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시혜적 차원이 아닌 실질적 보상과 함께 예우·기념사업 중심의 보훈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받아야 사회정의가 바로 선다’는 차원에서 실시되는 보훈정책을 통해 국민통합과 정체성 확립에도 애쓰고 있다.
또 반민족·반국가적인 행위를 엄정하게 처단하고 부끄러운 과거사를 철저히 단죄한 이들 국가 유공자들은 물질적·정신적 보상과 함께 사회적 예우와 존경 등 국빈 대우를 받고 있다.
◇각국의 보훈정책=프랑스는 국방부 향군성과 재향군인·전쟁피해자 사무국이 보훈 정책을 전담해 연간 약 63조원의 예산으로 유공자 4백50만여명에게 보훈혜택을 실시한다. 올해 기준으로 2조1천4백억원(전체 국가예산의 1.7%)에 불과한 우리 보훈처 예산과는 비교가 안된다.
보훈 대상의 중심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한 레지스탕스들이다. 프랑스 정부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보훈정책을 전담하는 제대군인청을 별도로 설립해 운영중이다. 제대군인청 아래는 전국적으로 100개 지부, 10개 재활직업학교, 15개의 양로원과 보훈병원이 있어 레지스탕스 출신 유공자들을 돌보고 있다. 또 유족에게는 연금지급뿐만 아니라 기업체 의무고용 규정을 마련, 전원에게 취업을 보장한다. 경제적 지원과 함께 공로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예우, 기념사업도 활발하다. 제대군인청 추모유산사료국은 레지스탕스과를 따로 설치, 관련 자료만 보관·연구하고 있다. 또 파리 시내를 비롯해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전국 각지의 도로, 거리, 공원, 광장 곳곳에 레지스탕스 요원의 이름을 붙여 이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덴마크는 2차 대전 직후 사회보장성을 만들어 1940~45년 독일군 점령 아래서 희생된 유공자와 유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레지스탕스에게는 매년 일정액을 지급하는 ‘영예의 선물’ 제도를 별도 운영, 특별 우대하고 있다. 보상금은 유공자 본인과 유족에게 지급하고 각종 의료 보조 장비도 무료로 제공한다.
미국의 보훈부 예산은 2001년 기준으로 총예산이 약 5백86억달러로 전체 예산의 2.7%이며 이는 15개 부처 중 6번째 규모다. 직원도 연방공무원 중 13%를 차지해 국방부에 이어 2번째로 많다.
보훈부는 유공자들과 유족에 대한 연금·보상금 지급과 함께 각종 시설을 마련했다. 유공자만을 위한 의료시설도 병원 163개, 진료소 850개, 요양원 137개, 정형·보철 연구소 69개에 이른다. 이밖에 유공자의 사회 적응을 위해 전쟁쇼크를 치료하고, 재활교육·취업을 통해 자립을 도와주는 등 사회적응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립묘지를 학생과 시민의 교육 여행코스로 개발하는 등 기념사업도 활발하다.
캐나다는 유공자와 관련된 각종 기념 사업에 많은 예산을 할당하고 있다. 특히 제대군인부는 산업부와 제휴해 가상전쟁기념관을 만들어 유공자의 업적과 희생을 담은 자료와 디지털 영상사진을 제공, 젊은세대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국가보훈처 고희주 연구원은 “선진국의 경우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기념사업과 같이 상징적인 측면의 보훈정책도 잘 돼 있어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충성심과 애국심을 키워준다”며 “이처럼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도록 하는 것이 잘된 보훈정책”이라고 말했다. 수원대 박환 교수는 “국가 정체성 확보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인 만큼 선진국 사례처럼 젊은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보훈정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반민족·반국가적 행위 처벌은 보훈정책의 기본=이들 국가는 또 반민족·반국가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 과정을 거쳤다. 반민족·반국가적인 행위에 대한 청산과 단죄가 있었기에 이들 국가의 보훈정책은 빛을 더한다. 또 이 때문에 유공자들의 자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밀고 등 대독 협력행위와 부역행위가 드러나면 주저없이 처벌했다. 드골 임시정부는 1944년 ‘부역자재판소(Cour de justice)’와 ‘공민권 박탈’ 형을 부과할 목적으로 ‘공민재판소(Chambre civique)’를 설치했다. 이 재판 결과 약 5만여명이 ‘비국민’ 인사로 규정돼 공민권을 박탈당했다. 이들의 공직사회 진출도 금지됐다.
같은해 ‘고등법원(Haute Cour de justice)’은 페탱 원수와 라발 전 총리를 필두로 친독 비시 정부 고위 관료들에 대한 재판을 실시했다. 부역 문인들에게는 작품 발표금지령을, 부역 공무원들에게는 징계를 내렸다. 친독 언론들도 폐간했다.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의 부역자 처리는 프랑스보다 엄격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종전 뒤 5만여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독일에 대한 부역 행위 등으로 구속된 사람들의 비율은 프랑스가 10만명 당 94명, 벨기에 596명, 네덜란드 419명, 노르웨이 638명이다.
