌그러진 냄비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찌개 국물 한 숟가락을 ‘호호’ 불어
입에 넣으면 뽕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나는 마력의 중독성 말이다.
김치찌개를 언제부터 먹었는지 유래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변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조각을 모아 추측할 뿐이다.
우선 고춧가루를 넣어 담근 김치의 역사는 미천하다.
고춧가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 전후이고,
김장용 통배추가 재배되기 시작한 게 조선말기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굶주림이 일상이던 시절엔
김장 자체도 호사였다. ‘찌개’라는 음식의 형태 역시 조선 말기에 나온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조치’라는 이름으로 나온 걸 보면
고작해야 한 세기 정도밖에 안 된 음식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 “밥할 줄 아세요?”라고 물으면,
‘그럭저럭 해먹을 수 있다’라는 표현을 “김치찌개 정도 끓일 수 있어요”
라는 답으로 대신한다. 사실 그렇다. 별다른 재료 없이 잘 익은 김치만 있으면
물만 부어 끓여도 그만이다.
여기에 두부 한 모 사다가 넣어 주면 국물이 약간 걸쭉해지면서
시큼한 맛이 순해진다. 돼지고기 몇 점 더해 주면 먹는 이의 감동까지
끌어낼 수 있는 전문요리사의 작품 수준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신김치, 두부, 돼지고기의 삼총사가 들어가야
진짜 김치찌개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김치찌개 전문점은 김치부터 다르다.
대부분 김치찌개용 김치와 밥 반찬용 김치를 따로 담는다.
반찬용은 일반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무를 채썰어 고춧가루에 버무려
만든 김치소를 넣지만, 찌개용은 김치소를 쓰지 않는다.
찌개를 끓이면 소가 빠져나와 국물이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에 깔끔하게 고춧가루와 마늘,
그리고 젓갈(사용하지 않는 곳도 있음) 등의 양념으로
버무려 잘 익힌 후 찌개용으로 사용한다.
김치
묵은지를 고집하는 곳에선 조금 짜게 담가 6개월 이상 숙성시켜
신맛이 강하게 끓여 내는 곳도 있다. 요즘엔 김치찌개에 김장김치 대신
총각김치나 깍두기를 쓰는 곳도 있고,
파김치를 넣어 단맛과 감칠맛을 더한 곳도 나왔다.
돼지고기 대신 참치나 꽁치통조림, 심지어 치즈까지 넣어 변화를 준 곳이 등장했다.
이제 김치찌개는 김치냉장고의 보편화로 가정에서도 언제든지 끓여 먹을 수 있다.
전문음식점을 찾으면 한여름에도 맛볼 수 있다.
그렇지만 김치찌개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날, 언 몸으로 둘러앉아
찌그러진 냄비 안에 숟가락을 부딪혀 가며 먹는 게 역시 제맛이다.
김치찌개는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친숙하다.
쉽게 끓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하지만 분명 맛집은 따로 있다.
유지상의 추천 음식점
01. 장호왕곱창
전화 02-756-5070
주소 서울 중구 순화동 6-16
가격 김치찌개 7000원, 짤라 8000원
원래는 곱창집이었는데 곱창 손님들이 식사용으로 주문한 김치찌개가 인기를 얻으며
주객이 전도됐다. 멀리서도 강력한 신맛을 느끼는 김치찌개다.
반찬으로 신김치 하나 내놓다가 최근 콩나물무침을 추가했다.
찌개가 끓는 동안 ‘짤라’라는 소곱창에 소주 한잔 하는 게
이 집에서 맛있게 즐기는 순서다.
02. 광화문집
전화 02-739-7737
주소 서울 종로구 당주동 43
가격 김치찌개 7000원,계란말이 5000원
허름한 건물에 빛바랜 간판. 1977년 문을 연 이래 변함 없이 한자리에서 영업한다.
김칫국물과 물을 3대 1로 섞은,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소주잔을 절로 부른다.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꼭 “계란말이는?”이란 물음이 되돌아온다.
얼큰한 찌개 맛을 달래는 단짝메뉴인데, 평범한 맛이지만 푸짐해서 좋다.
