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통성은 대종교 교리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갖는데, 『천부경』 내용도 이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
전체 81자를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대종교의 여러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원용(援用)하여 설명하고,
그런 다음에 일괄 풀이를 하는 방식으로 한다.
① 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우선 一, 무시(無始), 삼극(三極)의 뜻이 문제이다. 『신리대전(神理大全)』에서는 “대종지리(大倧之理)는 三一일 따름이다.
一이 있고 三이 없으면 그 용(用)이 없고, 三이 있고 一이 없으면 그 체(體)가 없으니, 고로 一은 三의 체가 되고 三은 一의 용이 된다.”, “천지의 이치는 一을 상(常)으로 하고, 三을 변(變)으로 한다.”라 하였다.
그리고 『회삼경(會三經)』에서는 “크도다, 신도(神道)여, 즉일즉삼(卽一卽三)이 되어서 체(體)로써 끝없이 위에 이르고, 용(用)으로써 끝없음을 다하도다.”, “이 세가지 도(道)는 사람이 또한 가졌으되, 다만 사람에게는 시작이 있고 신(神)에게는 시작이 없을 뿐이니라(無始而己).”, “귀일(歸一)은 삼진귀일이니 곧 반진일신(返眞一神)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一’은 수리적으로는 三에 대한 체요 천지지리(天地之理)의 근본[常]이며, 또한 삼신일체의 일신(一神)이며 신도(神道)의 뜻이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무시’가 신의 절대성과 관련하여 쓰였음을 알게 된다.
이어서 『회삼경』에서 “성(性)은 ○로 보고 명(命)은 □로 보고 정(精)은 △로 보니 이것을 삼묘(三妙)라 한다.”, “철인(嚞人)이 이것을 써서 삼극의 상(象)을 삼으니 ○는 하늘이요 □는 땅이요 △은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삼극’은 천·지·인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풀이하면 삼신일체로서의 일신(一神)인 한배검의 신도는 우주만물의 근본이요, 또한 비롯됨이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 근본이 되는 一이 작용하여 천·지·인의 삼극을 이루는 것이지만, 이 작용은 그 근본(體)됨을 다한 것이 아니다.
②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일적십거무궤화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 一·二·三·十의 뜻이 문제이다. 그리고 같은 숫자의 뜻이 쓰임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천一一과 지一二, 그리고 인一三의 一의 수는 생(生)·화(化, 長)·성(成)의 3단계에서 첫번째 단계이며(體로서 生의 조짐만을 머금었을 뿐), 아직 형상을 이루기 전인 첫 단계를 뜻한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一·二·三의 수는 『회삼경』에 “…수로써 하면 ○는 一로 비롯하고, □는 二로 비롯하며, △은 三으로 비롯한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천·지·인의 창조과정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신리대전』에 “一에서 十과 十에서 백(百)과 백에서 만(萬)은 모두가 하나로 말미암아 쌓이지 않음이 없으니 고로 一이 체가 되고, 三으로 九, 九로 二十七, 二十七로 八十一은 모두가 三으로 말미암아 변하지 않음이 없으니, 고로 三이 용이 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十은 수리적으로 모든 수의 끝 수로 무한성을 나타내며, 三은 모든 변화의 기본 수임을 알게 된다.
이를 풀이하면, 창조과정에서 하늘의 근본인 一은 첫번째가 되고, 땅의 근본인 一은 두번째가 되고, 사람의 근본인 一은 세번째가 되었다. 이 만유(萬有)의 근본인 一을 쌓아 나가면 十까지 끝 수에 이르도록 커져서 우주만상이 이루어지는 데 아무 부족함이 없이 三이라는 용수(用數)로 이룩하게 된다.
