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이 엄격한 관상(觀想)수도회. 가르멜은 하느님이인간들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산의 이름이다. 이수도회역사의 뿌리는 구약의 엘리야예언자(1열왕 17-19장)까지 소급한다.예언자엘리야도 이 산에서 늘기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가르멜수도회는 특별한 창설자가 없다. 가르멜산에은수자(隱修者)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수도회창설의 시작이었다. ‘은수자의 골짜기’에는 570년경에 벌써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피아첸자(Piacenza)의 한순례자는 기술하였다. 가르멜수도회는 구약을 거쳐 신약에 이르면서성서를 토대로하느님의 말씀을수도회삶의 바탕으로 삼았다.
1205년부터 1210년까지예루살렘의 초대주교였던 성알베르토(St. Albertus)에 의해 성 브로카르도(St. Brocardus)수사에게공동체삶을 통한은수자적인수도회의 첫 규칙서가 주어졌다. 이 규칙서는 1247년 교황인노첸시오4세에 의해 탁발(托鉢)수도회로 인준되었다. 가르멜산에서 주어진 이 첫회칙(會則)은 이미 체험되어 온은수자적인 삶과 정신에 따라 수정과 정리를 가한 것이다.예언자적이며 관상적인 엘리야는 지금도 가르멜수도회정신과 삶을 이끄는 교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십자군의 패배로 13세기에 새로 일어난 탁발교단의 형식에 순응하여 가르멜수도회도 한때 규율이 해이되고 쇠퇴해 갔는데 아빌라의성녀데레사와십자가의 성요한에 의해 초기 가르멜의 정신으로 중대한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렇게개혁된수도회를 ‘선족(跣足, 맨발) 가르멜회’(라틴어로는 Ordo Carmelitarum Discalceatorum, 영어로는 The Discalced [Barefooted] Carmelites)라고 하며, 현재 한국에 있는 가르멜수도회는 여기에 속한다.
가르멜수도회의 순수 관상의 정신은 하느님과 직접적이고 내적인 삶의 체험을 무엇보다선행시키며 중요하게 본다. ‘가르멜산의 복되신동정마리아의수도회’라는 명칭이 말하고 있듯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영성적 전통은 가르멜의 소명이성서적이고성모신심적인 성격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수도생활자체를성모님께 맡기고 그리스도와의 일치의신비를 생활화하는데 그 소명을 두고 있다.
가르멜수녀회(Carmelitae, Carmelites Sisters) : 이수녀회는 13세기부터존재하였으나 교황니콜라오5세의 인준에 의해 정식 설립되었다.이탈리아피렌체의 ‘Our Lady of the Angels'수녀원이 그 최초이다. 엄격한 봉쇄의 규율 아래 끊임 없이기도하고복음의 정신에 따라 자신을 포기하며,사도직을 도모하고교회전례와 하루 7회의성무일도, 두시간의묵상기도 등으로수도생활에 전심한다. 아빌라의성녀데레사는 심원한 영성생활을 통해 깊은신비적 체험으로교회의생명자체 안에 침투해 갔으며 모든 힘을교회봉사에 기울이고자 가르멜을개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수녀들의서원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서원하는 그 순간부터교회를 위하고 이웃을 위한 도구가 된다.
가르멜제3회(Third Order of Carmel) : 가르멜재속회(在俗會)라고도 하는제3회는그리스도교신자로서 다양한 의무를교회와사회안에서 완수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르멜 3회는 본회의 도움을 받아 데레사적 가르멜의 영성과 지도 안에서그리스도교적 삶을 영위하며,세속에서복음적완덕(完德)을지향하는평신도들의 모임으로, 완전히 가르멜수족(修族)에 속한다. 가르멜 재속 3회는 특히형제회로서 가르멜적 이상에 일치된 생활을 하고, 영성적으로 고귀한 도움을 보장하며 제 1회에 대한 아름다운 관계를 가꾸어 나간다. 6개월 정도의 예비과정을 거쳐 입회할 수 있으며, 입회 후 1년 반이다 2년이 지난 다음서약및 착복을 할 수 있고, 그 뒤 3년이 지난 다음 허원을 하게 된다.
한국 진출 : 1939년프랑스의 두수녀가 제1진으로 내한하여 1940년 4월 서울 혜화동의 작은 집에서수도생활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들은 멕틸드, 마들렌 두수녀였으며, 1940년 5월에 앙리에트수녀등 3명이 도착, 그 곳에서 조촐한 가르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최소한의 경비로 1941년 7월수녀원 건물을 낙성하였다. 한국 진출이 일제 말기였기 때문에 일본 경찰의 감시와 조사는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이었고수녀들의 생활난은 1945년 광복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1946년에는 그 동안 입회를 못하고 기다리고 있던 10여명의 지원자가 속속 입회하였다.