민족문제연구원 김도훈 연구원은 “국가적으로 반민족행위를 처벌한 경우 국민들이 독립운동가를 자연스럽게 국빈으로 인식한다”며 “과거사를 철저하게 단죄한 선진국이 독립유공자에 대한 높은 수준의 보훈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조동걸 위원장도 “과거청산 절차가 없으면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포상은 시작부터 뒤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佛 유공자, 지도층으로 국민 존경 한몸에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독 항전에 나선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은 지금도 정치·사회·문화·종교·예술 등 각 분야에서 지도층으로 활동하며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있다. 친일 경력의 인사는 찾기 쉬워도 항일 경력의 인사를 찾기 힘든 우리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8차례에 걸쳐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1위에 오른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 아베 피에르 신부도 레지스탕스 출신이다. 1938년 서품을 받은 피에르 신부는 1941년부터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했다. 그는 당시 핍박받던 유태인들을 스위스로 피신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에게 체포됐다 탈출하는 등 죽음의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피에르 신부는 1945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1951년까지 정치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에는 빈민을 위한 공동체인 엠마우스 재단을 설립해 빈민구제 운동에 헌신했다.
언론계·문학계에도 레지스탕스 출신들이 많다. 지난해 1월 타계한 프랑스의 진보적 언론인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지루 여사도 레지스탕스 활동 경력이 있다. 독일군에게 체포, 수감된 경험이 있는 그는 종전 뒤에 사회당 계열의 논객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때인 1974~76년에는 여성문제담당장관을, 1976~77년에는 문화장관을 역임하며 공직에 몸담기도 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적(知的) 거인 사르트르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이듬해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가 1941년 탈출했다. 사르트르는 그 뒤 지식인 저항그룹을 만들어 종전까지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도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유명하다. 독일군 점령하의 1942년 ‘이방인’을 발표, 찬사를 한몸에 받은 그는 1943년부터는 좌파지 ‘콩바’의 편집장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했다. 1945년에는 전시 중에 썼던 4편의 편지 형식 글을 묶어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독일인의 편협한 애국심의 폐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北, 친일 뿌리뽑고 ‘투사’ 특별대우
북한은 해방이 되자마자 곧바로 친일 청산 작업에 들어갔다. 또 헌법 전문에 독립지사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못박아 보훈정책을 실시했다.
지지부진했던 친일청산과 미미하기 그지없었던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훈정책을 실시한 남한과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김일성 정권과 다른 노선을 걸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는 숙청작업을 펼쳤고 독립유공자 선정에서도 배제했다.
북한의 친일청산 작업은 ‘과거 일본 통치의 일체 잔여를 철저히 숙청하고 일본 통치에 사용된 법률과 재판기관을 폐지한다’는 정강에서 시작됐다.
북한은 토지개혁법 등에 따라 민족 반역자들이 소유했던 주요 산업을 국유화해 친일파의 경제적 기반을 구조적으로 해체했다. 또 1946년 친일파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해 정치 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엄격한 친일 청산과 함께 북한은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에 대해 특별대우를 실시했다. 국가보훈처 김종성 연구원은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은 항일투쟁공로자를 ‘혁명투사’로, 그 가족은 ‘혁명열사가족’으로 정해 특별보호를 하고 있으며 공로자·연로·노동력상실·유가족 연금 등과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민보건법에 혁명열사가족의 건강 보호와 치료 혜택을 명시하고 전용병원을 설치해 운영중이다. 이밖에 애국열사 유자녀에 대해 유자녀 보육원, 유자녀 외국어학원 등 특수 기관에서 교육을 시키고 취업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정권에 반대하거나 비협조적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숙청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북한연구소 김승철 연구원은 “김일성과 공산주의 노선을 같이 한 독립운동가들과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의 만주 독립운동을 도왔던 운동가들만을 혁명투사로 지정했다”면서 “김일성과 뜻을 달리하는 독립운동가는 유공자 지정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조선의 간디’로 불린 고당 조만식 선생이 대표적인 경우다. 고당은 조선물산장려회와 신간회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그는 해방 뒤 소련 군정청에서 설치한 북조선인민정치위원회 위원직을 거부, 조선민주당을 창당해 반공·반탁노선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고당은 한국 전쟁 때 평양형무소에서 숙청됐다. 김연구원은 “김일성과 같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권력 다툼 과정에서 밀려난 이들에게는 독립운동 공로가 인정되지 않아 후손들이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결국 북한의 독립유공자 선정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좌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첫댓글 우리도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나라를 위해 일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