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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2일(주일설교) 고린도전서 6:1~11 다툼의 문제에 관하여 새찬송가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새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오늘은 고린도전서 6:1~11을 통해서 ‘다툼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 고발하며 소송하는 문제를 책망합니다. 바울은 형제에게 불의를 행하기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바울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음을 확신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원치 않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충돌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싸움’이라고 하는데 싸움은 ‘의견 등이 일치하지 않아 물리적 또는 비물리적으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합법적인 물리적 충돌’은 UFC, road FC, 권투 경기, 씨름 경기, 태권도 경기, 검도 경기, 유도 경기, 레슬링 경기, 공수도 경기, 무에타이 경기 등이 있구요. ‘합법적인 비물리적 충돌’은 토론 등이 있습니다. ‘싸움’과 비슷한 말로 ‘다툼’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떤 일이나 의견을 두고 두 사람 이상이 서로 따지면 싸우는 일’을 말합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무조건 참는 것이 맞는것인지, 그렇다고 매번 싸우는 것이 맞는 것인지, 옳은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이러한 갈등의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하라고 기록되었을까요? 먼저 성경에는 싸움에 대해서 두가지로 정의해 놓았습니다. 먼저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싸움이 있는 데, 그것은 ‘선한 싸움’ 즉 ‘영적 싸움’입니다. 또 하나 금지하는 싸움이 있는 데 그것은 ‘형제들간의 싸움, 성도들간의 싸움’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먼저 ‘영적 싸움’에 대해서는 엡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혈과 육, 즉 ‘사람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 즉 사탄, 마귀와의 영적싸움’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성도의 싸움의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이며 죄악의 근원인 마귀인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데, 인간의 수많은 생각 속에 침투하여 조종하고 부추겨서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싸울 때에는 죄에 이용당하고 있는 사람과 싸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고 당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귀는 자신의 실체는 숨긴 채, 사람을 앞세워 뒤에서 조종하고 사람에게 싸움을 부추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싸움의 실체를 분별하되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툼과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불평’과 같은 ‘어둠의 영’을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건에 유익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은 ‘성도와 고린도교회 사이의 고소사건’을 다루고 있는데요. 바울이 2절에 ‘지극히 작은 일’이란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볼 때 이 논쟁이 본질상 중요치 않은 예측컨대 재정적 이유이거나 손해배상보다는 ‘미납된 채무’에 대한 것일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로마 법 제도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그 당시 법정은 빈민들이나 심지어는 평민들도 쉽게 갈만한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실제로.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세속법정에서 판결을 받는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오직 부자와 권력자들만이 상대방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내의 부자성도들이 그렇지 못한 성도들과의 갈등을 세상 법정에 고발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 부끄러워하라(1~6절)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에서 성도 간에 일어난 다툼을 세상 법정에서 판결받으려는 것은, 모든 만물의 관계와 질서의 기준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인도해야 할 교회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합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툼 자체보다도 그 문제를 세상 재판관들 앞에서 고발했다는 사실에 통탄합니다. 종말에 성도는 주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고 왕 노릇할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도로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이 성도들 간의 다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세상 법정에 고발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늘을 이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면 이 땅에서의 다툼은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지극히 작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문제나 성도간의 갈등의 문제를 옳고 그름만 따지는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구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 공동체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차리리 불의를 당하라(7~8절)
바울은 교회 내부나 성도들의 문제로 인해 고소하고 고발하기보다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7,8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피차 세상 법정에 고발할 바에야 차라리 부당한 일이나 속임을 당하며 십자가를 지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이 다툼의 판단을 누가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교회공동체 내에서 서로 고소, 고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뚜렷한 허물임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옛 속담에 ‘누워서 침뱉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늘을 향하여 누워서 침을 뱉어 보아야 자기 얼굴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자기에게 해가 돌아올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비슷한 속담으로 ‘하늘 보고 침 뱉기’ ‘하늘에 돌 던지는 격’ ‘자기 얼굴에 침뱉기’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들에게 ‘자기 자식 흉보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지요. 남들 앞에서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흉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 욕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렇게 피차 세상 법정에 고발할 바에야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칩니다. 비록 내가 결백하더라도, 내가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교회의 덕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오히려 고발하지 않고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내가 져주거나 교회공동체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공동체의 덕을 위해,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스스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를 더 나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차라리 내가 손해보고, 내가 희생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세상 법정에 고발하고 고소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은 자답게 살라(9~11절)
