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게 펼쳐진 동해바다는 언제 봐도 가슴을 푸근하게 한다. 가까운 친구와 함께 어둑해질 무렵 작은 항구 난전에서 소주에 회 한 접시 곁들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까맣게 물든 밤바다 저편에는 어느새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환한 전등이 수평선을 수놓는다.
오징어와 관련해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원래 까마귀를 좋아하는 오징어는 바다 위에 죽은 듯 떠 있다가 이를 본 까마귀가 날아들면 잽싸게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기 때문에 오적어(烏賊魚)라고 일컫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오징어란 이름의 유래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오징어와 관련해 ‘오적어 묵계’라는 말도 있다.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1년이 채 못 가 모두 증발해 없어진다는 점을 빌어 믿지 못하거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말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얼마 전 바른재건축실천전국연합 소속 조합 대표자 80여 명이 강원도 낙산에서 연수회를 가졌다. 개발이익환수와 관련해 지난 여름 정부를 상대로 가열찬 투쟁을 벌였던 조합 대표자들은 이번 연수회를 통해 그 동안의 활동을 평가하고 향후 투쟁 방향을 점검하는 등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더욱이 이번 연수회는 그 동안 성공적인 재건축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처한 상황이 달라 한데 모이지 못했던 조합 대표자들이 ‘동지적 결합’을 확인한 자리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서로를 대하는 참가자들의 표정은 시종 밝은 모습이었고 강한 연대의식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시간에는 바닷가 항구에서 막 잡은 생선회 한 접시에 그 동안의 회포를 풀기도 했다. 횟거리 단골손님 오징어도 빠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밤바다에서 절친한 친구와 함께 회포를 푸는’,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그런 자리였다.
연수회가 있기 며칠 전 건교부는 임대주택 건설방안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재건축단지들의 반대는 심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대부분 찬성하기 때문이란다. 발표내용을 보니 약간 완화하는 듯한 조항도 있지만 골격은 예전 그대로다. 이에 대해 일선 조합들은 재건련을 중심으로 규제개혁위원회에 의견서를 전달하는 한편,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수회에서 확인했던 서로에 대한 신뢰가 이런 투쟁 일정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이날의 다짐들이 한낱 ‘오적어 묵계’로 끝나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길 기대한다.
윤규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