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인생에 안서는 언제쯤일까
기원전 101년 중국 한나라의 강력한 위협 세력인 북방 흉노 군주 선우로 차제후가 즉위했다. 차제후는 한무제와 화친하겠다며 그동안 억류한 한나라 사신을 모두 수도 장안으로 보냈다. 이에 한무제도 중랑장 소무를 정사, 장승을 부사로 화친 사신을 흉노에 보냈다. 이때 부사 장승이 선우 차제후가 사냥 간 틈에 그의 어머니를 납치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사전에 발각돼 장승은 흉노에 투항했으나, 거부한 소무는 얼음과 눈의 바이칼호로 유배되었다.
소무는 눈과 가죽옷을 먹으며 버텼고, 사신의 표식인 소꼬리 달린 막대기 ‘부절’로 양을 치며 목숨을 부지했다. 기원전 99년 흉노 정벌에 나선 한나라 장수 이릉은 5천 보병으로 3만 기병에 맞서며 지원군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무제는 약속한 지원군을 엉뚱한 곳에 보냈고 이릉은 패장이 되어 항복했다. 적반하장으로 한무제가 분노하고 대신들도 이릉을 형벌에 처하자 했으나, 오직 한 사람 사마천이 이릉을 변호했다. 이 일로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궁형으로 목숨을 구했다. 오늘의 우리가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수 있는 연유이다.
기원전 97년 한무제는 한나라 장수 이서가 흉노에 귀순한 것을 이릉으로 착각해 그의 가족을 모두 죽여버렸다. 이에 흉노 선우 호록고는 이릉을 가엾게 여겨 자신의 사위로 삼고 우교왕으로 봉했다. 훗날 이릉은 흉노 일족인 호걸부족의 호걸왕이 됐다. 그래서 붉은 머리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의 흉노족 중에 유독 검은 눈이면 이릉의 후손이라고 했던 연유이다.
그렇게 한나라와 결별한 이릉은 한나라 시절 알고 지내던 소무를 만나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며 흉노에 투항 편히 살 것을 권유했으니 ‘조로인생(朝露人生)’의 유래이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87년 한무제는 죽고 소제가 즉위 흉노와 외교 관계가 복원되었다. 기원전 81년 흉노에 간 한나라 사신 상혜는 흉노 선우 호연제의 ‘소무가 죽었다’는 거짓말에 우리 천자께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소무가 어느 늪 속에 있다’는 편지가 발에 매달려 있었다고 역시 거짓말을 했다. 이에 놀란 호연제가 소무를 석방하였으니 기러기가 전한 편지, 먼 곳에서 온 반가운 편지라는 ‘안서(雁書)’의 유래이다. 아무튼, 40여 살에 흉노로 간 소무는 60여 살에 고국에 돌아와 만고충신의 표상이 됐으나 아내는 일찌감치 재혼했고 식구도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오늘날 중국 산시성 셴양시 우궁현의 소무 무덤은 산시성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고 기념관도 있어 위대한 소(蘇)씨 조상을 추앙하는 참배객이 이어진다. 또 간쑤성 우웨이시에도 소무의 무덤과 사당이 있고 양을 몰고 가던 길이라는 ‘양로(羊路)중학교’가 있다.
이 인생무상의 조로인생과 기러기 발의 편지 안서의 유래에 근간의 우리 현실이 겹쳐진다. 해방 뒤 친일파 척결 무산에 친일파는 득세하고 독립지사 후손은 곤궁에서 벗어나기 힘든 세태가 되었다. 그뿐인가? 개 입에 사과를 물린 윤석열 개사과는 불법 계엄 내란이 되고, 정용진 멸치와 콩의 ‘멸공’은 ‘문재인을 깨부순다’는 윤석열의 ‘달파멸콩’을 낳아 ‘탱크데이’, ‘책상에 탁’으로 커서 비하 응원가 ‘가야지 스타벅스’의 괴물이 됐다. 또 그뿐인가? 스타벅스가 5·18과 무슨 관계냐는 이진숙의 빵은 배재고 화환폭탄으로 빵 터지고, 벌건 눈을 번뜩이는 장동혁의 부정선거 밥그릇에 추종자 전한길, 황교안, 전광훈의 부정선거 구더기까지 구물댄다.
그나마 다행은 이번 배재고 조롱응원가 사태가 두 학교의 사과와 포용으로 화해의 길에 들어섰고, 그 혐오와 차별적 응원을 ‘표현의 자유’, ‘5.18이 성역이 됐다’, ‘북한의 모습 같다’라며 남의 자유는 무시하던 총리급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부위원장 이병태가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내란을 가슴으로 이해한다’라며 국회 계엄해제 요구안 표결에도 불참한 인요한이 전쟁과 재난, 질병, 빈곤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보호하는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된다고 하니 첩첩산중에 가슴은 시커멓게 탄다. 덧없고 짧은 조로인생에서 우리 민초들이 진정 희망과 기쁨의 안서를 받을 날은 언제쯤일까? 올려다보는 7월 하늘이 무덥기만 하다.
조로인생에 ‘안서’는 언제쯤일까 – 호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