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골목] <15>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돌락'시장
여기가 지상낙원?… 붉은 파라솔 가득한 시장에는 과일 향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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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아티아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많은 관광객들이 성 안팎을 거닐고 있다. 김남진 씨 제공 |
세계일주 계획을 짤 때 크로아티아는 빠져 있었다.
그런데 기내 잡지에서 크로아티아 광고사진을 본 뒤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 지상낙원을 보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미국 극작가인 버나스 쇼가 이곳을 찾았을 때 했던 말이란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현정의 커피 광고에도 크로아티아가 등장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는 국가 대항전 축구 외에는 거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나라였다.
사람도, 풍경도, 거리도….
왜 진작 알려지지 않았는지.
■ 여대생의 민박집… 침실 하나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6시간이 걸려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자그레브 역을 나오니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길은 어둡고 배낭은 물에 젖은 솜처럼 지독히 무거웠다.
예약한 민박집을 겨우 찾았는데, 침실과 거실이 하나 뿐이었다.
침실에는 1인용 침대 3개가 놓였지만, 집주인은 우리 부부에게 방을 통째로 다 내어준 뒤
자신은 거실에 책장 하나를 벽처럼 세워 그 뒤의 소파 위에서 잠을 잤다.
집주인은 25세의 여대생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작은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제육볶음
여독에 비까지 맞아 곧바로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쯤 됐을까?
부엌에서 도마질 소리가 들렸다.
이른 시간에 무슨
요리를 하느냐며 성가신 표정으로 문을 살짝 열었더니,
그 여대생 주인이 부엌과 거실 책상 위의 컴퓨터 모니터를 분주히 오가며 음식을 만드는 중이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제육볶음 레시피가 보였다.
새벽 5시에 시작된 요리는 아침 8시에 끝났다.
식탁 위에는 제육볶음과 콩나물국, 계란말이, 찐 양배추가 올려졌다.
제육볶음은 너무 매웠다.
하지만 맵다는 표정 대신 너무 맛있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음식은 맛이 아닌 감동으로 먹는다는 사실을 그때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 과일 향기 향긋한 돌락시장
자그레브 도시 여행은 자그레브 중앙역 광장에서 시작했다.
역 광장에는 크로아티아 국부인 토미슬라브 왕의 동상이 서 있었다.
동상을 배경으로 앞으로 걸어가면 자그레브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반 옐라치치 광장에 닿는다.
6∼7개 공원이 이어진 이 광장은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광장을 지나 돌락시장을 찾았다.
붉은 파라솔이 가득한 재래시장은 아드리아 해의 따뜻한 햇살을 간직한 듯 향긋한 과일 향을 잔뜩 풍겼다.
시장에서 과일 한 봉지와 샌드위치, 크로아티아 전통 빵을 산 뒤 자그레브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는
로트르슈차크 탑에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느긋하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즐겼다.
크로아티아는 그런 곳이었다.
■ 관광객 끌어들이는 '바다오르간'
다음 목적지는 플리트비채국립공원.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에 있다.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이곳은 반딧불이 많아 '요정의 숲'으로도 불린다.
16개 호수가 크고 작은 90여 개 폭포와 연결되는데, 각 호수는 빛의 굴절에 따라
초록, 청색, 청록색, 잿빛 등으로 다양하게 연출된다.
플리트비채국립공원에서 나와 자다르로 이동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바다오르간' 때문이다.
항구 끝의 방파제에 27개의 파이프 구멍을 뚫어 만든 오르간인데,
귀를 대니 "뿌~, 웅~, 삐~, 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오르간은 니콜라 바시츠라는 크로아티아 설치예술가의 2005년 작품으로, 자다르의 옛 영광을 살리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작됐다고 한다.
자다르는 과거 상선과 여객선이 드나든 주요 기항지였으나 지금은 수심이 낮아 큰 배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크로아티아에서 마지막 여행지는 두브로브니크.
아름다운 도시였다.
옛 성은 유럽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성은 박제화된 지 오래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는 달랐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 안팎에 거주하면서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골목마다 과일가게, 정육점, 이발소가 위치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 시설을 이용했다.
유고 내전 당시 이 성이 파괴될 상황에 놓였는데, 당시 유럽 지성들이 스스로 인간 방어벽을 만들어
폭격을 막아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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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 27개의 파이프 구멍을 뚫어 만든 자다르의 '바다오르간'(위)과
두브로브니크의 보트들 |