③ 천이삼지이삼인이삼대삼합육생칠팔구(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 천·지·인 다음에 모두 二三으로 표현된 것은, 바로 앞에서 一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 것에 이어서, 여기서는 화(化)를 뜻하는 二와 성(成)을 뜻하는 三의 단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신사기』에 “홀로 양(陽)만으로는 생(生)하지 못하며, 홀로 음(陰)만으로는 화(化)하지 못한다. 치우치게 맞서면 성(成)이 어그러지며, 음양이 서로 감(感)하고 화(和)하여야 기름[育]을 도울 수 있다.”라고 하여, 음과 양이 어울려서 형상을 갖추게 되는 단계가 두번째인 화(化)이며, 완성하게 되는 단계가 세번째인 성(成)임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다음은 『회삼경』에 “육대(六大)가 있은 뒤에야 신도가 드러나고, 진(眞)과 망(妄)이 있은 뒤에야 인도가 나타나니, 상천(上天)과 하천(下天)이 이치가 통한다.”, “이 길(神道)이 한 번 변하매 육대가 성상(成象)하니, 가로대 공(空)·열(熱)·진(震)·습(濕)·한(寒)·고(固)이다.
공은 천(天)이 되고 열은 화(火)가 되고 진은 전(電)이 되고 습은 수(水)가 되고 한은 풍(風)이 되고 고는 지(地)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천지간에 육대현상(六大現象)이 신도에서 비롯되는데, 이 신도는 또한 신의 대덕(大德)·대혜(大慧)·대력(大力)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대삼합육(大三合六)’을 추론(推論)할 논거가 마련되지만, 특히 ‘六’은 『회삼경』에서 “…후천지수(後天之數)는 처음이 二요 가운데가 六이요 十에서 끝난다….”라고 하였으니, ‘六’은 수리적으로 우주생성과 운행과정의 중간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어서 七·八·九는 二에서 十까지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六에 이어지는 과정을 간단히 나타낸 것이다.
이리하여 천·지·인 삼극은 각각 음양을 갖추어 형상을 이룩하는 二인 화(化)의 자리를 거쳐 일단 완성을 뜻하는 三인 성(成)의 자리에 나아가게 된다.
여기서 한배검의 대덕·대혜·대력 하심은 천지간에 육대현상을 성상(成象)하여 신도를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는데, 이 단계는 우주생성과 운행과정의 중간으로 ‘七·八·九’의 다음 단계가 이어진다.
④ 운삼사성환오칠일묘연만왕만내용변부동본(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三·四·五·七의 뜻이 문제이다. 다만, 이제까지는 우주만물의 모든 생성과정인 十까지를 일괄하여 설명한 데 비하여, 여기서는 이렇듯 생성된 것들이 어떻게 운행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사기』에 “공경하게 치화주(治化主:단군)를 상고하니 가로대 한검(桓儉)이시니 오사(五事)를 맡으사 홍익인간 하시며, 처음 나라를 세우사 제통(帝統)을 만만대로 드리우시다. 삼선(三僊: 三仙)과 사령(四靈)에게 명하시어 공경하게 직분(職分)을 주시고, 인간 366사를 맡아 다스리게 하시다.”라고 하였는데‘運三四’의 三四는 삼선사령을 가리킨다고 판단한다.
다음에 ‘성환오칠(成環五七)’, 즉 五와 七이 가락지 같은 원(圓)을 이룬다는 것은, 나머지 十까지 수를 아울러 검토할 때 어떤 원형(圓形), 다시 말하여 주역(周易)의 하도(河圖)나 낙서(洛書)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들과는 다르게 『회삼경』에는 신도에 따른 우주천지의 운행을 설명하는 선천지도(先天之圖)와 후천지도(後天之圖)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한배검이 홍익인간의 뜻을 가지고 새로이 창세(創世)한만큼 ‘후천지도’가 쓰이겠는데, 바로 이 후천지도의 한가운데 있는 중궁(中宮)의 수가 六이다. 이 六을 가운데에 두고 五와 七, 四와 八, 三과 九, 二와 十 등 넷이 배열되어 있다. 다시 말하여 ‘성환오칠(成環五七)’은 이 후천지도에 따른 운행을 가리키고 있다.
