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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동상"
조영만 독일루르한인성당주임신부
참으로 평화로운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 자신을 찾고 있습니까?”
자식들이 부모에 대하여 고맙고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공부시켜 주시고 길러주신, 그렇게 우리를 이만큼이라도 먹고 살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가 부모라면 그것만으로는 좀 섭섭할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무수히 땀방울 쏟아낸 것은 맞지만 그것 모두는 오직 <사랑> 때문이었음을, 나는 나의 땀보다 훨씬 더 너희들을 사랑하였기에 다른 무엇보다 그 ‘사랑’에 대하여 알아주면 좋겠는데, 어느새 사랑’은 쏙 빠져버리고, 그저 ‘먹고 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만 하면 좀 섭섭하지요.
한 인간이 성장하고 자라는 것 속에는 단지 먹고 사는 ‘경제’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절대기준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인격(人格), 최소한 고집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과연 어디에서 여러분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까? 40년 전에는 그랬지요.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오로지 먹고 사는 것에 이전투구(泥田鬪狗)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반만년 걸쳐 내려오던 가난을 벗어내겠다고, 어쩌면 우리들은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까지 일하러 나왔고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아봅니다. 내가 이곳에 와서 했던 고생들, 서러움과 외로운 눈물들... 이것들의 의미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정상적이라면 우리는 우리들이 이곳에서 흘린 땀방울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안에서 찾을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면 우리는 이런 고생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말할 것이고, 정상적이라면 우리는 이곳에 살았기에 더 너그럽고 선선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우리들이 한 모든 고생은 참된 가치를 누리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 이곳에 살았던 덕분에 우리가 잃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 지독한 경쟁과 속도, 전쟁과도 같은 생존악투 속에 ‘의로움’
보다는 ‘이로움’을 좇고, ‘가치’보다는 ‘가격’을 좇아, 안 되면 되게 하고, 돈이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기형의 대한민국’에 살지
않기에, 하루 10시간 죽도록 일하고 끼니는 계단 밑에서 웅크린 채 해결해야 하는
대학의 청소부 아줌마들이 시급 860원 더
올려달라고 하자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은 이들을 길바닥으로 내쫓아버리는
현실을 두고 “참으로 저급하다”하며 과연
저런 곳이 인간의 사회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물을 줄 알게 된 독일에서의 삶일진데, ‘인간은 인간에게 그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리하면 안된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살게 해주신
그 하해(河海)와 같으신 은덕 덕분에 비로소 내 흘린 땀이 의미가 있고 내 젊은 날의
청춘을 뿌듯해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건
적잖이 서글프면서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마 전 교포신문을 읽다 이런 서글픔에 한참 먹먹했습니다. 파독 광부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글릭아우프’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이 독일 땅에 세우겠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조국을 온 가슴에 안고 사는 파독산업전사들 앞에서 ‘여러분과 우리는 잘 살 수 있다!’고 눈물의
약속을 하였던 박 전 대통령이 일구셨던
번영을 기리고, 이곳에 와서 함께 울먹였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분의 비문과 동상 건립을 하자는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은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보였다.”
고 전하고 있습니다.(교포신문 729호 1면)
뒤로는 가도 앞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기억이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그 기억마저도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인간입니다. 저는 노구(老軀)의 세월들께서 왜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데에 결연한 의지를 다지시는지, 그것이 마치 당신들의 한풀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시는지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니까! 이만큼 먹고
살게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억’을 통해서만 나의 모든 고생과 수고를 다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땅에서의 우리네 삶이 너무 옹색해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우리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에겐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박정희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옳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바르고 정당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으며, 불법을
합법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함으로서 편법과 속도가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들어, 옳은 것을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죽거나 병신 되어 나와도 어디 하나 하소연할 데 없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누구입니까?
박정희 덕에 배부르고 등 따수웠던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과연 박정희 때문에 배부르고 등 따수웠던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반댑니다. 박정희가 여러분 때문에 등 따숩고 배부르게 산 겁니다! 박정희 동상이 아니라 차라리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의 고생하던 모습을 동상으로 세우십시오.
그러면 저부터라도 돈 내겠습니다. 경제는 박정희가 살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살린 것입니다.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월남 파병 가서 죽도록 고생했던 사람들과 ‘산업 전사’라는 이름으로 하루 열여섯 시간 노동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가며 피고름까지 빨면서 미싱틀 앞에서,
신발공장 고무 타는 냄새 온 종일 맡으며
고생했던 그 때 그 사람들! 경제를 살렸으면 그들이 살렸고, 나라를 일으켰으면 그들이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이 박정희 동상을
세웁니까? 그래야만 과연 여러분들의
노고와 수고가 ‘한풀이’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제대로 푸는 일이 못됩니다. 그저 30년 전 박정희의 신민(
臣民)으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어디가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더 잘 살게 된 한국에 가도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가 없으니 이곳에다 박정희
동상을 세우면 뭔가 대접 받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것은 박정희 덕에 배불렀던 사람들에게나 할 기대입니다.