03. 조아저씨 김치찌개
전화 02-752-1927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23
가격 김치찌개백반 7000원
신김치에 돼지고기, 두부는 물론 떡과 소시지까지 들어간 부대찌개 스타일이다.
국물은 쇠고기육수에 고춧가루를 주재료로 한 양념장을 풀어 끓인다.
서소문 일대의 젊은 여성 회사원들이 주고객이다.
이색적으로 술안주용 김치찌개가 따로 있다.
이는 백반에 딸려 나오는 조밥 대신 찌개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주는 것이다.
04. 굴다리식당
전화 02-712-0066
주소 서울 마포구 도화동 181-45
가격 김치찌개 7000원,제육볶음 1만원
1977년 문을 열 당시 주변 인쇄소직원, 지하철 공사장 인부들에게 내놓던 메뉴다.
후다닥 먹고 일터로 돌아가라고 미리 끓여두었다가 내놓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신 양이 푸짐하다. 부족하면 무한 리필도 가능하다.
사골 육수에 끓여내 신맛은 약하지만 맛이 깊고 진하다.
05. 한옥집
전화 02-362-8653
주소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178
가격 김치찌개 7000원,김치찜 7000원
김치찌개를 살짝 업그레이드한 김치찜이 주특기다.
김치를 통째로 얌전하게 뉘여 국물을 자작하게 붓고 푹 익혔다.
김치만 넣으면 너무 심심하니깐 비계가 적당히 달린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함께 익혔다. 푹 익은 김치를 손가락으로 쭉쭉 찢어 돼지고기를
싸먹는 재미가 있다. 김치찌개나 김치찜이나 가격은 동일.
06. 은주정
전화 02-2265-4669
주소 서울 중구 주교동 43-23
가격 점심 7000원,저녁 1만원
쌈 채소가 등장하는 김치찌개집. 김치찌개 안에 넉넉하게 들어간 돼지고기를
싸서 먹으라고 내놓는다. 2인분 같은 1인분을 줄 정도로 인심이 넉넉하다.
그런데 기본 찬은 접시에 살짝 깔아 좁쌀만큼 준다.
남기는 반찬은 모두 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추가를 원하면 언제든지 O·K다.
07. 장꼬방 묵은 김치찌개
전화 02-522-0035
주소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38-8
가격 김치찌개 7000원,장꼬방구이 8000원
묵은지를 돼지고기와 함께 끓여낸 김치찌개.
다른 집에 비해 김치나 국물 색깔이 짙고 신맛이 강한편이다.
아쉬운 점은 돼지고기 양이 다르다. 김치찌개의 단짝메뉴로 장꼬방구이와
계란말이가 있는데 장꼬방구이가 더 인기다. 양파 슬라이스랑 철판에 담겨 나온다.
양파의 아삭한 맛이 고기의 느끼한 맛을 줄여 준다.
08. 현대정육식당
전화 02-540-7205
주소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5
가격 김치찌개 7000원,계란찜 5000원
서울 강북지역의 은주정, 장호왕곱창, 광화문집과 대적하는 강남의 대표 김치찌개집.
멸치와 새우젓 등 젓갈을 듬뿍 사용해 감칠맛이 강하다.
김치와 고기는 크게 썰지만 양파, 생강, 풋고추 등양념류는
모두 믹서에 갈아 넣은게 특이하다. 뚝배기에 익혀 나오는 계란찜은
연두부처럼 입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기고자: 유지상
월간헬스조선 2015,2월호(184페이지)에 실린 기사
헬스조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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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장호 왕곱창은 짤라로 더유명하다. 동화약품 본사 입구에위치하고있다. 옛날 선술집같은분위기, 이곳단골손님은 김순일, 이상구, 한영수. 고의남. 이훈기, ,,등 많은 동기들이 단골이다. 현역시절 박연수동기도 이곳에서 만났다. 소의내장을 푹삻아서 가위로 뚝뚝잘라서 소금에 찍어먹는데 한접시면 3 명이 점심 반주 안주로그만이다, 12시에서 1시 사이는 앉을자리가없다. 김치찌개는 보통수준......
한영수초청으로 나도 한몪을 그때 소주한잔하면서 나누던 덕담들 생각납니다, 짤라는 특히 유명한 장호 왕곱창메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자리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