사도바울은 교회의 다툼과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은 자답게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죄가운데 머물기를 고집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교회공동체를 멸시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깔아뭉개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9절과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과 같이 ‘표적’이나 헬라인들과 같이 ‘지혜’만 있으면 십자가가 필요없고, 회개가 필요없고, 주님의 은혜가 소용없고, 그저 내 마음대로 살아도 좋다는 식의 세상과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음행과 우상숭배, 간음과 도적질과 탐욕이나 술취함과 남을 모욕하거나 속여 빼앗는 것으로 남을 해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할 뿐 아니라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경고를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하지 않는 행위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11절 말씀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답게 살라고 회개할 것을 권면합니다. 엡 5:8,9말씀에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도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로서 세상의 불의를 회개하고 날마다 주님의 거룩함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며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이 설날인데,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데, 가족들 간의 갈등의 문제에 대한 큐티인 간증문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발자의 회개’라고 하는 심하민님의 ‘큐티인 간증문’입니다. [저는 가난하지만, 성실하신 부모님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로 자녀들의 교육을 열심히 뒷바라지 하셨고, 우리 3남매도 초등학생 때부터 고사리 손으로 농사일과 집안 일을 도우며 우애있게 자랐습니다. 그러다 제가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이후 하나님의 은혜로 가족 모두 예수님을 믿어 늘 모이면 간증이 넘쳐나고 서로 연합하며 행복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어머니의 칠순에 맞춰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좋은 추억만 쌓을 줄 알았는데, 부모님의 재산 문제로 어머니와 남동생이 얘기를 나누다가 어머니의 마음이 상했고, 저는 여동생과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과 모임이 자연스레 뜸해졌습니다. 그러던 재작년 겨울, 어머니께서 온천을 갔다가 목욕탕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두통만 조금 있으셔서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는 두통과 복통 등 통증이 심해지셔서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여 각종 검사를 받았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어 퇴원했지만, 점점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통증으로 어머니는 수시로 응급실을 찾으셨습니다. 가족 모두 어머니의 병환을 걱정하고 있을 때, 주님은 제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가족 여행 이후 여동생과 감정의 골이 깊어져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고, 게다가 믿음이 연약한 어머니께 “동생이 그렇게 함부로 말하고 못되게 구는 데 나무라지도 않냐”며 따지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여동생과 어머니를 고발했던 뚜렷한 저의 허물을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제야 저는 이것이 나를 회개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깨달아져 주께 형제와 화해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도 나의 지질함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주님은 동생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모욕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10절)고 합니다. 지금도 통증으로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가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계심을 깨닫고, 이제는 불의한 내 죄를 날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씻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 답게 살아가겠습니다.] 혹시라도 형제들간에 이 성도님처럼 갈등과 불화를 겪고 있다면 이런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설명절입니다. 요즘 대화형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눈부신데요. 미국 AI연구소 오픈AI는 지난해 11월 30일 AI 챗봇 ‘챗GPT(chatGPT)를 무료로 공개했는데요. 설날에 기자가 챗GPT에게 한국의 ‘설날’이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그 대답은 “설날은 한국의 새해이자 공유일입니다. 전형적으로 음력 1월 1일에 기념됩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절을 하고 선물을 주고 받는 등 전통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전통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명절 때 가족이 모일 때 젊은 세대가 싫어하는 게 바로 ‘걱정을 가장한 잔소리’인데, 챗GPT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나는 가족이 잔소리 하는게 싫어”라고 했더니 “나는 가족 모임이 여러울 수 있다는 걸 이해합니다. 특히 특정 구성원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에는 당신의 감정을 가족에게 차분히 공손하게 전달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명절에 가족들 끼리 오랬만에 모여서 화기애애하기 보다는 ‘다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 때 성도들은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제 제가 교회 카톡방에도 공유했었는데요. “(가족 기도문) 가족들을 만나기 전에, 꼭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세요”라는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가족들을 만나기 전, 성경 말씀을 읽으면 충분히 기도하며 준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마귀는 가장 가까운 가족을 통해 서로를 미워하게 하고, 상처를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이라도 계속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까?