또 다음에 ‘일묘연(一妙衍)’의 一은 바로 ‘일신(一신)’을 뜻하고, 수리적으로 말하면 앞에서도 설명한 바 있듯이, 모든 수의 체가 되는 근본 수 一인 것이다.
이를 풀이하면, 우주천지는 신도에 따라 삼선사령이 모든 일을 맡아 주관하며, 정해진 이치(후천지도에 나타난)에 따라 운행된다. 一이라는 근본 수는 오묘(奧妙)하게 불어서 우주천지간에서 무한한 작용을 일으키지만, 그 용만이 변할 뿐이고 근본은 변동이 없다.
⑤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일종무종일(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여기서는 신도 차원의 설명을 인도(人道) 차원에서 다시 정리하면서 끝마무리를 짓고 있다.
즉, ‘본심(本心)’의 심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회삼경』에 보면 신도는 육대가 있음으로 하여 드러나고, 인도는 삼진(三眞)인 성(性)·명(命)·정(精)과 삼망(三妄)인 심(心)·기(氣)·신(身)이 있음으로 하여 나타나며, 상천(上天)의 신도와 하천(下天)의 인도는 그 이치가 서로 통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상천은 성천(性天)이니 곧 신도요 하천은 심천(心天)이니 곧 인도라 하여 신도와 인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인도가 서기 위해서는 심(心)이 중심이 된다는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심’에 대하여 살펴보면, 사람은 본래적으로 성·명·정 삼진을 품수(稟受)하여 무선악(無善惡)하고 무청탁(無淸濁)하고 무후박(無厚薄)하지만, 배태초(胚胎初)에 삼망이 뿌리박아서 심·기·신을 지니게 된다.
심은 성에 의지하여 선악이 있게 되고, 기는 명에 의지하여 청탁이 있게 되며, 신은 정에 의지하여 후박이 있게 되는데, 이 때문에 사람은 가달길[妄途]로 빠질 수도 있는 위태로운 처지가 된다.
여기서 뜻을 하나로 모아 바른길로 나가서(一意化行) 삼망에서 벗어나 삼진으로 돌아가는 ‘반망귀진(返妄歸眞)’의 길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통공완’하여 ‘삼진귀일’하는 인도인 것이며, ‘본태양앙명(本太陽昻明)’의 뜻도 이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의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은 맨 처음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대조적인 의미로 쓰였음이 분명하다. 一이 체로서 근본으로 우주만물을 ‘비롯됨’이 있게 하였다면, 또한 ‘되돌아옴’이 있게 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서도 ‘비롯됨이 없고’ ‘마침도 있을 수 없다’는 영원한 신도의 절대성이 자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근본은 또한 곧 심이요, 태양과 같이 밝게 비치면 반망귀진하고 성통공완하여 삼진귀일하는 인도가 설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사람은 천지 가운데 서서 신도와 함께 할 것이다. 이렇듯 모든 이치가 근본인 신도로 돌아가지만 이 근본은 마침이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현재 검단사의 주불전은 법화전이며, 이 전각에는 조선 후기에 제작 한 목조관음보살좌상(문화재자료 제41호)과 아미타회상도(1854), 그리고 신중도(조선 후기) 등이 봉안되어 있다. 검단사 〈아미타불회도〉는 1854년에 조성되었으며,
제작에는 찬종(讚宗)과 해운일환(海雲一環)을 비롯해 7인의 화승 이 참여하였다.
검단사 〈아미타불회도〉는 가로 172cm 세로 118cm로 가로 화면에 맞게 주존을 중심으로 권속들이 옆으로
넓게 배치되어 있다. 옆으로 배치된 권속 사이로 주목되는 표현은 여래가 앉아 있는 불단이다. 불단 역시 화면에 맞게 가로로 긴데, 불단 상판에는 나무결을 장식해 갑자기 넓어진 공간이 어색하지 않게 처리하였다.
이 불화의 주존인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왼손은 배 부분에 올려놓은
설법인을 하고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아미타불의 주변에는 6位의 보살과 6명의 제자, 그리고 사천왕 등이 배치되어 있다.