기억은 이토록 일방적입니다. 경제를 살리던, 여러분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어떻든지 간에 명백한 사실은, 박정희는 <독재자>
입니다. 독재의 방식과 폭력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민중(民衆)을 신민(臣
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박정희가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 말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찬양’하고자 할 때에는 ‘
일방적인 기억’만으로는 곤란합니다.
박정희 덕에 무고하게 죽거나 다친 이들은 아직도 많이 있으니까요. 정말로 박정희 동상을 지으면서까지 찬양하고 싶으면, 죽기 직전에 이르도록 물 담긴 욕조에
머리를 박고 있었던 공포와, 고압전류로
손가락이 다 찢겨져 나가던 고통과, 내장이 터져 나올 정도로 얻어맞아 그 시신조차 알아볼 수 없어 판결 하루 만에 사형
집행하고 곧 바로 화장(火葬)하여 남편 얼굴도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미망인들의 통곡과, 10년이고 15년이고 아무 죄
없이 옥살이 하면서 피눈물 흘려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기억에 대하여서도 여러분은 답해야 할 것입니다.
조영수, 정규명(동백림 사건 사망자), 김종태, 최영도, 김질락, 이문규, 윤상수, 정태욱, 정태상, 박종영(이상 통혁당 조작 사망자),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산진, 우홍선(이상 인혁당 조작 사망자), 백옥광, 강종헌(간첩 조작 사망자) 외 조작 간첩 사건 사망자 29명, 최종길, 장준하, 김창수 등 의문사 위원회에
올라 있는 82명의 원혼들과 그 가족들의
멍든 가슴에 대해서도 여러분은 답해야 할
것입니다.
30년 후 우리의 아이들이 독일 땅에
세워져 있는 박정희 동상 앞에서 그를 누구라고 이야기 할 것 같습니까?
경제발전의 역군이라구요? 아닙니다.
경제 발전의 역군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셨다고 이야기 할 것이고, 이 사람은 한국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18년간
폭력의 방식으로 내리누른 한국의 독재자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박정희. 이것은 대한민국의 병(病)입니다. 그리고 병은 치유와 극복의 대상입니다. 무엇으로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까? 진리와 자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
경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분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그것 말고도 간직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은 존재입니다.
""무엇에서 가치를 발견할 것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무엇에서 내 의미를
찾고 무엇에서 가치를 발견할 것인가?” 이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저 먹고
살게 해주심만이 여러분 생(生)의 의미 전부가 아니기를 바라고, 육(肉)이 아니라 영(
靈)을 볼 줄 아시기를 바랍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적지 않은 세월이 쌓였으면 내 인생을 돌아보는 일에 최소한의 <영적인 기준>들이 남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은 박정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박정희도 <우상>이고 <
망령>입니다.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은 오로지 참된 인간이요, 참된 하느님이십니다!
인생의 굽이친 협곡 속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무슨 ‘조국 근대화’도 아니었고, ‘민족중흥의 사명’도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던 그 진퇴양난 속에서 우리는 참 인간의 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참된 인간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께서 오늘날까지도 나를 이끌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찬양해야 할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살면서 으뜸가는 것이 돈이고 명예이고, 어디 한 자리 한 명함 팔려고 하니 필요한 것이 일방적이고 왜곡된 기억 밖에는
없다면 곤란합니다. 살면서 으뜸인 것, 삶이 나에게 깨우쳐준 가장 값진 진리는 바로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나의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계명도, 더 큰 진리도 없었습니다.
왜 이것을 말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고 합니까? 안될 일이고 안될 말입니다.
일천한 사제의 눈으로 볼 때 부(富)와
힘과 명예에서 생의 의미를 구하려는 교포
사회의 병든 모습이 보입니다.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일방적인 과거 속에 함몰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허무하고 덧없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몰라 쩍쩍 갈라진 마른 목을 호소하는 통증을 느낍니다.
배부르고 등 따수운 자들의 한국이 아니라, 깨지고 터지고 서글펐던 한국에 대하여 먼저 위로하고 격려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교포 사회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박정희를 넘어, 당신들께서 살아온 그 세월만으로도 세상을 향해 당당하고 떳떳하시기를 기도할 것이고, 우리
독일 교포 사회가 한국의 정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배부르고 등 따수운 자들의 한국이 아니라, 깨지고 터지고 서글펐던 한국에
대하여 먼저 위로하고 격려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투쟁이 필요합니다. 이기고 차지하고 군림하는 ‘동상’이 아니라, 낮추고 사랑하고 보듬는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일에는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더 자유로와져야 하는지,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참으로 평화로워지기 위하여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관하여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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