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3.목 새벽예배 설교
*본문; 행 3:1~5
*제목; 바라봄의 법칙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 3:1~5)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30번 이상 스마트폰을 본다고 합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6분에 한번 꼴로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우리 뇌에 입력되는 정보의 80% 이상이 시각적 정보이므로, 스마트폰은 우리 뇌의 주 정보 입력원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다닙니다. 막대한 양의 시각적 정보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청각적 정보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뇌는 단 1초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신동원`씨는 현대인의 만성적 두통의 원인이 바로 이러한 뇌의 혹사라고 말합니다.(그의 책 <멍 때려라>)
뇌가 쉬고 재정비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멍 때리는 시간"을 자주 가질 것을 조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뇌는 혹사하고 있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을 하는 걸인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는 성전 문 앞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성경의 `3절`에 보면 "에이도"(to see)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기는 보는데,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보고 베드로 사도가 그의 시각을 고쳐줍니다.
`4절`의 "보라"고 할 때 베드로는 헬라어로 "블레포"(look at)라고 합니다.
집중해서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에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또 구원하신 예수님을 보게 합니다.
그의 이러한 바라봄이 새롭게 고쳐지고 나니, 그의 평생의 짐이었던 육신의 질병도 일시에 낫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바라보아야 하고, 깊이 생각해야 하는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너무 많습니다.
성경은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라보는 대로, 삶이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시각을 고쳐줌으로 그의 다리까지 낫게 합니다.
이제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바라보는 시각과 주님의 뜻을 생각하는 마음을 놓치지 마시기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우리는 너무 많이 복, 너무 많이 생각하지만, 정작 보아야 할 주님은 보지 않고, 생각해야 할 말씀을 생각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에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것과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