1950년 3월 5일, 이들은 창립 10주년을기념하면서 확장계획을 세우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얼마 후 북한의 남침을 당하게 되자수도원의희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날부터의 상처 많은 기록은 이북으로 납치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돌아온 마들렌수녀의 수기 ≪귀양의애가≫에자세히 씌어 있다. 가르멜수녀회는 1953년 10월 부산 피난생활을 마치고 서울 혜화동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1954년 1월에는 그 동안 북한에서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본국에 가서 쉬고 있던 앙리에트수녀와 마들렌수녀를 맞이하였다. 그들은 다시 한국에서봉사활동을 하고자 서울에 왔다. 가르멜수녀원은 그 뒤 발전을 계속하여 서울 수유동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겼으며, 부산?대구?대전,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등에도수녀원을 설치하게 되었다.
가르멜 남자수도회: 가르멜 남자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74년 9월 8일 서울 삼선동에서수사들의 공동생활을 시작한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의 창설 멤버는이탈리아베니스관구소속의요아킴귀초(Joachim Guizzo)신부와 한국인 박병해, 정대식신부, 그리고 또 1명의수사였다. 한국 가르멜수도원은 진출 2년 후인 1976년 2월 인천시 북부 계산동에 대지 7,200평을 구입하여수도원신축공사에 착공, 그해 12월 23일에 입주하였다. 입주 당시수도자수는신부3명, 종신서원(終身誓願)수사1명,청원자2명이었다. 1977년 5월 1일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참석한 가운데축성식이 거행된 뒤, 한국 가르멜수도회는 정식수도원으로 승격됨과 동시에수련수도원이 되었다.
동년 6월에는수도원대성당 및피정의 집이 착공되었는데피정의 집건축목적은 개인 피정을 통해 많은신자가기도생활을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특기해야 될 것은대부분의 한국수도회가 외국인에 의해 창설되었으나 가르멜 남자수도회는 몇 명의 한국인이프랑스에 가서수련과 공부를 마치고 한국인 스스로수도회를 창설한 점이다. 1978년 1월 8일 한국에서는 최초로 4명의청원자가착복식을 갖고수련을 시작해서 다음해 1월 첫유기서원자를 배출했으며, 1980년에는 두 번째로유기서원자를 배출하고 오늘에 이르렀다.수도원의 회원은 현재서원자 7명, 지원자 10명, 모두 17명이며 영성분야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수도회는은수자적이면서도 사도적인 삶, 즉 순수관상생활이면서도교회가 요구하는사목을 담당하려고 한다. 따라서영성신학연구, 영성사목을 위한 연구와 실천들이 이수도회활동의 중추를 이룬다.영성신학강의, 영성대화,고백성사, 피정지도 등이 현재 한국 가르멜수도회가 실천하고 연구하는 분야이다.
가르멜 3회는 1948년가톨릭대학신학부 공베르(Antonius Gombert, 孔安國)신부가 처음 발족시켰으나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서울 수복 후 1953년 수유리 가르멜수녀원에서 다시 피정을 갖게 되었으며회장으로는 고(故)엘리사벳을 선출하였다. 1968년에야총장신부의 인준을 받아 정식으로 가르멜재속회의 발족을 보았다. 1970년 10월교황청의 인준을 받았다. 1979년에는 피정장소를 인천 계산동 남자수도원으로 이전하였는데 현재 허원자 166명, 착복자 25명, 입회자 77명 모두 268명이다.
[참고문헌] C. de Villiers, Bibliotheca Carmelitana, ed. G. Wessels, 2 v. in 9, Rome 1927 / G. Mestres, LexThK25 / P.R. McCaffrey, The White Friars: An Outline of Carmelite History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English-Speaking Provinces, Dublin 1926 / W. Nevin, Heirs of St. Teresa of Avila, Milwaukee 1959 / Andre de Ste. Marie, The Order of Our Lady of Mt. Carmel, Bruges 1913 / 오늘의수도자들, 분도出版社, 1983 / 귀양의애가, 서울 여자 가르멜수도원, 1974. 출처 : [가톨릭대사전] 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9&keyword=%B0%A1%B8%A3%B8%E1%C8%B8&gubun=01&gubun=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