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잘 사고 싶은데 자신이 없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가족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과거의 아픔을 믿음으로 극복하면서 가족을 축복하십시다] [가족축복기도문[입니다. 이 내용은 <기도는 죽지 않는다. 홍장빈, 박현숙>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다같이 눈을 감으시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제가 읽은 내용을 마음 속으로 따라서 함께 기도해보시면 어떻까요? 다같이 눈을 감아주세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가족을 바라보는 주님의 눈을 제게 주옵소서, 우리 가족을 주님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항상 다스려주옵소서. 우리 가족의 슬픔을 위로해주시고 아픔을 치료해주옵소서. 필요를 채워주시고 불안을 잠재워주옵소서. 우리 가족을 지으시고 돌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가족에게 복 주시길 원합니다. 구원의 복과 영생의 복을 주옵소서. 주님을 아는 복을 주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을 주옵소서. 우리 가족을 지켜주시기 원합니다. 몸을 지켜주시고 생각과 마음과 입을 항상 지켜주옵소서. 세속 가치로 부터 지켜주시고, 죄와 어둠으로부터 지켜주옵소서. 주님의 얼굴을 아버지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 원합니다. 좋은 성품이 살아나고 장점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우리 가족들이 주를 찾게 해주세요. 성경을 읽고 싶은 갈망을 마음에 부어주옵소서.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진리를 깨닫게 해주옵소서. 복음을 깨닫지 못하도록 막는 거짓의 영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합니다. 두려움과 불안의 영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십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상처준 일을 회개합니다. 때로는 제 마음이 가족들로 인해 상한 적도 많습니다. 저도 그들을 용서합니다. 주님, 우리 가족들이 서로 용서하게 해 주시고 하나가 되게 해주옵소서. 음란과 폭력과 중독으로부터 지켜주옵소서. 상처를 싸매시고 아픔을 낫게 해주옵소서.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시켜주옵소서. 영적 결핍을 채워주옵소서. 우리 가족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선을 택할 줄 아는 용기를 주옵소서. 모두 주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소망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축복하며 성령으로 하나된 가족 모임을 소망합니다. 이 모습이 실상이 되게 하옵소서. 제 눈으로 볼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겠습니다. 주님, 끝까지 기도할 힘과 능력을 제게 주옵소서. 주님의 얼굴을 향하여 드사 우리 가정에 주님의 평화를 주시기 원합니다. 가족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사 왜곡된 시각을 바르게 펴주옵소서. 사랑의 빛을 비추사 서로 사랑하는 따뜻한 가족이 되게 하옵소서. 가족 모두를 축복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근영 작가는 “음식을 하려면 냄비를 가스불 위에 올리듯 기도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힘과 능력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명절, 그냥 가지말고 꼭 말씀과 기도로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김길님이 지은 책 <사명> 중에 이런 내용에 이런 말을 합니다.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기 전, 기도로 준비해보십시다. 가족끼리 만나면 행복한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쉽지 않은 가정이 많은 것 같아요. (저 포함) 하지만, 정말 성경말씀을 충분히 읽고 기도로 준비하고 가면 다르더라고요.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해야 주님이 일하실 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피난처 되신 주님만 붙들고 기도하며 나아가요” 그러면서 자기 간증을 말합니다. [나는 늘 명절이면 집에 가기가 싫었습니다. 명절이라고 잘 모이지도 않았지만 혹 모여도 결국은 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해 형의 강력한 권유로 광주에 내려갔습니다. 가기 전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몇 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과만 명절을 보냈습니다. 역시 광주에 내려갔는데 긴장과 스릴이 넘칩니다. 모두가 식사를 한 후에 형수님이 말합니다. “밥은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어머니가 하세요.” 순간 분위기가 얼음이 됩니다. 여기서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반드시 술 먹고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나서기로 했습니다 “밥은 형수님이 하셨으니까 설거지는 남자들이 합시다.” 그래서 내가 먼저 설거지를 하고, 다음에는 형이 한 번 하고, 결혼한 조카가 한 번 하고, 돌아오기 전 내가 한 번 더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할렐루야 내가 은혜 받았다고 가족들의 연약함을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작은 통로가 될 뿐입니다. 정 안 되면 피하고, 도울 수 있으면 판단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보지 말고 진심으로 마음을 일으켜서 도와야 합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평생 원망만 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람이 할 일이 절대 아닙니다. 용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십자가에서 용서하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은혜 받았다고 오버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면 반드시 더 큰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냥 나의 작은 변화가 가족들에게 감지되고 나의 작은 섬김이 가족의 썰렁한 분위기를 조금 완화시킬 수 있음을 알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설명절에 모이는 가족들 뿐 아니라 교회 내에 다툼으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고발하는 그래서 세상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같은 교회를 섬기는 성도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얼마나 존귀한 지를 깨닫고 우리에게 섬길 수 있는 교회 주심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내가 먼저 십자가를 지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남의 죄 뿐 아니라 불의한 나의 죄를 날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씻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 답게,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 설명절에 이런 기도를 통해 2023년도 새해 새롭게 결단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