보살 중 존명이 확인되는 보살은 흰 두건을 쓴 보관에 화불이 표현되고 손에 정병을 든
관음보살과 마찬가지로 정병이 표현된 대세지보살뿐이다. 제자 역시 존상 표현과 배치법에 따라 존명을 알 수 있는
이는 여래 좌우에 있는 노비구 형상의 가섭존자와 젊은 승려인 아난존자뿐이다.
아미타불을 비롯하여 그 외 보살과 제자의 표현을 보면, 타원형의 얼굴에 허리가 긴 세장한 신체로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표현은 시기와 작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활동한
경기화승들이 구사했던 화풍에 연원을 두고 있다. 색채는 짙은 홍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녹색, 청색,
백색 등을 이용해 색의 변화를 주었다. 또 채도가 높은 청색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코발트계의 색은
특히 19세기 후반 불화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아미타불회도>에서 보이는 가로축 중심의 화면, 주존을 중심으로 횡으로 배치되는 구도,
18세기 후반의 경기화승의 화풍의 계승, 과도하게 크게 묘사된 불단 등은 19세기 전반 경기도에서 제작된
후불도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퍼온글
법화전
무량수전
10시33분 금단사에서 내려와 살래길로 진입
국가대표 축구 연습장
10시54분 장준화 공원
**장준하 ; [ 張俊河 ]
한국 언론인 겸 정치가.《사상계》를 창간하여 사장이 되었으며,
정계에 들어가 그해 제7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을 통하여 박정희 정권에 맞섰고, 범민주세력의 통합에 힘썼다.
줄이고
한국전쟁 중인 1953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문교부장관 백낙준(白樂濬)의 추천으로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에 소속되어 종합교양지 《사상(思想)》을 창간하였다.
하지만 이기붕(李起鵬)과 박마리아의 방해로 폐간되자 이름을 바꾸어《사상계(思想界)》를 창간하였다. 《
사상계》는 1955년 6월을 기점으로 발행부수가 2배로 확대되었고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데 앞장섰으며 국내 지식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최고의 잡지로 영향력이 높은 잡지로 성장하였다.
장면(張勉) 내각에서는 국토건설본부 기획부장을 맡아 국가 건설을 위한 정책기획을 담당했다. 하지만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한국사회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게 되자 당시 혁명정부의 민정이양을 두고 박정희(朴正熙), 김종필(金鍾泌) 을 비판하는데 앞장섰고 이때문에 장준하와 《사상계》는 위기에 내몰렸다.
1962년 한국인 최초의 막사이사이(Magsaysay) 언론상을 수상하면서 장준하와 《사상계》가 이룬 업적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추진했던 대일외교, 월남파병 등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1967년 정계에 들어가 그해 제7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고 《사상계》 사장으로 복귀하였으며, 1973년 민주통일당최고위원이 되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을 통하여 박정희정권에 맞섰고, 범민주세력의 통합에 힘썼으나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추락하는 의문의 사고로 사망하였다. 저서에 《돌베개》가 있다.
1992년 9월 8일 개관하였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은 예로부터 서울과 개성을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로 고려 말에 쌓은 산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산 정상에 세워진 통일전망대는 지상 5층, 지하 1층의
석조건물로서, 해발 140m의 높이에 자리잡은 원형전망실에서는 북쪽으로 개성시의 송악산(松嶽山:489m)이 보이고
북한 주민들이 농사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밖에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을 맞아 이산가족들이 북한에 두고 온 조상들을 추모하는 망배단,
지름 2m, 무게 6백㎏의 거대한 통일기원북, 조만식(曺晩植) 동상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망대 모습
북에 조상을 둔이들이 제사를 올리는 제단
고당 조 만식선생의 동상안내문
**조만식 ; [ 曹晚植 ]
호는 고당(古堂). 1910년 명치대학(明治大學) 법학부에 입학하여 1913년 졸업한다. 1913년 귀국 후 이승훈(李昇熏)이 설립한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사로 취임했고 1915년에 교장이 된다.
1919년3ㆍ1운동이 일어나자 이 운동에 적극 참가하기 위하여 오산학교 교장을 사임하고 평양으로 가서 평양의 제2차 만세시위운동의 조직 책임자로서 독립운동을 지휘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1월에 가석방된다. 출옥 후 다시 오산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1921년에는 평양 기독교청년회(基督敎靑年會) 총무에 취임하는 한편 산정현교회(山亭峴敎會)의 장로로 시무한다.
그렇군요. 공릉천 하구에서 장명산은 6km나 더 안쪽으로 올라와야 있군요. 정맥은 바다와 만나는 입해처로 가는게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원칙이고 보면 장명산 보다 바다의 짠물과 마주하는 오두산이 한북정맥의 끝이란 말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정맥이 어떻게 바다로 가는 것도 아니고 개천에서 끝날 수 있느냔 말이죠. 그것도 수계를 나누는 것도 아닌,,, 한북정맥 끄트머리는 잘 갈아엎은거 같아요. ㅋ
장준하선생 추모공원이 아주 가깝네요. 알았으면 가봤을텐데 아깝습니다. 신한북정맥 마루금을 타고 오두산으로 가는 자유로 육교를 건넜는데 군인들이 제지를 하더군요. 잊어먹지도 않네요. 그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코로나로 출금 상태인 오두산 정상에 방송국 차량이 여러 대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따로 날을 잡아 합정동에서 버스를 타고 성동사거리에서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 오두산에 올랐습니다.
오두산성은 고당 조만식선생 보다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주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이번 구간은 파주 출판단지를 지나 통일전망대를 둘러보는 순이었군요. 무더위에 아스팔트길 열기도 만만치 않을텐데... 노변 주변의 문화마당 처럼 볼거리도 진풍경입니다. 통일전망대에서 보는 개성 등 북녘땅 모습도 잘 보이네요. 만만치 않은 행보 이어지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첫댓글 산중선배님!
광복절 대체휴일을 평화누리길 4구간에 오롯이 투자하셨군요.
그렇군요. 공릉천 하구에서 장명산은 6km나 더 안쪽으로 올라와야 있군요.
정맥은 바다와 만나는 입해처로 가는게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원칙이고 보면
장명산 보다 바다의 짠물과 마주하는 오두산이 한북정맥의 끝이란 말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정맥이 어떻게 바다로 가는 것도 아니고 개천에서 끝날 수 있느냔 말이죠. 그것도 수계를 나누는 것도 아닌,,,
한북정맥 끄트머리는 잘 갈아엎은거 같아요. ㅋ
장준하선생 추모공원이 아주 가깝네요. 알았으면 가봤을텐데 아깝습니다.
신한북정맥 마루금을 타고 오두산으로 가는 자유로 육교를 건넜는데 군인들이 제지를 하더군요.
잊어먹지도 않네요. 그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코로나로 출금 상태인 오두산 정상에 방송국 차량이 여러 대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따로 날을 잡아 합정동에서 버스를 타고 성동사거리에서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 오두산에 올랐습니다.
오두산성은 고당 조만식선생 보다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주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감사합니다.
사진을 보니 누군가 말벗이 있어 두런두런 얘기 꽃 피우며 걸으면 좋을듯 하네요. ㅎ
연휴 잘 보내신거 같네요~
지맥산행도 혼자 많이 다녀서....지맥은 완자했지만 ....
누리길도 혼자 답사하게 되네요
누리/둘레길은 혼자가 아닌 몇명이서 답사하면 더욱더 좋겠내요
이번 구간은 파주 출판단지를 지나 통일전망대를 둘러보는 순이었군요.
무더위에 아스팔트길 열기도 만만치 않을텐데...
노변 주변의 문화마당 처럼 볼거리도 진풍경입니다.
통일전망대에서 보는 개성 등 북녘땅 모습도 잘 보이네요.
만만치 않은 행보 이어지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날씨도 덥고 심심해서 집근처라 한번 둘러 봤습니다
날씨가 좀 수그러저 도로라도 답사할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